갑판원 정태석 씨는 이렇게 말했다. "갑판원의 일터는 마스트 꼭대기에서 탱크 바닥까집니다. 또 녹슨 船體(선체)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과 탱크 청소하는 게 두 가지 큰 일이죠. 달리는 배 위에서 20미터 높이 마스트 꼭대기에 내 몸을 묶고 페인트를 칠하는 건 지긋지긋해요. 그래도 일단 몸을 놀려 일에 몰두하면 무섬증이 사라집니다. 탱크 안 작업은 달라요. 탱크 속으로 내려갈 때마다 내가 다시 살아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지요. 밀폐된 탱크 바닥에서 일하면 기분이 먼저 갑갑해져 금방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솟구칩니다." '동해'에선 탱크 청소를 할 때는 선원들에게 라이터를 호주머니에도 못 넣게 하고 있다. 라이터가 갑판이나 탱크 바닥에 떨어지면 정전기 스파크가 일어날 수 있고 그것은 대폭발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갑판 위에서 탱크 출입구(해치)에 기대어 탱크 속의 작업을 구경하던 갑판원의 웃옷 호주머니에서 라이터가 흘러나와 탱크 속으로 떨어졌다. 바닥 철판과 부딪치면서 스파크, 이어서 원유가스가 폭발, 작업선원 두 명이 불 타 죽은 사고가 외국에서 있었다. 보통 4, 5일 걸리는 탱크 청소를 마치면 선원들은 그 항차의 일은 3분의 1이 끝났다고 말한다. 나머지 3분의 2는 原油(원유) 실음과 원유 부림. '겨울의 남지나해 치고는 얌전하다'고 선원들은 말했지만 船首(선수) 갑판에는 계속 파도가 올라오고 있었다. 선수 갑판 밑에 있는 창고로 들어가려는 선원은 비옷을 입어야 했다. 갑판부원들도 갑판 위 작업을 중단하고 있었다. 갑판원들의 작업은 흔히 '소금기와의 싸움'이라고 한다. 海水(해수)의 소금기는 철판에 파고들어 썩게 한다. 뱃전, 갑판, 마스트는 온통 녹의 흉터로 뒤덮인다. 이 부식을 막기 위해 특수 페인트를 끊임없이 칠한다. 그것도 세 겹으로. 갑판부 선원들의 작업 시간 중 거의 3분의 2가 페인트칠에 소모된다. 옛날에는 선원이 되려면 '오햄머를 잘 쳐야 된다'고 했다. 기관실이나 갑판의 마개·뚜껑·밸브 따위를 열고 닫으려면 홍두깨만한 쇠망치로 나사를 풀고 죄야 했었다. 완력으로 감당하던 그런 일은 이제 유압 또는 공기 압력으로 해결된다. 요즘은 선원들의 특기가 '칠을 잘해야 한다'로 바뀌었다. 이 갑판의 페인트칠도 겨울엔 남지나海에 진입하기 전에 끝내야 한다. 남지나海를 지날 때는 풍랑으로 갑판 작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원들이 고구마라고 부르는 대만을 향해 北北東進(북북동진)하는 동해 2호는 끙끙대며 비탈을 오르는 짐꾼처럼 힘겹게 보였다. 지금까지는 바다를 '미끄러져 왔다'면 이제는 바다를 '뚫고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높이 3, 4미터의 파도, 그 첨탑이 해면을 자욱히 뒤덮었다. 바다가 좁아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해면이 전체적으로 쑥 올라온 것 같았다. 나는 船首 갑판 밑 창고에 들어갔다. 파도의 충격을 가장 가깝게 느껴보고 싶었다. 두께 5센티쯤의 철판을 사이에 두고 나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마주했다. 꽈, 꽝-쿵, 꽈당-20초에 한 번쯤은 금속성 굉음이 코앞에서 터지고 있었다. 밀폐된 창고 안에서 그 소리는 귀 속과 속골까지 멍멍하게 만들었다. 폭음이 터질 때마다 배는 주춤주춤했다. 버스 운전사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의 그런 느낌이었다. 23만 톤의 선체와 파도의 격돌. 금방이라도 파도가 철판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면서 창고로 밀려 들어와 나를 휩쓸고 나가버릴 것 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船尾(선미) 브리지에선 파도의 폭음이 먼 戰場(전장)에서 울려오는 은은한 포성처럼 들려왔다. 320미터 저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철판과 파도의 死鬪(사투)는 이 유조선 마을 사람들에겐 딴 동네의 일처럼 무관심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기관실에선 또 수리작업이 한창이었다. 