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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50 실은 비행기 '금단의 구역' 들어가보니

淸山에 2012. 6. 30. 10:00

 

 

 

 

 

T-50 실은 비행기 '금단의 구역' 들어가보니

[중앙일보]

 

 

[현장 속으로] 하늘 위 실크로드 … 화물기 타고 3만km를 날다
인천 → 마이애미 →뉴욕 →브뤼셀 → 밀라노 → 나보이 → 인천 50시간 동승기

 

 

 

 

 

 

 

 

 

 

비행기 조종실은 일반인에게 ‘금단의 구역’이다. 그 조종실을 눈앞에서 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떨린다. 기장들처럼 허리와 양어깨·다리 사이에 5중으로 안전벨트를 매고 관제탑과 교신하는 헤드폰까지 써 봤다. 아 참, 휴대전화! 조종실에서 휴대전화를 안 껐다. 왜 이렇게 느리게 꺼지나… 속이 탄다. “Korean Air 253, Ready for Take off(대한항공 253편, 이륙 준비 완료).”

 “Roger. Cleared for Take off(알았다. 이륙을 허가한다).”

 “Rotate(로테이트:조종간을 당겨 비행기를 띄움)!”

  순식간에 눈앞에서 지상이 사라진다. 이제 세찬 비도 사나운 번개도 구름 아래 일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고대 실크로드의 한복판, 우즈베키스탄의 나보이(Navoi)로 간다. 대한항공이 ‘21세기 새로운 실크로드’를 개척하기 위해 육성하는 중앙아시아의 거점기지다.

 ‘인천→앵커리지→마이애미→뉴욕→브뤼셀→밀라노→나보이→인천’으로 이어지는 장장 48시간48분(3만85㎞) 화물기(B747-400F) 비행에 본지 기자가 동승했다.

완전한 어둠이 내린 밤 11시. 인천공항 여객청사에 하나 둘 불이 꺼진다. 바로 이즈음, 반대편 활주로에 일제히 눈부신 흰색 라이트가 켜진다. 불빛을 따라 늠름한 비행기들이 굉음을 내며 검은 하늘로 박차 오른다. 인천공항 화물청사의 일과는 여객기의 이착륙이 뜸해지는 이 시간부터가 시작이다. 갖가지 무역품을 실은 화물기들이 전 세계 곳곳으로 출발한다. 이 중 상당수의 목적지가 우즈베키스탄의 나보이(Navoi)다.

비행기를 품은 비행기 우리가 탈 화물기는 대한항공 253편. 놀랍게도 앞코가 활짝 열려 있다. 이 안으로 공군 훈련기 T-50이 쑤욱 들어간다. 유럽에서 열리는 에어쇼를 위해 꼬리와 날개를 분리해 옮기는 중이다. 대한항공에는 이 기종(B747-400F) 23대를 비롯해 총 25대의 화물기가 있다. 여객사업을 하는 항공사 중에선 세계 최대 규모다. 화물기의 1층은 텅 빈 창고다. 여기에 통상 100t의 화물을 싣는다. 비행기는 뜨는 게 곧 돈이라 덜 채우면 그만큼 손해다.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2층에는 조종석과 6개의 좌석이 있다. 조종사들이 교대로 쉬는 곳이다. 비행 시간에 따라 2, 3명의 조종사가 탑승한다. 항공기는 안전을 위해 두 사람이 8시간 이상 비행할 수 없다. 가끔은 중요한 외교행낭을 운반하는 외교관이나 보안요원이 입을 굳게 다문 채 앉아 가기도 한다. 승객이 없으니 창문도 양 옆으로 각각 3개뿐이다. 1층 바닥은 짐을 동서남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특수장치가 깔려 있다. 무거운 짐은 가운데에, 가벼운 짐은 앞뒤로 싣는다. 무게중심을 잘 맞춰야 기름이 절약된다. 국내 항공 사상 가장 무거웠던 화물은 지난해 9월 미국 댈러스에서 온 굴착기(52t)였다.

