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크 용사들의 전설 [ 끝 ]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진실
Üsküdar'a gider iken aldı da bir
yağmur, Üsküdar'a gider iken aldı da bir yağmur
Kâtibimin setresi uzun, eteği
çamur, Kâtibimin setresi uzun, eteği çamur
Kâtip uykudan uyanmış, gözleri
mahmur, Kâtip uykudan uyanmış, gözleri mahmur.
Kâtip benim, ben kâtibin, el ne
karışir? Kâtibime kolalı da gömlek ne güzel yaraşır.
Üsküdar'a gider iken bir mendil
buldum, Üsküdar'a gider iken bir mendil buldum.
Mendilimin içine de lokum
doldurdum, Mendilimin içine de lokum doldurdum.
우스크달라 가는 길에 비를 맞았네, 우스크달라 가는 길에 비를
맞았네
내님의 옷 끝이 땅에 끌리네, 내님의 옷 끝이 땅에
끌리네.
내님이 잠에서 깼지만 졸려 보이네, 내님이 잠에서 깼지만 졸려
보이네.
나의 님, 나의 님, 누가 우리를 갈라놓을까? 옷이 내
님에게 잘 어울리네.
우스크달라 가는 길에 손수건을 보았네, 우스크달라 가는 길에
손수건을 보았네.
그 안에 lokum(터키식 젤리)이 들어 있었네, 그 안에
lokum이 들어 있었네.
음악 감상 (클릭)
가사나 노래에 담겨 있는 의미는 정확히 몰라도 적어도 그 특유의 리듬이 낯설지 않은 유명한 터키의
민요 '우스크달라'입니다. 이역만리 터키의 노래임에도 한국의
노년층이 번안된 가사를 따라 부를 만큼 우리에게도 상당히 친숙합니다.
[ 노래의 배경인 우스크달라 항 ]
충분히 예상하다시피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군들의 입을 통하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생소한
외국 노래임에도 아리랑처럼 님을 일편단심 기다리겠다는 가사와 애닮은 곡조가 우리 심성에 잘 어울려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굳이
고구려-돌궐처럼 직접 와 닿기 힘든 피상적인 인연보다, 우스크달라처럼 문화적으로 공감대를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한국과 터키는 심정적으로
가까웠는지도 모릅니다.
[ 터키의 민요가 우리에게도 쉽게 다가왔을 만큼
심정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
우스크달라처럼 터키군의 참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문화에 획을 그은 사건이 하나 벌어졌는데 바로 한반도에서
이슬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955년 당시 주한터키군 종교 장교였던 카라이스마일오글루(Abdul Gafur Karaismailoglu) 대위를 이맘으로 하여 주둔지
등에서 자발적인 한국인 이슬람 신도가 생겨났습니다. 터키군의 철군과 더불어 교세가 급속히 단절되었지만 한국 이슬람은 이를 원년으로 삼고
있습니다.
[ 한국 최초의 이슬람 신도로 알려진 사진입니다 ]
한국에서 이슬람이 종교로써 본격적인 틀을 잡은 것은 1970년대 오일쇼크와 더불어 시작된 건설업체의 중동 진출과 관계가 많습니다. 이때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증진을 위한 정책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1976년 이태원에 이슬람 사원이 건립되는 등 교세가 확장되었고 현재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신도로 있습니다만, 엄밀히 말해 한국 이슬람 역사는 이처럼 터키군의 참전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다.
[ 한국 이슬람 중앙 성원 ]
잊혀진 전쟁으로 취급받지만 한국전쟁은 우리 삶에 지금도 영향을 끼칠 만큼 상상이상으로 거대했습니다. 유엔의 깃발아래 한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도와주었던 나라는 전투병을 파병한 16개국 외에도 의료지원단 파견 5개국, 기타 물자 지원 국가 19개국에 이르렀습니다.
1950년 당시 세계에 존재하던 독립국이 60여 개국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북한을 도운 동구권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 나라들이 직간접적으로 우리를
도와주었습니다.
[ 슐레이만 소위와 전쟁고아였던 아일라의 인연을 소개한 TV다큐멘터리
위기의 군우리 전투에서 전쟁 고아를 챙길만큼 터키군은 정이 많았습니다 ]
어느 하나 고맙지 않은 나라가 없지만 자국의 귀한 젊은이들의 피를 뿌려가며 우리를 지켜준 파병국가들의 고마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할 것입니다. 이들 국가들 중에서도 단독 작전이 가능한 여단 이상의 부대를 파견한 나라는 미국, 영연방외 터키가 유일한데 그
만큼 우리나라는 터키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알아 본 것처럼 이제는 이런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이 드물고 오히려 무시하고
비난하는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실을 왜곡하는 이들에게 묻습니다.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러한 주장은 대부분 '아는 엄마 친구로부터 들은 것인데..', '아는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것인데...'하는 식으로 그럴듯하게 시작하지만 정작 출처는 없습니다. 이런 주장을 반복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명백한 사실도 부정하려 들고 정확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는 반면 중공군이나 북괴군에 대한
칭찬은 서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고마움을 잊었더라도 욕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누가, 왜, 어떤 목적으로 명백한
사실을 왜곡하려 드는 의문이 갈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참전 연인원 14,936명
사망 및
실종 884명
부 상 2,246명
터키는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도왔습니다
그들의 도움과 희생에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아무리 시절이 바뀌고 사람이 달라졌다고 해도 분명히 도움을 받고도 마음을 달리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역사 인식이 아닙니다. 더구나
왜곡하여 폄하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고 우리 정서에 용납될 수도 없습니다. 침략자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이역만리 달려와 고귀한 피를
뿌려주었던 터키와 투르크 전사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당신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