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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한 金日成의 '毛澤東 한국전 개입요청' 서한

淸山에 2012. 7. 9. 14:41

 

 

 

 

 

다급한 金日成의 '毛澤東 한국전 개입요청' 서한  
 
 
 美참전에 '깜짝 놀라' 中군사지원 요청…다급했는지 誤字로 가득 찬 서한 보내
조갑제닷컴   
 
 
1950년 10월1일 國軍은 38선을 넘어 평양으로 진격했다. 9.28 서울 수복 이후 李承晩 대통령은 國軍 단독으로 38선 돌파를 명령했다.


6.25 전쟁 이후 계속 인민군에게 밀렸던 國軍이 ‘남한사수’에서 ‘北進自由統一’(북진자유통일)로 목표를 전환한 것이다. 10월1일 ‘국군의 날’은 여기서 유래한다.


당시 김일성은 戰況(전황)이 불리해지자 毛澤東에게 中共軍(중공군)의 ‘직접 출병’을 요청하는 긴급 서한을 전달했다.


이 서한의 원본은 현재 중국 당안관(檔案館·문서기록보존소)에 보관되어 있으며, 사본은 丹東(단동)의 抗美援朝(항미원조)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김일성·박헌영 공동명의로 되어 있는 <출병 요청 서한>(A4 용지 두 장 분량)의 제목은 ‘존경하는 모택동 동지 앞’으로 시작된다.


이 서한에서 김일성은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기 전에는 우리 형편이 좋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면서 “적들이 패전을 거듭해 남조선 최남부 협소한 지역에 몰리어 최후 결전에서 우리가 승리할 가능성이 커졌고 미국의 군사적 위신은 여지없이 추락되었다”고 주장했다.


김일성은 그러나 “적들이 우리의 엄중하고 위급한 형편을 이용,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계속 침공한다면 우리 자체의 힘으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면서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자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당신(모택동)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적군이 38선을 침공하면 ‘약속했던 대로’ 중국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필요하다”면서 중국 공산당에 군사지원을 요청했다.


김일성과 박헌영의 군사지원 요청을 받은 毛澤東은 “참전의 이익은 매우 크며 참전하지 않으면 손해가 클 것”이라며 같은 해 10월 19일 3만 명의 中共軍을 보내 自由統一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한반도를 不法(불법)침략했다. (조갑제닷컴)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

 

[자료] 위 사진은 김일성이 親筆로 작성해 毛澤東에게 보낸 '출병 요청 서한'의 마지막 부분이다. 여기에서만 총 6차례에 걸쳐 誤字가 발견된다. 서한의 全文 내내 誤字가 여러 차례에 걸쳐 발견된다. 김일성은 서한에서 자신의 이름을 제외하고 漢字를 사용하지 않았다.


[원문] '친애하는 모(모택동) 동지시여...(중략) 적들이 금일 우리가 처하여 있는 엄중하고 위급한 형편을 리용하여 우리에게 시간 여유를 주지 않고 계속 진공하여 38도선을 침공하게 되을 때에는 우리의 자체의 힘으로 새는 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즉 적군이 38도선을 침공하게 될 때에는 약속한 바와 갓치 중국 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로 필요하게 됩니다. 이상과 같이 우리의 의견을 당신에게 제이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당신의 회답을 우리는 기다림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김일성 金日成
박헌영 朴憲永


1950년 10월1일

펴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