화물을 보면 경제가 보인다

 인천공항 대한항공 화물터미널 주변은 산적한 화물과 이를 나르는 짐차들로 북적거린다. 창고에 들어서니 네모난 칸마다 화물이 보관돼 있다. 이런 칸이 1048개. 무게로는 2500t 분량이다. 이 사이를 ‘ETV’(Elevating Transfer Vehicle)라 불리는 기계가 지나다니며 마치 자판기에서 물건을 집어내듯 화물을 빼오기도 하고 넣기도 한다. 창고는 ‘수출화물’ ‘통과화물’ ‘수입화물’ 구간으로 나뉘는데 통과화물이 65%를 차지한다. 세계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이곳을 거쳐가는 셈이다. “요즘 무엇이 가장 많이 들고나죠?” “미국에서 체리가 많이 들어옵니다. 대형마트나 홈쇼핑에서 파는 체리가 다 여기로 오죠. 수출화물은 반도체나 자동차부품·모바일 기기가 많아요. 지난해엔 LCD가 많았는데 올해는 해상운송으로 많이 돌렸어요. 시장 상황이 예전만 못한 거죠.” 대한항공 인천화물운송지점 신원기 부장의 설명이다.

한도 무제한 ‘비행기 주유카드’

 인천에서 앵커리지까지 필요한 연료는 20만3160파운드(약 92.2t). 미주대륙으로 가는 화물기는 대부분 앵커리지(알래스카)에 들러 연료를 채운 뒤 다음 행선지로 떠난다. 당연한 얘기지만 연료(제트유)는 매우 중요하다. 기상악화나 불시의 사고로 이착륙이 지연되면 공중에 머물거나 다른 공항으로 회항해야 하는데 이럴 때 예비연료는 필수다. 갈흥룡(59) 기장은 “늘 연료 생각을 하다 보니 누가 기름 떨어져서 차 세워놓은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저런 정신 나간 사람!’이란 소리가 나온다”고 했다. 참고로 어느 공항에서나 기름을 넣을 수 있는 ‘비상 주유카드’란 게 있다. 한도는? 무제한이다. 기름값이 아무리 비싸 봐야 비행기보단 싸니까. 화물기들은 공항마다 1~2시간 정도 ‘그라운드 타임(Ground time)’을 갖는다. 다음 운항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날개에 연료를 보충하고 화물도 싣고 내린다. 기장들을 위한 식사도 싣고 화장실 휴지 등 비품도 새로 챙겨넣는다. 지금까지 비행한 기장들은 내리고 새로운 기장들이 조종석을 맡는다.

뉴욕 JFK공항의 친환경 물류창고

 화물의 종류는 공항마다 다르다. 남미와 가까운 마이애미에선 콜롬비아에서 온 꽃들이 가득 실렸다. 뉴욕으로 가는 흰색 수국이다. 적정 온도는 2~8도. 화물기 1층의 냉방장치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뉴욕에선 느닷없이 검은색 고급 GMC 차 한 대가 실렸다. 시카고에서 온 선박용 엔진엔 ‘민감화물(sensitive cargo)’이란 딱지가 붙어 있다. 뉴욕 JFK공항에는 대한항공이 자랑하는 ‘노즈덱(Nose deck)’ 화물터미널이 있다. 귀중한 화물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비행기 안에서 바로 창고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천장에는 자연채광이 가능하게 유리창을 설치해 낮에는 조명을 켜지 않아도 훤하다. 일명 ‘친환경 화물창고’다. 외국 항공사들이 맡긴 화물량이 꽤 많아 외화벌이도 된다. 유럽의 교통요지인 벨기에 브뤼셀 공항에서 6년째 정비사로 근무 중인 에흐브레그츠는 “미국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소 떼가 실릴 때는 소들이 내쉬는 숨 때문에 1층 전체가 뿌옇게 흐려져 아주 위험하다. 그래서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과거엔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으로 군수물자가 가기도 했지만 요즘엔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귀하신 손님들

