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장도영을 관찰하고 있었던 부하들의 증언은 다르다. 육본 직할 제15범죄수사대(CID)의 方滋明(방자명) 부대장은 자정 무렵 수색의 30사단으로 달려가 반란 주모자인 작전참모 李白日(이백일) 중령을 야반도주하게 하고 상황을 평정한 뒤 장도영한테 돌아와 대기 중이었다. 이때 해병대가 공수단과 함께 한강교로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장도영은 직접 전화통을 들고는 육본 직할 헌병중대장 金錫律(김석률)
대위를 부르더란 것이다. “병력 50명을 카빈으로 무장하고 GMC트럭 여덟 대를 동원하여 한강 다리를 봉쇄하라.” 장도영은 곁에 있던 방자명 중령에게 지시했다. “귀관도 육본에 가서 헌병대의 배치를 지휘, 감독하고 중간보고하라.” 방자명은 소수 병력으로 대병력을 상대한다는 것이 불안하여 이렇게 건의했다고 한다. “각하, 남산엔 1개 공병단이 주둔하고 있고 각 헌병대는 중화기를 갖고 있습니다.” 장도영은 “아니 됐어, 우선 그것으로 될 거야”라고 말한 뒤 다른 일에 관심을 돌리더라고 한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이희영 서울방첩대 대장도 방자명이 그런 건의를 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확인해 주었다. 장도영 총장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제대로 쓰지 않고 일부러 소수 병력을 투입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때 공병단
병력과 기관총을 동원하여 한강 다리 위에 몰려 있는 해병대와 공수단을 공격했더라면 서울 진입을
저지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방자명 중령은 한강 다리에 트럭을 八(팔)자로 놓는 차량 바리케이드를 3중으로 쳤다. 방 중령과 김 대위는 김포가도 쪽을 바라보았으나 근접 물체는 보이지 않고 조용했다. 방 중령은 “김 대위, 필요하면 발포하시오”라고 명령한 뒤 서울방첩부대로 돌아와 장도영 총장에게 보고했다. 이때 장도영은 전투복 차림으로 갈아입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있었다. 玄錫虎(현석호) 국방장관과 육본의 주요 참모들도 나와 있었다. 방자명은 다시 육본으로 갔다. 연병장에 병력이 꽉 차 있는 게 아닌가. 장병들의 부대 표시를 보니 6군단 포병단이었다. 방자명은 ‘진압군이 들어왔구나’ 하고 안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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