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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주석이 부부와 함께하는 여행기
칠십 년 이상의 내 삶을 돌이켜 볼 때 크게 3곳의 지역이 떠 오른다.
나서 자란 어린 시절부터 중,고등 시절의 고향 대전이 첫 지역이여(1949년 3월 17일 태어나 – 1967년 11월)
서울의 누님 찾아 며칠 쉬었다 돌아 올 계획에서 고향 친구 이강직 만나 그의 고등학교 생활을 듣고 누님은 나에게도 강직이 같이 서울의 야간 학교에 편입이 되도록 만들어 이때부터의 서울 살이와 결혼 후 몇 년까지(1967년 11월 – 1982년 10월 말)가 두번 째 지역이 되었고,
꿈에 부픈 외국에 갈 길이 뉴질랜드가 되어 지금껏 살아 온 곳(1982년 11월 2일 – 2023년 4월 18일 현재)까지로 세번 째 지역이 되었으니
내 삶의 흔적을 들여다 보면 평범한 삶이 아니었듯 그 굴곡의 과정을 글로 적게 되면 소재거리도 충분하여 내 마음속은 벌써부터 열정의 흥분이 폭발하여 이것저것이 터저 나온다.
위와 같이 머물던 지역이 세 가지로 나뉜것에 만났던 친구나 동료들 혹은 부딪쳐야 할 사람들과의 인과관계상 구별도 세 군데에 초등시절의 친구와 서울 쪽의 학교 친구 그리고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오래도록 접하는 교우 혹인 교민이 내 머릿속에 머무른 사람들로 되어 있구나.
지난 오륙 년 이상 ‘나의 이야기’글을 써 내려 오면서 우리 가족의 부모 때부터 나의 현재에 이르기까지 근 100여 년 역사를 다루게 되었다.
지난 3월 중순 경 대전의 주석이가 초등카톡방에 올린 문자에 3월 31일부터 4월 23일까지 호주 시드니의 딸 가족을 방문하는 여행 일정이 띄어 카톡방의 다른 동창들은 ‘이웃 뉴질랜드에 남창균, 전인갑도 볼 기회가 있겠구나’의 글도 더불어 올라 왔다.
한국의 친구들은 호주 옆에 이웃으로 보였겠지만 세계 지도를 꺼내 놓고 보면 약 2161 km 이상 떨어져 비행 시간으로도 3시간 30분이 넘기에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즉 서울에서 중국의 상하이를 흘쩍 넘는 거리 구간이라 누가 쉽게 이웃 나들이 가듯 말 할 수 있겠는가?
아무튼 한국이 경제 부국 선진 대열에 올라 부와 씀씀이도 좋아져 국민들의 세계 여행 흐름은 대다수의 국민 모두가 이웃 정도의 나들이 관념은 틀리지 않았다.
그 카톡 문자 이후 주석이도 긍정적인 뉴질랜드 방문 기회를 열어 놓고 나하고 카톡 통화로 의사타진을 주고 받았다.
이윽고 주석이 부부는 3월 31일 인천-시드니 비행이 올라 도착 다음 날 4월 2일 시드니-오클랜드 일정 비행 예약으로 4월 12일 월요일 Asia D7288 항공편으로 16:15 오클랜드 도착
4월 16일(일요일) 17:45 Air Asia D7288 편 시드니로 출발 내용을 알려 왔다.
이제부터 나에게 그들의 도착 이후의 일정과 세부 사항 등 Tour Itinerary 를 만들어 검토하고 그 일정을 주석이에 보내 주었다. 내가 수십 년 전 자주 접했던 여행 일정 들이라 어렵지 않았고 이 정도의 계획 수립은 나의 체력 한계와 비용 관계를 고려한 것이라 내가 만들어 함께 진행하게 될 최선의 일정이 되겠다.
그리고 나의 고민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많은 생각을 하였다.