 밀라노의 말펜사 공항은 명품의 집결지다. 다양한 색상의 페라리와 온몸을 흰색 천으로 감싼 람보르기니도 보인다. 싱가포르와 두바이로 가는 ‘귀하신 몸’이다. 신세계백화점으로 가는 화물도 많다. 요즘은 서울로 가는 물량이 전체 물량에서 2, 3등을 차지한다. 공항 관계자는 “한국의 명품 소비가 늘었다기보다 제주도나 인천에서 명품을 사는 중국인들이 많아진 탓”이라고 설명했다. 6월 초엔 긴박한 상황도 있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으로 가는 식인상어 10마리가 이륙시간 직전에야 도착한 것이다. 프랑스 니스에서 육로로 왔는데,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시간이 지연돼 늦은 것이다. 지금은 회복됐지만 당시 4마리는 숨이 꼴깍꼴깍 넘어갈 상태였다. 상어들의 몸값은 운송비를 포함해 3억4000만원. 운송비만 일반화물의 5배다. 화물기에 생·동물이 실릴 때는 산소 주입 등 특수설비를 갖추고 수의사가 함께 타기도 한다. 단 어류는 미리 화물주에게 ‘일체의 안전책임을 지겠다’는 문서를 받아둔다. 문득 옆에 세워진 러시아 화물기 ‘안토노프(ANTONOV)’가 눈에 띈다. 이 화물기는 아예 뒤쪽이 아래로 쭈욱 열린다. 군사용으로 만들어져 탱크며 폭탄이며 온갖 군용물자가 쑥쑥 다 들어간다.

대한항공이 낳은 ‘나보이 공항’

 드디어 착륙한 나보이 국제공항. 드넓은 부지에 화물터미널 1개, 여객청사 1개, 유류 저장탱크가 있다. 그동안 거쳐 온 공항의 모습과 달리 다소 황량하다. 그래도 활주로 길이는 인천공항(3.8㎞)보다 긴 4㎞다. 현존하는 지구상의 모든 기종이 다 들어올 수 있다. 더욱 인상적인 건 공항청사다. 대한항공과 우즈베크항공 로고가 나란히 같은 크기로 붙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공항은 우즈베크 정부와 대한항공이 함께 낳은 자식이다. 2007년 우즈베크 정부가 ‘공항 설립과 운영 기술을 전수해 달라’고 요청해 왔고 대한항공은 고민 끝에 ‘OK’를 했다. 그 뒤 나보이에 대한항공 화물기를 취항(2008년 8월)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공항 위탁경영을 맡더니(2009년 1월) 우즈베크항공에 비행기를 빌려주고(2009년 5월), 공항 신축 개발사업에 착수(2009년 2월)했다. 결국 2010년 8월 나보이 공항에 화물 터미널까지 지어 준공식을 마쳤다. ‘도대체 나보이에 뭐가 있길래 그런 투자를 하느냐’는 목소리가 많았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대한항공은 이곳에서 어떤 기회를 보는 걸까.

왜 우즈베크 나보이 공항인가
유럽·아시아 어디든 6시간 안에 간다


‘카레아(한국 사람이에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한국인들을 보면 반가워한다. 소련에 속했던 나라 중 고려인(카레이스키)이 가장 많이 살기도 하지만 한국 기업들의 브랜드가 생활 속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자동차의 80% 이상이 대우자동차다. 마티즈와 티코는 ‘국민 승용차’고 다마스는 택시로 쓰인다. 1991년 대우자동차가 설립한 자동차조립공장이 국유화된 결과다.

 우즈베크 남서부에 있는 나보이(Navoi)는 한국에 대한 친밀도가 특히 더 높다. 나보이 공항을 선진 기술로 키워 준 나라, 지역 경제개발계획을 가장 주도적으로 지원하는 나라, 인프라를 지으면서 현지 고용을 창출하는 나라란 인식이 뚜렷하다. 대한항공 로고가 새겨진 차가 지나가면 동네 아이들은 웃으며 손을 흔든다.

 대한항공은 2008년부터 ‘나보이 프로젝트’를 가동해 공항과 화물터미널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쏟아붓고 있다. 목표는 뚜렷하다. ‘이 지역 발전에 기여해 훗날 그 열매를 주도적으로 누리겠다’는 것이다. 나보이의 매력 포인트는 세 가지다.

