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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강력해진 '빅뱅 머신'… 태초에 한발 더 다가서다

淸山에 2015. 3. 24. 07:09



 





더 강력해진 '빅뱅 머신'… 태초에 한발 더 다가서다
[중앙일보] 입력 2015.03.24 00:13 / 수정 2015.03.24 01:00




[궁금한 화요일]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의 귀환
유럽원자핵연구소 강입자충돌기
2년간 성능 향상 … 이번 주 재가동
2012년 힉스 입자 발견 1등 공신
충돌 에너지 두 배 가까이 올려
빅뱅 10억분의 1초 후 재현 가능
더 많은 우주 비밀 밝힐 열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과학실험 장비’가 이번 주 재가동된다. 2013년 성능 향상을 위해 가동을 중단했던 유럽원자핵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LHC) 얘기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가동 시기는 25일(현지시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LHC는 스위스 제네바 근처 지하 100m 깊이에 있다. 길이 27㎞의 원형 터널 속에서 두 개의 양성자 빔을 초전도 자석을 이용해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킨 뒤 정면 충돌시킨다. 이렇게 하면 우주의 탄생인 빅뱅 직후의 상황과 맞먹는 엄청난 충돌 에너지로 양성자가 깨져 더 작은 소립자들로 부서진다. LHC가 일명 ‘빅뱅 머신’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CERN의 과학자들은 무엇 때문에 빅뱅 직후의 우주를 재현하려 애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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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는 오랫동안 ‘이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살아왔다. 기원전 6세기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창한 지 2500년 만인 20세기 중반 과학자들이 그 모범 답안을 내놨다. 우주 삼라만상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몇 개의 입자로 구성돼 있고, 이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매개하는 입자들이 있다는 ‘표준모형’이다.


 과학자들은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이 표준모형을 이루는 입자들을 모두 찾아냈다. 유일하게 찾지 못한 게 각각의 입자들이 질량을 갖는 원리를 설명해주는 힉스 입자였다. 과학자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표준모형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 조각’인 힉스 입자를 찾아 헤맸다. 2012년 그 힉스 입자의 ‘유력 후보’를 찾아낸 것이 바로 LHC였다. 앞서 이 입자의 존재를 예견한 피터 힉스와 프랑수아 앙글레르가 이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LHC 덕분이었다.



유럽핵물리연구소(CERN)의 엔지니어들이 대형강입자충돌기 를 정비하고 있다. [유럽핵물리연구소]


 한데도 CERN의 과학자들은 지난 2년간 LHC를 더 강력하게 업그레이드했다. 2012년 힉스 입자 후보를 찾아냈을 당시 충돌 에너지는 8조 전자볼트(eV)였다. 이를 두 배 가까운 13조eV로 올렸다. 빅뱅이 일어나고 약 10억 분의 1초 뒤의 상황을 재현할 수 있는 수준이다. 빔의 강도도 이전보다 세 배 정도 높였다. 충돌에너지가 높으면 새로운 물리적 현상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빔의 강도가 높으면 입자들끼리 충돌 횟수가 많아진다.


 이렇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2012년 발견한 입자가 표준모형이 예측한 ‘바로 그 힉스(the Higgs)’ 입자인지 좀 더 자세히 분석하는 것이다. 가령 표준모형을 확장한 이론을 근거로 일부 학자는 “힉스 입자가 여러 벌 존재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2년 발견한 입자가 그들 중 하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2년간 업그레이드돼 이번에 재가동되는 LHC(CERN은 ‘LHC 시즌2’라고 부른다)는 이전보다 약 열 배 이상 더 많은 힉스 입자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만큼 빨리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게 과학자들의 추측이다.


 과학자들은 또 ‘LHC 시즌2’를 통해 기존 표준모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표준모형은 현재까지는 성공적인 이론으로 여겨지지만 자연의 원리를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우선 여러 힘 가운데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중력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 우주를 이루는 에너지의 25%는 아직도 그 정체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아 암흑물질이라고 불린다. 표준모형은 이 암흑물질도 설명하지 못한다. 힉스 입자의 존재 자체도 모순적이다. 힉스 입자는 양자역학적인 과정을 고려하면 엄청나게 큰 질량을 가져야만 한다. 하지만 LHC에서 측정한 값은 양성자 질량의 약 125배 정도로, 양자역학에 의한 추정치보다 최소 1경 배나 작다. 표준모형은 그 이유도 설명하지 못한다.


 ‘시즌 2’를 시작하는 LHC가 이전보다 더 큰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표준모형을 무너뜨릴 새로운 현상을 발견할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재가동되는 LHC는 당분간 빔 라인을 따라 양성자를 돌리기만 한다. 본격적인 고에너지 충돌실험은 오는 5월, 데이터 분석은 6월 시작될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무엇을 발견하든 모두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만큼 새로운 것이 나온다는 점이다. LHC는 인류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고 있다. 그만큼 인간 지성의 경계도 더 넓어질 것이다. 제네바에서 ‘뭔가 놀라운 발견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그로부터 새로운 과학혁명이 시작될 수도 있다.


이종필 고려대 연구교수


◆힉스 입자=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 만들어지자마자 다른 입자로 쪼개지기 때문에 찾기 힘들다. CERN의 과학자들은 LHC로 힉스 입자가 붕괴해 만들어지는 입자들을 검출해 역으로 이 입자의 존재를 확인했다.


◆전자볼트(eV)=전기를 띤 입자가 움직이며 하는 일의 크기. 1eV는 1개의 입자가 1V의 전압이 걸려 있는 전극 사이에서 가속될 때 에너지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