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옛시조 모음

김삿갓 해학시 모음

淸山에 2011. 7. 11. 17:01

 

 
 
▩▩▩ 김삿갓 해학시 모음 (1) ▩▩▩


☆☆☆ 내삿갓 ☆☆☆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구경하네.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하늘 가득 비바람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詠笠 영립 ☆

浮浮我笠等虛舟 一着平生四十秋 부부아립등허주 일착평생사십추
牧堅輕裝隨野犢 漁翁本色伴沙鷗 목수경장수야독 어옹본색반사구
醉來脫掛看花樹 興到携登翫月樓 취래탈괘간화수 흥도휴등완월루
俗子依冠皆外飾 滿天風雨獨無愁 속자의관개외식 만천풍우독무수


※ 자신의 조부를 탄핵하고 시작한 방랑 생활.
언제나 벗이 되어 주며 비바람에도 몸을 보호해 주는
삿갓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해서 '병연'은
그 이름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이 시인은 '병연'이란 이름을 스스로 숨기고 잊어 버렸다.
그리고 삿갓을 쓴 이름 없는 시인이 되었다.
그가 읊은 자신의 '삿갓'시는 표연자적하는 자연과 풍류 속의 자기 운명을
그린 자화상이었다.-옮겨온 글입니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2) ▩▩▩

☆☆☆ 죽 한 그릇 ☆☆☆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물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 無題 ☆

四脚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排徊 사각송반죽일기 천광운영공배회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주인막도무안색 오애청산도수래

※ 산골의 가난한 농부 집에 하룻밤을 묵었다.
가진 것 없는 주인의 저녁 끼니는 멀건 죽.
죽 밖에 대접할 것이 없어 미안해하는 주인에게
시 한 수를 지어 주지만 글 모르는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 가난이 죄 ☆☆☆
지상에 신선이 있으니 부자가 신선일세.
인간에겐 죄가 없으니 가난이 죄일세.
가난뱅이와 부자가 따로 있다고 말하지 말게나.
가난뱅이도 부자 되고 부자도 가난해진다오.


難貧

地上有仙仙見富 人間無罪罪有貧 지상유선선견부 인간무죄죄유빈
莫道貧富別有種 貧者還富富還貧 막도빈부별유종 빈자환부부환빈

 
 

 

 

 
 
▩▩▩ 김삿갓 해학시 모음 (20) ▩▩▩

☆☆☆ 눈 속의 차가운 매화 ☆☆☆

눈 속에 핀 차가운 매화는 술에 취한 기생 같고
바람 앞에 마른 버들은 불경을 외는 중 같구나.
떨어지는 밤꽃은 삽살개의 짧은 꼬리 같고
갓 피어나는 석류꽃은 뾰족한 쥐의 귀 같구나.


雪中寒梅(설중한매) ☆
雪中寒梅酒傷妓 風前槁柳誦經僧 설중한매주상기 풍전고류송경승
栗花落花尨尾短 榴花初生鼠耳凸 율화낙화방미단 유화초생서이철


☆☆☆ 눈 오는 날 ☆☆☆
늘 눈이 내리더니 어쩌다 개어
앞산이 희어지고 뒷산도 희구나.
창문을 밀쳐 보니 사면이 유리벽이라
아이에게 시켜서 쓸지 말라고 하네.


☆ 雪日(설일) ☆
雪日常多晴日或 前山旣白後山亦 설일상다청일혹 전산기백후산역
推窓四面琉璃壁 分咐寺童故掃莫 추창사면유리벽 분부사동고소막


※김삿갓이 어느 절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청하자 중이 거절했다.
김삿갓이 절을 나가려 하자 혹시 김삿갓이 아닌가 생각하고 시를 짓게 했다.
혹(或), 역(亦), 벽(壁), 막(莫) 같은 어려운 운을 불러 괴롭혔지만
이 시를 짓고 잠을 자게 되었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25) ▩▩▩


☆☆☆ 금강산에 들어가다 ☆☆☆

푸른 길 따라서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누각이 시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네.
눈발 흩날리며 걸린 폭포는 용의 조화가 분명하고
하늘 찌르며 솟은 봉우리는 칼로 신통하게 깎았네.
속세 떠난 흰 학은 몇 천 년이나 살았는지
시냇가 푸른 소나무도 삼백 길이나 되어 보이네.
스님은 내가 봄잠 즐기는 것도 알지 못하고
무심하게 낮종을 치고 있구나.

入金剛(입금강) ☆

緣靑碧路入雲中 樓使能詩客住공 연청벽로입운중 누사능시객주공
龍造化含飛雪瀑 劒精神削揷天峰 용조화함비설폭 검정신삭삽천봉
仙禽白幾千年鶴 澗樹靑三百丈松 선금백기수년학 간수청삼백장송
僧不知吾春睡腦 忽無心打日邊鐘 승부지오춘수뇌 홀무심타일변종


※봄날 금강산으로 들어가면서 주위에 펼쳐진 경치의 아름다움을 읊었다.

☆☆☆ 스님에게 금강산 시를 답하다. ☆☆☆

백 척 붉은 바위 계수나무 아래 암자가 있어
사립문을 오랫동안 사람에게 열지 않았나 ?
오늘 아침 우연히 시선께서 지나는 것을 보고
학 불러 암자를 보이게 하고 시 한 수를 청하오. - 스님
우뚝우뚝 뾰족뾰족 기기괴괴한 가운데
인선(人仙)과 신불(神佛)이 함께 엉겼소.
평생 금강산 위해 시를 아껴 왔지만
금강산에 이르고 보니 감히 시를 지을 수가 없소. -삿갓

答僧金剛山詩(답승금강산시) ☆

百尺丹岩桂樹下 柴門久不向人開 백척단암계수하 시문구불향인개
今朝忽遇詩仙過 喚鶴看庵乞句來 -僧 금조홀우시선과 환학간암걸구래 -승
矗矗尖尖怪怪奇 人仙神佛共堪凝 촉촉첨첨괴괴기 인선신불공감응
平生詩爲金剛惜 詩到金剛不敢詩 -笠 평생시위금강석 시도금강불감시 -립

※한 승려의 청으로 금강산을 읊으려 하나 너무나 장엄하고

기이한 산세에 압도되어 시를 짓지 못하겠다는 내용이다.


☆☆☆ 금강산 ☆☆☆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를 도니
물과 물, 산과 산이 곳곳마다 기묘하구나.


