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의 건너편 필리핀 연안에선 1977년 여름 남(南)니도 1호 갱정 시추가 성공하였다. 필리핀에서 석유탐사가 시작된 지 80년 만이었다. 하루 1만 배럴 남짓한 기름을 퍼내는 산유국이 되었다. 중공은 1970년대 초부터 남지나해에 관심을 쏟기 시작, 물리 탐사를 해오더니 1976년부터 시추에 들어갔다. 월남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통킹 만에선 계속 유전을 발견하고 있다. 중공은 홍콩 부근의 珠江(주강) 근해 대륙붕에도 광구를 설정, 지난 4월 말 40개 국제 석유회사를 상대로 개발권의 경매 입찰을 실시했다. 이 입찰을, 석유 전문가들은 '지구상의 마지막 대규모 오일 플레이'라고 평했다. 내년부터 여기서 시추가 시작되면 앞으로 10년 동안 남지나해 동지나해 발해만 등 중공 연안 대륙붕 개발에는 240억 달러가 투입될 것이라고 체이스 맨해튼 은행에선 내다보고 있다. 지금도 약 40척의 시추선이 밤낮없이 해저를 천착하고 있는 남지나해. 얼마 안 가서 이 바다는 해저 유전의 불기둥으로 밝혀질 것이다. '동해'가 바시 해협으로 들어간 것은 싱가포르를 지난 지 7일째인 22일 아침이었다. 이 해협은 대만과 필리핀 사이를 가리키는데 동해 2호는 대만 남단 가란비 등대가 보일 정도로 근접하여 통과했다. 맑은 날에는 대만 동해안의 해발 3000미터 連峯(연봉)들이 어렴풋이 보인다고 한다. 바시 해협에 들어서면서 풍랑이 한결 거세어졌다. 항해 일지에는 풍력 7등급(초속14∼17미터), 파도 7등급(波高 6∼9미터)으로 적혔다. 그런데 항해사들은 일지(Log)에 실제보다 1등급쯤 높여 기재하는 관습을 갖고 있다. 선박 사고가 났을 때 日誌(일지)는 그 원인을 밝히고 당시의 해양 조건을 알아내는 가장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된다. 보험금 청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이런 때에 대비, 선원들에게 유리한 자료를 만들기 위해 1등급 정도 과장하는 것이 그들의 버릇처럼 된 것이다. 대만 남단은 潮流(조류)와 해류가 거센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의 어느 슈퍼 탱커는 항해사가 방향 계기만 믿고 天測(천측)을 않고 항해하다가 왼쪽으로 보여야 할 대만 해안이 오른쪽으로 나타나자 기겁을 하고 부랴부랴 남쪽으로 내려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4노트까지 나가는 해류에 밀려 대만 北岸(북안)으로 올라간 것이었다. KAL기의 소련 불시착과 비슷한 일들이 기계만 믿는 뱃사람들 사이에서도 가끔 발생하고 있다. 대만 남쪽에서부터 '동해'는 黑潮(흑조쿠로시오)에 밀리고 있었다. 멕시코 만류(Gulf stream)와 함께 세계 2大 해류로 꼽히는 것이 이 해류다. 필리핀의 루손 섬 동해안에서 發源(발원), 바시 해협까지 北上, 거기서 북동쪽으로 꺾어 동지나해를 종단, 구주 근해 및 동해 쪽으로 올라오는 이 해류는 바다 속을 흐르는 강이다. 너비는 수십 킬로미터, 두께는 수백 미터에 이르는 이 해류의 수량은 미시시피 강의 수백 배. 黑潮는 1∼2노트로 흐르는 게 보통이지만 곳에 따라선 4∼5노트로 달리기도 한다. 플랭크톤이 농밀하게 모여 검게 보인다고 해서 '흑조'. 이 더운 해류의 주변엔 좋은 어장, 따뜻한 기후가 형성된다. 동해 2호는 이 해류에 얹히자 흘러가는 강물을 탄 배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스크류를 분당 68회씩 돌리면 속력이 12노트밖엔 안 나는데 흑조를 타자마자 14노트로 빨라지는 것이었다. "이러다간 입항예정일보다 빨리 들어가겠다. RPM을 떨구어라." 李 선장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바시 해협을 지나면 동지나해. 23일 오전. '동해'는 尖閣(첨각) 열도 서쪽 해상을 지나 제주도 남쪽을 겨냥, 針路(침로)를 굳혔다. 일본이 센가쿠 열도라고 부르는 이 섬들을 중국에선 釣漁島(조어도)라고 부른다. 서로 영유권을 주장, 다투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섬 부근의 대륙붕이 동지나해에서도 가장 먹음직한 유전 가능 해저이기 때문이다. 바시 해협을 벗어난 뒤에는 바다가 잔잔해졌다. 이날 오후에는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1주일 전 섭씨 35도의 열대를 통과한 '동해'를, 점점 차가와지는 공기가 덮어 누르기 시작했다. 동지나해에 들어서자 너울이 10시 방향에서 기어와 왼쪽 뱃전을 넘실넘실 밀었다가 놓았다가 했다. 해면은 고요했으나 너울이 모래 동산 같은 민듯한 곡선을 만들고 있었다. 소다를 뿌린 듯 빵같이 부풀어 오른 바다였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휴게실에서 장기시합 구경을 하던 최화섭 선장이 창 밖의 하늘을 쳐다보더니 '天地創造(천지창조)인가?'라고 중얼거렸다. 과연 낮은 먹구름이 천지창조의 형상을 그리며 흩날리고 있었다. 해가 지자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바람은 거세어졌다. 나는 밤 9시쯤 브리지로 올라갔다. 고장난 풍력계의 바늘은 20(노트)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진짜 풍력은 저 숫자에서 15쯤 더해야 한다'고 3항사가 일러주었다. 1시간쯤 지나자 風力(풍력) 바늘은 25 밑으로 내려오지 않게 되었다. 브리지의 양쪽 문을 열면 베란다인데 그곳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바람이 측면으로 때려 문을 열면 브리지 안이 엉망이 될 것이다. 나가도 잘못하면 몸이 날아가지 않을까. 밤 11시를 넘자 풍력바늘은 45를 예사로 넘기 시작했다 항해사는 최대 풍속이 초속 30미터는 될 것이라고 했다. "잘 나가다가 결국 여기서 한 방 맞는구나." 주문길 씨가 앓는 소리로 말했다. 기관장이 파커를 입고 올라왔다. "야, 이거 대단하군요." 좀처럼 약한 말을 하지 않는 윤씨도 그런 말을 했다. 자정 직전에 드디어 李 선장이 나타났다. "멋진 사진 찍을 수 있겠군요." 그는 씩 웃었다. "파도구경 한 번 할까요? 어이, 작업등 켜!" 갑판 위의 작업등이 환하게 켜지자 노호하는 바다의 장관이 드러났다. 파도는 9시 방향에서 밀려와 좌현을 거의 직각으로 때리고 있었다. 船首(선수)의 왼쪽 부분이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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