 첫째, 아시아와 유럽, 중동을 연결하는 최단코스에 있다. 뉴델리·모스크바·두바이까지 4시간, 밀라노·프랑크푸르트·상하이까지가 6시간 거리다. 실제 나보이 공항 앞 대로를 따라가면 그 길이 곧 사마르칸트·부하라 등으로 연결되는 고대 실크로드다. 둘째, 이 나라의 성장 잠재력이다. 우즈베크는 가스·석유·금 등 자원이 풍부하며 인구도 3000만 명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많다. 셋째, 소련 대륙을 동서로 관통하는 도로와 철도망이 깔려 있어 항공과 육상운송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현재 나보이 국제공항 공항장을 겸직하고 있는 박병렬 대한항공 상무는 “나보이는 중앙아시아 국제 물류허브가 되기에 최적의 곳이다. 장기적으로 국가 차원의 물류 발전과 자원외교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우즈베크항공에 ‘A300-600’ 화물기 두 대를 임대해 주면서 우즈베크항공이 취항하는 노선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한국 국적기가 들어가지 못하는 아프가니스탄 카불 같은 곳에 화물을 보내는 길이 열린 것이다.

 대한항공의 화물터미널을 모델로 한 나보이 화물터미널은 ‘작지만 똑똑’하다. 창고 면적은 1만7400㎡(약 5000평)로 연간 10만t의 화물을 처리할 수 있다. 화물창고 안에 들어서니 시원하다. 여름 기온이 40도 이상 올라가는 것을 고려해 높이를 22m까지 높게 지었기 때문이다. 신선 채소를 보관하는 냉장창고와 냉동창고, 겨울에 어는 것을 방지하는 보온창고까지 잘 구비돼 있다. 지붕과 건물 옆에 창문이 나 있어 낮에는 전기가 전혀 필요 없다. 그 결과 나보이 공항을 거치는 화물기는 2008년 445대에서 2011년 2850대로 6배 이상 늘었다. 화물량은 26t에서 5만t으로, 공항수입도 700만 달러에서 4800만 달러(약 555억원)로 급증했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우즈베크 정부로부터 우호훈장을 받기도 했다. 우즈베크 정부는 나보이를 ‘자유산업경제구역’(500만㎡)으로 정해 외국인 투자유치에 힘쓰고 있다. 그러면서 대한항공에 ‘경제구역 배후단지를 개발해 달라’며 120ha(36만3000평)를 영구 임대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3월 이곳에 ‘HJ(한진) 나보이 콤플렉스’를 오픈했다. 51개 객실에 비즈니스 라운지·피트니스센터 등을 갖춘 호텔로 약 145억원을 들였다. 최근 경제구역 입주와 관광사업 등을 타진하러 온 한국 기업 관계자들이 묵기도 했다. 경제구역엔 현재 한국을 포함해 중국·오만·싱가포르·인도 등에서 16개 업체가 입주한 상태다.


사진설명
1 대한항공 화물기(B747-400F)의 조종석. 조종간 앞과 천장에 복잡한 계기판이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임을 알리는 듯하다. 경차 운전석만큼 좁은 공간에 기장 (왼쪽)과 부기장이 비행 내내 자리를 지킨다.
2 인천공항 화물기는 밤부터 새벽 사이에 출발한다. 인천공항 화물청사도 저녁 무렵부터 바쁘게 돌아간다. 늘어선 화물기들이 화물이 실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3 앵커리지 미국 알래스카의 앵커리지 공항. 정비사들이 비행기 날개에 있는 연료탱크에 기름(제트유)을 채우고 있다. 화물기는 짐을 많이 싣기 위해 연료를 조금씩 자주 넣는다.
4 마이애미 공항에 착륙한 화물기는 ‘그라운드 타임’을 갖는다. 마이애미에서 뉴욕까지 비행을 맡은 기장과 부기장들이 마이애미 공항에서 운항관리사와 함께 항로를 확인하고 있다.
5 뉴욕 2000년 설립된 대한항공 뉴욕화물터미널에 도착한 화물기. 대한항공은 뉴욕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화물을 가장 많이 처리하는 항공사다.
6 밀라노 다음 비행을 준비하는 동안 화물기 외관을 점검하는 것은 기장의 주된 임무다. 로바츠 기장이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서 손전등을 비추며 외관과 엔진·날개를 점검하고 있다.
7 나보이 대한항공이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전수한 나보이 화물터미널은 규모에 비해 ‘있을 건 다 있는’ 똑똑한 터미널이다. 특수화물 보관설비는 물론 ‘ㅅ’ 모양의 내진설비도 갖췄다.

