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서 끝없는 소음(騷音)이 들리고 있는 가운데 말고삐를 단단히 틀어 쥔 그의 장갑 낀 손바닥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입에는 시가가 단단하게 물려 있었다. “존스턴은 신사적인 인물일까? 도대체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있었던가? 아니야, 만난 적이 없지. 분명한 것은 그가 멕시코에 오래 있었던 사람이고 아마도 그랜트는 아는 사람일 거야. 그를 만나면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하여야 할 것인가? ‘안녕하십니까, 존스턴 장군, 이제 당신의 빌어먹을 군대는 나에게 항복할 수 있습니다’라고 해야겠지.” 그는 한 손을 그의 윗옷 호주머니에 넣어서 문제의 전보를 만져 보았다. “아니야, 이제 우리가 만나자마자 다른 모든 문제를 제켜놓고 우선적으로 논의할 문제는 이 전보의 내용이지. 제길 할, 어쩌면 그도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거야. 아무튼 오늘은 보통 날이 아니로군.” 앞이 시끄러워지더니 킬패트릭의 부하 한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 와서 그에게 경례를 했고 그도 마주 경례를 했다. 옆에서 킬패트릭이 셔만을 질색하게 만드는 고함으로 그의 부하를 다그쳤다. “중위, 무엇이야?” “사령관님, 지금 막 백기를 든 한 반란군 기마병이 다가왔습니다. ‘존스턴 장군이 뒤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킬패트릭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렇다면 우리는 그가 우리 부대 대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셔만은 그의 군모를 만지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행렬 앞으로 나아가서 그를 맞이해야 하겠군. 나머지 절차적인 문제는 그 뒤에 따지기로 하세.”
셔만이 중위를 따라서 행렬 앞으로 나아가자 그의 일행들도 뒤 따랐다. 경호 문제가 있을 것이었지만 셔만은 이를 무시한 채 앞 쪽에서 그의 시야(視野) 속으로 들어오는 소규모의 남부군 복장을 한 기마병들과 그들이 들고 있는 백기에 눈길을 주었다. 그는,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그들의 얼굴을 돌아보다가 키가 큰 기병장교의 호위를 받고 있는 작은 키의 한 사람에게 눈길을 멈추었다. 그가 그들로부터 몇 미터 앞에서 그의 말을 정지시키자 찌푸린 얼굴로 백기를 손에 들고 있는 그 기병장교가 소리를 질렀다. “인사드립니다. 이분은 조셉 존스턴 대장이고 저분은 웨이드 햄프턴 중장입니다.”
셔만이 존스턴을 주시하는 가운데 킬패트릭이 대꾸했다. “이분은 미합중국군의 윌리엄 T. 셔만 소장이고 나는 져드선 킬패트릭 소장이오.” 셔만은 그의 말을 존스턴 앞으로 전진시키면서 존스턴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존스턴도 셔만의 얼굴을 응시(凝視)하고 있었다. 왜소(矮小)한 체구로 턱에는 은색(銀色)의 구레나룻이, 군모 아래로는 회색의 머리카락이 눈에 뜨이는 존스턴의 안색(顔色)은 피로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셔만은 존스턴의 군복이 틀림없이 새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와는 다르군, 빌어먹을, 그러나 오늘은 정장이 필요한 날이 아니지 않는가.”
말들이 가까이 다가서자 존스턴이 손을 내밀었고 셔만이 이를 마주 잡았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서로 인사교환이 진행되었다. 두 사람은 각기 자기측의 참모들을 소개했다. 셔만은 상대방이 소개하는 상대측 참모장교들 대부분의 이름을 듣는 순간 잊어버리면서 존스턴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수인사가 끝나자 셔만이 말했다. “장군, 어디 우리가 조용하게 마주 앉을 장소가 없을까요. 말 위에서 대화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군요.” 존스턴이 “저 뒤로 잠시만 가면 농가(農家)가 하나 있지요. 괜찮다면 그리로 가실까요”라고 대꾸하자 셔만이 “좋지요. 안내를 부탁합니다”라고 화답했고 그들은 즉시 그 농가 쪽으로 향했다. 이제 얼굴에 미소를 떠 올린 존스턴이 셔만 쪽으로 머리를 기울이면서 부드러운 버지니아 사투리로 셔만에게 말을 건넸다. “장군, 우리 둘이 나란히 앞장을 섭시다. 다른 참모들은 뒤 따라 오라고 하지요.” 셔만은 이 같은 형식성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그럽시다”라고 화답했다.
