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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이제 보이기 시작합니다! 國民의 각성 [만평]

淸山에 2012. 6. 28. 21:21

 

 

 

國民의 각성

[만평]

 

 

앗~! 이제 보이기 시작합니다!

 

 

千葉武士(토론방)

 

 

기사본문 이미지

 

 

 

 

 

'從北 통진당 실세' 이석기의 악질 코미디

 

極惡(극악)을 범하고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당당하게 웃을 수 있는 것 이것이 악마의 屬性(속성)이다

朴承用

 

인간은 진리에 대한 인식능력이 대단히 부족하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진리는 언제나 반투명상태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錯視(착시)에서 벗어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소크라테스 같은 위대한 철학자나 셰익스피어 같은 문학적 천재들의 생각인 것 같다:

〈實在(실재, reality)는 안개 속의 사물처럼 視野(시야)에 명료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실재는 私的(사적)이고 개인적이며 자신에 대한 實在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타인은 한 개인의 실재에 대해서는 겉모습만 볼 수 있고 實在의 진정한 의미를 결코 파악 할 수 없다. 사람은 타인 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명확한 이해가 부족하다. 삶은 안개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 골딩)

〈인생은 체계적으로 배열된 긱팸프(gig lamps, 2륜마차용 램프. 양쪽에 하나씩 있음)가 아니다. 인생은 의식의 처음부터 끝까지 반투명 外皮(외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빛나는 圓光(원광)이어서 實在는 안개 속의 태양이나 램프처럼 희미한 원광으로 보인다.” 〉 (버지니아 울프)

서양철학의 元祖(원조)인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만 내가 다른 사람보다 현명하다”고 말했었다. 그는 또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달한 사람만이 지식에 대한 갈망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이러한 갈망이 도덕적이고 지혜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했다. 無知(무지)의 인식이 지적 탐구와 도덕적 覺醒(각성)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지적인 오만이나 도덕적인 獨善(독선)에 사로잡혀 지식과 지혜와 정신적 修養(수양)에 대한 갈망이 증발해 버리면 인간은 무지하고 추악한 괴물로 전락하는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또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고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면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심지어 열렬히 주장하고 투쟁까지 하면 착각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정도는 다르지만 정신병자처럼 錯視(착시)와 오판과 妄行(망행)과 虛言(허언)의 笑劇(소극)을 연출하게 된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위대한 悲劇(비극) 《맥베스》에서

〈인생은 실체가 없는 하나의 망령에 불과해, 무대 위에서 자신에게 배당된 시간 동안 뽐내며 걷고 안달하다가 그 소리조차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불쌍한 배우이지. 인생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야. 음향과 분노로 가득 찬,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야기이지〉

라며 인간을 뜻도 모를 소리를 지르는 코미디를 연출하다가 허망하게 사라지는 喜悲劇的(희비극적)인 존재로 그리고 있다.

교양이 있는 사람은 인간의 삶의 이야기는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로서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맥베스의 한탄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사물의 판단에 있어서 誤謬(오류)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으며, 자신의 가치판단 능력이 백치의 수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獨斷(독단)의 愚(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성에 대한 이해가 깊은 교양인은 偏向(편향)과 독선과 광신을 경계한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實在마저도 안개속의 사물처럼 희미하게 보이기 때문에 인간은 진리 파악이 거의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실재에 근접이라도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독선이나 독단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참작하여 진리에 대한 近似値(근사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즉 다양한 관점의 공존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적 思惟(사유) 방식이 그나마 실재에 도달하는 최선의 방책일 것이다.

事物(사물)에 대한 인식능력이 거의 全無(전무)한 백치가 자신의 생각과 주장만이 진리라고 외치고 나서면 笑劇(소극)이 벌어진다. 백치의 독선과 독단은 최대의 코미디다. 狂信(광신)의 정도가 높을수록 우스운 꼴이 된다. 여기에 憎惡(증오)까지 곁들이면 코미디는 이내 악마로 변형된다. 증오는 인간성에 내재하는 惡의 추진 동력이며 악마는 증오의 불길에 기름을 붓기 때문이다.

한국의 從北세력은 최고 악질의 코미디언들이다. 이들은 독단과 독선과 광신의 ‘백치’들로 교양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막가파’ 악질 코미디언들이다. 이들은 탈법, 비합법, 사기, 속임수, 폭행, 탈세, 난동 등 상상가능한 모든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온갖 惡行(악행)을 저지르면서도 죄의식은커녕 先覺者(선각자)나 되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악마가 聯想(연상)된다. 악마는 죄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叛逆徒黨(반역도당) 통진당 實勢(실세)라는 이석기의 妄行(망행)과 虛言(허언)의 笑劇(소극)은 우습기도 하고 소름도 끼친다. 極惡(극악)을 범하고, 범하고 나서도, 만인의 비난을 받고 있는 중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당당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이것이 악마의 屬性(속성)이다.

이는 그리스도를 시험하던 聖書的(성서적)인 사탄이나 화려한 논리로 이브를 유혹하던 밀톤的(Miltonic)인 고급 악마가 아니라 可憎(가증)스러운 ‘三流(삼류) 악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