즉 그들이 머물 숙소인데 처음 주석이와 카톡 대화 나눌 때는 깊은 속내를 피력하기 어려워 나의 집에 머물 것이 최선이라 답해 주었지만 주석이도 최종 어릴 때의 불알 친구집 방문 정도가 될 것의 부담 없는 6박 7일 일정에서 머물음은 나의 현 거주 주택이 100여년 전 건축한 옛 주택이 되어 현대인으로 거주의 불편함 등을 이해하여 달라 여러 차례 양해를 구하여 그도 나와 같은 마음에 동의하고 이곳에 오는 일정이 되었으니. 정작 나의 맘 속은 여러 불안 요소가 많았다.
마침 처와 원희가 한국 방문으로 이곳에는 종효와 나 둘이 그들을 맞는 것에 비하면 부담을 줄여 줄터라 생각했어도 정작 처 혹은 원희가 사용한 침대와 남겨진 그들의 흔적을 보일 때 상호 느낄 감정에는 여러 복합적 감정이 들어 나의 머릿속은 다른 차선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텔이나 모텔 시설 이용으로 이 근처에는 그런 시설이 없는기라. 어디서 아이디어가 나왔는지 갑자기 Air bnb 확인이 떠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 보았다.
Air bnb 절차에 따라
원하는 위치 – Waterveiw, Auckland 하였더니
몇 명 머물으냐 – 2 명을 올렸다.
기간은 – 6박 7일의 4월 10일 (월요일) 도착 그리고 4월 16일(일요일) Check out
곧 이어 여러 위치를 올려 줘 나의 선택을 기다린다.
지역의 지도 위치를 보니 어림잡아 나의 집 근처가 보였고 조금 떨어진 곳 몇 곳이 나왔다.
여기까지 핸드폰의 기능에서 위 내역을 받았으니 아마도 컴퓨터로 찾아 그 내용의 절차를 밟는 것이 더 확실하겠다는 뜻에 컴으로 위 물음을 답하고 보니 정말로 내 거주 집 가까이가 마음에 확 땡긴다. 조금 떨어진 곳은 내가 차로 이동하여 시간과 거리를 띄어 넘는 것과 비교하여 이곳은 주석이가 걸어서 나의 집에 5-6분이면 닿는 쉬운 길목이다.
내가 주석이 부부를 Care하기에는 이 위치가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이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이렇게 가깝고 편한 위치가 보일 줄이야 전혀 상상도 못하던바 최종 확인 버튼을 클릭하니 $446.00 결재가 떠 심사숙고 잠시 생각하고 내 카드 결재가 이뤄졌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 그 집 호스트가 내 친구의 인적 사항을 문의한다.
이 중에 한국인 70이 넘은 부부를 알려 주니 그들이 보기에 나이와 한국인이 이 집에 오는 손님들과의 차이에 생활을 감당할 수 있을까에 1차 거절을 하였다. 하여 나는 내 집에 가까워 내가 그들을 쉽게 케어 하기 편하고 또 그 집에 머무르는 시간은 잠 시간과 약간의 아침 일정 뿐이라 부딪치는 어려움은 피할 수 있겠다고 답을 해 주고나서야 결국 그들도 동의하고 나의 신청과 결재를 받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그곳의 위치가 정확이 주소까지 답변이 왔다.
하여 염치 불문하고 그곳을 찾았다. 마침 여 주인 Host – Vladislava(1551 Great North Rd.)가 위 현관 의자에 앉아 나의 설명을 듣고 내부를 보고 싶은 나에게 내부 복도를 보고 나왔다.
그녀가 내려와 안내하지도 않은 모습에 약간 불괘하였지만 나는 이 정도의 내역을 알고 집에 돌아 오며 주석이 부부에 어떻게 이 일을 알려 줘야 할지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며칠이 지났다. 이제 전인갑에 연락하고 함께하는 일정을 조율 의견 나눠야 한다.
거의 4-5년 만에 통화 연락을 받는 그의 목소리가 죽어가는 힘 없는 말이 나온다. 서로 안부 나누고 주석이 부부의 일정에 들어가자 어디서 힘이 솟는지 내가 여행 일정 설명하는 것에는 정면 거부하는기라.
