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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骨지식인으로 ‘改宗’한 엘리트 외교관의 ‘忠言’을 담은 책

淸山에 2012. 6. 17. 21:00

 

 

 

 

 

反骨지식인으로 ‘改宗’한 엘리트 외교관의 ‘忠言’을 담은 책 
  
 趙甲濟 대표의 《2012혁명》 독후기

趙甲濟    
 

 

독서취향이 같은 사이


李長春 대사와 필자는 살아온 길이 많이 다르지만 같은 점도 많다. 지난여름 李 대사가 장서를 정리하였다면서 여섯 뭉치의 책을 묶어 놓았으니 가져 갈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택시를 대절하여 책을 실어와 필자의 오피스텔에 옮겨놓고 묶음을 풀어 보았다. 필자가 이미 구입하여 읽은 책이 열권 쯤 되었다. 퓰리처상을 받은 트루먼 전기, 콘돌리자 라이스의 독일통일에 대한 名著, CIA 관련 책 등등. 傳記, 戰史, 외교사, 정치사상 관련 책들이 主流였다. 필자와 독서취향이 이렇게 같은 이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 때가 10월 초 연휴 직전이었는데 李 대사는 여행지를 추천해주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산악 기차 여행을 방불케 하는 코스”라고 했다. 오스트리아 대사 출신의 추천을 믿고 간 곳은 강원도 정선군의 ‘하이원 호텔’이었다. 해발 1100m로서 한국 最高 위치 호텔이다. 청량리-원주-제천-영월-고한의 철도여행은, 무르익는 陽明한 가을 들판을 거쳐 아기자기한 계곡을 지나 험준한 강원도 산맥을 타고 高原지대에 이르는 환상적 한국紀行이었다. 李 대사가 추천해준 두 군데의 음식점은 맛이 소박하고 값도 적당했다.


독서취향과 미적(美的-味的) 감각이 서로 통하는데다가 역사관·이념관·時局觀은 대강에서 일치하여 和而不同(화이부동)할 수 있는 사이라 지난 10여 년간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특히 漢字말살과 한글專用이 가져온 韓國語와 교양의 파괴가 萬惡의 根源이란 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사이이다. 보수적 지식인들 가운데서도 한글專用의 폐해를 이념적으로 들여다보는 이들이 희귀한 가운데 李 대사는 필자보다도 더 개탄하는 분이니 이 점에선 同志的 관계라 할 만하다.


용수철

李 대사와의 인연도 글을 통해서였다. 필자가 편집장을 맡고 있던 <月刊朝鮮>(2000년 3월호)이 그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金玄浩 기자는 <한 고참 현직 大使(대사)가 우리 외교부의 人事(인사) 문란과 조직의 난맥상, 이에 따른 총체적 외교 역량의 허약성을 강도 높게 공개적으로 비판한 뒤 사표를 던졌다>고 썼다. ‘조직에 칼을 꽂는 거냐’는 격한 반응도 일부에서 나왔으나 동기야 어쨌든 그의 지적은 외교부를 아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면서 李 대사를 이렇게 소개했다.


<李長春 대사의 외교부內 별명은 ‘long(長) spring(春)’. 그러나 여기서 ‘spring’은 봄이 아니라 용수철이다. 평소 ‘돌출 행동’이 많아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외교부의 공식 입장과 다른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1998년 초 정부 조직 개편 때는 외무부의 통상업무 장악 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외교부內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행동이 조직인으로서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그가 ‘소신파’라는 데 대해서는 異見(이견)을 달기 어려워 보인다.

李 대사는 40세이던 1980년부터 청와대 외교안보 담당 정무비서관을 약 3년간 지냈고, 3개국(오스트리아-싱가포르-필리핀) 대사와 국제기구조약국장 및 외교정책기획실장을 역임하는 등 요직을 많이 거쳤다. 일에 대한 의욕도 왕성하다는 評(평)을 들었다. 그만큼 우리 외교 현실에 대한 풍부한 현장 경험과 識見(식견)을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다>

 

 

2000년 6월의 김대중-김정일 회담과 6·15 선언 이후 李 대사와 대화를 나누는 횟수가 늘었다. 그는 6·15 선언을 ‘국가 正體性의 變造(변조)기도’, ‘逆謀(역모)’라고 규정하는 글을 <월간조선>(2002년 7월호)에 기고하였다. 그의 분노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것이다.

