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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헌, 공판 끝난 뒤 主思派 이시우와 악수 나눠

淸山에 2012. 6. 30. 06:50

 

 

 

 


강종헌, 공판 끝난 뒤 主思派 이시우와 악수 나눠  
 
 
 李씨, 과거 利敵단체 '노민문연'에서 활동
김필재(조갑제닷컴)    
 
 


이시우(본명: 이승구)/사진출처: 진보블로그


 
[1] 기자가 28일 오후 ‘강종헌 재심공판’ 법정에 도착했을 때 방청석에는 2명의 낯익은 인물이 있었다. 한 인물은 일본의 모 신문사 서울지국 기자로 한국어가 유창한 일본인 B기자, 그리고 사진작가 이시우(본명: 이승구)씨 였다.

B기자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반도 문제를 취재해온 젊은 기자로 수년 전 모 保守성향 탈북자 단체장의 생일파티에 초대됐던 인물이다.

 

그는 이날 공판이 끝난 뒤 강종헌 씨와 따로 인사를 나누었다. 강 씨는 이시우 씨와는 악수를 나누었는데, 이 씨는 강 씨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과거 주한미군 시설과 훈련 상황을 찍은 뒤 인터넷 등에 올려 국가기밀을 누설한 혐의(국보법 위반 등)로 2007년 구속됐던 인물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2004년 진해에서 美핵잠수함을 촬영하는 등 오산·포항·군산·의정부 등의 미군기지에서 화학무기, 열화우라늄탄 등과 관련한 3급 군사기밀을 수집하거나 군사 시설물을 찍어 자신의 홈페이지 등에 올린 혐의를 받았었다. 당시 경찰은 “이 씨는 2004년 6~8월 일본으로 건너간 뒤 親北 인사의 도움을 받아 주일 미군 기지를 답사하며 ‘UN사령부 해체를 위한 韓日 연합’ 설립을 추진한 혐의도 받고 있다”고 했었다.

 

경찰은 또 “이 씨에 대한 수사 내용이 알려지면서 이 씨가 군사시설 촬영사진 필름 등 여러 증거자료를 친구에게 부탁해 인천 강화군에 숨기기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비슷한 시기 <조선일보>는 “이 씨가 주요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아온 ‘해외인사와 민간 통일단체 간부 등과 접촉하면서 관련 자료를 공유해온 의혹도 받고 있다”고 보도했었다. 

 

그러나 서울고법 형사2부는 2008년 12월30일 이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구체적으로 당시 재판부는 “군사상 기밀 수집 및 탐지와 관련해 일부 사진은 기밀누설에 해당되는 등 부적절한 사실이 있지만, 큰 틀에서 원심의 판단이 옳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서울지법 제27형사부 이시우 판결문(사건번호: 2007고합558, 기사하단 관련자료 참고) 요지에는 이 씨의 과거행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피고인은 1986. 3.경 서울 소재 신구전문대학 사진과에 입학하여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후, 1988. 11.경 문화예술운동을 통하여 노동자들을 의식화시켜 사회변혁세력으로 성장시키려는 단체인 한국문화운동연구소(이하 ‘한문연’이라 한다.)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90. 9.경 한문연을 발전적으로 해체하였다. 그 후 피고인은 북한 노동당 전위조직인 한국민족민주전선(이하 ‘한민전’이라 한다.)의 실천강령인 반미 자주화․반파쇼 민주화․연방제 조국통일 노선을 지지함으로써 문화예술을 혁명무기화하고, 조직원들을 주체사상에 기초한 문예창작원리인 김일성의 주체문예이론과 김정일의 종자론에 입각하여 문예창작활동을 하도록 의식화 학습시켜 혁명의 주력군으로 양성, 제국주의 문화침투 전략에 맞서는 문화전선을 구축하여 노동운동가 및 현장활동가 등 민중주체들을 총동원하여 민중봉기를 일으켜 정부를 타도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강령․규약으로 채택한 NL계 이적단체 노동자민족문화운동연합(이하 ‘노민문연’이라 한다.)을 구성하여 중부지부장, 의장대행 등으로 활동하다가 노민문연 구성 등의 사실로 1994. 10.경 국가보안법위반죄로 검거되어 1998. 9. 4. 대법원에서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이 확정되었다.》
 
이시우 “국보법 약 올리는 운동 벌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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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판이 끝난 뒤 이시우(사진 중앙) 등 지인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강종헌(사진 맨 오른쪽 인물)/조갑제닷컴 


[2] 국보법폐지론자인 이시우 씨는 ‘국보법폐지국민연대’가 2008년 인권위에서 개최한 <참여정부 보안법 적용실태 보고, 보안법 폐지운동 현황과 과제> 토론회에서 보안법 조항을 일부러 위반하며 그 허구성을 폭로하는 운동을 펼칠 것을 주장했었다.

