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공산혁명만이 목적이었다" 최홍재 "내가 잘못 알아도 너무 잘못 알았다" 코나스
''약자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그것은 우리사회를 혁명을 일으켜 공산주의사회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당시)자유민주주의체제로 해서 되는 것도 없고, 이것은 아니다하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기성세대를 믿지 못하고, 민주주의를 거꾸로 하면 진실이 될 것이라는 생각과 그렇다면 공산주의를 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갖게되니 단 하루, 한시간이라도 빨리 오직 혁명을 해야겠다고 했습니다. 기성세대나 정부에 대한 분노가 거침이 없었습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자주통일부장'을 지내면서 주사파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최홍재 (사)시대정신 이사가 자신이 학생운동을 하게된 계기를 이같이 설명했다.
최홍재 이사는 14일 국제외교안보포럼(이사장 김현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제565차 조찬 포럼에서 80년대 후반 이후 학생운동 양상과 함께 최근 부정경선으로 불거진 통합진보당 사태 등을 과거 학생운동과 연계했다.
▲ 최홍재 시대정신 이사. 최 이사는 이 날 '종북세력의 실체와 대응'을 주제로 강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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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이사는 지난 1987년 민주화운동 당시 학생운동을 전대협이 이끌고 주사파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해 학생운동을 장악했으며, 그 때 학생운동은 화염병 투척이 아닌 길바닥에 누워 독재타도를 외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번 시위를 하게되면 적게는 2만에서 많게는 10만 명이 모였으며, 인원수의 많고 적음은 당시의 경찰이 어떻게 시위에 대응했느냐에 달랐다고 말했다. 또 이와 함께 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평양과 서울에 직통전화를 가설해 상호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학생 시절 가난했던 가정사와 일용직 목수 일을 하던 부친으로부터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가난했기 때문에, 그래서 또 가진 자로부터 밀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억울함도 당해야 했고, 해서 사회고발을 위해서도 기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며, 하지만 당시 사회적 구조가 고발을 할 정도로 만만치가 되지 않았다고 문제들을 지적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을 돌이키면서 이후 학생운동에 빠지게 된 사실을 전한 최 이사는 80년대 후반 치열했던 학생운동은 세계 어느 나라를 되돌아 봐도 그렇게 치열한 나라가 없었다며 그 당시 학생운동권의 명암과 최근 통진당 관련자들의 행동을 연계시켰다.
하지만 그가 주사파 중심에서 전향하게 된 계기가 1995년 북한 내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굶어 죽어 두만강에 떠내려가게 된 사실을 목격하게 되고, 주사파의 대부로 '강철서신'의 김영환씨가 문제를 제기하고, 북한에서 주체사상을 실질적으로 창시하고 망명한 고(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 스스로가 판단을 잘못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그 때 그 주검들을 보면서 미치는 줄 알았다. 내가 잘못 알아도 너무 잘못 알았다'면서 그야말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픈 심정이었다고 토로했다.
더불어 '주사파를 신봉하는 후배들에게 관련 사실을 일깨우고, 더 이상 한국을 식민지사회로 보거나 북한을 이상사회로 본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전하게 됐고, 그래서 북한인권운동에 나섰다'며, 이후 운동권에서는 최홍재 경계령이 내려지기도 했다고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지금 한국은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민주주의이고, 남은 것은 북한인데도 여전히 이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자기 합리화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한 최 이사는 '문제가 북한 때문이 라고 하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라며 근본 원인을 '역사인식' 때문이라고 했다.
즉, 북한정권은 항일투쟁에 의해 이루어진 정권이고 남한은 친일세력들이 탄생시킨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 이사는 '현재 직업적으로 모든 것을 걸고 대한민국은 식민지 국가, 북한은 이상주의 국가로 보고 활동하는 종북주사파 세력들이 200명, 생활인으로 돌아가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활동하는 세력이 2000명, 그리고 광우병 관련 데모시위 참가자들 같이 학습되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약 30만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군 장갑차에 사망한 효순·미선 양 사건 당시 반미 데모나 2008년 광우병 관련 모두가 완전한 거짓말이라고 강조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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