盧武鉉 후보가 金대업의 사기적 폭로․ 新행정수도 건설로 위장한 首都(수도)이전 공약·鄭몽준과의 단일화 쇼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 2002년 12월의 우울한 연말 어느 날 李 대사와 필자, 그리고 徐貞甲 대령연합회 회장(現 국민행동본부장)은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를 고민했다. 그 뒤 애국단체의 大衆집회장에서 자주 그를 만나게 되었다.


“과거는 감당하기 쉽고, 현재와 미래는 벅차다”


국민행동본부 주최 월례 강좌가 2006년 3월21일 서울 종로5가 소재 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열렸고 이날 강사로 초빙된 李長春 대사는 ‘홍색反逆의 물결’이란 제목의 강연을 했다. 준비된 연설문을 읽어내려 간 그의 강연은 관중들을 사로잡았다. 필자는 -金大中·노무현 좌파정권의 반역성을 정확하게 짚고 한국의 ‘어린民主主義’가 당면한 과제를 깊게 분석한 기록으로- 그의 연설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名文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의 본질을 가차 없이 지적하고 代案까지 제시한 글이었다. 李 대사의 글을 모은 이 책에서 이 연설문은 가장 중요한 문서이고 6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에서 ‘살아 있는 글’이다. 이 글은 정치적·역사적 관점에 문학적 표현을 더해 손에 땀이 날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무엇보다도 예언적이다.

그는 연설의 서두에서 <사실상의 國庫强奪(국고강탈)로 2000년의 소위 남북정상회담을 買收(매수)한 金大中의 ‘햇볕政權’이 감행하기 시작한 권력의 反逆은 盧武鉉의 ‘촛불政權’에 의해 세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고 규정했다. ‘퍼주기’로 북한의 공산왕조를 살리고 聯邦制(연방제)로 한국의 국가정체성을 변조하는 利敵(이적)반역, 그 연장으로서 국가안보와 통일을 볼모로 잡는 反美반역, 그 중에서 가장 집요하고 소모적인 것은 한국의 어린民主主義를 농락하는 反民(반민)반역이 진행 중이란 분석이었다.

 

李 대사는 노무현 정권이 역사를 정치적 兇器(흉기)로 악용하는 작태를 이렇게 斷罪하듯 비판했다.

<過去(과거)는 진짜세계가 아닙니다. 소위 ‘過去史(과거사)’라는 말은 歷史(역사)라는 말을 억지로 代用(대용)한 엉터리 造語(조어)입니다. 盧武鉉의 사람들은 진짜세계를 등지고 소위 ‘過去史 청산’을 무기로 권력 플레이에 광분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과거는 감당하기 쉽고 현재와 미래는 벅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占領(점령)에 급급한 나머지 현재와 미래를 팽개치며 과거를 恨(한)풀이 정치의 好材(호재)로 삼고 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와 기적의 어머니


필자는 연설을 들으면서 저렇게 정성을 들인 글을 쓴다고 李 대사가 피를 말렸겠구나 하는 생각에 젖었다. 李 대사는 나중에 외교관의 버릇 때문에 원고 없는 연설은 해 본 적이 없다면서 준비하는 데 한 달 이상 걸렸다고 실토하였다. ‘反共자유민주세력’이 이용할 만한 ‘말의 武器’가 名言名句의 형태로 정리된 대목이 여럿 있었다.


