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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못지않게 ‘사장님’도 대접받는 시대가 되어야

淸山에 2015. 7. 9. 14:14







선생님’ 못지않게 ‘사장님’도 대접받는 시대가 되어야

英國에 다녀와 한국을 생각한다/세계무대에서는 3류에도 들지 못할 것 같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또다시 나라를 좌지우지하기 시작하였다.

朴承用  

 
     
 <商人의 나라 영국>

나폴레온은 영국을 상인의 나라라고 하였다. 그는 영국의 힘은 국토나 인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상업에서 나온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은 국토의 넓이가 아니고 통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해군력에 바탕을 둔 강국이었다는 점에서 나폴레온의 말은 정확하다고 하겠다.


영국은 당시 인구가 프랑스의 절반에 불과하였지만 국민총생산은 프랑스보다 월등히 높았다. 나폴레온보다 앞서 아담 스미스도 《國富論》에서 정부가 상인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영국을 '상인의 나라'(a nation of shopkeepers)로 지칭하는 것은 지극히 합당하다고 말하고 있다. 스미스는 또한 영국은 '상인이 통치하는 나라'(a nation that is governed by shopkeepers)라고도 하였다.


영국은 일찍부터 상공인들이 대우를 받고 득세한 나라이다. 영국은 이미 15세기부터 정치에 대한 상공인들의 영향력이 증대하기 시작하여 16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이들이 정부를 대신하여 해외식민지를 경영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1600년에 상공인들이 창설한 동인도회사는 인도 전국을 잠식하면서 1857년까지 260여 년 동안 인도를 통치하기도 하였다. 이 회사는 자체 군대와 행정기구까지 가지고 있었으며 프랑스나 무갈제국 등과 전쟁까지 하며 인도를 정복하고 지배하였던 것이다. 장사꾼이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를 점령하고 통치하였던 것이다. 영국은 상인의 힘이 이렇게 막강하였던 것이다. 


1215년에 제정 공포된 大憲章(대헌장, Magna Carta)은 국민의 재산과 인권을 보호하는 법치의 시발점이 되었다.


마그나 카르타는 국법에 의하지 않고는 국가(국왕)는 자유민(국민)의 권리를 박탈하거나 재산을 몰수할 수 없으며, 국법에 의하지 않고는 자유민을 체포하거나 투옥할 수도 없으며, 국왕도 법을 위반하면 처벌을 받게 하였다. 마그나 카르타는 영국이 상공인의 나라로 가는 추진동력이 되었다.


자유민이라면 누구라도 재산을 축적할 수 있고 그 재산을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게 되니 그리고 爵位(작위)까지 받는 등 신분 상승이 가능하게 되니,


상공인들은 재산축적에 전심전력을 바치게 되었다. 인류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영국으로 하여금 全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만든 산업혁명도 영국의 상공인들이 주도한 것이었다. 영국에서 국민의 재산권을 확고하게 보장해 주는 법치의 전통이 없었더라면, 영국이 상공인의 나라가 되지 못했더라면, 산업혁명도, 대영제국도 없었을 것이다. 


 



全국토가 숲


지난 6월 영국을 20년 만에 네 번째 다녀왔다. 셰익스피어, 토마스 하디, 서머셋 모옴,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코난 도일, 월터 스코트, 루이스 스티븐슨, 초서, 워즈워스 등 영문학사상 유명한 작가들의 기념관이나 고향을 중심으로 남서쪽의 콘월과 웨일즈를 제외한 영국 전역을 일주하였다. 영국은 전국이 20년 前이나 지금이나 영국인들의 말대로 '푸른 공원'이었다.


잉글랜드는 지방의 마을이나 소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대도시도 City라고 부르는 중심지를 제외하고는 숲이었다. 시골의 지방도로는 숲의 터널인 경우가 많았다. 스코틀랜드의 고원지대는 ‘荒凉(황량)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히스(heath) 황무지와 호수들이 어울려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풍경을 보여 준다. 잉글랜드이든 스코틀랜드이든 어디를 가도 영국은 모두 귀티가 날 만큼 깔끔하였다. 