요 며칠 전 내가 그들의 여행 일정을 보냈더니 주석이는 그것을 카톡방에 올려 남창균이가 만든 꼼꼼한 계획에 감사한다고 표 했을 때 인갑이도 그것을 열어 보았으리라.
인갑이의 의견은 골프는 무슨 골프냐, 그의 부인이 사진 동우회에 있는만큼 6박 7일 사진 찍기 좋은 곳이 많아 그런 곳이 적합하다는 의견에 또 멀리 떨어진 Mt. Ruapehu 등 1박 2일 일정도 최선이라고 말하네.
그곳에 닿는 여러 코스에서 4hr 55 min (379 km) 혹은 5hr 18 min (390 km) 정도의 시간과 거리면 나의 체력 등에 사진 찍기 좋은 명소라 찾자는 그의 의견은 나에게 큰 제약이 되어 이 이야기 주제에 한참 전화로 다투게 되었다. 나도 오래 전에 그곳에 가 본 적이 있었지만 꼭 가야 할 만큼의 메리트는 없는 곳에 그가 좋다는 의견에 다투는 시간은 허접하다 생각하고 주석이의 뜻에 따르겠으니 인갑이와 더 설전을 피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서 나는 교회의 이창윤 장로에 주석이 부부 골프라운딩 계획과 예약 등에 매달려 예약금도 지불하였고 또 전동차 예약을 해 놓았다. 골프 채 Sets은 그가 가지고 있던 것과 또 이충실 권사가 가진 여유의 여성 골프 채가 있어 이 문제는 그가 다 해결 해 놓은 상태였다.
4월 9일 일요일 교회의 부활절 행사에 성찬 위원으로 정장을 하여 참석하였다가 갑자기 배 복통과 토함으로 내일의 일정 6박 7일이 걱정되었었다. 그날의 일기를 참고로 올렸다. 그리고 친구의 6박 7일 체류 함께한 줄거리를 다 적어 “친구 주석이 부부와 함께하는 여행기”라고 제목까지 붙여 총 14페이지의 글을 4월 20일에 완성해 놓았었다. 그리고 이 글을 어찌할까 여러 궁리 중에 나흘이 지났지만 좀 더 적어야 할 글이 있어 이 부분을 넣느라 이 글의 제목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로 변경하고 첨가할 내용을 적는 과정을 밟았다. 나중에 올린 제목이지만 사실은 처음에 이 제목이 떠 올라 마음속에는 그렇게 제목이 잡힌 상태에서 글을 짓다가 결국 1차 글이 마칠 때 “친구 주석이 부부와 함께하는 여행기”로 놓았다. 이제 첫 생각의 제목이 더 적합한 것을 다음에 넣는 글로인하여 참고하면 이해하리라 믿는다.
주석이의 6박 7일 함께 다니는 동안 차 운전으로 어느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주석이와 내가 떨어진 세월 이후 지금까지의 궁금했던 이야기들이 주로 질문에서 답변으로 오고 갔으니 즉 내가 대전에서 살던 1967년 11월 경까지는 피차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것이고 그 이후와 지금의 2023년 4월까지의 너무나 긴 세월이 궁금했었으니 주거니 받거니 관심사의 대화는 끝 없도록 주고 받았었다. 그런 이야가 중에서 주석이는 나의 형제 누님들이 나에게 해 준 혜택에 커다한 부러움을 가지고 그 자신의 형제누님간의 고닮펐던 과거사를 들쳐져야 했거늘 그 대비가 되는 이야기를 미안하게 되었지만 궁금하여 질문해야 했었으며 또 그 답변을 듣게 되었던거라. 그가 떠난지 며칠이 지난 오늘에 그때의 이야기를 되새겨보면서 나는 형님과 누님의 계산 할 수 없는 크나큰 사랑을 누리며 살아 왔었음을 인정한다. 이런 형제우애는 우리 가족을 잘 아는 몇 분으로부터도 종종들어 왔었다. 이것은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친구 주석이는 이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에 비교하자니 그는 자신의 처지를 감당하기 위해서도 더 당차고 도약해야 하는 디딥돌로 그의 삶 단계를 더 이겨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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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러 고민 중에 나날이 그들의 방문 날짜는 다가올 4월 10일 일찌기 주석이에게 다음의 문자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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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그의 카톡 전화가 곧장 연결되어 내가 처음 보냈던 여행 계획에 따라 움직이기가 가장 최선으로 본다고 알려와 내가 그들을 직접 차에 태워 운전하는 나의 체력 한계에따라 다른 일정은 불가피 피하겠단다.
