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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뇨제용으로 제조된 진(Gin)

淸山에 2010. 10. 31. 13:22
 
 

 
 
 
 
이뇨제용으로 제조된 진(Gin)
 
 
1650년대에 네덜란드의 라이덴 대학 약학 교수이던
프란시스코 살바우스 박사는 약재와 알코올을 이용해서 약술을 만들었다.
그는 이뇨제로 알려진 주니퍼 베리(노간주열매)의 약효(藥效)에 주목하고
이를 알코올에 담구어 침출시킨 후 증류하여 약국에서 팔도록 했다.
이 약은 해열 및 이뇨작용이 뛰어나 날개 돋힌 듯이 팔렸다.

그러나 겨울이 길고 흐린 날이 많은 네덜란드의 사람들,
특히 애주가들은 이 약품을 아예 술로서 마시기 시작했다.
 
이 술은 주니버(Geneva)와인이라 불리었는데,
이것이 17세기 말경 영국으로 전파되면서 진(Gi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7세기 말 네덜란드 출신으로 영국 왕에 즉위한 윌리엄 3세는 진을 즐겨 마셨다.
 
그 덕분에 진진(Gin)은 일반 노동자들의 술로 널리 음용(飮用)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진은 '제왕이 부럽지 않은 가난(ROYAL POVERTY)'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이 술을 마시고 취하면 제왕 같은 기분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이 왕이 된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너도나도 이 술을 마시는 바람에
영국이 어느새 주정뱅이들의 국가로 변모(變貌)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진을 제조하는 방법에는 런던 타입과 네덜란드 타입이 있다.
19세기 들어 연속식 증류기가 개발되면서 영국에서는
옥수수, 대맥, 아이보리 등을 원료로 고농도의 알코올을 만들고,
주니퍼 베리, 커리 앤 시이즈 등으로 향기를 낸 진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이 술은 숙성을 시키지 않기 때문에 무색 투명하고 맛이 산뜻하며 드라이하다.
이에 비해 네덜란드에서는 전통적인 제법을 고수하여 중후한 풍미의 진을 제조하고 있다.
오늘날 진이라고 하면 런던 타입으로 만든 것을 가리키며 이름도 통상 '드라이 진'이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진이 대량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이었다.
진토닉 등 진을 이용한 칵테일이 크게 유행했는데
진을 너무 많이 마셔서 숙취(宿醉)에 시달린 술꾼들도 많았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당시의 권력자들은
소주, 진(현재는 일반증류주, 당시에는 기타 재제주로 분류되었음), 막걸리 등의
주세를  낮게 매겨서 일반 서민이 싼값에 술을 많이 마실 수 있게 하는 정책을 펼쳤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었던 대중들은 술 한잔으로 울분을 달래야 하는 시절이었다.
정통성을 갖지 못한 통치자들이 서민을 달래는 수단의 하나로 값싼 술을 공급하게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이 땅의 술꾼들이 값싼 대중주(大衆酒)로 진을 마실 수 있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아마도 이것이
윌리엄 3세로부터 배운 고도의 정치적 술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진은 특유의 주니퍼 향기와 상큼한 뒷맛을 가지고 잇어서
한두 잔 정도 마시기에는 그지없이 좋은 술이다.
 
그러나 진을 많이 마시면 술 속에 함유(含有)된 약효가 발동되어 오히려 몸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일주일의 피곤한 일과를 마치고 주말 저녁에 부부나 연인이 마주 앉아 레몬즙 한방울을 곁들인
진토닉(gin and tonic)을 앞에 놓고 담소를 나누면 진의 참맛을 만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