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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후안무치, 구단선의 비밀을 밝힌다

淸山에 2016. 7. 14. 15:00




중국의 후안무치, 구단선의 비밀을 밝힌다

by 이정훈 on 7월 13, 2016 in 反동북공정, 국방, 정치


남사군도 대략적인 위치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중국이 암초를 매립해서 만든 인공섬을 기점으로 선포한 EEZ(배타적 경제수역) 경계선도 인정하지 않았다.


중국은 불난 집처럼 시끄러워졌고 소송을 제기했던 필리핀은 희색이 만연해졌다. 미국과 일본도 화색이 만연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먼저 중국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구단선(九段線)부터 설명해보자. 구단선이 있으면 1단선, 2단선, 8단선도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태권도나 바둑에서 1단, 2단 …9단이 있듯이 중국은 구단선 외에 8단선 7단선도 그어 놓은 것은 아닌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결로부터 밝히면 1~8단선은 없다. 10단선 이상도 없다. 오직 구단선만 있다. 중국과 우리 일본은 모두 한자를 쓰지만 각각의 경우에 다른 한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구단선의 정체를 알려면 ‘단(段)’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이 단(段)자를 태권도나 바둑의 단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태권도나 바둑의 1단, 2단 ~ ·9단 식으로.
중국은 단(段)자를 조각이나 단편의 의미로 사용한다. 옥편은 단(段)자가 조각 단편이란 뜻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니 중국은 단자를 그 뜻대로 사용한다. 따라서 중국이 말하는 구단선은 ‘아홉 개 단편으로 된 선’이 된다. 우리는 이러한 선을 ‘점선(點線)’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실선과 점선 개념만 주로 사용한다. 따라서 실선의 중간중간을 끊어주면 그 선을 점선으로 부르는 것이다.


중국이 말하는 구단선은 우리 표현으로 옮기면 아홉 개가 점으로 구성된 점선인 것이다. 이런 이해를 하고 나면 8단선이나 10단선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11단선이 있었다. 본래 중국이 설정한 것은 11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11단선이었다. 그런데 옛날에는 공산중국과 공산 베트남(월맹)의 사이가 좋았기에 공산 베트남 쪽에 있는 두 개의 단편을 중국은 슬그머니 지웠다. 그때부터 이 선은 11단선이 아닌 9단선이 되었다.
9단선은 영어로 nine dash line이라고 한다. 아홉 개의 대시로 만든 선이라는 뜻이다.





구단선이 아니라 구점선으로 불러야 한다

  

9단선의 유래를 살펴보면 더 한심한 생각이 든다. 1945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은 일본 독일 이탈리아를 주축으로 한 주축국을 항복시켰다. 이러한 연합국의 일원이 자유중국(지금의 대만)이었다. 자유중국은 일본의 침략을 받아 힘든 전쟁을 하다가 1941년 일본이 미국의 하와이를 공격해주는 바람에, 미국의 지원을 받아 5대 연합국에 갑자기 편입되었다.


자유중국은 5대 연합국 모임의 시작이 되는 카이로회담부터 참석해 얄타회담 등 제2 세계대전을 정리하는 중요한 회의에 참석했다. 그리고 일본의 항복으로 2차 대전이 끝난 후 결성되는 유엔에 안보리 이사국(P-5) 지위를 차지했다. 중일전쟁에서 크게 밀렸던 자유중국은 순식간에 승자의 지위를 차지한 것이다.


그때 중국 공산당은 일본과의 싸움을 피하고 구석진 연안(延安)으로 도망가 숨어 있었다. 그런데 이 도주를 중국 공산당은 지금 장거리 원정이라며 장정(長征)으로 윤색해놓고 있다. 자유중국을 이끄는 국민당군은 일본군과 싸우고 있는데 그들은 장거리 도주인 장도(長逃)를 해놓고 지금은 장정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때문에 2차 대전이 일본의 항복을 끝났을 때 공산군은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한공산군이 자유중국의 중추인 국민당군을 공격해 1947년쯤 이들을 대만으로 밀어내고 중국을 석권했다. 국민당군이 일본군과 싸우느라 지친 틈을 이용해 어부지리를 한 것인데, 그 이익이 너무 커서 전 중국을 차지했다.

