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 배움/이스라엘 史

5. 정치 제도 ~ 8. 이스라엘의 독립은 시온주의의 완성인가

淸山에 2013. 6. 6. 19:48

 

 

 

 

 

5. 정치 제도

 

 

1948년에 선포된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서에는 "이스라엘은 예언자들에 의해 직시된 자유, 정의, 평화에 기초한다. 모든 국민은 종교, 인종, 성에 의한 차별을 받지 않으며, 사회 · 정치적 동등권을 가진다. 종교, 양심, 언어, 교육, 문화의 자유를 보장하며, 모든 종교의 성지를 보장한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의회 민주주의 제도를 기초로 하는 입법 · 행정 · 사법부가 있다. 삼권의 분립을 기초로 한 상호 견제와 균형을 지향하도록 되어 있다. 행정부는 입법부인 크네세트(Knesset)의 신임에 의해 설치되며, 사법부는 법률에 의해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120명의 크네세트 의원은 매 4년마다 실시되는 비밀, 비례제에 의한 총선거에서 선출되며, 국민은 정당에 투표한다. 투표 결과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행정부 구성의 권한을 부여받게 된다. 최근 수십 년간의 선거에서는 어떤 정당도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함으로써 연립 정부를 구성해 오고 있다. 종교 정당을 비롯한 각 이념과 계층을 대변하는 수십 개의 정당들이 군림하며, 다수당인 노동당(Labor)과 보수당 리쿠드(Likud)가 정권을 교환해 가면서 상호 견제와 경쟁을 통하여 정치 발전을 꾀하고 있다.

 

의회가 선출하는 임기 5년의 대통령(Nasi)은 국가의 상징이며, 정당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히브리어의 '나시'는 고대 이스라엘의 최고 의회였던 산헤드린의 수반을 일컫는 용어였다. 대통령은 법관, 이스라엘 은행 총재 및 외교관의 임명을 담당하며,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고, 2회에 걸쳐 연임될 수 있다. 역대 대통령으로는 초대 대통령인 하임 바이츠만(1949~1952)을 비롯하여 벤츠비(1952~1963), 샤차르(1963~1973), 카치르(1973~1978), 나본(1978~1983), 헤르초크(1983~1993), 에제르 바이츠만(1993~2000), 카차브(2000~현재) 등이 있다.

 


벤 구리온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내각의 수반인 수상은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며, 각료를 임명하는 등 의회 정치의 모든 책임을 지고 있다. 수상과 국회 의원들의 임기는 4년이다. 역대 수상으로는 벤 구리온(1948~1954, 1955~1963), 샤레트(1954~1955), 에시콜(1963~1969), 메이어(1969~1974), 라빈(1974~1977, 1992~1995), 베긴(1977~1983), 샤미르(1983~1984, 1986~1992), 페레스(1984~1986, 1995~1996), 네타냐후(1996~1999), 바라크(1999~2001), 샤론(2001~현재) 등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법원은 독립되어 있으며, 9명으로 구성된 대법원의 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밖에도 종교 법원이 있어, 종교적인 사안이 되는 유대인의 결혼, 이혼 및 개종에 관한 재판을 시행한다. 헌법은 불문율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1950년에 제정된 귀향법 등의 특별법이 있다. 지방 자치 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으며, 현재 69개의 지방 자치제, 141개의 지방 의회가 있으며, 54개의 지역 의회가 있다. 시장과 지역 의회 단체장은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되며, 읍과 지방 의회 의원은 크네세트의 국회 의원의 수에 비례하여 임명된다. 모든 선거에서 선거권은 18세부터, 피선거권은 20세부터 가진다. 대통령을 비롯한 법관, 감사원장 및 참모 총장 등이 피선거권을 가지게 되는 경우, 선거일 100일 이전에 현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6. 경제 발전

이스라엘은 2003년 현재 1인당 GNP가 16,300달러로서 세계 20위권에 해당된다. 약 7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국민 총생산은 그리 많은 편이 못 되며, 국가 안보가 매우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농업을 비롯한 첨단 과학 · 기술은 국제 무대에서 그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유럽 연합(EU)과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기업들과 제휴하였으며, 재화와 용역의 수출(2000년 450억 달러 초과)을 확장할 수 있었다.

 

지난 25년간 이스라엘은 연 10% 정도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여 주었다. 이는 네 차례의 전쟁, 대규모의 이민 등 내외적 변화 속에서 이룩한 성과라는 점에서 경제 기적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1984년을 비롯한 몇 해 동안 높은 인플레이션(한해 약 400%)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경제는 위축되었으며, 외채도 1991년 말 약 240억 달러가 되고 있다.