농가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 존스턴은 주로 전쟁 발발 이전에 알고 지냈던 장교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화두(話頭)를 이어 갔지만 셔만은 주로 침묵을 유지했다. 셔만이 보기에 존스턴은 자신보다 나이가 약간 많아서 아마도 60세 전후일 것 같았다. 그의 모습은 나이와 경험으로 퍽 탄탄해 보였다. 도로가 약간 휘면서 농가가 시야에 들어오자 존스턴은 “이 농가의 주인은 베네트(Daniel Bennet)란 사람”이라면서 “아마도 이 분은 우리가 자기 농가를 잠시 사용하는 데 기꺼이 동의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셔만은 머리를 끄덕임으로써 공감을 표시했지만 마음속에서는 “그들이 동의하건 말건 무슨 상관인가”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은 말에서 내리면서 각기 수행하는 참모들에게 농가 밖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존스턴이 농가의 문을 여는 순간 셔만은 옆의 유리창 너머에서 한 어린아이의 얼굴을 발견했다. 문이 열리면서 한 여인이 불안한 표정으로 나와서 서로 다른 군복의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자기를 소개했다. “저는 다니엘 베네트의 아내입니다.” 셔만이 “부인, 우리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부인의 집을 사용해도 되겠느냐”고 묻자 여인은 존스턴 쪽을 쳐다보았다. “맞다. 허락한다면 잠깐이면 되겠다. 부인 댁에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존스턴의 말에 대해 여인이 “좋다. 그러면 우선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도록 허락해 달라. 잠시 저 밖에 있는 창고 건물로 가 있겠다”라고 하자 존스턴은 “그렇게 하라”고 동의했다.
여인은 곧 다른 방으로 가더니 잠시 뒤에 4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집 밖의 창고 건물로 이동했다. 아이들의 눈에 어린 공포감을 보는 순간 셔만은 문득 자신의 어린 딸이 생각났다. “이처럼 많은 수의 군인들이 집안으로 전쟁판을 끌고 들어오는 일이 생긴다면 나의 딸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잠시 시간이 흐르고 여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집밖으로 나가자 셔만의 상념(想念)은 이번에는 여인의 남편, 그러니까 아이들의 아버지에게로 옮겨졌다. “어쩌면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존스턴은 알고 있지 않을까? 아마도 어디에선가 남군(南軍)의 한 사람으로 전쟁에 참가하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저 밖에 있는 남군 중의 한 사람은 아닐까?”
존스턴은 셔만을 사각형의 큰 방으로 안내했다. 이 방의 한 쪽에는 대형 벽난로가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마도 2층의 침실들로 연결되는 층계가 있었다. 바닥에 널빤지가 깔린 방의 옆에는 한 쪽으로 침실과 함께 음식 냄새가 주방(廚房)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었다. 방에 있는 식탁의 의자에 앉자마자 모자를 벗은 존스턴의 머리는 은발(銀髮)로 덮여 있었다. 셔만은 양측 참모들이 문 안으로 그들 두 사람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 가운데 자신의 부관 데이튼에게 지시했다. “소령, 이 만남은 비공개니까 문을 닫아 주게.” 데이튼이 이 지시에 따라 문을 닫자 방안은 한결 더 어두워졌다. 존스턴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식탁 위에 놓인 존스턴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반란군도 긴장하는군!” 셔만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한 동안 방안을 돌아보던 셔만이 드디어 말을 꺼내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잠시 호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서 그가 워싱턴으로부터 받은 ‘전문(電文)’을 만지작거렸다. 셔만은 존스턴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장군, 나는 장군에게 공개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나를 제외하고는 나의 사령부에서도 아직 이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나는 나에게 전달되는 동안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내용을 보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존스턴은 호기심을 가지고 셔만으로부터 건네지는 문건을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읽기를 마치자마자 존스턴은 손을 식탁 위에 올려놓은 채로 머리를 가로 흔들고 어깨를 움츠리면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것은 감당할 수 없는 치욕(恥辱)이군요. 남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재난(災難)을 강요하는군요!” 셔만은 존스턴의 얼굴을 스치는 엄청난 동요를 관찰할 수 있었다. 