일행 중의 한 사람은 영국이 동화 속의 나라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였다. 전국 어디를 가도 쓰레기 조각 하나 보기 힘들만큼 깨끗한 나라, 인공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도시이든 시골이든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나라, 경찰이 지키고 있지 않아도 교통규칙을 신비할 만큼 너무나 잘 지키는 사람들의 나라, 인구 6000만에 공무원 수는 40만 명에 불과하며 그것도 많다고 줄이고 있는 나라(인구 1000만의 그리스는 공무원이 85만 명, 북한은 전 국민이 공무원), 공무원이나 공직자의 부정부패는 상상도 못할 만큼 지극히 드물다(extremely rare)는 나라, 愛國(애국)이나 愛族(애족)이라는 말을 평생에 한 번도 들을 필요가 없는 나라, 프랑스나 러시아 독일 중국처럼 유혈혁명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아니 필요 없었던 역사의 나라, 맨체스터 대학에서만 노벨상 수상자가 20명이 넘는 나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治國(치국)의 모델로 삼고 있는 나라, 인도하고도 바꿀 수 없다는 셰익스피어의(칼라일) 나라, 300년 동안이나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인도에서도 Anglophile(영국숭배자)을 종종 볼 수 있는 나라…영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의 목록은 끝이 없을 것 같다.  
 




영국인이 만든 나라가 富國이 된 이유


영국인들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하여 가장 오랫동안 통치하였고 지금도 영국을 모태로 하는 앵글로 색슨족의 나라들―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이 정치, 경제, 군사, 학문,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영국인도 우리와 다 같은 인간인데 이들이 가서 세우는 나라는 국토의 넓이나 자원의 多少나 有無에 관계없이 세계만방의 부러움을 받는 선진 부국이 될 수 있는 것은 실용주의와 법치(rule of law)의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실용주의는 상공인의 생활철학에서 나왔고 법치는 실용주의를 생산적으로 떠받치는 힘이었다. 그리고 실용주의와 법치는 상호보완적이다. 실용성이 없는 법은 得보다는 失이 많고 법이 없이 실용주의만 있으면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홉스)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그나 카르타 以後 영국에서는 실용주의와 법치라는 두 개의 요소가 장구한 세월 동안 상호작용하면서 '창조적 전통'을 熟成(숙성)해 내었다. 영국의 전통이 창조적인 것은 영국의 전통은 보수가 개혁을 질식시키지도 않고 개혁이 보수를 말살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창조적 파괴가 가능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창조적 전통의 나라에서는 보수의 거대한 둥치에서 진보의 새가지가 나고 자라면서 뿌리는 더욱더 깊어지고 둥치는 더욱 더 커지게 된다. 그래서 '창조적 전통'의 나라에서는 뿌리를 뒤집고 나무를 잘라내는 것 같은 체제전복의 유혈혁명이 불가능하다. 이런 나라에서는 관습(전통)이 삶의 위대한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흄). 이런 나라에서는 전통(체제)의 나무가 성장할 뿐이지 잘리는 일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그나 카르타와 함께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영국의 '창조적 전통'의 나무는 800년의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꺾이지 않고 거목으로 자라나면서 시대마다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왔다.





<한국을 생각하다>


상공인들이 아니고 지식인들(과학기술자를 제외한)이 국가와 사회를 左之右之(좌지우지)하는 그런 나라는 종국적으로는 국제경쟁에서 탈락하거나 빈곤과 정체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불행히도 한국이 그런 나라의 전형이었다.