이 씨는 당시 토론회에서 “국가보안법과 관련, 수세국면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우리가 보안법을 버거워하는 만큼 상대도 버거워하고 있다”며 “보안법 폐지와 관련, 유리한 지형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조갑제닷컴> 2008년 3월5일자 보도)

 

이 씨는 이어 “그동안 보안법 투쟁은 ‘당하는 싸움’으로 정착되어 왔지만, 우리가 주도해서 압박·공격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국보법은 북을 적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두들겨 잡아야할 적은 잡지 못하고 보호해야 할 국민을 잡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보법 투쟁의 한 사례로 ‘이적표현물 소지운동’을 제시했다. 1만 명 이상이 국정원·중앙도서관 등에서 북한 관련 자료를 대출받고 복사, 이적표현물을 가지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오히려 국보법상 ‘이적표현물’ 처벌 존립근거가 무너졌음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보법 ‘찬양고무’ 조항과 관련해서는 “저에게 찬양고무를 적용한 근거는 이른바 모자이크 이론”이라며 “이 논리를 역대대통령, 보수우익 인사 어록에 적용해 주체·자주·자력갱생 등 표현을 쓴 박정희 등을 고발하는 운동을 하자”고 주장했다.

利敵단체 구성에 대해서도 “일심회 조작사건에서 조직은 3인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선노동당 서울지부를 2명이 결성하면 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보법을 약 올리면서 가지고 노는 운동을 펼쳐 자신감을 얻고 새로운 데이터로 축적하는 운동을 제안하고 싶다”고 했었다.

 

사진/취재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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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장氏 "강종헌, 벌벌 떨고 있다는 생각들어"
 
 
 사형수로 만났던 김현장-강종헌, 재심 공판서 증인-피고인으로 만나
김필재(조갑제닷컴)   
 
 
 
‘못 잊을 친구 종헌에게’라는 제목의 <조갑제닷컴>기고문을 통해 4.11총선 통진당 비례대표 후보 강종헌의 정체를 폭로했던 김현장 씨가 28일 법정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섰다.

이날 오후 서울고법 303호 법정에는 이정희 통진당 前 대표의 남편이자 변호사인 심재환 씨가 강 씨와 함께 변호인 석에 앉아 있었다. 김현장 씨는 1982년 부산 美문화원 방화사건 배후 조종 혐으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강 씨는 1975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기소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던 인물이다. 두 사람은 80년대 중반 대전 형무소와 대구 형무소에서 함께 수형 생활을 하며 친분을 맺었고, 1988년 같은 날 특별사면으로 출소했다.

이후 두 사람은 최근까지 서로 관계를 끊고 지냈다. 그러던 중 김현장 씨는 지난 4.11총선에서 통진당 비례대표 18번으로 강 씨가 출마한 것을 확인했다. 김 씨는 고민 끝에 인터넷에서 편지의 형식을 빌려 강 씨가 70년대 초 “평양에 가서 초대소에서 지도원과 함께 생활했다”는 이야기를 과거 형무소 생활 중 강 씨 본인으로부터 들었다는 내용을 폭로했다.

출소 후 일본으로 추방된 강 씨는 대한민국 대법원이 反국가단체로 판정한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조국통일위원장을 지냈고, 역시 利敵단체로 분류되는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해외본부 사무처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1심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했으나 2심 재판에서부터 “고문에 못 이겨 (북한에) 갔다 왔다고 허위 진술하게 된 것”이라고 말해왔다.

김현장 씨는 이날 증인신문 내내 강 씨를 “종헌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3~4미터 옆에서 심재환 변호사 바로 옆에 앉아있던 강 씨는 2시간 동안 이어진 공판 내내 김 씨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김 씨가 자신(강종헌)의 어머니를 형무소에서 만났을 때의 상황을 증언하자 잠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 씨는 강 씨와의 친분을 밝히기 위해 과거 함께 찍은 사진을 법정에서 공개하려 했으나, 재판장 중재로 증거채택 여부가 연기됐다.

검사 측은 이날 그동안 김현장 씨가 <조갑제닷컴>에 기고한 공개서한을 중심으로 ▲수형 생활 중 강 씨가 김 씨에게 자신이 入北해 노동당에 가입했다고 말했는지의 여부 ▲강 씨가 재판과정에서 평양에서 밀봉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말했는지의 여부 ▲入北당시 캄보디아 시아누크 환영축하 공연장에 다녀왔다는 것을 말했는지의 여부 등에 대해 집중 질문했다.

김현장 씨는 검사의 질문에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는 형무소에서 강 씨가 자신에게 노동당에 입당한 것을 밝힌 이후에도 수형생활 내내 친구로 지내며, 강 씨를 호칭할 때 아예 ‘도인’(黨員(とういん)의 일본어 발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날 법정에서 김 씨는 검사의 마지막 질문이 끝난 뒤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 편지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이후 종헌이가 이를 반박하는 인터뷰를 했는데 어이가 없었다. 내가 머리가 아무리 안 좋다고 하더라도 종헌이가 기소장에 있는 내용을 얘기한 것과 평양에 갔다 온 것을 자랑했던 걸 구분 못 하겠는가! 난 (종헌이를) 호랑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는데, (종헌이의) 반박문을 보고 벌벌 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3석을 얻은 진보당 비례대표 18번 이니 종헌이의 발언은 충분히 이해한다. 재판부에서 판단하길 바란다.”

사진/취재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조갑제닷컴>

[관련칼럼] 김현장이 강종헌에게 보내는 편지
http://www.chogabje.com/board/subcon/list.asp?c_cc=F1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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