金剛山(금강산) ☆☆☆

松松栢栢岩岩廻 水水山山處處奇 송송백백암암회 수수산산처처기

※운의 반복으로 시각적, 청각적 효과를 높혔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15) ▩▩▩

 
☆☆☆ 장기 ☆☆☆

술친구나 글 친구들이 뜻이 맞으면
마루에 마주 앉아서 한바탕 싸움판을 벌이네.
포가 날아오면 군세가 장해지고
사나운 상이 웅크리고 앉으면 진세가 굳어지네.
치달리는 차가 졸을 먼저 따먹자
옆으로 달리는 날쌘 말이 궁을 엿보네.
병졸들이 거의 다 없어지고 잇달아 장군을 부르자
두 사가 견디다 못해 장기판을 쓸어버리네.


博(박) ☆
酒老詩豪意氣同 戰場方設一堂中 주로시호의기동 전장방설일당중
飛包越處軍威壯 猛象준前陳勢雄 비포월처군위장 맹상준전진세웅
直走輕車先犯卒 橫行駿馬每窺宮 직주경차선범졸 횡행준마매규궁
殘兵散盡連呼將 二士難存一局空 잔병산진연호장 이사난존일국공


※주객(酒客)과 시우(詩友)가 대청마루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모습을 읊었다.
포(包), 상(象), 차(車), 마(馬)의 활약이 잘 묘사되어 있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16) ▩▩▩


☆☆☆ 바둑 ☆☆☆

흑백이 종횡으로 에워싼 것처럼 진을 치니
승패는 오로지 때를 잡고 못 잡음에 달렸네.
사호가 은거하여 바둑으로 시국을 잊었고
삼청 신선들 대국에 도끼자루 다 썩더라.
뜻밖의 속임수로 세력 뻗을 점도 얻고
잘못 두고 물러 달라 손 휘두르기도 하는구나.
한나절 승부를 걸고 다시금 도전하니
바둑알 치는 소리에 석양이 빛나네.


☆ 棋(기) ☆

縱橫黑白陳如圍 勝敗專由取舍機 종횡흑백진여위 승패전유취사기
四皓閑秤忘世坐 三淸仙局爛柯歸 사호한칭망세좌 삼청선국난가귀
詭謨偶獲擡頭點 誤着還收擧手揮 궤모우획대두점 오착환수거수휘
半日輪영更挑戰 丁丁然響到斜輝 반일윤영갱도전 정정연향도사휘


※사호(四皓)는 진시황 때 난을 피해 상산(商山)에 숨은 네 은사(隱士).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녹里先生).

삼청(三淸)은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으로

신선들이 산다는 궁의 이름이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18) ▩▩▩

☆☆☆ 돈 ☆☆☆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어디서나 환영받으니
나라와 집안을 흥성케 하여 그 세력이 가볍지 않네.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는 또 가니
살리고 죽이는 것도 마음대로 하네.


☆ 錢(전) ☆
周遊天下皆歡迎 興國興家勢不輕 주유천하개환영 흥국흥가세불경
去復還來來復去 生能死捨死能生 거복환래래복거 생능사사사능생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고 산 사람도 죽게 만드는 것이 돈이니
당시에도 그 위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17) ▩▩▩

 
☆☆☆ 맷돌 ☆☆☆

누가 산 속의 바윗돌을 둥글게 만들었나.
하늘만 돌고 땅은 그대로 있네.
은은한 천둥소리가 손 가는 대로 나더니
사방으로 눈싸라기 날리다 잔잔히 떨어지네.


☆ 磨石(마석) ☆
誰能山骨作圓圓 天以順還地自安 수능산골작원원 천이순환지자안
隱隱雷聲隨手去 四方飛雪落殘殘 은은뇌성수수거 사방비설낙잔잔


※돌로 만든 무생물체도 그가 노래하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태어났다.

 
☆ 眼鏡(안경) ☆
江湖白首老如鷗 鶴膝烏精價易牛 강호백수노여구 학슬오정가역우
環若張飛준蜀虎 瞳成項羽沐荊후 환약장비준촉호 동성항우목형후
삽疑濯濯穿籬鹿 快讀關關在渚鳩 삽의탁탁천리록 쾌독관관재저구
少年多事懸風眼 春陌堂堂倒紫류 소년다사현풍안 춘맥당당도자류


※각 행의 끝나는 글자들이 모두 동물 이름이다.
갈매기 구(鷗), 소 우(牛), 범 호(虎), 원숭이 후(후), 사슴 록(鹿),
비둘기 구(鳩), 눈 안(眼), 당나귀 류(류)
접을 수 있는 안경다리가 두루미 무릎을 닮았다고 해서 학슬(鶴膝)이라 불렀다.
오정(烏精)은 거무스럼한 안경알을 가리킨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19) ▩▩▩

 
☆☆☆ 떨어진 꽃 ☆☆☆

새벽에 일어나 온 산이 붉은 걸 보고 놀랐네.
가랑비 속에 피었다 가랑비 속에 지네.
끝없이 살고 싶어 바위 위에도 달라붙고
가지를 차마 떠나지 못해 바람 타고 오르기도 하네.
두견새는 푸른 산에서 슬피 울다가 그치고
제비는 진흙에 붙은 꽃잎을 차다가 그저 올라가네.
번화한 봄날이 한차례 꿈같이 지나가자
머리 흰 성남의 늙은이가 앉아서 탄식하네.


落花吟(낙화음) ☆

曉起飜驚滿山紅 開落都歸細雨中 효기번경만산홍 개락도귀세우중
無端作意移粘石 不忍辭枝倒上風 무단작의이점석 불인사지도상풍
鵑月靑山啼忽罷 燕泥香逕蹴全空 견월청산제홀파 연니향경축전공
繁華一度春如夢 坐嘆城南頭白翁 번화일도춘여몽 좌탄성남두백옹


※초목과 꽃이 풍성한 봄이 지나감을 아쉬워하여 읊은 작품이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21) ▩▩▩


☆☆☆ 눈 ☆☆☆

천황씨가 죽었나 인황씨가 죽었나
나무와 청산이 모두 상복을 입었네.
밝은 날에 해가 찾아와 조문한다면
집집마다 처마 끝에서 눈물 뚝뚝 흘리겠네.

☆ 雪(설) ☆

天皇崩乎人皇崩 萬樹靑山皆被服 천황붕호인황붕 만수청산개피복
明日若使陽來弔 家家첨前淚滴滴 명일약사양내조 가가첨전누적적

※천황씨와 인황씨는 고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임금이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을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여 흘리는 눈물에 비유하였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22) ▩▩▩

 
☆☆☆ 벼룩 ☆☆☆

모습은 대추씨 같지만 용기가 뛰어나
이와는 친구 삼고 전갈과는 이웃일세.
아침에는 자리 틈에 몸을 숨겨 찾을 수 없고
저녁에는 이불 속에 다리 물려고 가까이 오네.
뾰족한 주둥이에 물릴 때마다 찾아볼 마음이 생기고
알몸으로 튈 때마다 단꿈이 자주 깨네.
밝은 아침에 일어나 살갗을 살펴보면
복사꽃 만발한 봄날 경치를 보는 것 같네.


