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뒷받침하는 무서운 존재" 거사 직후 중앙정보부 창설 … '음지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 부훈 JP "숨은 일꾼 되라는 뜻 내가 지어" [중앙일보] 입력 2015.04.03 01:15 / 수정 2015.04.03 09:32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15> 한국판 CIA의 출범
육본 정보국 육사 8기들이 주축 신직수 변호사가 정보부법 다듬어 JP, 최고회의서 수사권 반납 약속 민정 이양 뒤에도 지켜지지 않아 "정보부 위세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검찰총장·방첩대장까지 업무보고 “때때로 월권 지탄받는 정보조직 중앙정보부 창설자로 책임 느껴”
1961년 8월 31일 서울 중앙정보부 남산청사를 방문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대화를 나누는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오른쪽). [사진 국가기록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과거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위세에 붙은 비유다. 김종필(JP)은 중앙정보부의 창설자이자 초대 수장이다. 그가 회고하는 창설 이유는 이렇다. “혁명 과업을 뒷받침하려면 무서운 존재가 필요하다.” JP는 중정의 수사권 보유를 한시적인 특수 상황으로 규정했다. 민정 이양 때 수사권을 검찰에 환원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 구상만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혁명의 실질적 설계자 역할을 하고도 왜 최고회의 위원으로 나서지 않는가.” 1961년 6월 5일, 내가 중앙정보부장 신분으로 언론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받았던 질문이다. 나는 답했다. “나는 앞에 나서지 않고 중앙정보부장으로 일하려 한다.”
5·16 혁명의 성공으로 나는 ‘혁명 설계자’의 임무는 마쳤다. 이젠 혁명정부를 뒷받침하는 보조자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국가 개조라는 큰일을 이루려면 악역(惡役)도 필요하다. 혁명 정신, 궐기의 뜻을 아는 사람이 그 일을 주도해야 한다. 남들은 해(害)가 돌아올까 두려워서 주저했다. 내가 다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중앙정보부를 만들고 초대 부장이 된 이유다.
5월 19일 혁명위원회가 중앙정보부가 포함된 통치 체제 안을 통과시켰다(본지 4월 1일자 6, 7면). 다음날 나는 장도영 최고회의 의장 명의로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됐다. 정보부 창설을 위해 먼저 한 건 우수한 두뇌들을 끌어모으는 일이었다. 이영근(중령)·서정순(중령)·김병학(중령)·고제훈(예비역 중령)을 불렀다. 육본 정보국에서 나와 함께 일했던 육사 8기 동기생들이다. 거사에 참여하란 제안을 거절했던 석정선(8기·예비역 중령)도 데려왔다. 머리가 좋은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정보부 창설 팀은 서울 시내 여관을 옮겨 다니며 일했다. 5월 23일 태평로 서울신문사 옆 국회별관(지금의 파이낸스센터 빌딩)에 정식으로 사무실을 열었다. 최고회의 건물 맞은편이다.
1961년 8월 24일 정일권 주미 대사(왼쪽 둘째)가 중앙정보부를 방문해 김종필 부장(맨 왼쪽)의 안내로 정보부 간부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중앙정보부의 기본 아이디어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따왔다. 한국형 CIA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58년 육본 정보국 행정과장 시절부터 갖고 있었다. CIA 소속 스미스 대령(가명)의 특별강의가 계기가 됐다. 스미스 대령은 CIA의 기능과 활동 방식을 설명했다. CIA는 국가의 모든 정보기관을 총괄·조정한다. 수집된 첩보·정보를 조사·분석한 뒤 고급 정보로 숙성시켜 대통령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CIA 같은 정보기관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았다. 혁명의 특수 상황 때문이다. 혁명정부는 이제 출범했다. 아직 뿌리를 단단히 박지 못한 상태였다. 외부 세력이 혁명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다면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었다. 별 사람이 다 와서 혁명 과업을 집적거리고 훼손하려 했다. 그래서는 어렵고 산적한 혁명 과업을 과감하게 추진해 나갈 수 없다. 그런 것을 막고 혁명정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북한의 위협에도 대비해야 했다.
중앙정보부에 수사권을 부여하자. 혁명의 정착을 효과적으로 보조하려면 힘이 있어야 했다. 여러 고려와 고심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이영근과 서정순 등이 중앙정보부법 법률안 초안을 잡았다. 나는 “법률 전문가인 신직수 변호사에게 보이고 검토받으라”고 지시했다. 신 변호사는 10년간 군 법무관 생활을 마치고 개업 변호사로 활동 중이었다. 그가 초안을 다듬어 법조문을 완성했다. 중앙정보부법은 9개 조항으로 이뤄졌다. 핵심은 정부 각 부처 정보 수사 활동의 조정·감독권(1조)과 수사권(6조)이다.
5월 28일, 박정희 최고회의 부의장에게 중앙정보부 법안 결재를 올렸다. 창설의 필요성, 이유와 배경을 설명했다. 박 부의장은 만족을 표시했다. 하지만 장도영 의장은 결재를 미뤘다. 결재 지연을 놓고 여러 얘기가 있었지만 의미 없는 지엽적인 것이었다. 나는 직접 장 중장을 찾아갔다. “현안 처리에 문제가 많으니 빨리 결재를 내주셔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 의장의 결재와 최고회의 의결을 거쳐 6월 10일 중앙정보부법이 공식 공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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