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浦 街道 5월16일 새벽 2시 직전 박정희는 6관구 사령부를 나와서 韓雄震(한웅진) 준장과 함께 지프에 올랐다. 이석제의 지프엔 李亨柱(이형주), 朴淳權(박순권) 중령이 타고 박정희가 탄 앞차를 뒤쫓았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김포로 달리는 차중에서 앞자리의 박정희는 뒷자리의 한웅진 육군정보학교장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타계한 한웅진 준장이 기자에게 남긴 증언에 따르면 이날 車中(차중) 대화는 대강 이러했다고 한다. ㆍ박정희: “지방에서는 지금 서울 상황을 모르고 있을 거야. 빨리 부대가 출동해야 하는데 말이야. 새벽 5시에 라디오를 들으라고 해놓았는데 방송이 나가지 않으면 호응하기로 한 부대에서는 자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몰라.” ㆍ한웅진: “실패하면 빌어먹을 산 속에라도 들어가서 협상이라도 벌입시다.” ㆍ박정희: “병력이 나와야 협상이라도 하지. 라오스의 콩레 대위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부하도 살리고 다 사는 길이 될지 모르지.” ㆍ한웅진: “형님, 어쨌든 우리는 성공할 겁니다. 아무리 나라를 위해 거사했다고 하더라도 실패하면 만고역적이 되니까 끝까지 해봅시다.” 박정희와 한웅진은 차중에서 담배를 계속 태웠다. 담배연기만이 두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 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이날 차중에서 여섯 갑을 태웠다는 것이다. 박정희도 이 순간에는 초조했던지 라이터를 쥐고 있으면서 한웅진에게 라이터를 달라고 재촉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웅진은, 그 12년 전 박정희가 군내의 남로당 조직원으로서 체포되어 전기 고문까지 당하고 무기징역 선고까지 받았다가 군복을 벗고 나서 불우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육본 특무과장이었다. 한웅진은 육사 2기 동기이지만 나이가 많은 박정희를 형님처럼 모시면서 인생의 나락에 떨어진 그를 가장 가깝게 지켜보았던 이였다. 이제 그는 또 한 번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박정희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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