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敵將 포섭에 사활을 걸자

淸山에 2016. 6. 16. 08:09







敵將 포섭에 사활을 걸자

DMZ 북쪽에 전개된 北의 4군단 2군단 5군단 1군단의 군단장들을 상대로

귀순작업이 한 건이라도 성공하면 그 의의는 사뭇 중대할 것이다.

마중가(중국문제전문가)     

 


1946년~1949년 중국대륙에서는 國共內戰이 있었다. 전쟁 결과 장개석의 800만 國府軍은 모택동의 100만 중공군에게 추풍낙엽처럼 소탕되어 백기투항하고 대만으로 탈출하였고 中原大陸을 손에 넣은 모택동은 1949년 10월 1일 지금의 中華人民共和國을 세웠다. 대만으로 탈출한 장개석은 분을 못 이겨 10월 1일 오후 중공의 건국 퍼레이드 장소인 천안문을 폭격하려 했으나 마지막 순간 이 계획을 접었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즉 <우리는 공산당에게 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졌다. 그들을 폭격할 명분이 없잖은가? >(폭격기 출격 전 아들 장경국에게 한 말) 놀랄 만한 숫자가 있다. 즉 800만 국부군중에 177만은 공산군에 귀순한 것이다. 국부군들이 자기편을 배신(背信)하고 반란(反亂)을 일으킨 것이다(중국어로는 倒戈<도과>라고 한다).




 구성은 이렇다: 육군 153개 사단, 해군함정 74척, 항공기 26대, 그중에는 1400여 명의 영급 장교와 將軍이 있었다. 중공은 敵將포섭을 사활을 건 심리전으로 여기고 총력을 기울여 진행하였다. 사실 현직에 있는 敵將 한 사람을 아군이 포섭한다는 것은 한 戰役의 승패를 결정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모택동은 이러한 적장 포섭 작전을 一本萬利의 장사라고 말했다. 즉 하나를 투자하고 萬을 얻는 장사라는 뜻이다. 적장 포섭을 위해 포섭 상대 선택은 절대적으로 愼重하여야 하고 포섭 策略은 다양하고 靈活해야 한다.
 
 무수한 실례중에 국부군의 저명 장군 傅作儀(부작의) 將軍에 대한 이야기만 하자. 그는 장개석의 오랜 친구이고 전우이며 최측근 謀士였다. 1948년 11월 그는 베이징 천진 지구의 방어를 책임지고 공산군과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4개 軍團 12개 軍의 55만 대군을 관할하고 있었다. 만약 이 지역에서 국공 전투부대가 혈전을 펼치게 되면 적어도 베이징과 천진은 廢墟가 된다. 모택동은 그를 포섭하기 위하여 당시 홍콩에 거주하고 있던 傅作儀 將軍의 오랜 친구이고 大富豪인 팽택상(彭澤湘)을 불러 모택동이 쓴 친필편지를 들고 북경에 가 傅作儀를 찾아 북경의 평화적인 해방을 간곡히 설득하였다. 그리고 부작의 딸인 傅冬菊(오래전부터 중공을 동정한 여대생)을 시켜 아버지를 설득하게 하였다.



 수삼차 복잡한 설득작업을 거쳐 傅作儀는 드디어 부대를 이끌고 중공군에 투항하였고 1949년 1월12일 북경시내에 전개되었던 20만 국부군은 저항없이 성밖으로 나아가 중공군의 개편을 받았다. 중국 사람들은 千軍易得, 一將難求라고 한다. 사병 천 명은 얻기 쉬워도 장군 한 명은 찾기 힘들다란 말이다. 그렇게 적장포섭은 중요하며 전쟁승리의 결정적인 인소로 작용할 수 있다. 아래 글은 중국국내전쟁에 관한 종합논술논문임. 우리나라의 中共戰史 연구학자 들에게 추천함.(http://d.wanfangdata.com.cn/Periodical/dswy-xsb201210006)
 
 우리나라 DMZ 북쪽에 전개되어 있는 북한군의 4군단 2군단 5군단 1군단의 군단장들은 남한과 지근 거리에 있으므로 남한의 대북방송도 자주 듣고 전단도 자주 보며 방송이나 TV도 쉽게 접촉하고 있다. 그들을 상대로 귀순작업이 한 건이라도 성공하면 그 의의는 사못 중대할 것이다. 남한에 정착한 고위 탈북자들 중에 그들과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는지? 귀순을 권하는 편지를 들고 찾아갈 수 있는 친척은 찾을 수 없는지?



 率部歸順(휘하부대를 데리고 귀순)하면 100억 원의 상금과 거주국 선택 자유와 자녀의 취학 일체를 지원한다는 특혜조건을 알려 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여 차분히 추진하여야 하지는 않을까? 이 글을 보는 국정원 책임자는 이런 전담 기구를 만들 용의는 없는지 여쭙고 싶다. 글을 여기까지 쓰고 나니 별 이유 없이 宋나라 시인 陸游의 시 '유사서촌' 중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적어 본다. 山重水復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 (산넘고 물건너도 길이 없더니 드디어 나타났네 꽃피고 지고 사람들 사는 인간세상) (宋) 陸游: <遊山西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