<공산주의가 사망함에 따라 ‘歷史의 종언(the end of history)’이 선고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로 낙착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貧富(빈부)격차의 解消(해소)에는 特效藥(특효약)이 없다는 것이 재확인되었습니다. 오직 경쟁의 원리에 따라 점차적으로 빈부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을 뿐입니다. 빈부에는 萬能藥(만능약)이 없습니다>


<平準化의 副作用(평준화의 부작용)을 경계해야 합니다. 평준화의 後果(후과)는 지독할 수 있습니다. 모두를 鈍才(둔재)로 만드는 ‘平鈍化(평둔화)’와 모두를 가난하게 만드는 ‘平貧化(평빈화)’를 초래하여 결국 모두를 망치는 ‘平亡化(평망화)’로 落伍(낙오)사태를 빚어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불평등은 개인의 타고난 육체적·知能的(지능적)·정서적 차이는 물론 그가 속한 국가의 조건 및 시대여건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을 솔직하게 是認(시인)해야만 진짜세계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李 대사와 필자는 인물관이 비슷하다. 존경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트루먼·레이건·대처·조지 오웰·李承晩·朴正熙·李光耀를 좋아한다. 이날 연설에서 李 대사는 절묘한 표현을 했다. 李承晩을 ‘建國(건국)의 아버지’로 그리고 朴正熙를 ‘奇蹟(기적)의 어머니’로 거침없이 칭송한 것이다.


<그(李承晩)의 탁월한 文士(문사)배경과 그의 투철한 反共思想(반공사상)과 그의 두터운 미국緣故(연고)야말로 한국의 出生(출생)과 生長(생장)을 위한 씨앗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始祖(시조)는 李承晩입니다.

그(朴正熙)는 輸出立國(수출입국)을 향해 유교적 紀律(기율)로 日本式(일본식) 경제모델과 美國式(미국식) 기능주의를 접목시켜 개방형 開發獨裁(개발독재·developmental dictatorship)를 强行(강행)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을 개발도상권의 優等生(우등생)으로 만들었습니다. 不世出(불세출)의 두 영웅이 國民國家(국민국가·nation-state)로서 한국의 國家建設(국가건설·nation-building)을 해냈습니다. 절대로 그것을 예사로 여기면 안 됩니다>


노략질에 가까운 정치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존경심은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한 분노와 경멸로 돌변한다. 이 극명한 대치가 李長春의 연설을 하나의 드라마로 만들었다.


<한국이 처한 國難(국난)의 元兇(원흉)은 朴正熙 이후 네 번째로 권력을 장악했던 金大中입니다. 소위 ‘햇볕정책’의 元祖(원조)로서 북한의 世襲(세습) 독재자 金正日에게 막대한 現札(현찰)과 뇌물을 제공하고 이른바 남북정상회담을 買收(매수)했습니다. 그것으로 反逆(반역)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金大中은 한국의 民度(민도)와 정치풍토를 자신의 立身(입신)을 위해 최대로 악용한 政治鬼才(정치귀재)로 한국이 앓고 있는 국가적 怪疾(괴질)의 主犯(주범)입니다>


이 연설에서 李 대사는 ‘한국의 어린民主主義’라는 그의 新造語를 사용했고 필자는 그것을 자주 써 먹는다.

<소위 ‘민주화시대’ 이후 다섯 번째로 등극한 盧武鉉이 연출하는 정치는 거의 노략질에 가깝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의 어린民主主義에 대한 醜行(추행)을 감행하는데 廉恥(염치)가 없습니다. 性醜行(성추행)만이 추행이 아니고 ‘정치추행’도 추행의 범주에 넣어야 합니다. 개발독재시대에도 감히 貪(탐)할 수 없었던 獨斷(독단)·독선·獨走(독주)·독점·獨食(독식)을 주저하지 않으며 ‘바보상자’ 텔레비전을 현대판 槍劍(창검)으로 씁니다. ‘電波獨裁(전파독재)’라고 할 만합니다>


李 대사는 자신이 ‘從北’이란 용어를 처음 썼다고 주장한다. 이 용어가 민주노동당 탈당파에 의하여 널리 알려지면서 일반화된 것은 2008년 초부터이다. 기독교100주년기념관 연설에서 李 대사는 從北세력을 사실상 ‘붉은 逆徒’로 규정하였다.