 

 

 

 

 

 

 

현장에서 듣는 조종사의 세계
[중앙일보]
시차와의 전쟁 … 외국 가도 한국 시간 맞춰 수면
불시 음주 검사 … 한 주에 막걸리 2병이 최대량

 


항공기 조종사는 그리스 신화 속 이카로스의 꿈을 실현시킨 사람들이다. 직업 중에 유일하게 자신의 손으로 하늘을 나는 조종사의 세계는 늘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 돼 왔다. 화물기를 타고 인천공항을 출발해 앵커리지·마이애미·뉴욕·브뤼셀·밀라노·나보이를 거쳐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는 동안 여러 명의 기장을 만날 수 있었다. 조종사는 과연 어떤 직업일까, 어떤 보람과 애로사항이 공존할까. 대한항공 조종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① 공중에선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조종사는 매번 자신의 비행에 모든 걸 건다. 대한항공 민병주 부기장이 이륙 전 조종석에 앉아 차트를 보며 곧 있을 비행을 준비하고 있다. ② 조종사는 고된 직업이다. 탕킨팽(57·말레이시아) 기장이 업무를 교대하고 조종석 뒤 좌석에서 잠을 청했다. ③ 모든 음식은 기장이 직접 챙겨 먹는다. 식사는 대부분 고열량·고단백식이다. “별로 안 움직여도 때가 되면 배고프다니까요….” ④ 1979년부터 비행기를 조종한 로바츠(53·브라질) 기장이 가장 사랑하는 세 가지. 가족과 비행, 그리고 한국의 신라면 컵라면. [박종근 기자]

●얼마나 근무하나

 갈흥룡(59) 기장: 한 달에 순수 비행시간만 75~80시간이다. 근무시간은 그 두 배고. 1년이면 1000시간 비행에 2000시간 근무라고 보면 된다.

 홍인수(44) 기장: 인천공항으로 한 달에 세 번만 출근하면 월급이 나온다(웃음). 그동안 세계 각지에 머물며 다음, 또 다음 비행을 하니까.

 최종용(59) 기장: 조종사 정년은 55세지만 재계약이 가능해서 몸 관리만 잘하면 60세까지는 거뜬하다.

●여객기와 화물기는 선택사항인가.

 민병주(49) 부기장: 아니다. 보통 여객기 반, 화물기 반 비행을 한다. 개인적으로 화물기가 편하다. 승객들이 타면 신경이 더 쓰인다.

 

 홍인수 기장: 여객기를 선호하는 조종사도 있다. 여객기는 항로가 단순하다. 승객들 데려다 주고 돌아오면 된다. 그런데 화물기는 여기저기 찍고 와야 하니 힘들다.

●가장 힘든 점은.

 김창룡(41) 부기장: 시차다. 처음에는 비행하고 집에 가면 이틀 동안은 너무 힘들었다. 체력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다.

 조세훈(38) 부기장: 장시간 좁은 조종석 의자에 앉아있다 보니 배도 나온다. 교대할 때 스트레칭도 해 보지만 이 시간에는 자둬야 하니까 몸을 움직일 기회가 별로 없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갈흥룡 기장: 체력이 생명이다. 쉴 때마다 ‘의무적’으로 운동을 한다. 지금은 나이가 있어서 걷기를 많이 하지만, 전에는 골프·등산·사이클도 많이 했다. 또 물을 많이 마신다. 4시간 비행에 1.5L 한 통은 마신다.