한 가지 덧붙이는 것으로 인갑이와 처음 말 다툴 때 그는 멀리 루아페후 산을 제안하면서 그 먼 곳의 운전 등에 그 본인은 멀리 운전할 때 잠이 오는 현상이 많아 결국은 내가 운전하여 그곳에 가라는 것인데 어느 누가 그런 제안을 하고 그 본인은 그 주체에서 쏙 빠지겠다는 말인가? 만약 주석이 부부가 그 의견에 동의할 때 인갑이가 그 일정을 혼자 책임져 주관할 때 나는 조용히 쉬는 휴식으로 집에 머룰 수도 있으니 어느 편이든 그 선택의 길은 열어 놓았다.
주석이의 도착 당일 오후 2시에 머물 숙소의 체크 인 시간대에 호스트를 만나 머물 방의 열쇠를 찾았다.
내부를 열어 보니 방이 좁아 약간 꺼림직한 느낌이 든다. 또 화장실 옆에 붙어 거동의 불편이 보였으니. 이제 어찌 돌이킬 방법은 없어 6박 7일 그들이 머물기에 필요한 모든 물건 등을 차에 실어 놓고 여유 시간 충분하게 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약 5년 만의 공항 방문이라 공사중으로 주차 등의 모든게 많이 변해 있었다.
두 바퀴 돌아서고 겨우 차를 주차하였다.
공항 내부로 들었다. 도착 비행 일정을 보니 약 30분 가량 지체 되는 것을 보았다.
2시간 이상 기다리느라 2층의 출국대합실 의자에서 느긋히 기다리니 인갑이의 전화가 나를 찾는다.
그도 이미 여유 시간으로 도착하였단다.
모처럼 어색한 첫 만남으로 내가 오늘 받았던 주석이의 의견을 참고로 알려 주었다.
큰 무리 없이 내가 보낸 여행 일정에 따라 보잔다는 의견이었다. 묵묵히 듣고 이에 동의 할 듯이 아무 말 없었다. 아울러 처음으로 나의 집에 머물 계획에 집 내용이 적합치 않아 근처에 6박 7일 숙소를 예약하여 모두 결정되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공항에서 기다린 긴 시간이 지나 그들은 오후 6시 경에 나왔다. 도착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호주의 딸에게 잘 도착한 모습의 사진과 함께 보내 주었다. 우리들은 핸더슨의 The Hangar 식당에 찾았다. 예전의 스테익을 먹은 기억에 찾았는데 정작 스테이크 메뉴는 음식 준비가 안되어 결국은 햄버거로 먹었는데 생각 만큼 맛은 없었다.
주석이 부부는 호주에서 출발한 후 배 고픈 상태에서 적당히 잘 먹어준다.
이제 집으로 돌아 와 우리 집 구조의 불편함을 보였고 종효에 인사도 나눈 후 인갑이는 내일의 일정에 따라 내일 아침 이곳에서 만나기로하고 결국은 근처의 숙소로 안내하였다. 숙소의 규칙 등 해야 할 일 등을 설명하고 내일을 위하여 나도 일찍 돌아 왔다.
4월 11일 (화요일)
새벽에 카톡 문자를 주석이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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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카톡 답글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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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문자를 카톡으로 나눴다.
나의 집이 아닌 외부의 숙소에 머문 것에 주석이가 부담을 느꼈던것 같다. 어제 이런 일에 가장 최선으로 보아 마련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오해 없고 편한 마음으로 즐겨라 말 했지만서도 주석이는 그런 느낌에 쌓였던 것이다.