蚤(조) ☆
貌似棗仁勇絶倫 半風爲友蝎爲隣 모사조인용절륜 반풍위우갈위린
朝從席隙藏身密 暮向衾中犯脚親 조종석극장신밀 모향금중범각친
尖嘴嚼時心動索 赤身躍處夢驚頻 첨취작시심동색 적신약처몽경빈
平明點檢肌膚上 剩得桃花萬片春 평명점검기부상 잉득도화만편춘

※ 벼룩의 모양과 습성을 묘사하고 벼룩에 물린 사람의 피부를
복숭아꽃이 만발한 봄 경치에 비유하였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23) ▩▩▩


☆☆☆ 늙은 소 ☆☆☆

파리한 뼈는 앙상하고 털마저 빠졌는데
늙은 말 따라서 마굿간을 같이 쓰네.
거친 들판에서 짐수레 끌던 옛공은 멀어지고
목동 따라 푸른 들에서 놀던 그 시절 꿈 같아라.
힘차게 끌던 쟁기도 텃밭에 한가히 놓였는데
채찍 맞으며 언덕길 오르던 그 시절 괴로웠었지.
가련해라 밝은 달밤은 깊어만 가는데
한평생 부질없이 쌓인 고생을 돌이켜보네.


☆ 老牛(노우) ☆

瘦骨稜稜滿禿毛 傍隨老馬兩分槽 수골릉릉만독모 방수노마양분조
役車荒野前功遠 牧竪靑山舊夢高 역거황야전공원 목수청산구몽고
健우常疎閑臥圃 苦鞭長閱倦登皐 건우상소한와포 고편장열권등고
可憐明月深深夜 回憶平生만積勞 가련명월심심야 회억평생만적노


※세월의 무상함은 인간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늙은 소를 보고서도 세월이 앗아간 전날의 혈기 넘쳤던 때를 생각할 수 있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24) ▩▩▩


☆☆☆ 갈매기 ☆☆☆

모래도 희고 갈매기도 희니
모래와 갈매기를 분간할 수 없구나.
어부가(漁夫歌) 한 곡조에 홀연히 날아오르니
그제야 모래는 모래, 갈매기는 갈매기로 구별되누나.


白鷗時(백구시) ☆

沙白鷗白兩白白 不辨白沙與白鷗 사백구백양백백 불변백사여백구
漁歌一聲忽飛去 然後沙沙復鷗鷗 어가일성홀비거 연후사사부구구


 

 
 

 

 
 
▩▩▩ 김삿갓 해학시 모음 (27) ▩▩▩

☆☆☆ 구월산 ☆☆☆

지난해 구월에 구월산을 지났는데
올해 구월에도 구월산을 지나네.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지나니
구월산 풍경은 늘 구월일세.


九月山峰(구월산봉) ☆
昨年九月過九月 今年九月過九月 작년구월과구월 금년구월과구월
年年九月過九月 九月山光長九月 연연구월과구월 구월산광장구월


☆☆☆ 경치를 즐기다. ☆☆☆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가다가 서니
산 푸르고 바윗돌 흰데 틈틈이 꽃이 피었네.
화공으로 하여금 이 경치를 그리게 한다면
숲 속의 새소리는 어떻게 하려나.


☆ 賞景(상경) ☆
一步二步三步立 山靑石白間間花 일보이보삼보립 산청석백간간화
若使畵工模此景 其於林下鳥聲何 약사화공모차경 기어림하조성하


※그에게 있어 자연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대상이 아니었다.
방랑의 동반자요 거처가 되었으니 발길 닿은 산천경개는 모두 그의 노래가 되었다.
화가가 아름다운 봄의 경치는 그릴 수 있겠지만 숲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는 어떻게 그려낼 수 있겠는가.

 
 

 

 
 
▩▩▩ 김삿갓 해학시 모음 (26) ▩▩▩

 
☆☆☆ 묘향산 ☆☆☆

평생소원이 무엇이었던가.
묘향산에 한번 노니는 것이었지.
산 첩첩 천 봉 만 길에
길 층층 열 걸음에 아홉 번은 쉬네.


妙香山詩(묘향산시) ☆
平生所欲者何求 每擬妙香山一遊 평생소욕자하구 매의묘향산일유
山疊疊千峰萬인 路層層十步九休 산첩첩천봉만인 노층층십보구휴


※ 평소에 한번 와 보고 싶었던 묘향산의 겹겹이 둘러싸인 산세와
산봉우리의 빼어남을 노래하였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28) ▩▩▩

 
★★★ 영남 술회 ★★★

높다란 망향대에 나 홀로 기대 서서
나그네 시름을 억누르고 사방을 둘러보았네.
달을 따라 드나드는 바다도 둘러보고
꽃소식 알고 싶어 산 속으로 들어왔네.
오랫동안 세상 떠돌다 보니 나막신 한 짝만 남았는데
영웅들을 헤아리며 술 한 잔을 다시 드네.
남국의 자연이 아름다워도 내 고장 아니니
한강으로 돌아가 매화꽃이나 보는 게 낫겠네.

嶺南述懷(영남술회) ★
超超獨倚望鄕臺 强壓覇愁快眼開 초초독의망향대 강압기수쾌안개
與月經營觀海去 乘花消息入山來 여월경영관해거 승화소식입산래
長遊宇宙餘雙履 盡數英雄又一杯 장유우주여쌍극 진수영웅우일배
南國風光非我土 不如歸對漢濱梅 남국풍광비아토 불여귀대한빈매


※아무리 남쪽 지방의 경치가 좋다한들 집으로 돌아가
물가에 핀 매화 보는 것만 못하니
망향대에 올라 고향을 떠난 자신의 기구한 팔자를 읊고 있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4) ▩▩▩


☆☆☆ 개성 사람이 나그네를 내쫓다.☆☆☆

고을 이름이 개성인데 왜 문을 닫나
산 이름이 송악인데 어찌 땔나무가 없으랴.
황혼에 나그네 쫓는 일이 사람 도리 아니니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네 혼자 되놈일세.


☆ 開城人逐客詩(개성인축객시) ☆

邑號開城何閉門 山名松嶽豈無薪 읍호개성하폐문 산명송악개무신
黃昏逐客非人事 禮義東方子獨秦 황혼축객비인사 예의동방자독진


☆☆☆ 주막에서 ☆☆☆

천릿길을 지팡이 하나에 맡겼으니
남은 엽전 일곱 푼도 오히려 많아라.
주머니 속 깊이 있으라고 다짐했건만
석양 주막에서 술을 보았으니 내 어찌하랴.


