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먼지·하수구 진흙에선 백금, 지하 전력케이블에선 구리
하수엔 공장·치과서 흘러나온 귀금속 가루 섞여 있어
하수 1t당 金 2.9㎏, 금광의 50배… 일본에선 재생 공장 등장
도로 먼지엔 車 백금 촉매 나와
2011년 여름 미국의 다이아몬드 가공 기술자인 라피 스테파니언은 뉴욕 맨해튼의 보석상 밀집 거리인 '다이아몬드 스트리트'에서 보도블록 틈새에 끼어 있는 흙을 긁어모았다. 보석상 직원들의 신발이나 옷에 묻은 금가루가 거리에 떨어졌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보석상들은 철저히 검사를 하기 때문에 금가루 하나라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그가 2주간 작업 끝에 모은 금은 놀랍게도 1000달러어치였다.
세계 각국에서 도시에 숨겨진 노다지를 찾는 노력이 한창이다. 도로 가장자리에 쌓인 먼지나 흙, 하수구 진흙에서 값비싼 백금이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도시 하수를 처리해 귀금속을 얻는 공장이 가동 중이다. 도시 재개발로 지하에 묻혀버린 옛 가스 배관이나 전선에서 철과 구리, 알루미늄을 얻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하수도 진흙에 들어 있는 귀금속
신흥 경제국의 성장으로 금속 수요가 급증했다. 하지만 광산에서 이미 캐낼 만큼 캐낸 상태라 이전만큼 유용 금속을 채굴하기가 쉽지 않다. 부족한 금속을 얻기 위해 마른 수건을 다시 짜는 전략이 등장했다. 폐휴대폰에 들어 있는 유용 금속을 재생하는 이른바 '도시광산(urban mining)'이 대표적이다. 휴대폰 1대에선 평균 금 0.034g, 은 0.2g, 구리 10.5g 등 3500원 가치의 금속 자원을 얻을 수 있다.
매년 폐가전제품에서 회수하는 금과 은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각각 300t, 7000t에 이른다. 하지만 아직도 회수율은 15%밖에 되지 않는다. 폐가전제품 대부분은 분쇄돼 매립된다. 매립지를 파헤쳐 귀금속을 찾을 수도 있지만, 나중에 다시 매립지를 복원하는 비용을 따지면 경제성이 떨어진다.
최근엔 도시광산의 무대가 하수도와 도로, 지하로 확대되고 있다. 하수도에 쌓인 진흙엔 전자제품 공장이나 치과, 귀금속 가공업체에서 흘러나온 귀금속 가루가 섞여 있다. 관절염이나 암 치료제에도 극미량의 귀금속이 들어 있어 환자의 몸을 지나 하수로 흘러나온다. 일본은 2009년부터 나가노현에서 하수에서 귀금속을 회수하는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여기서 얻는 금은 하수 1t당 2.9㎏으로 일반 금광보다 50배나 높은 농도다.
◇도로 먼지는 자동차 백금 촉매 함유
도로도 도시광산이 되고 있다. 영국 버밍엄대의 앤젤라 머리 교수는 도로에서 백금과 팔라듐, 로듐 같은 귀금속을 얻는 회사를 차렸다. 회사 이름은 '도로에서 부(富)로(Roads to Riches)'이다. 자동차에는 배기가스에 함유된 유독물질을 줄이는 촉매가 있다. 자동차가 달리면 촉매에 들어 있는 백금 같은 귀금속이 조금씩 도로에 떨어져 나온다. 머리 교수는 촉매에 든 귀금속의 70%가 도로에 쌓이는 먼지가 된다고 추정했다.
연구진은 도로 가장자리의 먼지와 흙에서 1PPM(100만개 중 1개)의 농도로 백금을 추출했다. 대표적인 백금 생산국인 남아프리카 광산의 백금 함유량은 2~10PPM 정도다. 머리 교수는 영국 도로에서 연간 2만9000t 상당의 백금계 귀금속이 버려지고 있다고 추정했다.
도시에 숨어 있는 노다지 개념도
과학자들은 기술이 발전하면 도시의 먼지나 흙에서 얻는 귀금속의 농도가 60PPM까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은 고가의 화학물질을 이용해 먼지에서 귀금속을 분리하지만, 앞으로는 값싼 생물학적인 방법도 가능하다. 머리 교수는 생체 효소로 백금 이온을 분해해 자신의 몸 밖에 입자 형태로 고정하는 박테리아를 연구 중이다.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 과학자들은 폐가전제품에서 아연이나 니켈 같은 금속을 먹어 치우는 박테리아를 개발하고 있다. 귀금속 함유량이 많은 지역에서 잘 자라는 식물을 이용하는 방법도 제안됐다.
◇지하에 숨겨진 산업혁명기의 보물들
보물지도를 들고 도시에서 유용 금속을 찾는 과학자들도 있다. 바로 오래전에 폐기된 지하 가스 배관이나 전선 연결망 지도이다. 아스팔트에 덮인 옛 전철길 지도도 있다. 스웨덴 린셰핑대의 환경공학자인 매츠 에클룬트 교수는 1850년대 산업화가 시작됐던 스웨덴 도시들에서 가스 배관과 전력케이블이 최대 20%까지 회수되지 않고 지하에 매장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지하에 버려진 전력케이블에 6억3000만달러 상당의 구리 9만t이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스웨덴 전체로 따지면 유용 금속 40만t이 도시 지하에 숨겨져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