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 배움/이스라엘 史

제3장 유럽의 변화와 유대인 공동체(3. 동유럽 유대인들의 내적 투쟁)

淸山에 2013. 6. 6. 21:14

 

 

 

 

 

3. 동유럽 유대인들의 내적 투쟁


유럽에 있던 유대교의 외적 상태와 정신적 상황의 변화는 그들의 신앙과 사상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주었다. 즉, 그들이 1500년 이상 지켜 온 율법과 탈무드 전통이 차츰 쇠퇴해 가면서 전통적인 랍비들의 경건성이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하스칼라, 즉 계몽주의와 더불어 정통 유대교의 율법주의는 쇠퇴해 갔으며, 주변 세계와의 접촉과 교류, 특히 유럽의 새로운 교육 제도와의 만남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1800년경 서유럽에서는 존경받을 만한 탈무드 학교가 없어졌으며, 동유럽에서조차 이런 학문적 전통은 낡은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 신비주의의 발효(프랑크와 그의 종파)

 

극단적인 사회주의를 배격하는 폴란드의 유대 사회는 그것과 대조되는 신앙과 종교를 일으키기 위해 신비주의를 발효시킨다. 1750년, 야콥 프랑크는 포돌리아 태생으로, '남은 안식주의자(Sabbatean Remnauts)'의 한 분파를 만들었다. 이들은 '탈무드에 반대하는 유대인'으로 규정되어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하였으나, 여전히 하나님의 성육(聖肉)하심과 삼위일체를 믿으면서, 예루살렘에서의 이스라엘의 구원을 거부하던 자들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는 탈무드를 공개적으로 불태웠으며, 그를 비판한 주교가 갑자기 죽자 더욱 기승을 부렸다.

 

1759년, 프랑크 신봉자들은 "유대인들이 제의의 목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피를 사용하고 있다."라고 소문을 퍼뜨리기도 하였다. 기독교로 개종하겠다는 그의 요청이 교회에 의해 거절되면서, 그는 13년간이나 쳉스토호바 성채에 감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따르는 유대인들이 수백 명으로 늘어 갔다. 프랑크는 카발라식 안식주의자(Kabbalistic Sabbatean) 전통을 정치 운동과 연결시켰다. "폴란드는 선택된 땅이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군대의 힘이 필요하다." 그는 군대를 조직하였으며, 다른 나라들과는 정치적 제도를 구상하기도 하였다. 1772년, 러시아가 폴란드에 들어오면서 프랑크는 다시 석방되어 독일의 오펜바흐에 정착하게 된다. 그 곳에서 죽고 난 후 그의 딸이 지도자가 되었으나, 19세기 초에 이 운동은 사라지고 만다.

 

 

 

· 바알 셈 토브와 하시딤 운동

 

 

'선한 사람의 주인'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랍비 바알 셈 토브(1700∼1769)는 포돌리아 태생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젊어서 그는 회당의 보조 교사였으며, 몇 년 동안의 명상과 독신 생활 이후 그는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종파의 지도자가 되어 몇 장의 편지 외에는 남긴 것이 없지만, 그의 가르침과 인격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당시의 금욕적인 카발라주의자들과 안식주의자들과 접촉하기도 하였으며, 나아가 밀의적 신비주의 원리를 발전시켜 나갔다. 당시에는 극단적 밀의 종교가 널리 퍼져 있었으며, 칸트 철학자였던 솔로몬 마이몬은 밀의적 실천을 통하여 죽음을 서둘렀던 자로 잘 알려져 있었다.

 

하시딤의 신앙에 따르면, 의(義, Zaddik)는 세상의 기초이다. 온 세상은 의로부터 나왔으며, 모든 영적, 물질적 부요함은 의에 의해 통제된다. 의는 하나님의 결정조차 바꿀 수 있는 유일의 힘이다. 또, 하나님과의 교제(devekuk, '붙다', '풀'이라는 뜻)는 특별히 중요하다. 화해(memuza)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필요하다. 하시딤의 기본 원리는 "하나님을 위해 비워 놓을 공간이 없다."라는 것이다. 신은 모든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에, 의의 지도자들의 중심 목적은 모든 물질 세계의 세포(kelipot)에 감추어져 있는 신의 빛을 표출시키는 일이다.

 

이들의 가르침의 핵심은 열정, 백열 상태와 초월적인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들은 '초월', '영원', '위(above)' 등의 용어를 즐겨 사용하였다. 하시딤 운동은 메시아에 대한 대망 사상을 약화시키지는 않았으나, 이를 현재적, 내재적 개념으로 해석하였다. 1747년 새해에 바알 셈 토브는 신비적인 환상,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의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으며, 그의 가르침이 온 세상에 널리 알려져 두루 퍼지게 된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1760년에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그 때까지 이것은 하나의 '운동'으로 제도화되지는 않았다.

 

마기드(Maggid, '설교가', cf. 사무엘기하 15:13)는 14세기 중세 때의 '떠돌아다니며 설교하는 사람' 또는 '대중 설교가'로서, 16세기에는 '조직되어 있지 않은 지식 계급'으로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도브 바에르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바알 셈 토브의 제자들은 하시딤 운동의 여러 사상들을 구체화시켜 나갔다. 특히, 랍비 야콥 요셉은 첫 번째 하시딤 운동에 관한 책인 『야콥 요셉의 전승』(1780)을 출판하였다. 그는 기도를 하시딤 운동의 기본 강령으로 강조하였다. 또, 동물의 제의적 도살, 공동 식사, 인식일이나 절기 식사 중에 행하는 의(義)에 관한 설교 등이 특별히 강조되었다. 그 밖에도 이 시대의 대설교가들로는 레비 이삭, 예히엘 미카엘, 엘리멜렉 등 많은 랍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