  



구단선은 대만이 선포한 것이다


대만으로 쫓겨날 무렵만 해도 자유중국은 승전국이기에 기고만장했다. 자유중국은 과거 일본이 차지한 땅은 전부 다 가지려고 했다. 이는 그때의 자유중국 식자층의 생각이기도 했다. 제2차 대전 때 일본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필리핀을 차지하고 베트남을 협조국으로 만들었다. 때문에 이러하나 나라로 둘러싸인 지금의 남중국해를 내해(內海)로 삼았다.


당시 일본은 중국을 우습게 봤기에 ‘지나(支那)‘로 불렀다. 남중국해는 남지나해, 동중국해는 동지나해로 불렀다. 일본은 중국도 거의 석권하고 있었으니 중국 대륙과 오키나와가 있는 유구열도로 둘러싸인 동지나해도 내해로 삼았다. 당시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였으니 일본은 동해를 그들의 완벽한 내해로 보고 일본해로 불렀다.


자유중국은 그러한 상황의 종료를 맞았으니 남중국해를 자유중국의 내해로 보고자 했다. 그런데 필리핀은 미국, 말레이시아는 영국,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베트남은 프랑스식으로 원 식민국이 지배해 독립시켜주려고 했기에 그대로 밀어붙이지 못했다. 이들 나라가 갖게 되는 영해는 인정해줘야 하니 그 바깥으로 11개의 점선을 그은 지도를 발표하며 그 안쪽은 자유중국의 내해라고 주장했다.


청나라는 여진족과 몽골족이 연합한 왕조였다. 왕은 여진족이 하고 왕비는 몽골족이 했다. 때문에 청나라는 몽골도 영토로 보았다. 그런데 청나라가 무너지고 중국이 혼란에 빠져 있던 1922년 몽골이 공산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독립을 선언했다. 2차 대전을 끝낸 자유중국은 그러한 몽골도 자유중국에 들어와야 한다며 몽골도 중국에 포함시킨 지도를 만들었다.


지금도 대만이 제작하는 중국 지도에는 11단선 내부와 몽골도 중국으로 포함돼 있다. 중국은 조금 다르다. 공산중국은 자유중국을 대만으로 밀어낸 뒤 몽골의 독립을 인정했다. 때문에 공산중국(지금의 중국)이 만드는 지도에는 몽골이 중국 영토로 그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9단선 안쪽의 중국 내해로 그려놓는다.


이쯤 읽고 나면 자유중국이 그린 9단선의 실체가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9단선은 실체가 없다. 자유중국은 9단선이 정확히 무엇인지 좌표를 발표한 적도 없다. 그저 자유중국이 밠행한 지도에 그때는 11개의 점선을 그려놓았을 뿐이다. 욕심쟁이가 팔을 휘젖어 커다란 원을 그리고 이 안의 전부 내 땅이다라고 한 것과 비슷한 것이다. 좌표점도 없이 자유중국이 그들 지도에만 점선으로 그려놓았던 것이 11단선과 9단선의 시작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자유중국보다 센 승전국이고 유엔 안보리 이사국이니 이 주장은 먹히지 않았다. 힘이 없는 자유중국은 그들이 동사군도 불러온 11단선 한 쪽에 있는 섬에 사람을 보내 오리와 닭을 방목했다. 동사군도는 물이 없어 사람이 살 수 없다. 그러한 곳은 영해의 기선(基線)이 되지 못한다.


영해 기선이 되는 섬은 사람이 살며 경제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유중국은 오리와 닭을 방목해 동사군도가 경제활동이 가능한 섬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자 갖 독립한 남중국해 연안 국가들이 유사한 섬을 차지해 자기의 섬이라고 주장했다. 남사군도 서사군도 등에 있는 모래섬의 주인들이 정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섬에 경제활동을 불가능했다.



11단선에서 9단선이 된 이유


그때 공산중국은 바다로 나올 능력이 없어 가만히 있었다. 그러는 사이 중국이 커져 유명무실한 11단선을 손댔다. 공산 베트남과의 사이가 좋았기에 공산 베트남에 불리하게 그어져 있는 2개의 점선을 제거한 것이다. 그때부터 이 선은 9단선으로 불리게 되었다.


