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김재춘은 ‘상황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면 절대로 기가 죽어선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속으로 다짐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이러했다. “야, 너 아직 몰랐냐? 우리 혁명하는 거?” “뭐라고? 우리는 널 체포하러 왔단 말이야.” “누가 누굴 체포해? 잘못하면 네가 체포당하게 되어 있어.” “이봐. 잡으러 온 사람보고 그런 농담하지 마. 자세히 이야기 좀 해봐.” “잘 들어. 지휘관은 박정희 장군이시고, 해병대, 공수단, 그리고 육해공군 전체가 참여하고 있어. 임마, 잘못하면 너희들이 다 잡혀들어가. 조금 전에 인천항에 함정이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 해군이 함정을
보낸 건 장성들을 죄다 잡아 실어버릴 계획이 있기 때문이야.” 김재춘은 이왕 확인이 안 될 말이니 거짓말을 해도 크게 하는 것이 친구를 위해서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재춘 6관구 사령부 참모장은 박정희가 나타날 때까지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혁명 지휘소인 6관구 사령부를 지켜내느라 임기응변을 다하고 있었다. 쿠데타 가담 장교들을 조사하러 온 헌병차감 이광선 대령을 설득하여
그 예봉을 무디게 해놓고 있는데 장도영 총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거기에 장교들이 많이 모여 있다고 하는데 뭘 해?” “예.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 사람들 뭘 하고 있어?” “비상훈련을 감독하려고 육본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김 대령은 모르는 소리야. 무슨 놈의 훈련이 훈련이야. 그 사람들 꼼짝 못하게 붙들어 놓아요.” 이 말을 들은 김재춘은 무심코 “에이, 뭐 다 아시면서 그런 말씀이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이렇게 반란군과 진압군 장교들이 뒤범벅이 된 상황 속으로 박정희가 들어선 것이다. 김재춘의 기억에 따르면 박정희의 입에서는 술냄새가 강하게 풍겼다고 한다. 박정희는 신당동 집에서 나오기 전 김종필, 장태화, 이낙선과 함께
飯酒(반주) 정도의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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