<분단을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고 남한 단독정부의 출범을 욕하는 것은 홍색反逆의 상투적 手法(수법)입니다. 망한 蘇聯(소련)에 붙지 않았던 것을 욕하고 굶어 죽어가고 있는 北韓처럼 되지 않은 것을 恨歎(한탄)합니다>

<소위 남측의 ‘聯合制案(연합제안)’이란 것은 문제의 남북공동선언 속에 들어 갈 수 있을 만큼 남한의 國論(국론)으로 채택된 바 없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國憲節次(국헌절차)를 無視(무시)하고 국가의 기본에 관한 것을 권력자의 恣意(자의)로 變造(변조)하는 것은 현대판 逆謀(역모)에 해당합니다.

홍색反逆의 始祖(시조) 金大中은 그런 역모를 감행했습니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소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고 말했지만 문제의 공동선언 속에는 정작 平和에 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 대신 북측의 ‘聯邦制(연방제)’를 위한 들러리로 남측의 '聯合制案(연합제안)'이란 것을 끼워 넣었습니다. “낮은 단계”이고 높은 단계이고 간에 亡(망)해가는 국가와 멀쩡한 국가 간의 연방제란 도대체 言語道斷(언어도단)입니다>


이 연설의 결론은 정치학 교과서에 올릴 만하다.


<한국은 이미 선진사회로 가는 길에 올라섰습니다. 거기로 가는 長征(장정)의 기본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대한 장애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신종 독재세력에 의한 홍색反逆의 紅疫(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紅色反逆(홍색반역)은 개발독재보다 더 나쁩니다. 한국을 괴롭히는 萬病(만병)의 근원은 북한의 共産王朝(공산왕조)입니다. 궁극의 처방은 그 消滅(소멸)입니다>


친구 李明博의 BBK 명함 공개

2007년 11월 22일 대선 투표일을 한 달 여 앞두고 李長春 대사는 친구인 李明博 대통령 후보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이른바 ‘BBK 명함’을, 조갑제닷컴을 통해 공개했다. 그날 밤 李 후보는 李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너가 이럴 수 있나”라고 불만을 토로한 약 35분간 舌戰(설전)이 오고갔다고 한다.


李 대사는 12월엔 민주당의 鄭동영 후보 지지 방송 연설을 했다. 반공적인 李 대사가 친북적인 鄭 후보 지지 연설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보수층에서 쏟아졌다. 그런 비판에 침묵해오던 李 대사가 명함 공개 4주년을 맞아 쓴 글이 이 책에 실려 있다. 李 대사는 자신의 행동을 ‘나에 대한 反逆’이라고 규정하였다. ‘배신자’란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BBK 사건의 진실을 알릴 수 있는 연설 기회를 가지려 했던 그는 진실을 알리는 일을 인간적 義理나 이념보다 우선시킨 셈이다.


鄭동영 지지 연설에도 불구하고 李 대사의 從北 비판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李明博 정부 출범 이후 李 대사는 한나라당 정권에 대한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그보다 從北세력을 더 신랄하게 질타했다. 盧武鉉의 자살과 국민장·김대중에 대한 國葬(국장)에 즈음하여 李 대사가 조갑제닷컴에 쓴 글은 많은 호응을 받았다.


李 대사는 민주주의의 産室인 영국에서 오래 근무했고 그곳에서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을 심도 있게 공부했다. 그 경험에서 李 대사는 늘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강조하고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치주의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1215년 대장전(마그나카르타)까지 거슬러 오르면 영국의 민주주의 발전사는 800년의 年輪을 쌓았는데, 한국은 고작 60여 년이다. 後發 ‘민주국가‘가 공통으로 지닌 ‘未熟’을 어떻게 하면 ‘成熟’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李 대사의 주된 관심사이며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한 자 한 자 心血을 기울인 글

 

李 대사는 나라가 되어 가는 모습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고 그의 글과 얼굴에도 나타난다. 폭 넓은 경험과 깊은 지식과 뛰어난 文筆力이 그를 ‘엘리트 의식의 소유자’로 보이게 하는데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는 ‘엘리트 정신의 소유자’라고 할 만하다. 엘리트는 대체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경향인데, 퇴임 후 외교평론가란 직함으로 활동해 온 李 대사는 반골적 비판정신이 강하고 권위와 권력에 대한 도전을 불사하며 대한민국 체제의 개혁을 강조한다.