☆ 艱飮野店(간음야점) ☆

千里行裝付一柯 餘錢七葉尙云多 천리행장부일가 여전칠엽상운다
囊中戒爾深深在 野店斜陽見酒何 낭중계이심심재 야점사양견주하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떠돌아다니는 나그네 길,

어쩌다 생긴 엽전 일곱 닢이 전부지만 저녁놀이 붉게 타는 어스름에

술 한 잔으로 허기를 채우며 피곤한 몸을 쉬어가는 나그네의 모습.

 
 
 

 

 

 
 

▩▩▩ 김삿갓 해학시 모음 (3) ▩▩▩


 

 

 

 

 


☆☆☆ 김삿갓의 유명한희롱시 ☆☆☆


김삿갓이 원한의 땅인 조부의 수난임지였던 (선천)에 갔을 때

차마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온종일 성문 밖을 서성대다가

해가 저물어서야 가까운 글방을 찾았었다.

그러나 젊은 훈장의 태도가 너무 쌀쌀해서 욕시 한수를 건네주었다.


書堂乃早知 서당 은 내조지요

房中皆尊物 방중 은 개존물이라

生徒諸未十 생도 는 제미십이고

先生來不謁 선생 은 내불알이구나


글방을 알고 보니

좌중이 모두 거만하구나.

생도는 열도 못되면서

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는구나.


시의 뜻은 욕이 아니지만 소리 내어 읽던 훈장은

목침을 잘못 던져 학동의 머리를 깨고 말았다.ㅋ~`


☆☆☆☆☆☆☆☆☆☆☆☆☆☆☆☆☆☆☆☆


 

삿갓도 사내라서 희롱시 한 수를 건네주는디……,

하마터면 동거까지 할뻔한 가련이라는 늙은 기생의 딸과

불 끄고 나눈 이야기가 전해온다.


삿갓 : 毛深內闊必過人 모심내활하니 필과인이라

숲이 깊고 속이 넓으니 분명 누가 다녀간 게로구나


가련 : 後園黃栗不蜂裂 후원황율은 불봉렬이요

溪邊楊柳不雨長 계변양유는 불우장이라오


뒷산 노란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벌어지고

개천가 버들가지는 비 안 맞아도 잘 자라 늘어진다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5) ▩▩▩


☆ 思鄕 ☆


西行己過十三州 此地猶然惜去留 서행기과십삼주 차지유연석거유
雨雪家鄕人五夜 山河逆旅世千秋 우운가향인오야 산하역려세천추
莫將悲慨談靑史 須向英豪問白頭 막장비개담청사 수향영호문백두
玉館孤燈應送歲 夢中能作故園遊 옥관고등응송세 몽중능작고원유

※ 오야(五夜)는 오경(五更)으로 오전 3시부터 5시까지이다.

☆☆☆ 즉흥적으로 읊다. ☆☆☆

내 앉은 모습이 선승 같으니 수염이 부끄러운데
오늘 밤에는 풍류도 겸하지 못했네.
등불 적막하고 고향집은 천리인데
달빛마저 쓸쓸해 나그네 혼자 처마를 보네.
종이도 귀해 분판에 시 한 수 써놓고
소금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마시네.
요즘은 시도 돈 받고 파는 세상이니
오릉땅 진중자의 청렴만을 내세우지는 않으리라.

卽吟(즉음) ☆


坐似枯禪反愧髥 風流今夜不多兼 좌사고선반괴염 풍류금야부다겸
燈魂寂寞家千里 月事肅條客一첨 등혼적막가천리 월사숙조객일첨

紙貴淸詩歸板粉 肴貧濁酒用盤鹽 지귀청시귀판분 효빈탁주용반염
瓊거亦是黃金販 莫作於陵意太廉 경거역시황금판 막작어릉의태염


※진중자(陳仲子)는 제나라 오릉(於陵)에 살았던 청렴한 선비.

세속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지내는

자신의 생활을 감회에 젖어 읊은 시이다.
-옮겨온 글입니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7) ▩▩▩


☆☆☆ 노인이 스스로 놀리다. ☆☆☆

여든 나이에다 또 네 살을 더해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데 신선은 더욱 아닐세.
다리에 근력이 없어 걸핏하면 넘어지고
눈에도 정기가 없어 앉았다 하면 조네.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모두가 망령인데
한 줄기 숨소리가 목숨을 이어가네.
희로애락 모든 감정이 아득키만 한데
이따금 황정경 내 경편을 읽어보네.


老人自嘲(노인자조) ☆

八十年加又四年 非人非鬼亦非仙 팔십년가우사년 비인비귀역비선
脚無筋力行常蹶 眼乏精神坐輒眠 각무근력행상궐 안핍정신좌첩면
思慮語言皆妄녕 猶將一縷線線氣 사려어언개망녕 유장일루선선기
悲哀歡樂總茫然 時閱黃庭內景篇 비애환락총망연 시열황정내경편


※ 김삿갓이 노인의 청을 받아 지은 것으로,

기력이 쇠해서 근근히 살아가면서도

도가(道家)의 경전을 읽으며 허무에 심취한 것을 읊었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6) ▩▩▩

☆☆☆ 시시비비 ☆☆☆

이 해 저 해 해가 가고 끝없이 가네.
이 날 저 날 날은 오고 끝없이 오네.
해가 가고 날이 와서 왔다가는 또 가니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이 가운데 이뤄지네.

☆ 是是非非詩(시시비비시) ☆
年年年去無窮去 日日日來不盡來 년년년거무궁거 일일일래부진래
年去月來來又去 天時人事此中催 년거월래래우거 천시인사차중최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

是是非非非是是 是非非是非非是 시시비비비시시 시비비시비비시
是非非是是非非 是是非非是是非 시비비시시비비 시시비비시시비


 
☆☆☆ 늙은이가 읊다. ☆☆☆

오복 가운데 수(壽)가 으뜸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오래 사는 것도 욕이라고 한 요임금 말이 귀신 같네.
옛친구들은 모두 다 황천으로 가고
젊은이들은 낯설어 세상과 멀어졌네.
근력이 다 떨어져 앓는 소리만 나오고
위장이 허해져 맛있는 것만 생각나네.
애 보기가 얼마나 괴로운 줄도 모르고
내가 그냥 논다고 아이를 자주 맡기네.