자유중국이 설정한 9단선을 2009년 중국이 낚아채 들고나왔다. 9단선 안쪽은 중국의 내해라며 관할권을 주장하고, 그 안에 있는 섬 영유권을 주장한 것이다. 때문에 그 선 안에 있는 섬을 영유하고 있던 동남아국가들과 분쟁이 일었아. 그중 한 나라가 이번 소송을 제기했던 필리핀이다. 필리핀과 중국은 스카보러섬(중국은 黃巖초로 부른다) 영유권을 놓고 다투다 상설중재재판소 판결로 필리핀이 웃게 되었다.


지금 바다의 질서를 규율하는 것은 1982년 제정해 1994년 발효된 유엔 해양법협약이다. 우리는 1996년 국회 비준을 했기에 이 협약을 지켜야 한다. 중국과 일본 필리핀도 이 협약을 비준했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국회 비준을 하지 않고 있다.


한중일 필리핀 등이 비준한 이 협약에 따르면 물이 없거나 기타 등의 이유로 사람이 경제행위를 할 수 없는 섬은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기선이 되지 못한다. 때문에 우리는 독도를 EEZ 기선으로 선정하지 않았다. 일본과 EEZ를 동해에서 EEZ 경계를 그을 때 울릉도를 기선으로 삼고 일본은 오키 섬을 기선으로 삼아 EEZ 경계선을 그었다. 그러나 명확히 확정하지는 않고 중간에 중간수역이라고 하는 빈 공간을 두었다.
 




유엔해양법협약을 비준한 중국


이렇게 해도 독도는 우리 EEZ로 들어온다. 우리는 독도가 12해리 영해는 가질 수 있다고 보기에 독호 12해리 주변에 5000t급 해경함과 1800t급 해군 함정을 파견해 지키고 있다.


중국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다.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섬에 군대를 배치하고 활주로를 닦아 비행가 내리게 했다(물이 안 나오는 모래섬에 활주로 건설), 레이더도 설치했다. 그리고 그 섬들이 경제활동을 한다면 그 섬들을 기선으로 삼아 200해리 EEZ를 그었다. 그리고 몇몇 섬은 스카보러섬처럼 중국 것이라며 그 섬을 먼저 영유한 나라와 다툼을 했다. 중국은 과거 공산 베트남이 영유한 섬을 군대를 보내 차지한 후 지금까지 영유하고 있어 베트남과 사이가 나빠져 있다.


중국의 이러한 행태는 그들이 국회 비준을 한 유엔해양법협약 위반이 분명하다. 그런데 베트남 등은 남사군도 서사군도의 섬을 영유하고 있으니 이들이 중국과 똑 같이 EEZ를 선포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과 이 나라들은 중간선을 그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구단선은 의미가 없어진다.


때문에 중국은 EEZ 중간선 획정 회담은 하지 않고 구단선만 외치지 시작했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는 논리로 달려간 것이다. 1996년에는 200해리 EEZ를 선포할 수 있는 것이 좋아 유엔 해양법협약을 비준했는데, 2009년에는 대만이 62년 전에 발표한 9단선을 따라가면 더 넓은 바다를 가질 수 있다고 보고 그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내놓은 것이 사할린 섬에서-일본 열도-유구열도(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열도를 잇는 섬을 연결한 서쪽의 모든 바다는 중국이 관할한다는 도련(島鍊)정책이다. 도련은 영어로 island chain이다. 앞에서 열거한 섬들을 체인인처럼 연결한 것이 도련의 뜻이다.


도련이 현실화되면 대한민국은 중국 관할 바다 안에 있는 나라가 된다. 동해와 서해 남해는 중국의 내해처럼 돼 버린다. 중국은 미국 함정이 들어올 수 있는 한계선 개념으로 도련을 설정했다. 도련 설정 후 바로 문제가 된 것이 한반도처럼 도련 안쪽에 있는 센카쿠 열도였다.


잘 알다시피 이 섬은 일본이 영유하고 있고 중국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일본을 밀어내려고 기싸움을 해봤는데, 일본은 미국을 끌어들여 막아냈다. 그런데도 시진핑 정권은 멈추지 않았다.

 




도련을 설정해 한반도를 중국 내해 속의 섬으로 만들다


지금 중국 경제는 어렵다. 중국 경제는 세계와 연결돼 있는데, 세계 경제가 가라앉으니 중국 경제도 과거처럼 고속 성장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리커창을 중심으로 한 경제위주 세력은 시진핑을 위협한다.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시진핑은 반부패 사건을 수사하게 했다.