둘째 날 4월 11일 화요일의 나의 일기를 참고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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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골프 치는 날 이창윤 장로와 주석이 서로 인사 나눠 이충실 권사도 참석하여 김영이 님과도 인사를 나눴다. 1호코스에서 2호, 3호, 4호 5호 쯤에 갈 즈음 주석이는 전동차에 올려 놓은 골프셋트에서 골프채 몇 개를 손에 집어 움직이던 중 골프채 갯수를 세어 보더니 한 개 없는 것을 이야기 하여 나는 몇 코스 지난 다음에 이창윤 장로에 알렸다. 그러자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생각 중에 나 보고 첫 1코스부터 돌아 보라했지만 나로서 골프장의 각 코스 기억은 어림 없어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 주석이 처가 찾기로 전동차에 올랐으니 이창윤 장로도 동승하여 역코스로 얼마동안 다녀 본 후 후발 골프 객 들이 각 코스를 돌던 중 그린 근처에 놓인 골프 채 한 개를 집고 와 이창윤 일행의 찾는 연고를 설명하여 잘 찾아 돌아 왔던것이다.
이렇게 해결되어 다행이다 싶어 이제부터 전동차에 운전하던 나는 옆에서 이런 것에 지켜 줄 생각의 기억을 해야 하는데 얼마 지나는 동안 도무지 검토 검사 기억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주석이가 골프 갯수를 확인하는 중 한 개가 부족한 셈에 또다시 찾아야 하는 순간 김영이는 크게 언성을 높이는 일이 생겼다.
이제 내가 역순으로 이전의 코스를 밟아 보기로 전동차 출발하였지만 도무지 어디가 이전 코스인지 구별이 어려웠다. 이곳저곳 전동차가 움직였지만 몇 군데 돌아도 흔적은 보이지 않아 결국은 해결 못한 것으로 돌아 왔을 때 주석이 골프채를 다시 세워 보더만 이상 없다는 확인이 되어 그나마 안심이 되었었다.
9호코스를 치기 직전 갑짜기 소나기 내려붓는다. 마침 이창윤 장로가 우비 3개 준비하여 각각 입고 보니 비 맞지 않은 상태에서 보온까지로 감사했었다. 9호 근처의 원두막에 비를 피하고 남은 점심 김밥으로 배를 채웠다. 이창윤 장로는 따뜻한 커피까지 마련하여 한 잔씩에 몸도 개운하더라. 전인갑 친구는 먼저 걸어서 사무실에서 기다리기로 떠났다.
이윽고 비도 그쳐 계속 골프를 치며 마지막 18홀에 닿으니 시간도 많이 지체되었고 이미 사무실 직원은 퇴근 후라 전동차도 그 사무실 앞에 세워 두고 오늘의 일과를 마쳤다.
돌아 오는 저녁 식사를 핸더슨의 한식당에서 해결하였다.
그리고 내일의 일정으로 인갑이의 사진 동우회원 2명 약속을 하여 내일 만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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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4월 12일 수요일의 일기와 같이
나와 주석이 부부는 차를 몰고 인갑이 사는 집을 찾았다.
13 Talga Court Conifer Grove, Papakura 주소를 미리 받았으니 구글 지도로 검색하여 머리에 입력시켰다. 5년 전에 몇 번 찾아 본 기억이 흐려 단단히 검토하였지.
사진동우회원 여성 2명이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인갑이가 모은 Antique의 여러 물품을 구경하였다. 예전에 보던 갯수를 훨씬 넘겨 선반에 가득했다. 망치, 대패, 등 이름 모를 각종 장비에 놀랐고, 또 집안에는 오랜 전의 시계와 종 등 값비싼 기기로 볼거리가 넘쳤다. 이제 슬슬 출발 시간으로 근처의 Stampede Restaurant & Bar에서 Steak을 예전의 스테이크 맛 보다 좋게 고기의 질도 좋았다.
또 근처의 커피숍에서 각각 커피 맛도 보았고 이제 목적지 미란다 근처의 철새도래지역으로 차를 출발하였다.
집에서 인갑이 동네까지 32,5km 44min
식사한 곳에서 Pukorokoro Miranda Shorebird Centre까지 59.5km 49min 의 거리였다.