老吟(노음) ☆
五福誰云一曰壽 堯言多辱知如神 오복수운일왈수 요언다욕지여신
舊交皆是歸山客 新少無端隔世人 구교개시귀산객 신소무단격세인
筋力衰耗聲似痛 胃腸虛乏味思珍 근력쇠모성사통 위장허핍미사진

內情不識看兒苦 謂我浪遊抱送頻 내정부식간아고 위아랑유포송빈

 
요임금이 말하기를 아들이 많으면 근심이 많아지고 부귀하면
일이 많으며 장수하면 욕된 일이 많아진다고 했다.
오복(五福)의 첫째는 장수(長壽)라 하나 늙으면 버림 받고 외로워지니
요임금이 이를 알고 長壽는 多辱이라 했다.
-옮겨온 글입니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8) ▩▩▩


☆☆☆ 갓 쓴 어린아이를 놀리다. ☆☆☆

솔개 보고도 무서워할 놈이 갓 아래 숨었는데
누군가 기침하다가 토해낸 대추씨 같구나.
사람마다 모두들 이렇게 작다면
한 배에서 대여섯 명은 나올 수 있을 테지.

嘲幼冠者(조유관자) ☆

畏鳶身勢隱冠蓋 何人咳嗽吐棗仁 외연신세은관개 하인해수토조인

若似每人皆如此 一腹可生五六人 약사매인개여차 일복가생오륙인

※ 어린 꼬마 신랑이 갓을 쓰고 다님을 조롱했다.

솔개를 무서워할 나이에 몸을 가릴 만큼 큰 갓을 쓰고

몸집은 대추씨처럼 작은데 벌써 새신랑이 되었음을 표현했다.


☆☆☆ 갓 쓴 어른을 놀리다. ☆☆☆

갓 쓰고 담뱃대 문 양반 아이가
새로 사온 맹자 책을 크게 읽는데
대낮에 원숭이 새끼가 이제 막 태어난 듯하고
황혼녘에 개구리가 못에서 어지럽게 우는 듯하네.

嘲年長冠者(조연장관자) ☆

方冠長竹兩班兒 新買鄒書大讀之 방관장죽양반아 신매추서대독지
白晝후孫初出袋 黃昏蛙子亂鳴池 백주후손초출대 황혼와자난명지

 
 

 

 

 
 
▩▩▩ 김삿갓 해학시 모음 (9) ▩▩▩

 

☆☆☆ 훈장을 훈계하다. ☆☆☆

두메산골 완고한 백성이 괴팍한 버릇 있어
문장 대가들에게 온갖 불평을 떠벌리네.
종지 그릇으로 바닷물을 담으면 물이라 할 수 없으니
소귀에 경 읽기인데 어찌 글을 깨달으랴.
너는 산골 쥐새끼라서 기장이나 먹지만
나는 날아오르는 용이라서 붓끝으로 구름을 일으키네.
네 잘못이 매 맞아 죽을죄이지만 잠시 용서하노니
다시는 어른 앞에서 버릇없이 말장난 말라.


訓戒訓長(훈계훈장) ☆
化外頑氓怪習餘 文章大塊不平噓 화외완맹괴습여 문장대괴불평허
여盃測海難爲水 牛耳誦經豈悟書 여배측해난위수 우이송경기오서
含黍山間奸鼠爾 凌雲筆下躍龍余 함서산간간서이 능운필하약용여
罪當笞死姑舍己 敢向尊前語詰거 죄당태사고사기 감향존전어힐거


※김삿갓이 강원도 어느 서당을 찾아가니 마침 훈장은 학동들에게
고대의 문장을 강의하고 있는데 주제넘게도 그 문장을 천시하는 말을 하고
김삿갓을 보자 멸시를 하는 것이었다. 이에 훈장의 허세를 꼬집는 시를 지었다.

☆☆☆ 훈장 ☆☆☆

세상에서 누가 훈장이 좋다고 했나.
연기 없는 심화가 저절로 나네.
하늘 천 따 지 하다가 청춘이 지나가고
시와 문장을 논하다가 백발이 되었네.
지성껏 가르쳐도 칭찬 듣기 어려운데
잠시라도 자리를 뜨면 시비를 듣기 쉽네.
장중보옥 천금 같은 자식을 맡겨 놓고
매질해서 가르쳐 달라는 게 부모의 참마음일세.


訓長(훈장) ☆
世上誰云訓長好 無烟心火自然生 세상수운훈장호 무연심화자연생
曰天曰地靑春去 云賦云詩白髮成 왈천왈지청춘거 운부운시백발성
雖誠難聞稱道賢 暫離易得是非聲 수성난문칭도현 잠리이득시비성
掌中寶玉千金子 請囑撻刑是眞情 장중보옥천금자 청촉달형시진정


※김삿갓은 방랑 도중 훈장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훈장에 대한 그의 감정은 호의적이지 못해서
얄팍한 지식으로 식자(識者)인 체하는 훈장을 조롱하는 시가 여럿 있다.

☆☆☆ 산골 훈장을 놀리다. ☆☆☆

산골 훈장이 너무나 위엄이 많아
낡은 갓 높이 쓰고 가래침을 내뱉네.
천황을 읽는 놈이 가장 높은 제자고
풍헌이라고 불러 주는 그런 친구도 있네.
모르는 글자 만나면 눈 어둡다 핑계대고
술잔 돌릴 땐 백발 빙자하며 잔 먼저 받네.
밥 한 그릇 내주고 빈 집에서 생색내는 말이
올해 나그네는 모두가 서울 사람이라 하네.


☆ 嘲山村學長(조산촌학장) ☆
山村學長太多威 高着塵冠揷唾排 산촌학장태다위 고착진관삽타배
大讀天皇高弟子 尊稱風憲好明주 대독천황고제자 존칭풍헌호명주
每逢兀字憑衰眼 輒到巡杯籍白鬚 매봉올자빙쇠안 첩도순배적백수
一飯횡堂生色語 今年過客盡楊州 일반횡당생색어 금년과객진양주


※풍헌(風憲)은 조선 시대 향직(鄕職)의 하나.

 
 

 

 
 

▩▩▩ 김삿갓 해학시 모음 (10) ▩▩▩



☆☆☆ 기생 가련에게 ☆☆☆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可憐妓詩(가련기시) ☆

可憐行色可憐身 可憐門前訪可憐 가련행색가련신 가련문전방가련
可憐此意傳可憐 可憐能知可憐心 가련차의전가련 가련능지가련심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의 딸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힘든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11) ▩▩▩

 
☆☆☆ 이별 ☆☆☆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말라.
가련을 잊지 않고 가련에게 다시 오리니.


離別(이별) ☆
可憐門前別可憐 可憐行客尤可憐 가련문전별가련 가련행객우가련
可憐莫惜可憐去 可憐不忘歸可憐 가련막석가련거 가련불망귀가련


☆☆☆ 어느 여인에게 ☆☆☆
나그네 잠자리가 너무 쓸쓸해 꿈자리도 좋지 못한데
하늘에선 차가운 달이 우리 이웃을 비추네.
푸른 대와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를 자랑하고
붉은 복사꽃 흰 오얏꽃은 한 해 봄을 즐기네.
왕소군의 고운 모습도 오랑케 땅에 묻히고
양귀비의 꽃 같은 얼굴도 마외파의 티끌이 되었네.
사람의 성품이 본래부터 무정치는 않으니
오늘 밤 그대 옷자락 풀기를 아까워하지 말게나.


