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U는 앞서 2012년 총회 때도 이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각국 입장이 갈려 결정을 올해로 미뤘다. 지난달 제네바에서 열린 WRC 보고서 작성 회의에 참석했던 미래창조과학부 주파수정책과의 이종혁 사무관은 “여전히 각국의 입장 차가 크다”며 “미국·호주가 강하게 윤초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 러시아와 중동 국가들은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세계 디지털 산업과 과학기술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그만큼 IT 의존도가 높고 ‘윤초 리스크’도 크다. 미항공우주국(NASA)만 해도 한 번 윤초를 삽입할 때마다 시스템 점검에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호주는 2012년 ‘윤초 사태’의 최대 피해국이라 어느 나라보다 폐지에 적극적이다.
이에 비해 러시아는 자국의 위성항법시스템(GLONASS) 때문에 윤초 삭제에 반대하고 있다. 위성항법시스템은 지상의 물체가 여러 위성이 보내는 신호를 수신하는 ‘시차’를 계산해 물체의 위치를 파악한다. GLONASS는 이 시계에 윤초를 사용해 왔다. 반면에 미국의 GPS는 윤초를 쓰지 않는다. 러시아는 윤초를 삭제하면 세계 위성항법 시장을 미국 GPS에 다 뺏길까 우려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아직 윤초 피해가 없다 보니 “굳이 삭제해 혼란을 가중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입장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실용적 이유 못지않게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천문시 개념이 유명무실해질 것을 우려한다. 올해 26번째 윤초를 삽입한다는 것은 72년 이래 43년간 지구 자전이 26초 느려졌다는 의미다. 같은 식이라면 1만 년 뒤에는 현재보다 1시간 이상이 느려질 수 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정오(正午)가 한밤중이 되고 북반구의 여름이 10~11월에 시작될 수도 있다.
한국은 윤초 삭제에 대해 아직 유보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삭제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국내 표준시 제공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표준연구원의 유대혁 시간센터장은 “윤초를 그냥 두는 것과 삭제하는 것 둘 다 리크스가 있다. 어느 쪽이 더 크냐를 따져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개인적으로 컴퓨터 오작동에 의한 위험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 민간 기업들은 첨단 기술로 윤초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세계 최대 IT기업인 구글은 윤초를 한 번에 삽입하는 대신 매일 수백만분의 1초씩을 더해 원하는 시점에 1초를 늘리는 기술(leap smear)을 개발했다.
김한별 기자 kim.hanb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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