그리고 중국 국민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 센카구 사건을 일으켰다. 센카쿠는 중국 영토인 다오위다오라면서. 이어 필리핀이 영유한 스카보로 섬도 중국의 황암초라고 주장했다. 중국 국민들은 이에 협조했다. 그러나 일본과 필리핀은 미국을 더 많이 불러들여 대항했으니 외부 적은 커져만 갔다.


그런 가운데 힘이 된 것이 박근혜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의 친중화였다. 박근혜 정부는 과거사 문제, 위안부 문제 등을 이유로 반일을 내세웠다. 시진핑 정권은 반일(反日)을 내세우면 한국을 묶어낼 수 있다고 보고 대련에 있는 안중근 의사 옥사 시설을 고치고 하얼빈 역에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현장을 재현했다. 상해 임정 시설도 고쳐 한국 관광객이 불편 없이 돌아보게 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적극 호응해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행사에 서방국가 원수로 유일하게 참석했다. 전승절은 자유중국 정부의 기념일이다. 공산 중국은 연안으로 도망가 있다가 일본의 항복을 접했기에 전승절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5년에는 공산군이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양 전승절을 열었는데 박대통령이 참석했다.


이러한 한중 관계가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깨져 나갔다. 북한 핵실험에 당황한 박대통령이 수차례 핫라인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은 것이다. 핫라인인 상대가 걸어오면 무조건 받아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핫라인인데 시진핑은 피해버렸다.


그리고 박근혜-시진핑 관계가 멀어졌다. 북한이 광명성 로켓을 쏘고 무수단과 북극성 미사일을 발사하고 마침내 무수단 탄두의 대기권 재돌입 실험까지 마치자 놀란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 한국 배치를 지지했다. 그러자 중국이 비명을 질렀다. 옛 친구가 그럴 수 있느냐고.


지금 중국은 한국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바다를 통해 접하고 있는 모든 나라와 적이 되었다. 이들의 뒤에는 미국이 있다. 나라를 경영할 때는 두 개 이상의 전쟁을 하지 말라는 양면전쟁 회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좋다. 그런데 중국은 10면 전쟁 상태로 치닫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친중노선을 유지했을 때 시진핑은 일본 공격과 아세안 국가 공격에 총력을 기울였다. 중국 해군은 동남아국가를 상대하는 남해함대, 일본을 겨냥하는 동해함대, 한반도를 겨누는 북해함대를 갖고 있는데 4.5 대 3.3 대 2.2 비율로 전력을 배치했다. 남해함대에 fi오닝 항모를 비롯해 가장 많은 함정을 동해함대에 공산국가의 이지스함인 소브레멘니급 구축함 등 중간 규모의 함대를 배치하고 북해함대 세력은 가장 약하게 한 것이다.


그만큼 구단선을 핑계로 남중국해 이익을 지키는데 전력한 것인데, 필리핀을 필두로 동남아국가들이 미국을 불러들이고 필리핀이 상설재판소에 소송을 내, 판결이 나옴으로써 파탄이 나버렸다. 
 



미국은 유엔해양법협약 비준 안해

 
미국도 생각이 있어 남중국해 문제에 개입했다. 미국은 유엔해양법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미국은 해군력이 막강하기에 공해를 자기 바다처럼 쓸수가 있다. 그런데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영해가 12해리, EEZ가 200해리로 늘어나면 불편해진다. 그래서 유엔해양법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따라서 다른 나라의 EEZ 주장도 가끔은 무시한다.


이러한 태도를 미국은 남중국해에 적용했다. 중국이 영유를 주장한 섬 주변을 무해통항을 외치면 함정을 투입해 통과하게 했는데, 이는 유엔해양법협약 상으로도 적법한 행동이다. 그러자 중국도 함대를 동원해 대응했으나 해군력에서는 미국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야말로 족탈불급(足脫不及)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 미국 태평양해군이 하와이에서 열고 있는 림팩 훈련에 중국 해군도 참여한 사실로 확인된다. 이 훈련에 참가한 중국 함대는 일본이나 한국 함대의 중간 정도에 해당한다. 중국 해군은 미국 해군에 한참 밀리는 것이다.