贈某女(증모녀) ☆
客枕條蕭夢不仁 滿天霜月照吾隣 객침조소몽불인 만천상월조오린
綠竹靑松千古節 紅桃白李片時春 녹죽청송천고절 홍도백리편시춘
昭君玉骨湖地土 貴비花容馬嵬塵 소군옥골호지토 귀비화용마외진
人性本非無情物 莫惜今宵解汝거 인성본비무정물 막석금소해여거


※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元帝)의 궁녀. 흉노 땅에서 죽음.
마외파는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을 때 양귀비가 피난 갔다가 죽은 곳.
김삿갓이 전라도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커다란 기와집을 찾아갔다.
주인은 나오지 않고 계집종이 나와서 저녁상을 내다 주었다.
밥을 다 먹은 뒤에 안방 문을 열어보니 소복을 입은 미인이 있었는데
독수공방하는 어린 과부였다.
밤이 깊은 뒤에 김삿갓이 안방에 들어가자 과부가 놀라 단도를 겨누었다.
김삿갓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길인데 목숨만 살려 달라고 하자
여인이 운을 부르며 시를 짓게 하였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12) ▩▩▩

 

☆☆☆ 길가에서 처음 보고 ☆☆☆

그대가 시경 한 책을 줄줄 외우니
나그네가 길 멈추고 사랑스런 맘 일어나네.
빈 집에 밤 깊으면 사람들도 모를테니
삼경쯤 되면 반달이 지게 될거요. -김삿갓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 눈 가리기 어려우니
마음 있어도 말 못해 마음이 없는 것 같소.
담 넘고 벽 뚫어 들어오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내 이미 농부와 불경이부 다짐했다오. -여인

街上初見(가상초견) ☆
芭經一帙誦分明 客駐程참忽有情 파경일질송분명 객주정참홀유정
虛閣夜深人不識 半輪殘月已三更 -金笠詩 허각야심인불식 반륜잔월이삼경 -김립시
難掩長程十目明 有情無語似無情 난엄장정십목명 유정무어사무정
踰墻穿壁非難事 曾與農夫誓不更 -女人詩 유장천벽비난사 증여농부서불경 -여인시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여인들이 논을 매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미인이 시경을 줄줄 외우고 있어서
김삿갓이 앞구절을 지어 그의 마음을 떠 보았다.
그러자 여인이 뒷구절을 지어 남편과 다짐한
불경이부(不更二夫)의 맹세를 저 버릴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14) ▩▩▩

 
☆☆☆ 요강 ☆☆☆

네가 있어 깊은 밤에도 사립문 번거롭게 여닫지 않아
사람과 이웃하여 잠자리 벗이 되었구나.
술 취한 사내는 너를 가져다 무릎 꿇고
아름다운 여인네는 널 끼고 앉아 살며시 옷자락을 걷네.
단단한 그 모습은 구리산 형국이고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소리는 비단폭포를 연상케 하네.
비바람 치는 새벽에 가장 공이 많으니
한가한 성품 기르며 사람을 살찌게 하네.


溺缸(요항) ☆
賴渠深夜不煩扉 令作團隣臥處圍 뢰거심야부번비 영작단린와처위
醉客持來端膽膝 態娥挾坐惜衣收 취객지래단담슬 태아협좌석의수
堅剛做體銅山局 灑落傳聲練瀑飛 견강주체동산국 쇄락전성연폭비
最是功多風雨曉 偸閑養性使人肥 최시공다풍우효 투한양성사인비


※오줌이 거름이 되고 또 비바람 치는 새벽에도 문밖에 나가지 않고
편안히 일을 보게 하므로 사람을 살찌게 한다.
그때까지 어느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생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택하여 자유자재로 표현했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13) ▩▩▩


☆☆☆ 허풍 ☆☆☆


풍수 선생은 본래 허망된 말만 하는 사람이라
남이다 북이다 가리키며 부질없이 혀를 놀리네.
청산 속에 만약 명당자리가 있다면
어찌 네 아비를 파묻지 않았나.


嘲地官(조지관) ☆

風水先生本是虛 指南指北舌飜空 풍수선생본시허 지남지북설번공
靑山若有公侯地 何不當年葬爾翁 청산약유공후지 하불당년장이옹


嘲地師(조지사) ☆

可笑龍山林處士 暮年何學李淳風 가소용산임처사 모년하학이순풍
雙眸能貫千峰脈 兩足徒行萬壑空 쌍모능관천봉맥 양족도행만학공
顯顯天文猶未達 漠漠地理豈能通 현현천문유미달 막막지리기능통
不如歸飮重陽酒 醉抱瘦妻明月中 불여귀음중양주 취포수처명월중


※이순풍(李淳風)은 당나라 사람으로 역산(曆算)에 밝았고

혼천의(渾天儀)를 만들었다.

천체의 형상도 모르면서 땅의 이치를 안답시고 명당이라는 곳을 찾기 위해

수많은 산봉우리와 골짜기를 누비고 다녔으나

모두 헛수고를 한 것이니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조롱을 했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44) ▩▩▩


☆☆☆
공씨네 집에서 ☆☆☆

문 앞에서 늙은 삽살개가 콩콩 짖으니
주인의 성이 공가인 줄 알겠네.
황혼에 나그네를 쫓으니 무슨 까닭인가
아마도 부인의 아랫구멍을 잃을까 두려운거지.

辱孔氏家(욕공씨가) ☆

臨門老尨吠孔孔 知是主人姓曰孔 임문노방폐공공 지시주인성왈공
黃昏逐客緣何事 恐失夫人脚下孔 황혼축객연하사 공실부인각하공


※구멍 공(孔)자를 공공(개 짖는 소리), 공가(성),

구멍이라는 세 가지 뜻으로 썼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終) ▩▩▩

☆☆☆
오랑캐 땅의 화초 ☆☆☆

오랑캐 땅에 화초가 없다지만
오랑캐 땅이라고 화초가 없으랴.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더라도
어찌 땅에 화초가 없으랴.