존스턴은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면서 소리쳤다. “나는 이 내용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셔만은 “혹시, 장군은 이 문건이 우리(북부) 정부가 조작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냐”면서 “나는 장군이나 로버트 리 장군이 혹시라도 문제의 암살(暗殺) 행위에 연루되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솔직히 말하여, 제퍼슨 데이비스(남부 연합의 대통령)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존스턴은 머리를 격렬하게 가로 흔드는 것으로 그 가능성을 부정(否定)했다. “나는 바로 며칠 전에 데이비스 대통령을 만났지만 그에게서 이 같은 야만적(野蠻的)인 행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전혀 없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문명인(文明人)들에 대한 모욕(侮辱)입니다.” 이에 대해 셔만은 다음과 같이 대꾸했다. “그렇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아직도 이 전문 내용을 나 자신의 참모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에는 공개해야 하겠지요. 나는 이 사실이 공개될 경우 랄리에서 무슨 일이 발생할지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특히 북부군의 장병들로부터 엄청난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분입니다. 그래서 만약 어느 바보 같은 사람이, 남자건 여자건, 이들 장병을 자극하는 행위나 말을 한다면 어쩌면 콜럼비아에서 일어났던 일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엄청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이를 받아서 존스턴이 “그 점에 관해서는 본관이 장군을 도와드릴 방법이 없겠다”면서 “본관은 오직 이성이 지배하기를 기원할 수밖에 없겠다”고 말하자 셔만은 “본관도 항상 이성의 지배에 기대를 걸어 왔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이성의 지배가 항상 가능했던 것은 아니지요. 장군, 귀하는 귀하의 부대가 본관의 부대와 힘을 겨루어서 승산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요. 리 장군이 항복했으니까 귀관도 명예와 예의를 갖추어 같은 방식으로 본관에게 항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본관의 생각으로는 이것 외의 다른 대안은 없을 것 같습니다.” 존스턴은 책상 위에 그와 셔만 사이에 놓여있는 전보문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본관도 그 점에 관해서는 시비할 수 없겠습니다. 장군, 우리들 사이에 더 이상 전투가 전개된다면 그것은 살인행위 외의 다른 아무 것도 아니겠지요. 차라리 남부연합 군 전체가 북부 군 전체에게 항복하는 방식을 협의하면 어떨까요. 리 장군은 그의 예하 부대에 대해서만 지휘권이 있고 본관 예하의 부대는 본관의 지휘를 받습니다. 만약, 장군이 동의한다면, 본관은 그렇게 하기 위한 권한을 데이비스 대통령으로부터 수령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셔만은 존스턴의 방식에 따를 경우 일이 불필요하게 복잡해 질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존스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최근 링컨 대통령과 그랜트 장군을 함께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지금의 시점에서도 그 두 분의 생각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의 생각에는 일관성과 일치성이 있습니다. 즉, 그 분들은 북부 사람들이 남부연합의 군대에 대해서는 전혀 원한이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 같은 정서는 남부의 군대에 대한 것이지 데이비스 씨와 남부의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그랜트 장군이 리 장군과 합의한 남부군의 항복 조건은 매우 관대하고 편견이 배제된 것이었습니다. 귀관도 이 같은 견해에 동감하여 남부의 다른 군부대들이 같은 조건으로 북부에 항복하도록 할 수는 없겠습니까?”
이에 대해 존스턴이 다음과 같이 대응했다. “어쩌면 그렇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본관이 데이비스 대통령으로부터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을 수령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까지 북부의 미합중국은 남부연합 ‘정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기술적으로 남부에 존재하는 ‘민간정부’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습니까?” 이 말을 듣는 셔만은 마음속으로 “문제가 점점 더 복잡해지는구나”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존스턴에게 “귀관도 이 전쟁은 이제 종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되물었고 이에 대해 존스턴은 공감(共感)의 표시로 두 손바닥을 뒤집어 보이면서 “당연하지요”라고 일단 대답했다. 그러자, 셔만은 “본관은 바로 이 자리에서 그랜트 장군이 리 장군에게 제시했던 항복 조건을 똑 같이 귀관에게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존스턴의 표정은 어두워져 있었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입장은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할 때의 리 장군의 입장과 크게 차이가 있습니다. 리 장군은 ‘부분’을 다루었지만 지금 본관의 입장은 ‘전체’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혹시 귀관은 귀관이 제시하는 조건을 조금 수정하여 본관과 합의할 수는 없겠습니까? 우선, 그랜트 장군이 리 장군과 합의한 것은 ‘부분적 전쟁행위 종결’이었지요. 