인갑이 집에서부터 인갑이 차로 그가 운전하여 나는 옆자리에 앉았다.
철새도래지역에 철새들은 이미 모두 떠나 거의 빈 갯벌과 그들의 서식처였지만 사진동우회원과 김영이씨는 열심히 고가의 사진 장비로 원하는 각 모습을 담느라 바빴다. 주석, 인갑, 나는 근처의 모습 구경하면서 우리들의 핸드폰에 여러 모습을 담기도 하였으니 때로는 위치도 멀리 차를 타 이동도 하였다.
Waharau Regional Park 끼지 이동하였다. 15.1km 13 min
이곳은 20여 년 전 넘어 처제내 가족 함께 찾았던 곳으로 근처의 바닷가에서 주먹만한 둥근 자갈 돌을 차에 가득 실어 왔던 기억이 있었다. 지금도 집 뒷뜰에 남겨진 흔적으로 그 옛날을 회상하며 이 날에 이쁜 모양의 둥근 돌 4개도 주었다.
이제 귀가해야 할 시간에 어둠이 깔렸다.
인갑이 집에 도착하여 내 차를 따로 모두 이동하여 Otahuhe의 월남식당을 찾아 각각의 월남국수를 먹었다.
이제 또 내일의 약속으로 무사히 집에 돌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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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목요일의 일기에 적힌 글 참고하여 두번 째 골프라운딩이다.
예보와 다르게 날씨도 화장하게 좋아 멀리 보이는 각 코스의 모습도 선명히 보였다. 전동차의 운전도 숙달되어 움직임도 사쁜하다. 열심히 각 골프채도 옆에서 지켜주는 여유도 있었으니 모두가 좋은 성적만 되면 좋았으리라. 그러나 주석이의 골프 치는 실력으로는 목표의 지점에서 많이 벗어나 여러 차례 공을 잃고 버리는 경우가 많아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보아도 딱해 보였다. 그동안 카톡으로 그의 골프 여행기가 틈틈히 올라 온 것으로 봐 내 짐작으로는 꽤 실력이 있겠다고 보았는데 이틀 전이나 오늘이나 전반적 골프 실력으로는 부족함이 많았다. 하물며 이렇게 함께 동행하는 이유에 그의 처 김영이씨와 같이 라운딩해 주는 것이 더 기특하게 보이는 것이라 이해하였고 그의 처 김영이씨의 솜씨는 모습도 좋았고 또 실력도 좋다는 평이 들었다.
마지막 18홀을 마쳤을 때 이미 사무실에 직원은 퇴근 직전에 있었다. 급히 서둘렀고 이창윤 장로에 오늘까지 진행하여 준 덕분의 감사 인사를 하였고 아울러 함께 식사 시간을 조율 못함의 설명을 해 주며 아침에 준비한 난 화분 한 개를 드렸다. 차후의 일정에서도 함께 식사 못함이 정말 미안하였다.
우리는 서둘러 인갑이 집으로 차를 몰았다.
골프장에 끝난 시간이 오후 4시 15분 경인데 저녁 6시에 약속이 쉽겠다 생각한 것은 퇴근길의 차량에 묻혀약간 늦은 6시 10분 경에 그의 집에 도착하였다. 집쪽에서 불고기 구워 나는 냄새가 코를 푸집하게 한다.
인갑이 처 모처럼의 인사 나눴다. 식탁위에 정갈한 여러 음식이 보인다.
아침에 준비한 난 화분을 주었다.
인갑이는 밖에서 양고기 갈비를 양념하여 굽는 중이라 주석이 부부, 인갑이 부부, 그리고 나 5명의 식탁에 앉아 붉은 포도주 Sauvignon을 모두 각 잔에 담아 함께 건배도 하였다. 음식의 정성으로 맛도 좋았으며 연어 회에 나는 입맛을 사로 잡았다. 구운 양갈비 도 좋았고, 또 우거지 된장국에도 두 차례 먹었다.