상설중재재판소 판결로 구단선은 물론이고 도련 정책은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강제로 점유한 남중국해의 섬을 근거로 EEZ를 선포하는 것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힘들어졌다. 과욕이 모두 망신으로 귀결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주변국가를 모두 적으로 돌려놓았다. 한국마저도.


지금 한국은 북핵에 대응하기 위해 사드를 배치하려 하는데 중국은 심각하게 반대하고 있다. 내정간섭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에는 수수방관해놓고 우리의 사드 배치에만 반대하는 중국의 행동은 한중 관계를 이격시킬 가능성이 높다.


구단선을 구점선이기에 곳곳에 구멍이 있다. 줄줄 새는 선이란 것이 이번에 확인된 것이다. 이제 중국은 경제위기와 시진핑 정권의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공산당은 1921년 창당되었으니 올해는 95주년이다. 가장 힘든 시기 중국 공산당은 연안으로 도주해 생존함으로써 국민당을 재치고 중국 대륙을 석권하는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지금 100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시진핑은 2021년의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행사를 근사하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 일본 아세안 국가를 굴복시키고. 구단선을 굳혀 남중국해를 내해로 만들고, 도련을 공고화해 한국을 중국 내해 안에 있는 섬으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미국을 아시아에서 밀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한 목표를 이루려면 내공을 키웠어야 한다. 내공이 달리면 무너진다. 놀랍게도 중국은 미국과의 다툼을 ‘투이불파(鬪而不破)’하려고 했다. 투이불파는 싸우기는 하는데 깨질 정도로 싸우지 않는다는 중국식 사자성어다. 우리말로 옮기면 말싸움만 하는 것이다. 중국은 주변국들이 중국의 성장에 눌려 쉽게 굴복할 것으로 본 듯하다. 그리고 미국도 말로만 협박할 것으로 보고 말싸움에 최선을 다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필리핀이 소송을 걸며 눈을 찔렀다. 2012년 스카보러 섬 사건 때 중국의 푸잉(傅瑩) 외교부 부부장은 “소국이 대국을 멋대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떠들었다. 필리핀에 ‘너희는 우리에게 조공을 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이다. 중국의 오만은 도를 넘었다.


큰 도약을 하려고 욕심내 덤비다 실패하면 큰 내상을 입는다. 큰 도약을 하려면 내공부터 키워야 한다. 욕심부터 부리지 말고. 그리고 큰 도약이 세계의 리더가 되는 것이라면 굴복이 아닌 협조를 받으려고 해야 한다. 동맹국을 늘여야 한다. 자국의 이익부터 챙기지 말고..


위기에 처한 중국은 전투태세를 명령했다고 하는데 누구와 싸울 것인가. 사드 문제를 놓고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는 인사가 많다. 지금 중국은 사드의 한국 배치에 신경 쓸 틈이 별로 없다. 잘못했다간 돌아가면서 망신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드가 배치되면 중국의 힘 없음만 만천하에 노출되는 셈이 된다.
 



큰 도약을 하려다 실패하면 큰 내상을 입는다


우리 땅에 너무 많은 숭중(崇中)주의자들이 있다. 중국을 우습게 봐서도 안되겠지만 너무 두려워해도 안된다. 중국에 대해서는 그들이 우리에 대해서는 항상 두려움을 갖도로 하는 것이 좋다. 우리 축구가 중국에 공한증(恐韓症)을 심어준 것처럼, 우리를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전투태세 명령까지 내린 중국이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하는지 지펴보자. 과연 20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행사를 거창하게 열 수 있을지. 그때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에 함께 서줄지. 그때도 중국은 북한을 끼고 돌 수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기로 하자. 어쪄면 그 전에 대한민국이 통일될 지도 모른다.


이정훈 에 대해

hoon@donga.com 주간동아 편집장과 논설위원 등을 거친 동아일보 기자. 묵직하고 심도 있는 기사를 많이 써 한국기자상과 연세언론상, 삼성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국방과 정보 원자력 우주 해양 산악 역사에 관심이 많고 통일을 지론으로 갖고 있다. 천안함 정치학, 연평도 통일론, 한국의 핵 주권, 공작, 발로 쓴 반동북공정 등을 저술했다. 기자 인터뷰 보기 - "국정원 신화 벗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