 

경제는 부족한 천연 자원과 제한된 경작지, 보잘것없는 내수 등의 악조건 때문에 일찍부터 고급 노동력과 고도의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은 유럽 연합에 판매하고 있는 많은 농산물은 외화 획득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나아가 무기 산업을 비롯한 첨단 과학 · 기술, 의료 정밀 기계, 통신 과학, 정밀 화학, 컴퓨터, 다이아몬드 산업, 관광 산업 및 사해 생산물 등 비교적 부가 가치가 높은 산업에 주력하고 있다. 또,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진국형으로 잘 발달된 사회 보장 제도로 말미암아 기본 임금제, 노동 시간 및 세제(稅制) 등에서 소득의 균형을 이루고 있어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7. 사회 구조와 문화

 

유대인은 단일 민족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수천 년 동안 흩어져 산 민족답게 그들은 세계 약 100여 개 국가로부터 이민을 온 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만도 현재 약 80여 개나 된다. 이들은 각각 다른 전통과 문화, 각각 다른 정치 이념과 언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국가를 건설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동 · 서유럽, 아메리카 및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이민을 온 자들을 아슈케나짐이라 부르며, 이들 대부분은 고대 히브리어와 독일어를 혼합하여 만든 이디시어라고 불리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나치 독일로부터의 박해를 피해 건너온 생존자들이다. 현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가운데 대부분은 바로 아슈케나짐이며, 정치, 교육을 비롯한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비롯하여 지중해,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 살다가 15세기에 추방되어 이스라엘로 이민을 와 사는 자들은 세파르딤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자들로서, 음악, 의복, 음식 등 전통적인 유대 문화와 더불어 아랍 문화와 전통의 영향을 상당 부분 보존하고 있다. 독립 이후 이민자들과 구별하여 본토에서 태어난 이들을 가리켜 히브리어로 사브라(sabra)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본디 짜바르(Tzabar)라 불리는 선인장을 일컫는 말로서, 겉에는 가시가 돋아 접근이 어려우나 속은 달콤한 맛을 지닌 선인장의 특성이 곧 사브라의 특징이라는 상징을 담고 있다. 나아가, 이스라엘 영토 내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들은 소수 부족인 드루즈족(Druze)이나 베두인족(Bedouin)들과 함께 소수 민족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현재 인구는 약 700만 명으로, 이 가운데는 유대인이 약 510만 명(약 73%), 비유대인이 약 190만 명(약 27%)이며, 점령 지역 내의 아랍 - 팔레스타인에 약 150만 명이 살고 있다. 이들의 90%는 도시에 집중되어 있으며, 최근 많은 이민자들로 인해 인구는 계속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인구 약 70만 명의 수도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텔아비브, 하이파, 브엘세바, 페다크티크바 등은 이스라엘의 주요 도시들이다. 전체 인구의 약 10% 가량은 시골 지역에서 살고 있는데, 주로 키부츠(Kibutz)나 모샤브(Moshav)를 형성하여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주로 농업에 의존하고 있으나 차차 산업의 구조를 바꾸어 나가면서 매우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어, 도시 거주자들보다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다.

 

비록 오랜 기간 역사적 단절이 있었지만, 4000여 년의 문화 유산을 지니고 있는 이스라엘은 다양한 전통 문화와 더불어 현대 문화의 특성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전통적인 종교 문화는 이스라엘의 보수적인 종교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잘 보존되어 있으며, 동시에 매우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현대인들의 새로운 문화 창출 또한 첨단을 이루고 있어, 두 문화의 보존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종교 절기를 통한 전통 문화의 유지 및 보존은 여러 민속 공연 행사를 통하여 전수되고 있으며, 이스라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8개의 오케스트라는 수준 높은 고전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특히 가이사랴를 비롯한 고대 극장에서의 연주는 청중을 매료하기에 충분하다. 현대 히브리어의 부활은 이스라엘의 각 분야의 문화 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인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1858∼1922)는 히브리어를 유대인의 일상어로 만들어 가면서 유대인들의 정신을 하나로 묶어 나갔다.

 


시인 하임 비알릭

 

 