 

2011년 가을 李明博 정부가 무역 1조 달러 달성을 홍보하였을 때 李 대사는 ‘亢龍有悔’(항룡유회)란 故事成語(고사성어)로 경계를 삼았다. ‘용이 하늘 끝까지 올라가면 내려갈 길밖에 없게 된 것을 후회한다’는 뜻인데, 한국이 그 성공 神話에 도취해 너무 일찍 피크 타임에 도달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을 네 글자로 표현한 것이다. 韓國語 파괴에 의한 국민교양의 붕괴·국가엘리트층의 약화·公職부패의 극심·從北세력의 법치 파괴와 낭비적 福祉 선동·전체주의 中國勢의 비대화 등 한국의 어린民主主義를 위협하는 이런 장애물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한국의 進路는 막다른 골목을 만날 것이다. 李 대사는 한국이 당면한 위기와 발전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만든 정책代案 즉 ‘대한민국 재건축案’을 이 책에 담고 있다. 그 핵심은 ‘거짓말과 제왕적 대통령의 추방을 통한 참(眞)민주주의 나라 만들기’이다.

 

이 책은 李 대사가 한 자 한 자 心血(심혈)을 기울여 쓴 글을 담고 있으므로 읽는 이들을 긴장시킨다. 한글專用 세대가 쉽게 접할 수 없는 旣成世代(기성세대)식 문장에 영어식 표현을 곁들인 퓨전(fusion)문장이기도 하다. 지난 10여 년의 한국 현대사를 가장 깊게 관찰한 역사적 자료일 만도 하다. 글에서 傲氣(오기)마저 느껴지는 것은 李 대사의 타고난 ‘孤獨(고독)과 孤寂(고적)의 사치’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세상이 나를 몰라주더라도 나의 글이 다음 세상을 바꿀 것이란 자신감이 없으면 쓰기 어려웠을 글이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경멸하면서 내일을 위한 證言으로 쓴 글 같기도 하다.

 

아직도 이런 글을 쓰는 이가 있고 읽어주는 이가 있으며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면 한국은 아직 희망이 있는 나라이다. ●

 

 

기사본문 이미지 
 
제 목: 2012혁명

출판사: 조갑제닷컴

저 자: 李長春(이장춘)

판 형: 신국판

ISBN: 978-89-92421-80-5

가 격: 12,000원

페이지: 320쪽

출간일: 2012년 1월 30일

 

 


著者는 2012년을,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분수령이라고 말한다. 2012년의 선택에 따라 한국의 미래를 위한 획기적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고 한국을 망치는 최악의 厄年(액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著者는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에 경종을 울리면서 대한민국의 軸(축)부터 바로 잡아야 할 때라고 외친다. 국가 권력의 횡포와 오만을 통제하고, 거짓을 추방하며 법치를 확립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사이비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개혁, 참[眞]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대안으로써 ‘2012혁명-대한민국 재건축案(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의 제안 중 대표적인 10개 항은 다음과 같다.

●정부 예산·조직 동결로 복지亡國 예방 ●전국구 폐지 및 黨중앙공천 폐지 ●대검찰청 해체 ●경찰청 해체 ●대법원장 등 임기12년 보장 ●제왕적 대통령의 철옹성 해체 ●한국은행에 금융감독권 집중 ●국가정보원의 축소로 전문화·非정치화 ●『13년學制』로 점차 무상·의무교육 ●漢字병용 및 전통문화의 재정비·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