우리는 그보다는 ‘항구적 평화’에 관하여 합의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존스턴의 이야기를 듣던 셔만은 그의 머릿속에서 소위 ‘민간정부’의 ‘권능’ 문제로 골치가 아프던 것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면서 존스턴에게 말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더 이상의 인명(人命)의 출혈(出血)과 재산상의 파괴를 방지하고 통일국가를 성취하기 위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두 사람이 남부의 ‘주’들이 미합중국에 복귀하는 데 필요한 합의를 이룩합시다. 본관은 이 같은 합의야 말로 생전에 링컨 대통령이 추구했던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날 오후 내내 둘만의 대화를 계속했다. 대화 내용은, 가끔 전쟁 문제가 화두에 오르기도 했지만, 대부분 사교적인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셔만은 존스턴과의 사이에 전쟁을 종결시켜야 한다는 데 인식이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셔만의 마음에 걸리는 문제는 앞으로 남부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대사면(大赦免)이 고려될 때 제퍼슨 데이비스만큼은 그 대상에 포함될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미합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반란의 책임과 관련하여 데이비스에 대한 처우가 남부군의 어느 장군이나 어느 세력과 같을 수킄 없다는 것이 워싱턴 정가(政街)의 지배적인 분위기라는 사실을 숙지(熟知)하고 있었다. 셔만 자신은 동의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이 문제는 골치 아픈 문제였다. 물론 남부연합의 반란의 주모자로서 북부 사람들에게 보다 크게 각인(刻印)되어 있는 사람은 로버트 E. 리 장군이었지만 그는 이미 북부군에의 항복을 선택함으로써 그가 책임 져야 할 부분을 어느 정도 희석(稀釋)시켜 놓은 셈이 되어 있었다. 남부연합 반란의 책임 문제는 이제 그 상징적 존재였던 인물로부터 남부연합이라는 ‘반란국가’를 아직도 대표하는 인물 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해 질 무렵에 존스턴은 다음 날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 쌍방 정부에 제출된 합의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조율할 것을 제안했다. 내일 있을 속개 회담에 앞서서 존스턴은 남부연합 ‘정부’로부터 남아 있는 골치 아픈 문제들에 대한 협상 전권을 위임 받을 생각이었다. 셔만은 존스턴과의 협상이 그로서는 참기 어려운 사소한 문제로 교착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희망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면서 베네트의 농가를 떠났다. 그는 킬패트릭과 참모들을 거느리고 더함 스테이션의 부대 막사로 귀환하면서 그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여는 순간에 서 있다는 느낌을 느꼈다. 이제는 그의 부대 장병들과, 휘하 장군들 및 자신의 참모들에게 링컨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사실을 알릴 때가 되었다.
그는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모든 막사의 경비병을 배가하고 헌병들로 하여금 특히 민간인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게 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랄리 안팎에서 민간인들에 대한 보복 행위나 잔학 행위가 일체 발생하지 않았다는 보고가 셔만에게 안도감(安堵感)을 안겨주었다. 그 대신, 셔만은 링컨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전해들은 대부분의 장병들이 그들의 천막 안에서 총을 쏘거나 횃불을 밝힘이 없이 그들끼리 모여서 눈물로 그들의 대통령이 서거한 데 대한 슬픔을 자제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셔만과 존스턴은 이튿날 베네트의 농가에서 둘 만의 회담을 이어 갔다. 존스턴은 전쟁 종결에 수반되는 비군사적 문제들에 관하여 셔만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날 존스턴은 셔만도 잘 알고 있는 존 브라켄리지(John Brackenridge)를 대동하고 왔다. 브라켄리지는 제임스 부캐난(James Buchanan) 대통령 아래서 부통령을 지낸 사람이었다. 남부연방에 충성하는 그는 남부연방군의 소장(少將)으로 전쟁에 참전했으나 브락스톤 백(Braxton Bogg) 장군과의 불화(不和) 때문에 현역(現役)에서 물러나 있었다. 그를 ‘전쟁장관’으로 남부연합 ‘정부’에 참여시키고 있는 데이비스 ‘대통령’이 그가 참여할 경우 거기서 만들어지는 남북간의 합의는 남부연합 ‘민간정부’가 승인하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라면서 그를 이 자리로 파견한 것이었다.
그러나, 셔만의 입장에서는 남부연합 ‘정부’의 고위 직책에 있는 그가 협상에 참가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그에게는 남부연합 ‘정부’ 인사와 협상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에 관하여 두 사람 사이에는 브라켄리지가 참여하는 자격은 ‘육군 소장’의 자격으로 하는 것으로 하자는 존스턴의 절충안을 셔만이 수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장시간의 토의 끝에 두 사람은 모든 현안 문제에 관하여 합의에 도달했고 셔만이 이 내용을 문서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