胡地花草(호지화초) ☆
胡地無花草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호지무화초
胡地無花草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호지무화초


※호(胡)자에 '오랑캐'라는 명사와 '어찌'라는 부사의 뜻이 있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31) ▩▩▩

 
☆☆☆ 산을 구경하다 ☆☆☆

게으른 말을 타야 산 구경하기가 좋아서
채찍질 멈추고 천천히 가네.
바위 사이로 겨우 길 하나 있고
연기 나는 곳에 두세 집이 보이네.
꽃 색깔 고우니 봄이 왔음을 알겠고
시냇물 소리 크게 들리니 비가 왔나 보네.
멍하니 서서 돌아갈 생각도 잊었는데
해가 진다고 하인이 말하네.


看山(간산) ☆
倦馬看山好 執鞭故不加 권마간산호 집편고불가
岩間재一路 煙處或三家 암간재일로 연처혹삼가
花色春來矣 溪聲雨過耶 화색춘래의 계성우과야
渾忘吾歸去 奴曰夕陽斜 혼망오귀거 노왈석양사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 했으니 산을 구경하기에는
빨리 달리는 말보다 게으른 말이 좋다는 것이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32) ▩▩▩


☆☆☆ 환갑잔치 ☆☆☆

저기 앉은 저 노인은 사람 같지 않으니
아마도 하늘 위에서 내려온 신선일 테지.
여기 있는 일곱 아들은 모두 도둑놈이니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를 훔쳐다 환갑잔치에 바쳤네.

還甲宴(환갑연) ☆

彼坐老人不似人 疑是天上降眞仙 피좌노인불사인 의시천상강진선
其中七子皆爲盜 偸得碧桃獻壽筵 기중칠자개위도 투득벽도헌수연


※환갑잔치 집에 들린 김삿갓이 첫 구절을 읊자

자식들이 모두 화를 내다가 둘째 구절을 읊자 모두들 좋아하였다.

셋째 구절을 읊자 다시 화를 냈는데 넷째 구절을 읊자 역시 모두들

좋아하였다.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는 천 년에 한번 열리는 복숭아로

이것을 먹으면 장수하였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33) ▩▩▩


☆☆☆ 원생원 ☆☆☆

해 뜨자 원숭이가 언덕에 나타나고
고양이 지나가자 쥐가 다 죽네.
황혼이 되자 모기가 처마에 이르고
밤 되자 벼룩이 자리에서 쏘아대네.


元生員(원생원) ☆

日出猿生原 猫過鼠盡死 일출원생원 묘과서진사
黃昏蚊첨至 夜出蚤席射 황혼문첨지 야출조석사


※김삿갓이 북도지방의 어느 집에 갔다가 그곳에 모여 있던

마을 유지들을 놀리며 지은 시이다.

구절마다 끝의 세 글자는 원 생원(元生員), 서 진사(徐進士),

문 첨지(文僉知), 조 석사(趙碩士)의 음을 빌려 쓴 것이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30) ▩▩▩


☆☆☆ 길주 명천 ☆☆☆

길주 길주 하지만 길하지 않은 고장.
허가 허가 하지만 허가하는 것은 없네.
명천 명천 하지만 사람은 밝지 못하고
어전 어전 하지만 밥상에는 고기 없네.


吉州明川(길주명천) ☆

吉州吉州不吉州 許可許可不許可 길주길주불길주 허가허가불허가
明川明川人不明 漁佃漁佃食無漁 명천명천인불명 어전어전식무어


※어전은 함경도 명천군 기남면 어전리이다.

길주는 나그네를 재워주지 않는 풍속이 있어 허가가 많이 살지만

잠자도록 허가해 주지 않고, 어전(漁佃)은 물고기 잡고 짐승을

사냥한다는 뜻인데 이 동네 밥상에는 고기가 오르지 않음을 풍자한 시이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34) ▩▩▩


☆☆☆
피하기 어려운 꽃 ☆☆☆

청춘에 기생을 안으니 천금이 초개 같고
대낮에 술잔을 대하니 만사가 부질없네.
먼 하늘 날아가는 기러기는 물 따라 날기 쉽고
청산을 지나가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네.


難避花(난피화) ☆

靑春抱妓千金開 白日當樽萬事空 청춘포기천금개 백일당준만사공
鴻飛遠天易隨水 蝶過靑山難避花 홍비원천이수수 접과청산난피화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청년들이 기생들과 놀고 있었다.
김삿갓이 부러워하여 한자리에 끼어 술을 얻어 마신 뒤 이 시를 지어 주었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35) ▩▩▩


☆☆☆
기생과 함께 짓다 ☆☆☆

평양 기생은 무엇에 능한가. -김삿갓
노래와 춤 다 능한 데다 시까지도 능하다오.-기생
능하고 능하다지만 별로 능한 것 없네. -김삿갓
달 밝은 한밤중에 지아비 부르는 소리에 더 능하다오. -기생

妓生合作(기생합작) ☆

金笠. 平壤妓生何所能 김립. 평양기생하소능
妓生. 能歌能舞又詩能 기생. 능가능무우시능
金笠. 能能其中別無能 김립. 능능기중별무능
妓生. 月夜三更呼夫能 기생. 월야삼경호부능


※평양감사가 잔치를 벌이면서 능할 능(能)자 운을 부르자

김삿갓이 먼저 한 구절을 짓고 기생이 이에 화답하였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36) ▩▩▩


☆☆☆
옥구 김 진사 ☆☆☆

옥구 김 진사가
내게 돈 두 푼을 주었네.
한번 죽어 없어지면 이런 꼴 없으련만
육신이 살아 있어 평생에 한이 되네.

沃溝金進士(옥구김진사) ☆

沃溝金進士 與我二分錢 옥구김진사 여아이분전
一死都無事 平生恨有身 일사도무사 평생한유신


※김삿갓이 옥구 김 진사 집을 찾아가

하룻밤 묵기를 청하자 돈 두 푼을 주며 내쫓았다.

김삿갓이 이 시를 지어 대문에 붙이니 김 진사가

이 시를 보고 자기 집에다 재우고 친교를 맺었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37) ▩▩▩


☆☆☆
창 ☆☆☆

십(十)자가 서로 이어지고 구(口)자가 빗겼는데
사이사이 험난한 길이 있어 파촉(巴蜀)가는 골짜기 같네.
이웃집 늙은이는 순하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지만
어린 아이는 열기 어렵다고 손가락으로 긁어대네.

窓(창) ☆

十字相連口字橫 間間棧道峽如巴 십자상연구자횡 간간잔도협여파
隣翁順熟低首入 稚子難開擧手爬 인옹순숙저수입 치자난개거수파


※눈 오는 날 김삿갓이 친구의 집을 찾아가자

친구가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고

창(窓)이라는 제목을 내며 파촉 파(巴)와 긁을 파(爬)를 운으로 불렀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38) ▩▩▩


☆☆☆
양반 ☆☆☆

네가 양반이면 나도 양반이다.
양반이 양반을 몰라보니 양반은 무슨 놈의 양반.
조선에서 세 가지 성만이 그중 양반인데
김해 김씨가 한 나라에서도 으뜸 양반이지.
천 리를 찾아왔으니 이 달 손님 양반이고
팔자가 좋으니 금시 부자 양반이지만
부자 양반을 보니 진짜 양반을 싫어해
손님 양반이 주인 양반을 알 만하구나.

