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16 후 육군참모총장으로서 비상 사태 수습에 전력을 다했고 6월6일로서 나의 임무도 사실상 끝났으니 나는 이제 뒤로 물러나겠소.” “이제부터는 행정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더 많이 해 주셔야 할 단계에서 자꾸만 물러나신다는 말씀을 하시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수 없어요.” 두 사람의 대화는 이로써 끝났다. 장도영의 기억에 따르면 대화의 시작은 부드러웠는데 나중엔 의견이 상충된 가운데 냉랭하게 헤어졌다고 한다. 밤 10시가 가까워진 시각이었다. <작은 방에서 얼굴을 맞댄 채 주고받은 대화였지만 이 군사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기본 방침, 그리고 과업 수행에 있어서 나와 박 장군의 상이점은 너무도 많았고 또 컸다> 마지막이 된 박정희·장도영 두 사람의 대화가 있었던 날은 6월30일이었다. 7월2일 저녁 무렵 내각수반실이 있는 중앙청 주변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내각수반 비서실장 이회영 대령은 김종필 부장을 붙들어 가서 혼내 주려던 헌병감 문재준과 공수단장 박치옥의 계획이 탄로난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중앙청 주변에 수상한 사람들이 오가는 것이 목격되었기 때문이다. 이회영은 계산을 해보았다. ‘나는 신분이 내각수반 비서실장이고 문, 박 대령을 말렸으니 붙들려 가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인데 李熙永(이희영)은 곤란할걸.’ 이회영과는 육사 5기 동기생인 전 육군방첩대 서울지구대장 이희영은 5월 15일 밤 박정희를 감시, 미행하도록 지시했던 인물이다. 이회영은 신문지를 찢어 ‘오늘밤은 집에서 자지 말게’라고 쓴 다음 그것을 또르르 말아 운전병을 시켜 이희영의 집으로 보냈다. 이 쪽지를 받은 이희영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무슨 사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피해야 할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희영은 내각수반실로 나가보았다. 아직 장도영은 퇴근하지 않고 있었다. 장도영, 이회영, 이희영 세 사람은 수반실에서 두 시간 가량 얘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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