 김창룡 부기장: 외국에 가서도 ‘한국시간’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밥도 한식 먹고, 잠도 한국이 밤일 때 자려고 한다. 시력·몸무게·체력관리 모두 철저히 해야 한다.

 민병주 부기장: 술은 되도록 자제한다. 일주일에 막걸리 2병 정도가 최대다. 조종사들은 규정에 따라 무작위(전체 5%)로 음주측정도 한다.

●조종사가 좋은 점은.

 김창룡 부기장: 민항기 기장이 꿈이라 항공대에 들어갔다. 실제 해보니까 힘들긴 해도 어느 정도 꿈을 이룬 것 같다. 그게 어딘가.

 로바츠(Lovasz·53) 기장: 난 브라질 사람이다. 아버지도 파일럿이었다. 브라질에서는 비행 자격증 가진 사람이 100만 명에 한 명이다. 그것만으로 얼마나 멋진가.

 최종용 기장: 많은 것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좋은 직업이다. ‘자기 팔 자기가 흔들고 다닌다’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조종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병주 부기장: 끊임없는 훈련과 연습이다. 위급 시에 거의 반사적으로 대응해야 하니까. 공중에서는 지각능력이 지상에서의 30%밖에 안 된다. 외국에서 사고 난 비행기 블랙박스 분석해보면 우리끼리도 ‘아니, 왜 이걸 가지고 사고가 났지?’라며 안타까워한다. 결국 생각이 안 나도 무의식적으로 대응이 되게 죽어라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

 김창룡 부기장: 정신력이다. 극한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게 말이다. 뭔가를 지적받아도 서운해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딛고 클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몰랐던 화물기와 조종사의 세계

* 화물기의 제1원칙은 ‘짐은 많이, 연료는 적게’다. 처음부터 많은 연료를 싣지 않고 여러 공항을 거치며 급유를 하는 것도 그만큼 화물을 더 싣기 위해서다.

* 공군 출신 조종사는 전투기를 몰던 습관 때문에 착륙을 거칠게(?) 한다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안전을 생각할 때 ‘쿵’하고 떨어지며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펌 랜딩(firm landing)’이 착륙의 정석이다. 다만 여객기는 승객들이 불안해할까 봐 부드럽게 착륙하기도 한다.

* 공항 활주로 옆은 주로 푸른 잔디밭이다. 실수로 잔디밭에 착륙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실은 매우 위험하다. 부드러운 지면에 착륙하면 비행기 무게에 바퀴가 눌려 아래로 푹 가라앉아 무게중심을 잃은 비행기가 뒤집혀버릴 수 있다.

* 요즘엔 컴퓨터가 자동으로 조종하는 ‘자동항법장치’가 잘 발달돼 있다. 심지어 착륙도 자동으로 할 수 있지만 이륙만큼은 반드시 조종사들이 수동으로 해야 한다.

* 화물기엔 승무원이 없기 때문에 조종사들이 직접 음식을 데워 먹어야 한다. 도시락·육개장·양식·비빔밥 등 보통 두세 종류가 실린다. 커피와 과일 등 후식도 있지만 술은 절대 반입금지다.

 

조종사가 되는 법

조종사가 되는 길은 크게 세 가지다.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군에서 조종사 경력을 쌓거나, 민간 비행훈련 과정을 거치거나, 해외에서 조종면허를 따는 것이다. 군을 제외하고 가장 빠른 방법은 한국항공대학교나 한서대학교 항공운항학과에 입학해 각 대학에 개설된 조종사 양성프로그램을 마치는 것이다. 두 학교는 매년 약 100명의 학생을 선발하는데 경쟁률이 10대 1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일반 4년제 대학 졸업자라면 전공에 관계없이 항공대 부속 울진비행훈련원의 민항공 조종사 양성과정(APP)을 들으면 된다. 하지만 비용이 총 2억원가량으로 무척 비싸다. 지난해 대한항공 노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기장의 초봉은 1억2000만원(세전) 수준이지만 비행수당에 따라 차이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글=이소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