이스라엘의 문학은 196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사무엘 아그논(1888~1970)과 1978년 노벨상 수상 작가인 이삭 싱어를 비롯하여, 하임 브레너(1881~1921), 하임 비알릭, 사울 체르니코프스키, 여호수아, 아모스 오즈, 야곱 샤브타이 등의 활동을 통하여 유대인의 정신 세계를 널리 알려 나갔다. 이들의 문학적 주제는 그들의 특수한 고난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유대인의 자기 정체성과 신앙, 그리고 유대인의 관습 및 고통 등을 보편화시켜 나감으로써, 인류의 일반적 공감대를 얻어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의 80여 개의 각 분야의 박물관은 매년 1000만 명의 관람객을 가지고 있으며, 이스라엘 국립 박물관의 사해 사본(Dead Sea Scrolls)은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는 국보이다. 또, 텔아비브 대학 내의 디아스포라 박물관 역시 2000년 동안의 디아스포라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역사 연구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 밖에도 음악, 연극, 영화, 미술, 조각, 춤 등 다양한 창작 및 문화 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으며, 매년 실시되는 이스라엘 대축제는 세계의 여러 나라의 예술을 접하며, 자신들의 예술 활동의 향상을 도모하는 축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 사회는 다양한 언어와 이념만큼이나 종교적 특성도 다양하다. 성서 시대 이래 유대인들은 유일신 신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유대교(Judaism)라 함은 곧 종교적인 개념이면서 동시에 민족적 개념이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성서의 기본 규범인 토라와 이를 제도화한 할라카를 중심으로 매우 엄격한 규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정통파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오랜 전통을 가장 엄격하게 계승한 자들로서, 안식일을 비롯한 각종 절기 등을 일상 생활에서 엄격하게 지켜 나가고 있다. 이들은 복장이나 외모로부터 일반 유대인들과 구별되고 있으며, 늘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쓰고 다니고, 결혼한 부인들의 경우 머리를 삭발한다. 이들의 자녀들조차 종교인 학교에서 공부하며, 일상적인 교과목 등은 배제한 채 오직 율법과 미쉬나, 탈무드만을 교육받고 있다. 이들은 국방, 납세의 의무로부터도 제외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비종교적인 현대인들로서, 유대교의 종교적 전통과 관습으로부터 벗어나서 산다. 이들을 세속적인 유대인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비유대인들과 거의 마찬가지로 서구 문화에 익숙해져 있으며, 서구적인 생활 방식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통파 유대인들과 많은 갈등을 빚어,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충돌하여 상호간에 피해를 입기도 한다. 정통파 유대인과 세속적인 유대인 사이쯤에 속한 종교적 습관을 지닌 사람으로는 전통적인 유대인이 있다. 이들은 지나치게 종교적이지 않으면서도 세속적이지 않은 사람들로서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 밖에 소수의 기독교인, 아랍 무슬림, 두르즈, 사마리아인 등 소수 종교 및 종파의 사람들이 분포되어 있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를 종교별로 살펴보면, 유대교(82%), 이슬람교(14%), 기독교(2%), 그리고 기타(1%) 정도이다. 그야말로 이스라엘은 종교의 전시장이라 일컬어질 만큼 다양한 종교와 종파를 이루고 있다. 유대교의 회당은 안식일(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에, 기독교의 교회와 성당에서는 일요일에, 그리고 이슬람의 사원에서는 금요일에 각각 예배를 드리고 있다.


8. 이스라엘의 독립은 시온주의의 완성인가


시온주의의 목표는 분명히 이스라엘의 독립이었다. 흩어진 유대인들이 모여 새로운 이스라엘을 건설하여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고유한 인도적 권리에 속한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독립은 시온주의의 완성인가? 이스라엘 독립 이후의 시온주의의 의미는 무엇인가? 시온주의 운동은 끝났는가? 1968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제27차 시온주의 총회에서는 시온주의의 프로그램으로 다음과 같은 5개 항을 결의하였다. (1) 유대 민족을 통합하고, 이스라엘을 유대인의 삶의 중심으로 삼는다. (2) 흩어진 모든 나라로부터 유대인을 역사적인 조국으로 불러 모은다. (3) 유대국가를 예언자들의 최고의 가치였던 정의와 평화 위에 굳게 세워 나간다. (4) 모든 유대인에게 히브리어, 유대 문화, 유대 정신을 교육시킴으로써, 유대 민족의 자기 동일성과 특성을 보존해 나간다. (5) 유대인의 권리를 보호한다.

 

이와 같은 결의를 보면 시온주의 운동의 미래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이스라엘의 독립이 시온주의의 끝이 아니라, 이 운동은 끊임없이 새로운 이상을 제시함으로써 영속적인 운동으로 변형 또는 재정립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결의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시온주의 운동의 방향을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구심화와 흩어진 유대인의 모음이다. 첫 번째 요소인 '이스라엘의 구심화'는 이스라엘을 모든 유대인의 구심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유대인과 유대교의 운명을 이스라엘의 운명과 일치시키자는 것이다. 이스라엘 없는 유대인은 더 이상 없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모든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가장 중요한 관심사로 여겨야 하며,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문화, 종교, 교육, 학문 등의 모든 분야에 걸쳐 중심적 위치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시온주의를 유대인의 생활 속에 재통합하자는 의도로 해석된다.

 

두 번째 요소인 '모음'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모여야 한다는 것으로, 디아스포라 속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단지 '시온을 사랑하는 자'일 뿐 시온주의자는 아니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위의 입장에 대해 거부하는 이산 공동체는,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각각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유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들이 그러한 주장을 하게 되는 역사적 근거로, 이스라엘의 안보와 창조적인 활동력을 제시한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이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이스라엘의 안보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과, 나아가 이스라엘에 문화적, 종교적 활력을 넣을 수 있는 점을 들어 이스라엘로의 이민을 거부한다. 디아스포라의 삶이 이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의 동등한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며, 이것이 곧 다문화 환경에 알맞은 주장이라고 설득한다. 그러면서 이스라엘과 디아스포라의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시온주의의 완성은 바로 이 두 공동체 - 이스라엘과 디아스포라 - 가 상호 보완할 때 이룩되는 것이다. 이 두 관계는 경쟁적 관계나 택일의 관계라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이어야 할 것이다. 시온주의의 위기는 오히려 외부적 도전에 의해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내적 갈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재삼 고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