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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8시 마지막 1분은 '61초'

淸山에 2015. 4. 14. 05:54






[궁금한 화요일]

7월 1일 8시 마지막 1분은 '61초'
[중앙일보] 입력 2015.04.14 00:45 / 수정 2015.04.14 01:02
너무 위험한 1초
꼭 필요한 1초
지구촌 윤초 갈등
느려진 지구 자전 맞춰 1초 넣는 것
1972년 이후 43년간 26초 집어넣어
  


 
2012년 7월 1일 오후 호주의 브리즈번·퍼스·멜버른 등의 공항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호주 최대 항공사 콴타스의 발권 시스템이 일시에 ‘먹통’이 됐기 때문이었다. 직원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발권을 하느라 항공기 400여 편의 출발이 지연됐다. 같은 시각, 미국의 유명 SNS 사이트인 레딧·링크트인·포스퀘어 등의 홈페이지도 다운됐다. 업체들이 서버를 껐다 켜는 동안 서비스는 두 시간 가까이 중단됐다. 둘 다 영국 런던의 시간이 6월 30일에서 7월 1일로 넘어가는 순간 발생한 사고였다. 원인은 30일 오후 11시59분59초 뒤에 들어간 ‘윤초(leap second)’였다.


 윤초의 ‘윤(閏)’은 ‘남는다’는 뜻이다. 그 뜻 그대로 윤초는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인 원자시계를 기준으로 전통적인 시간 개념인 ‘천문시’에 1초를 더 넣는 것을 가리킨다. 천문시의 기준이 되는 지구 자전 속도가 계속 느려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쉽게 말해 ‘자연의 시계’에 맞춰 ‘인간의 시계’를 한 칸 뒤로 돌리는 셈이다. 음력·양력의 시차를 보완하기 위해 집어넣는 윤달·윤일과 비슷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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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는 윤달·윤일과 달리 삽입하는 시기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달의 인력, 지진 등의 영향으로 계속 조금씩 변한다. 국제지구자전좌표국(IERS)이 세계협정시(UTC)와 천문시를 대조해 0.9초 이상 차이 날 때마다 윤초를 삽입한다. 1972년 처음 윤초가 쓰였고, 미래창조과학부는 오는 7월 1일 오전 9시(한국시각 기준) 26번째 윤초를 삽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초를 넣어도 사람은 문제 될 게 없다. 손목시계 초침을 한 칸 뒤로 돌리기만 하면 된다. 시간을 자동 전송받는 휴대전화 시계는 아예 건드릴 필요도 없다. 문제는 컴퓨터다. 컴퓨터의 1분은 무조건 60초, 1시간은 3600초, 하루는 8만6400초여야 한다. 여기에 1초를 더 끼워넣으면 오작동을 한다.


 이런 ‘윤초 버그’를 잡으려면 대규모 인력과 돈을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모든 게 다 완벽할 수는 없다. 콴타스도 2012년 윤초 삽입 전 시스템 점검을 했지만 예상 못한 버그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더구나 한국은 올해 97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으로 주말이 아닌 평일, 그것도 증권시장이 개장하는 오전 9시에 윤초를 삽입한다.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센터 정현수 박사는 “행여라도 윤초 문제가 생기면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부 국가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아예 윤초를 없애자고 주장한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오는 11월 제네바에서 열리는 전파통신총회(WRC-15)에서 이 문제를 공식 논의할 예정이다. 국제 천문 기구나 도량형 기구가 아닌 ITU에서 윤초 문제를 다루는 것은 이 기관이 시보(時報) 주파수 문제를 담당해온 전통 때문이다. 

 




 ITU는 앞서 2012년 총회 때도 이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각국 입장이 갈려 결정을 올해로 미뤘다. 지난달 제네바에서 열린 WRC 보고서 작성 회의에 참석했던 미래창조과학부 주파수정책과의 이종혁 사무관은 “여전히 각국의 입장 차가 크다”며 “미국·호주가 강하게 윤초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 러시아와 중동 국가들은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세계 디지털 산업과 과학기술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그만큼 IT 의존도가 높고 ‘윤초 리스크’도 크다. 미항공우주국(NASA)만 해도 한 번 윤초를 삽입할 때마다 시스템 점검에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호주는 2012년 ‘윤초 사태’의 최대 피해국이라 어느 나라보다 폐지에 적극적이다.


 이에 비해 러시아는 자국의 위성항법시스템(GLONASS) 때문에 윤초 삭제에 반대하고 있다. 위성항법시스템은 지상의 물체가 여러 위성이 보내는 신호를 수신하는 ‘시차’를 계산해 물체의 위치를 파악한다. GLONASS는 이 시계에 윤초를 사용해 왔다. 반면에 미국의 GPS는 윤초를 쓰지 않는다. 러시아는 윤초를 삭제하면 세계 위성항법 시장을 미국 GPS에 다 뺏길까 우려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아직 윤초 피해가 없다 보니 “굳이 삭제해 혼란을 가중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입장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실용적 이유 못지않게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천문시 개념이 유명무실해질 것을 우려한다. 올해 26번째 윤초를 삽입한다는 것은 72년 이래 43년간 지구 자전이 26초 느려졌다는 의미다. 같은 식이라면 1만 년 뒤에는 현재보다 1시간 이상이 느려질 수 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정오(正午)가 한밤중이 되고 북반구의 여름이 10~11월에 시작될 수도 있다.


 한국은 윤초 삭제에 대해 아직 유보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삭제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국내 표준시 제공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표준연구원의 유대혁 시간센터장은 “윤초를 그냥 두는 것과 삭제하는 것 둘 다 리크스가 있다. 어느 쪽이 더 크냐를 따져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개인적으로 컴퓨터 오작동에 의한 위험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 민간 기업들은 첨단 기술로 윤초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세계 최대 IT기업인 구글은 윤초를 한 번에 삽입하는 대신 매일 수백만분의 1초씩을 더해 원하는 시점에 1초를 늘리는 기술(leap smear)을 개발했다.


  김한별 기자 kim.hanby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