高麗와 朝鮮 1000년에 걸쳐 한국은 소위 士農工商(사농공상)의 계급사회로서 지식인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농상공인들을 천시하며 다스렸다. 상공인들을 특히 천대하였다. 군인들은 양반이라도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물자의 생산과 유통 및 통상을 담당하는 상공인과 국방을 책임지는 군인들을 이렇게 무시하고 박대하였으니 한국은 가난과 망국의 역사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이 지식인 독재의 나라가 아니고 영국처럼 상인의 나라였다면 그토록 긴 세월 동안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春三月 보릿고개로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는데도 詩會(시회)나 열고 淸風明月이나 읊조릴 만큼 현실감각이 마비되어 있었다. 통치계급인 지식인들이 이렇게 비현실적이니 부국강병은 고사하고 餓死(아사)가 일상의 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1세기 현대에 와서도 한국의 지식인들은 2300만의 同族(동족)이 굶어죽어 가고 있는 북한의 참상은 외면한 채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처럼 여전히 고담준론이나 공리공론에 직업적으로 몰두하는 등 ‘淸風明月’을 읊조리고 있다. 특히 반역적 좌파 지식인들은 백성들의 膏血(고혈)을 빨아 먹으면서 백성들을 죽이고 있는 北의 극악한 공산 ‘통치배’들을 아예 옹호하고 예찬하고 있는 지경이다.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은 적어도 역적질은 하지 않았다.  

 




상공인들이 키운 나라를 지식인들이 억압


지식인들이 군림하는 한국사회의 또 하나의 결정적인 결점은 영국처럼 ‘창조적 전통’의 나무가 없거나 있어도 잘라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영국처럼 보수가 혁신을 질식시키지도 않고 혁신이 보수(전통)를 잘라버리지 않는, 그래서 사회경제발전의 원동력중의 하나인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지속가능한 그런 창조적 전통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2000년이나 사용해온 漢字(한자)의 사용을 하루아침에 금지하는 ‘한글 전용’ 정책이나 중앙청 철거 같은 反역사적인 문명파괴 행위를 예사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공인들은 돈이 아까워서도 이런 짓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지식인들은 엉뚱하게도 갑자기 표준어(단일 민족국가인 한국은 표준어가 필요 없는 나라인데도)를 독단적으로 제정하여 수천 년 동안 사용해온 사투리를 압살하는 反문화적인 언어 말살행위를 예사로 하고 있다.(창조적 전통의 나라 영국은 方言의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이러니 지식인 천하의 한국에서는 ‘창조적 전통’의 나무가 제대로 자라 날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도 상인의 나라로 되어가던 시대가 있었다. ‘창조적 전통’의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싱싱하게 자라나기 시작하던 때가 있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였다.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건국과 박정희의 ‘천지개벽’같은 산업화의 성공으로 한국에서도 영국처럼 상공인이 대우를 받기 시작하였었다.


소위 ‘선생님’ 못지않게 ‘사장님’도 대접을 받는 시대가 열렸었다. 장사꾼이 장관도 되고 대통령까지 되기도 하였다. 군인들도 대통령이나 총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하였다.


상공인들이 신라 이후 천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 만방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삼성 휴대폰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SAMSUNG과 LG 텔레비전이 영국의 고급 호텔까지 점유하고 있다. 현대차가 미국은 물론 영국에서도 달리고 있다. 초코파이가 러시아와 중국을 석권하였다.


영국의 상인들이 인도를 정복하였듯이 한국의 상인들은 全세계로 나아가 한국의 경제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有史 이래 처음으로 유럽연합의 평균소득을 앞지르는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되었다. 군사대국도 되었다. 이런 위대한 성취는 모두 상공인들과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낸 군인들의 덕택이었다. 

 




역사는 되풀이 되는가? 전통의 끈질긴 힘은 쉽게 꺾이지 않는가?


소위 민주화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또다시 지식인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또다시 國富(국부)의 원천이 되는 상공인들을 下待(하대)하고 국가를 지키는 군인과 경찰을 능멸하고 있다.


세계무대에서는 3류에도 들지 못할 것 같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지금처럼 상공인들을 억압하거나 국민을 오도하고 國政을 專橫(전횡)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그리스나 아르헨티나처럼 지구의 문제국가로 전락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