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십자군 전쟁(十字軍戰爭)에 참여했던 카톨릭의 수사들은
아랍의 연금술사로부터 증류주의 비법을 전수받고 돌아왔다.
아랍의 연금술사(鍊金術師)들로부터 수사들에게로 전수된
알코올 증류비법은 순식간에 유럽 각지로 퍼져 나갔고,
서로 앞다투어 자신들만의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증류를 해서
이 신비의 묘약이자 무병장수의 명약 혹은 염색한 약초의 방부제로 사용했다.
이후 이들에 의해서 증류주가 탄생하였는데 오늘날의 우리가 주로 마시는
위스키(whisky), 브랜디(brandy) 등 고급증류주의 시초(始初)가 된다.
영국으로 전수된 증류기술은 맥주를 증류해 위스키로 발전하였고,
프랑스 등에 전래(傳來)되어 브랜디(brandy)로 발전(發展)하고
러시아 보드카(vodka), 럼(rum), 진 등의 술로 발전하게 된다.
1172년 영국의 헨리 2세가 아일랜드를 정복(征服)했을 때
이미 아일랜드 사람들은 증류한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일랜드 토속 증류주(蒸溜酒)는 15세기경 스코틀랜드에 전해지고
스코틀랜드인들은 각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맥주를 증류하여
지역적 특색(特色)이 있는 독한 증류주를 만들어 마셨다.
오늘날 지역적 특색, 제조법의 발전을 거듭하여
아일랜드의 아이리시(Irish) 위스키와
스코틀랜드의 스카치(Scotch) 위스키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위스키(whisky)의 맛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또 하나의 사건은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합병으로 대영제국이 탄생한 후
정부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술에다 높은 주세를 물리기 시작하였다.
이에 불만을 품은 증류업자들이 스코틀랜드(Scotland)의 산속에 숨어
밤중에 몰래 증류(蒸溜)하여 위스키(whisky)를 밀제조(密製造)했었다.
그 바람에 이들을 '달빛치기(Moon shiner)'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 밀조자들은 맥아의 건조를 위해 이탄(泥炭, peat)을 사용했는데
이 건조방법이 훈연취(熏煙臭)가 있는 맥아를 사용하여
스카치 위스키를 만들게 된 시발이 되었다.
또한 증류한 술을 은폐하려고
셰리주(sherry)의 빈 통에 담아 산속에 숨겨 두었는데
나중에 통을 열어 보았더니 증류 당시에는 무색이었던 술이
투명한 호박색에 짙은 향취가 풍기는 술로 변해 있었다.
이것이 바로 목통(오크통) 저장의 동기가 되었다.
밀조자들이 궁여지책으로 강구한 수단들이
위스키(whisky)의 주질(酒質) 향상을
획기적인 기여를 하는데
일조한 것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후 19세기 중반 유럽의 포도나무가 피록세라 기생충에 의해 전멸되었는데
그 여파로 당시 명성을 떨치는 브랜디(꼬냑)을 생산할 수 없게 되자
그 대체수요로 위스키(whisky)는 전 유럽에 소비되었고,
비약적(飛躍的)인 품질(品質)의 향상을 통한
세계적인 술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켄터키를 중심으로 아메리칸 위스키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버번(bourbon)은 세계적인 술로 성장했다.
또한 캐나다에서는 캐나디안(Canadian) 위스키로 독특한 발전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