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5일 아침 서빙고동에 있던 육군 형무소로 최고회의 원충연 공보실장이 지프를 몰고 나타났다. 이만섭, 이진희 기자를 태워 집으로 데려다 주면서 그는 “대단히 미안합니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라고 위로했다. 이만섭 기자는 2년 뒤 대통령 선거 직전엔 공화당에 입당, 박정희 편에 서서 윤보선을 공격하는 입장이 된다. 6월18일에 <민국일보> 정치부장 趙世衡(조세형·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역임)이 혁명 정부에 구속되었다. 혁명 공약 제6항 때문이었다. 6항은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슬며시 바뀐 것이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운운’이 빠지고 ‘민주공화국의 굳건한 토대를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는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을 경주한다’는 것으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을 <민국일보>가 보도하자 최고회의에선 ‘그것은 민간인용’이라면서 조 부장을 구속했다. 조세형 부장이 중부경찰서 유치장 감방에 들어가 보니 金大中(김대중) 민주당 선전부장, 혁신계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고려대 李建鎬(이건호) 교수 등 8, 9명이 붙들려 와서 방이 비좁아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서대문 형무소로 옮겨진 조세형은 뒤에 붙들려온 민주당 시절의 내무장관 申鉉燉(신현돈), 자유당 때 농림부 장관 鄭在卨(정재설)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신현돈은 조세형을 상대로 장면 정부를 무자비하게 난타한 언론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했다. 신 장관의 설명에 의하면 언론이 도를 지나쳐 모처럼 민주적으로 수립된 제2공화국 정부까지도 자유당 독재 정권을 대하듯 사뭇 부정적이고 사사건건 반대론으로 매질을 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이 언론 문제가 민주당 閣議(각의)에서까지 여러 번 이야기 대상이 되었으나 그때마다 장면 총리가 맨 앞장을 서서 “정부가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유를 억압할 수는 없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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