모처럼 나도 빈손이 아니기로 예전의 흑진주 4알을 준비하여 그의 처에 주었다. 물론 아침에 주석이 처 김영이씨에도 흑진주 여러 알을 주었으니 내가 면세점 사업 때 남겼던 보석이 적절한 선물이 되겠을까마는 기념으로 받아도 되지 않을까?
이 날의 저녁 식사 초대에 감사하게 잘 보내고 또 다음 날의 일정에 따라 우리는 돌아 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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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금요일의 일정은 자유롭게 선택한 시내 구경과 또 도심지 근처에서 떠나는 이웃 섬 Waiheke 유람선 관광이었다. 우선 인갑이가 집에 도착한 9시 30분 쯤 출발하여 주석이 부부 태워 미션베이를 달렸다.
근처의 뉴질랜드 최고가의 주택들을 지나며 시내를 관망하는 사진 몇 장 찍고, 앞 길의 해안선 마지막을 돌아 이제는 하버브리지 건넜다. Devonport에 닿기 전 11시가 조금 지나 McHugh's of Cheltenham식당에 닿았다. 앞의 해안가 모습을 조망하여 보기 좋은 곳에 위치한 식당에 부페 음식으로 점심을 하는데 요즘의 찾는 손님이 적은 관계로 음식의 종류 다향하지는 못하더구나.
가격 대비 $40.00 에 비하면 약간 부족함이되었다. 그래도 모두 배에 가득 채워 든든한 점심이기를 바란다. Devonport의 정상 Mt.Victoria은 중간 지점에 차를 주차하여 올랐다.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멀리 오클랜드의 중심 시가지 모습이 코 앞에 보이듯 조망이 좋아 여러 사진을 찍었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코스로 시내 중심가에 차를 주차하였다.
오클랜드 시내와 와이헤케 섬을 다녀 오는 유람선을 찾았다. 평상 시간에는 매 1시간별로 배가 오고가며 출퇴근 시에는 30분 간격으로 배 운항이 됨으로 적극 권하고 싶었다. 나는 은퇴자로 Free Ticket 승차권에 도움이 되지만 주석이 부부는 경비를 $48.50씩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인갑이도 이 승차권을 준비 못해 3명의 비용 $148.50을 지불하였다.
배는 곧장 출발하여 바닷물을 양옆으로 갈린다. 시내 중심에서 동남방으로 45분의 시간에 닿은 Waiheke섬에는 많은 인파에 줄을 서 출발하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일행은 잠시의 분위기를 보는 것으로 우리가 타고 온 배에 다시 올랐다.
부응! 뱃 고동 한 차례 울리고 출발한 유람선은 멀리 오클랜드 중심 선창가를 향하여 달린다.
이렇게 저물어 간 저녁을 핸더슨의 월남 식당에서 Steam Pot로 4명이 먹었다.
점심 식사의 포만이 아직 남은지 모두 내일을 위한 에너지로 챙겨야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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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토요일의 일기장에는 몇 글만 남은 것으로 너무 짧았네.
아무튼 인갑이가 내 집에 일찍 찾아 와 함께 내 차로 이동하기는 유익하였다.
인갑이 동네 가까운 곳의 Auckland Botanic Gardens에 도착하여 가든내의 걷도록 길을 낸 곳만으로 걸었다. 걸었던 걸음 5000보가 기록에 나왔다. 운동으로 이 정도면 괜찮을터 커피 한 잔씩 마시며 다음의 행선지는 삼 일 전 찾았던 스테이크 하우스 Stampede restaurant에서
주석이와 나는300g 스테이크를 먹었고 그의 처는 200g으로 인갑이는 새우와 조갯살로 각각 먹는다.
지난 수요일에도 이 메뉴를 각각 택했으니 배도 불렀다. 다시 주문한 스테이크에 배를 채우고 잘 못 주문한 맥주 4잔에 각각 입맛을 돋구며 다음의 행선지 Cornwall Park 찾아 오클랜드 시내로 차를 몰았다.
며칠 전 잠깐 이곳을 지날 때 김영이씨는 공원의 나무가 높이 자라는 속에 걷는 기분이 좋아 다시 찾은 것이다.
인갑이도 무거운 카메라 등에 짊어지고 따르니라 늦은 걸음이 움직인다.
