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유입된 外貨를 부문별로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6·25전쟁이 마무리되면서 美國의 군사원조는 점차 감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國軍의 베트남 派兵을 계기로 다시 증가되기 시작했다. 전투부대가 파병됐던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추가로 제공된 美國의 軍事援助를 추산하면 약 10억 달러 정도가 된다. 둘째, 美國 정부가 파병된 장병에게 지급한 수당, 대한(對韓) 물자구매, 기타 경비지출 등으로 국내에 유입된 외화를 약 10억 달러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셋째,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경제활동, 즉 용역 및 상품 수출 등 전쟁특수를 이용한 외화수입을 약 10억 달러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넷째, 기타 선진국으로부터 한국에 제공된 차관(借款) 등과 함께 직·간접적인 경로로 유입된 외화의 경제적 효과를 20억 달러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따라서 國軍의 파병에 따른 외화수입 총액은 50억 달러 정도의 외화 수입 효과가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보다 큰 효과는 過剩投資로 인한 국가부도 위기를 유입된 외화를 활용해 극복할 수 있었으며, 국내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정부 및 기업의 해외진출 경험을 활용해 차후 中東 진출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사실 등을 감안할 때 베트남 派兵이 직·간접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사회에 미친 영향과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朴대통령의 베트남 派兵 제안은 韓國과 美國 간의 현안에도 외교적 지렛대로 이용됐다. 美國이 워낙 强大國이었고 한국은 기아선상에 있던 弱小國이라는 위상의 차이가 외교에 반영된 결과였다. 美國은 한국 정부의 요구를 거의 들어주지 않고 아예 무시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베트남 派兵으로 美國은 사상처음으로 한국 정부를 외교의 동반자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원조 등으로 끌려 다니던 弱小國 한국이 베트남 파병을 통해 미국 정부가 오히려 한국의 눈치를 보게 만든 외교상의 쾌거였다. 외교 문서에 따르면 1968년 말 우리 정부가 미국에 M-16소총 10만 정 제공 및 공장 건설, 전폭기 17개 대대, 전략 공군 기지 건설 지원 등을 긴급 요청했고, 美國은 요구 장비의 85% 수준을 약속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베트남 派兵 이니셔티브(initiative)로 한국이 받아낼 수 있었던 가시적 성과였다. 베트남 派兵을 통해 韓美 양국의 안보체제는 더욱 강화되었으며, 특히 베트남전 특수로 한국 경제는 한 단계 더 도약했다. 아울러 베트남 派兵으로 남북한은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4년 1인당 국민소득을 기준으로 북한의 70% 수준(북한 153, 남한 103달러)에 불과했던 남한의 소득이 1969년에는 북한 194달러, 남한 210달러로 역전됐다. 1977년에는 남한이 1천 달러를 돌파함으로써 북한의 2배에 가까운 소득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외국에서, 특히 日本人들을 상대로 ‘한국경제 성장과정’을 설명할 일이 있다면 對日청구자금과 더불어 國軍 자랑스러운 베트남 派兵을 말해야 할 것이다.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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