연료유인 벙커시유는 섭씨 백 도쯤까지 데운 다음 연소시킨다. 이 연료유 가열장치 속의 스팀 튜브(이 튜브 속으로 뜨거운 스팀이 지나가면서 연료유를 가열함) 속에 찌꺼기가 양초처럼 끼어 가열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 찌꺼기를 긁어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두 대의 연료유 가열장치를 번갈아 청소하자니 하나밖에 돌릴 수 없게 되었다. '동해'의 속도는 8노트로 낮추어졌다. 아하마디 출항 뒤 네 번째의 기관실 수리. 李 선장은 수리가 끝나자 尹 기관장의 노고를 위로하는 술자리를 집무실에서 베풀고는 '울산에서 배를 타기 전날 밤 꿈에 몽키 스패너가 보이더니…'라고 중얼거렸다. '딱, 그 꿈대로 돼 갑니다'라고 기관장은 말을 받았다. "제가 1등 기관사 시절에 말입니다. 어느 날 기관장이 간밤에 북해도 화산이 폭발하는 꿈을 보았다고 하는 거예요. 바로 그 날 기관실에서 폭발 사고가 터져 불이 났어요." 꿈이나 '상어사냥'과 같은 불길한 징조에 대해 유달리 소심한 尹 기관장이었다. 다른 선원들은 그들의 안전과 특별한 관계된 특별한 터부 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듯했다. 그러기에는 유조선은 너무나 기계화, 거대화, 非인간화된 강철덩어리다. 그러나 한 사람 조리수 김동훈씨(35세)는 '불길했던 사건'으로 해서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있었다. 가슴이 털북숭이고 얼굴은 활극 영화의 배우처럼 생긴 강건한 체구의 그는 탁구를 칠 때만 빼고는 거의 입을 떼지 않고 과묵하기 짝이 없는 부산 사람이었다. 침실이 내 것과 붙은 인연으로 해서 나는 밤에 가끔 그를 찾아갔다. 어느 날 밤 그는 이런 체험담을 털어놓았다. ―지난 1978년 일본 산코 라인의 광석 유류 겸용선을 탈 때였다. 그는 '살롱'으로 일하고 있었다. 선장까지 모두 한국 수출 선원들이었는데 기관장만은 일본인이었다. 미국 근해를 지나고 있던 어느 날 아침 김씨는 여느 때같이 기관장 방을 청소하려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관장은 죽어 있었다. 한 손으로 전화기를 잡은 채 침대 위에 엎드려 숨진 싸늘한 屍身(시신)이었다. 심장마비사였다. 시신을 난생 처음 본 그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충격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시신을 수습하여 육곳간으로 옮기게 되었다. 기항할 때까지 냉장 육곳간에 보관키로 한 것이다. 기관장의 뻣뻣해진 시체를 흰 베로 감싸고 선원들이 방을 나서자마자 전기가 나가면서 복도 벽에 비상벨이 발갛게 깜빡깜빡 울기 시작했다. 컴컴한 복도, 따르릉― 소리, 흰 시신, 피빛으로 번득이는 비상벨. 여기에서 김씨는 더한 쇼크를 받았다. 다른 선원들은 기관실로 뛰어내려갔다. 보일러와 엔진이 갑자기 작동 정지된 것이었다. 고장 원인을 찾는다고 법석을 떠는 사이 기적처럼 보일러와 엔진이 되살아났다. 고장원인도, 회생의 까닭도 밝힐 수 없었다. 선원들은 기관장의 죽음과 이 원인 모를 고장을 연관시키기 시작했다. 선실엔 삽시간에 공포 분위기가 깔렸다. 선원들은 혼자 자기가 두렵다 하여 한 방으로 두서너 명씩 모여 자기 시작했다. 屍身을 지키는 당직도 두 사람씩 했다. 두 사람도 모자라 나중엔 십여 명씩이 육곳간 앞에 모여 술판을 벌여 놓고 밤을 지새웠다. 이 충격으로 김씨는 심장병에 걸렸다고 한다. 괜히 불안해지고 가슴이 두근두근하며 안절부절 하는 증상이었다. 책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잠자리는 악몽의 연속―. 3년쯤 치료를 받고 거의 회복은 된 것 같지만 지금도 약을 계속 먹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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