이곳의 나무 가로수 길이 인상적에 걷자고 움직이니 4600보의 발걸음이 기록에 남는다.
이제 각자 모두의 체력을 소모하여 일찍 각자 쉬기로 헤어졌다.
나도 돌아 온 집에서 컴퓨터를 열어 밀렸던 기록 일기를 채운다.
이제 마지막의 오늘도 이렇게 기록하였다.
기억된 모두가 적혔으니 차후 또 검토하여 첨가삭제 등을 거치겠다.
그간의 주석이 부부 체류의 6박 7일 일정이 끝나가고 있다
그간의 일정이 강행군인지 나도 침대에 들어 곧장 잠속에 빠졌고 잠시 눈 뜬 시각도 한 밤중이었다. 모두가 아무 탈 없었음에 주님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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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마지막 날의 아침을 맞았다.
나는 교회 예배를 위한 정장을 입었다. 마침 주석이 모든 Check out를 준비하였다고 연락 왔다.
그들의 짐을 완전히 차에 싣고 썬데이 벼룩 시장을 잠시 들러 보기로 찾았다.
혹시 인갑이를 볼 수 있을지 통화를 하니 그는 이미 이곳을 떠나 타카푸나 지역을 다니고 있단다.
하여 교회 예배와 애찬이 끝나는 1시 30분에 교회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우리는 이른 시간 교회당에 닿았고 예배위원들에 ‘남창균 장로의 친구 부부 양주석, 김영이’ 인사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메모지에 써 주었다. 또한 준비하여 준 헌금도 주석이는 $40.00을 넣었단다.
예배와 마지막 애찬도 함께 즐겼다. 교회의 모습을 보았으니 이민 교회의 실상을 보고 가는 갑다.
대전 고향에서 자란 후 각자의 긴 삶 흐름에서 이렇게 이국 뉴질랜드 내 삶의 터 오클랜드를 찾아 또한 내가 즐겨 찾는 교회당에 함께 예배를 볼 줄이야 모두가 다 인연으로 감사를 드리기로 하였다.
이제 인갑이도 교회에서 다시 만나 각자의 차량으로 오클랜드 공항 쪽을 달렸다.
이렇게 주석이 부부가 도착한 6 일 전에서 오늘의 일정에 마침표가 되는 출국은 시간의 여유로 비행 Ticketing도 수월히 끝났다.
윗층의 출국장에 자리하여 켄터키 버거 등의 각자 입맛에 주문을 하여 든든한 뱃속으로 채웠으니 이제는 정말로 이별의 시간을 앞에 둬야 했거늘 마음들이 착잡하구나.
그들의 출국 마지막 모습 몇 장의 사진으로 시야에서 사라질 때 남은 우리도 각자의 집으로 헤어져야 하는데 그간 언성 높여 다퉜던 순간들이 부끄러워 건강하게 잘 지내라는 인사말에 나의 돌아 오는 운전 길은 그간의 6박 7일 모든 과정이 순서를 무시하고 갖가지의 즐거움이 영화의 필름같이 흘러가더라.
집에 돌아 온 저녁 무렵 그간 종효는 Takeaway 음식으로 지냈으니 조금 미안크나.
주석이 시드니에 도착하면 받아 보게 다음의 문자를 써 카톡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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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의 짐 정리 끝에 침대에 들은 나에게 깊은 잠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신나게 잤는지 모르겠다. 간밤 몇 번 눈이 뜨이다 다시 잠에 빠진 것이 몇 번 지나고 새 아침을 맞으니 홀가분한 새로울 하루였여야 했다.
어제 보낸 카톡은 아직 열린 흔적이 없었다. 아침 10시 경이 되자 아래의 답글이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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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카톡 통화도 하여 그들 부부 모두의 인사를 나눔으로 그간의 긴 여정이 매듭되던가.
나는 또 다시 침대에 누워 잠에 들었으니 이제는 그간의 긴장이 풀린 피곤의 휴식이 될 것인가? 아무쪼록 잠도 많게 몇 시간 잘 잤다.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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