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불국사 석가탑 사리함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발견되자 전 세계 학자들은 깜짝 놀랐다.
제작 연대가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로 알려진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百萬塔陀羅尼經)'보다 최소 20년 앞서는 것인 데다 지질이나 인쇄 형태로 보아 중국이 아닌 국내에서 제작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통일신라의 발달한 인쇄술을 입증했을 뿐 아니라 한지(韓紙)의 우수성도 과시했다. 1천200여년의 세월을 탑 속에서 보내고도 좀먹기는커녕 그 형체를 거의 완벽하게 유지한 것은 제지 기술이 이웃 일본이나 중국보다 뛰어났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산 닥나무를 이용해 전통 방식으로 제작한 한지는 과학적 실험에서도 인열 강도, 인장 강도, 방향성, 먹의 번짐 정도와 흡수성, 통기성, 방음성, 단열성 등이 서양의 양지(洋紙), 일본의 화지(和紙), 중국지 등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리·화학적 성질이 우수하다 보니 한지는 단순히 그 위에 글씨를 쓰고 책으로 엮는 것 말고도 쓰임새가 많다.
세계 어느 민족이 우리처럼 방바닥에 장판지라는 노란 종이 카펫을 깔고 그 밑에 불까지 때 가며 살아왔겠는가.
우리 선조는 종이를 잘게 찢어 물에 불린 뒤 틀에 부어 넣거나 여러 겹 두껍게 덧바르는 등의 방식으로 색실첩, 예물함, 족두리, 반짇고리, 표주박, 종이옷, 조족등(照足燈), 촛대, 항아리, 그릇, 요강, 삼층장 등을 만들었다.
종이로 부처의 형상을 만든 뒤 생옻을 여러 겹 칠하는 건칠지불(乾漆紙佛)은 한지 공예의 백미로 꼽힌다.
동덕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간송미술관 상임연구원을 겸하는 한국화가 이승철은 한지의 매력에 빠져 20년 동안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각종 실험과 연구를 거듭했다. 6개월간 한지 공장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고 쪽물 들인 감지(紺紙)를 만들려고 쪽을 손수 심기도 했다.
'아름다운 우리 종이, 한지'는 이승철이 한지에 쏟은 정성과 땀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2002년 출간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한지'를 전면 개정한 것으로, 내용을 보완하면서 영문판도 함께 펴냈다.
종이의 기원과 전래, 한지의 역사, 한지의 우수성 등과 함께 한지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해놓았다. 닥나무 대신 우유팩, 청바지 자투리, 허드레 종이 등을 이용한 제지법도 익힐 수 있다. 다양한 한지 공예 기술과 제품 사례도 소개했다.
저자는 전통 한지의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놓인 이유를 시장성, 정책, 소비층 의식, 장인(匠人) 등의 문제로 진단한 뒤 한지의 발전을 위해 품질의 고급화, 교육 소재의 개발, 신소재 개발, 산업화, 연구기관 지원, 문화의 상품화 등을 제안했다.
부록으로 용어 및 종류 해설, 이름 분류표, 관련 웹사이트·온라인 쇼핑몰·판매상점 목록, 한지 샘플 등을 곁들였다.
현암사. 국문판 304쪽·3만2천원. 영문판 316쪽·3만5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