兩班論(양반론) ☆

彼兩班此兩班 班不知班何班 피양반차양반 반부지반하반
朝鮮三姓其中班 駕洛一邦在上班 조선삼성기중반 가락일방재상반
來千里此月客班 好八字今時富班 내천리차월객반 호팔자금시부반
觀其爾班厭眞班 客班可知主人班 관기이반염진반 객반가지주인반


※김삿갓이 어느 양반 집에 갔더니 양반입네

거드럼을 피우며 족보를 따져 물었다.

집안 내력을 밝힐 수 없는 삿갓으로서는 기분이 상할 수밖에.

주인 양반이 대접을 받으려면 행실이 양반다워야 하는데

먼 길 찾아온 손님을 박대하니 그 따위가 무슨 양반이냐고 놀리고 있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39) ▩▩▩


☆☆☆
어두운 밤에 홍련을 찾아가다 ☆☆☆

향기 찾는 미친 나비가 한밤중에 나섰지만
온갖 꽃은 밤이 깊어 모두들 무정하네.
홍련을 찾으려고 남포로 내려가다가
동정호 가을 물결에 작은 배가 놀라네.

暗夜訪紅蓮(암야방홍련)

探香狂蝶半夜行 百花深處摠無情 탐향광접반야행 백화심처총무정
欲採紅蓮南浦去 洞庭秋波小舟驚 욕채홍련남포거 동정추파소주경

※동정(洞庭)은 두보의 '등악양루'(登岳陽樓)의 배경이 된

중국 호남성에 있는 동정호(洞庭湖)를 말한다.

홍련을 만나려고 여러 여인들이 자는 기생방을 한밤중에 찾아갔는데

어둠 속에서 얼결에 추파라는 기생을 밟고는 깜짝 놀랐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40) ▩▩▩

☆☆☆ 언문풍월 ☆☆☆

푸른 소나무가 듬성듬성 섰고
인간은 여기저기 있네.
엇득빗득 다니는 나그네가
평생 쓰나 다나 술만 마시네.

諺文風月(언문풍월) ☆
靑松듬성담성立이요 청송듬성담성립이요
人間여기저기有라. 인간여기저기유라.
所謂엇뚝삣뚝客이 소위엇뚝삣뚝객이
平生쓰나다나酒라. 평생쓰나다나주라.


※서당에서 있을 유(有)자와 술 주(酒)자를 운으로 부르자
언문과 한자를 조합하여 지었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41) ▩▩▩

☆☆☆
봄을 시작하는 시회 ☆☆☆

데걱데걱 높은 산에 오르니
씨근벌떡 숨결이 흩어지네.
몽롱하게 취한 눈으로 굶주리며 보니
울긋불긋 꽃이 만발했네.

開春詩會作(개춘시회작) ☆

데각데각 登高山하니 데각데각 등고산하니
시근뻘뜩 息氣散이라. 시근뻘뜩 식기산이라.
醉眼朦朧 굶어觀하니 취안몽롱 굶어관하니
욹읏붉읏 花爛漫이라. 욹읏붉읏 화난만이라.


※산에서 시회가 열린 것을 보고 올라갔는데
시를 지어야 술을 준다고 하자 이 시를 지었다.
사람들이 언문풍월도 시냐고 따지니 다시 한 수를 읊었다.


諺文眞書석거作하니 언문진서섞어작하니
是耶非耶皆吾子라. 시야비야개오자라.


언문과 진서를 섞어 지었으니
이게 풍월이냐 아니냐 하는 놈들은 모두 내 자식이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42) ▩▩▩


☆☆☆
송아지 값 고소장 ☆☆☆

넉 냥 일곱 푼짜리 송아지를
푸른 산 푸른 물에 놓아서
푸른 산 푸른 물로 길렀는데,
콩에 배부른 이웃집 소가
이 송아지를 뿔로 받았으니
어찌하면 좋으리까.

犢價訴題(독가소제) ☆

四兩七錢之犢을 放於靑山綠水하야 사양칠전지독을 방어청산녹수하야
養於靑山綠水러니 隣家飽太之牛가 양어청산녹수러니 인가포태지우가
用其角於此犢하니 如之何卽可乎리요. 용기각어차독하니 여지하즉가호리요.


※가난한 과부네 송아지가 부잣집 황소의 뿔에 받혀 죽자 이 이야기를 들은

김삿갓이 이 시를 써서 관가에 바쳐 송아지 값을 받아 주었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43) ▩▩▩


☆☆☆
서당 욕설시 ☆☆☆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보니
방 안에 모두 귀한 분들일세.
생도는 모두 열 명도 못 되고
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네.

辱說某書堂(욕설모서당)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서당내조지 방중개존물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생도제미십 선생내불알


※추운 겨울날 서당에 찾아가 재워주기를 청하나

훈장은 미친 개 취급하며 내쫓는다.

인정 없는 훈장을 욕하는 시.

소리 나는 대로 읽어야 제 맛이 난다.

 
 

 

 
 

▩▩▩ 김삿갓 해학시 모음 (29) ▩▩▩


☆☆☆ 배를 띄우고 취해서 읊다 ☆☆☆

강은 적벽강이 아니지만 배를 띄웠지.
땅은 신풍에 가까워 술을 살 수 있네.
지금 세상에 영웅이 따로 있으랴, 돈이 바로 항우이고
변사가 따로 있으랴, 술이 바로 소진이지.


泛舟醉吟(범주취음) ☆

江非赤壁泛舟客 地近新豊沽酒人 강비적벽범주객 지근신풍고주인
今世英雄錢項羽 當時辯士酒蘇秦 금세영웅전항우 당시변사주소진


※신풍(新豊)은 한대(漢代)의 현(縣) 이름으로 신풍미주(新豊美酒)라 하여

좋은 술이 나왔다고 함.

항우(項羽)는 초(楚)나라를 세워 한나라 유방과 함께 진나라를 멸망시킨 영웅.

소진(蘇秦)은 중국 전국시대에 말 잘하던 유세객(遊設客)이다.

지금 김삿갓이 놀고 있는 강은 소동파가 적벽부(赤壁賦)를 읊었던

그 적벽강은 아니지만 땅은 맛있는 술이 나왔던 신풍과 닮았다.

오늘날의 세상은 돈만 있으면 항우 같은 힘을 낼 수도 있고

술에 취하면 말 잘하는 소진도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