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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전설의 명기를 찾아서 - 롤렉스 서브마리너 - 세계 최초 100m 방수

淸山에 2013. 8. 17. 18:59

 

 

 

 

 

[시계, 전설의 명기를 찾아서]

 롤렉스 서브마리너 - 세계 최초 100m 방수, <007 시리즈>에도 등장

주간경향 1037호 
  
 
 


 혁명가 체 게바라의 손목을 장식했던 시계가 바로 서브마리너였다.

시계 칼럼니스트 장세훈씨가 격주로 시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시계들을 소개하는 ‘시계, 전설의 명기를 찾아서’를 연재합니다. 당시 어필했던 새로운 기술들은 물론 그 시계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독자 여러분을 시계와 시간 여행의 전율 속으로 이끌 것입니다.

 

 


2012년 출시된 롤렉스 서브마리너


시계에 별로 관심이 없고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롤렉스(Rolex)라는 이름은 친숙하다. 롤렉스는 소위 명품으로 분류되는 고급 시계로서의 가치 이전에 사회적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오브제로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롤렉스만큼 오랜 세월 세대를 뛰어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대중적인 선망의 피라미드 그 정점에 오른 브랜드도 많지 않다. 그만큼 현대 손목시계 역사에서 롤렉스의 위치는 확고부동하며, 기술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끼친 영향 및 업적 또한 상당하다.

 

롤렉스 손목시계 제조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 있다면, 1926년에 개발한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용 방수 케이스인 오이스터(Oyster)의 등장을 들 수 있다. 한 번 입을 다물면 물이 들어가지 않는 굴(오이스터)에서 착안한 이 견고한 케이스는 스크루다운 방식의 케이스백과 베젤, 그리고 역시나 이중 잠금 방식의 와인딩 크라운 같은 당시로는 획기적인 기술 덕분에 뛰어난 방수성능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손목시계에서 방수기능은 비단 해상 스포츠나 잠수 같은 전문적인 용도 외에 일상생활 환경에서도 매우 유용한데, 롤렉스의 오이스터 케이스가 적용된 시계들은 등장과 동시에 활동적인 남성 고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1953년. 롤렉스는 세계 최초의 100m 방수시계를 선보인다. 그 유명한 서브마리너(Submariner)의 등장이었다. 서브마리너는 다이버워치 하면 떠오르는 아이콘이자, 스포츠 시계 디자인의 한 표준으로서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브랜드의 다양한 시계들에 영감을 주었다.

 

 


1965년 서브마리너 광고사진

 

서브마리너는 당대의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애용한 시계로도 알려져 있다. 첩보영화의 대명사인 <007 시리즈>의 3대 제임스 본드인 로저 무어가 (1973년)에서 착용한 서브마리너(Ref. 5513)는 2011년 말 스위스 제네바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2억6000만원이 넘는 금액(21만9000스위스프랑)에 낙찰돼 화제를 낳기도 했다.

 

서브마리너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혁명가 체 게바라다. 인민을 착취하는 자본가와 정부에 맞서 정글을 누비던 그의 손목을 장식했던 시계가 바로 서브마리너였다. 체 게바라가 찼던 서브마리너는 그의 처형 직후 CIA 요원이었던 펠릭스 로드리게스에게 넘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체 게바라의 시계는 아직도 남아 있고, 전 세계 시계 마니아들은 그 시계가 매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혁명과 서브마리너.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그래서 더 전설이 됐는지도 모른다.

 

 


‘007 골드핑거’에 등장한 서브마리너

 

60년 가까이 꾸준히 진화를 거듭한 서브마리너 컬렉션은 현재는 일반 스틸보다 견고하고 내부식성이 강한 904L 스틸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으로 개선됐다. 크라운 역시 삼중 잠금(트리플록)이 적용돼 수심 300m까지 방수되며, 60분 눈금이 새겨진 단방향 회전 베젤 역시 긁힘이나 열, 자외선에 강한 세라믹 계열의 세라크롬 디스크로 교체됐다. 시계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무브먼트의 헤어스프링은 기존 소재보다 충격에 10배 이상 강하고 자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아 반영구적인 내구성을 기대할 수 있는 블루 파라크롬(Parachrom) 헤어스프링으로 교체됐다. 현대의 도시 생활인들에게 서브마리너 같은 수심 300m 방수 기능의 전문 다이버 워치는 사실상 불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시계 역사상 한 획을 긋는 아이콘이자 남성들이라면 한 번쯤 갖고 싶은 로망의 시계로 군림하게 된 데는 분명 기능적인 면 외에도 심미적인 매력 또한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몸은 비록 갑갑한 도심 건물 안에 갇혀 있지만 마음만은 시계를 바라보며 세계를 여행하고 바닷속을 탐험하는 상상…. 어쩌면 현대 남성들 안에 억눌린 어떤 야성적인 면, 잠재된 모험심을 자극하는 면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서브마리너는 지금도 로망의 시계다.

 

장세훈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