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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석학의 진단과 해법[‘경제위기 8년’ 그리스를 가다]<하>

淸山에 2015. 4. 17. 17:59

 




[‘경제위기 8년’ 그리스를 가다]<하>

석학의 진단과 해법
전승훈특파원

입력 2015-04-17 03:00:00 수정 2015-04-17 14:14:47




하치스 아테네 국립대 교수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이 그리스 망쳤다”
“재정위기 탈출 유일한 길은 구조개혁”






그리스/쓰레기통 뒤지는 사람과 노숙자. 동아일보DB


그리스/시위대에 점거당한 아테네 법대. 동아일보DB


그리스/신타그마 광장. 동아일보DB


그리스/올림픽 경기장 폐허. 동아일보DB


그리스/올림픽 경기장 폐허. 동아일보DB


《 “정치의 실패가 그리스를 망쳤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만난 지식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그리스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 시리자당조차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사분오열된 양상이다. 일부 정치 세력은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과 협상하겠다는 치프라스 총리의 결정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으며 점거 농성까지 벌이고 있다. 그리스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나라에서 대표적인 석학으로 꼽히는 두 사람을 인터뷰해 해법을 들어 봤다. 》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테네 국립대 캠퍼스는 무척 낡아 보였다. 건물 곳곳이 낙서로 가득했고 청소도 제대로 되지 않아 지저분했다. 기자가 “학교가 너무 지저분하다”고 했더니 하치스 아테네 국립대 교수(법경제학·48·사진)는 “재정이 부족해서 청소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며 “교수는 그나마 공무원 신분이라 민간 부문처럼 구조조정당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자조 섞인 농담을 던졌다.


그는 그리스 문제를 보는 객관적 시선을 담은 칼럼을 써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의 단골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하치스 교수는 “그리스 정부가 유로존에 진 빚을 갚고, 국민에게 다시 연금을 제대로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구조 개혁을 계속하는 것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치프라스 총리는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이 외국계 은행만을 구제했지 그리스 국민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며 채무 탕감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는 사실이다. 2010년 그리스에 대한 첫 구제금융은 결과적으로 프랑스와 독일 은행을 구제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리스 은행도 구제됐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만일 그때 구제금융이 없었더라면 그리스의 모든 금융과 기업 활동은 붕괴됐을 것이다. 그리스가 앞으로 개혁을 지속한다면 채무 지불 만기 유예, 이자율 인하와 같은 채무 구조조정은 가능하다고 본다.”


―모든 부분을 쥐어짜는 긴축정책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긴축정책으로 위기가 증폭됐다. 가장 큰 문제는 형평성이다. 부유층이나 공공부문은 놔두고 더 짜낼 것이 없는 중하층 국민만 극단으로까지 몰아붙였다. 여기서 나온 결과가 극단주의 정치 세력의 출현이다. 어떻든 정권을 잡은 급진 좌파 성향의 시리자당마저 실패할 경우 그리스인들이 다음엔 신(新)나치주의 극우 정당인 ‘황금새벽당’을 집권당으로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그리스가 경제 위기로 민주주의를 위협받고 있다.”





―그리스가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뭔가.

“한마디로 정치권이 만들어 낸 복지 포퓰리즘 때문이다. 1981년만 해도 나랏빚은 국내총생산(GDP)의 28%에 불과했다. 그때는 재정적자도, 실업자도 없었다. 이후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으로 세금을 제대로 걷지 못했다. 또 유로존 가입 이후 이자가 낮아지자 외국에서 돈을 마구 빌려 흥청망청 썼다. 재정위기란 것은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온다. 한국의 재정은 튼튼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긴장을 푸는 순간 언제든지 위기가 닥칠 수 있다.”


▼ 비트로스 아테네 경제대 명예교수 “개혁 가로막는 공공부문 비효율이 문제” ▼


비트로스 아테네 경제대 명예교수(75·사진)는 “그리스인들이 너무 일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워 문제가 발생한 거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펄쩍 뛰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건 오해다. 그리스의 민간부문 생산성은 독일에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2011년 민간부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만7000유로로, 독일의 7만2000유로와 비슷했다. 연평균 노동시간도 2037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짧지 않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라고 다시 묻자 그는 “비대한 공공부문의 ‘비효율’”이라고 답했다.

“그리스 공무원은 현재 67만 명가량인데 전체 노동 가능 인구의 16%를 차지한다. 이는 독일의 11% 수준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2010년 경제위기 초기에 독일 수준으로 공무원을 약 20만∼30만 명만 감축했으면 위기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개혁을 미룰수록 사회적 비용은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1950년부터 1974년까지 현재의 중국처럼 7%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1974년부터 2010년까지 그리스의 성장률은 0∼1%대로 뚝 떨어졌다. 이에 대해 비트로스 교수는 “1974년부터 중도 우파 신민당(NP)과 중도 좌파 사회당(PASOK)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서로 누가 국민에게 더 잘 보일까 하는 ‘포퓰리즘 경쟁’을 했다”며 “정치의 실패가 경제를 망쳤다”고 말했다.


비트로스 교수는 그리스 공공부문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경기장을 꼽았다. 그는 “올림픽 경기장이 10년간 방치돼 마치 고대 그리스 유적처럼 풀이 무성한 폐허로 변한 것은 공공부문의 주먹구구식 운영의 상징”이라며 “그리스의 모든 항구와 공공부문을 민영화하고 외국의 투자를 받아들여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테네=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기자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