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행차에 탔던 김응서 대위는 이때 무전으로 “11시쯤 박정희 소장을 포함한 2~3명이 신당동 자택을 출발하여 지금 삼각지를 지나 한강 인도교를 건넜습니다”라고 506부대로 보고한 뒤 철수한 것이다. 한강 인도교를 넘기 직전 박정희와 동행했던 김종필이 내렸다. 김종필은 일이 잘못 되면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처삼촌을 전송하는 기분으로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다. 김종필은 내리면서 “내일 새벽에 뵙겠습니다”라고
인사했다. 김종필은 뒤따라 온 자신의 지프차를 타고는 안국동 광명인쇄소로 달렸다. 장경순은 미행차를 따돌린다고 이리저리 차를 몰게 하는 바람에 한강 인도교를 넘었을 때는 박정희 차를 놓쳐 버렸다. 사육신묘를 지나 길이 영등포와 김포 방향으로 갈라지는 곳에 갔더니 박정희가 지프차를 세워놓고
내려서 기다리고 있었다. 뛰어오는 장경순에게 “왜 늦었소”라고 한마디 한 박정희는 다시 차에 올라 영등포 6관구 사령부로 향했다.
이 시간 이석제 중령은 6관구 사령부 앞에서 애타는 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李 중령은 집을 나올 때 45구경 권총은 허리에 차고 작은 리볼버는 바지 호주머니에 넣었다. 불안한 만큼 권총에 집착하게 되었다.
이석제는 권총을 만지면서 하루 전날 마지막 작전 회의에서 박정희가 당부하던 말을 떠올렸다. “무고한 사람을 다치게 하지 말 것, 문제는 순리대로 풀 것, 그리고 시민들에게는 친절할 것.” 밤 10시 이석제는 지프차를 타고 노량진의 한 다방에서 유승원 대령, 李亨柱(이형주) 중령 등과 만났다. 이석제만이 차를 가지고 나왔다. 행정반장인 이석제는 자신의 지프 뒷자리에 여섯 개의 서류 보따리를 두고 있었다. 집권 후에 필요한 서류들이었다. 부처별로 추진할 정책안, 민주당의 주요 정책안, 장차 기용할 인물들의
명단과 이들에 대한 자료, 혁명 초기에 사용할 각종 전단, 방송문, 성명서, 대외 메시지, 후진국 경제 자료,
입법 자료, 혁명 법령 따위가 들어 있는 보따리 때문에 뒷자리엔 이형주만 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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