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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테랑 정치 타협물 … 유로화, 태어날 때부터 위기 예견됐다

淸山에 2012. 6. 9. 06:23

 

*여기*

 

 

 

 

콜 ·미테랑 정치 타협물 … 유로화, 태어날 때부터 위기 예견됐다
[중앙일보]

 

 
유로화 운명은

 


‘공동체 정신의 상징’. 유럽 대륙 사람은 1999년 갓 탄생한 유로(euro)화를 이렇게 상찬했다. 서유럽인이 국경을 뛰어넘어 유로화를 창조했다는 의미에서다. 바다 건너 영국인은 좀 냉소적이었다. ‘반자연적인 실험’이라고 했다. 영국인이 보기엔 유로화는 자연스러운 1국1통화 시스템이 아니었다. 이런 극단적 평가를 받으며 태어난 유로화가 13년째를 지나고 있다. 유로의 종이돈과 동전이 실제 통용된 건 10년째다.

 

 내부 모순이 드러날 때가 됐기 때문일까. 회원국 간 불균형이 누적돼 끝내 재정위기로 폭발하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4위 경제 대국인 스페인이 구제금융 궁지에 몰렸다. 위기의 진앙인 그리스는 유로존 탈퇴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탈퇴 여부가 17일 재선거에서 사실상 결정된다. 유로화 최대 위기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을까.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ECB) 건물 앞에 있는 유로화 조각상. 바로 옆에 피워 놓은 불이 유로화를 집어삼키는 것처럼 보인다. [중앙포토]<크게보기>

 

 1989년 11월 프랑스 엘리제궁 대통령 집무실에서 고성이 흘러나왔다. 당시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이 참모 앞에서 분통을 터트렸다. 헬무트 콜 서독 총리의 의도를 보고받은 뒤였다. 로이터통신은 미테랑 보좌관의 말을 빌려 “콜이 서둘러 독일 통일을 추진하는 데 대해 미테랑이 벌컥 화를 냈다”고 최근 전했다. 미테랑은 거대한 독일제국의 등장을 경계했다.

 

 콜은 미테랑의 격분에 긴장했다. 프랑스인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려야 했다. 숱한 전쟁을 치른 두 나라가 아닌가. 쓸데없이 경계심만 키워봐야 독일 통일에 득 될 게 없었다. 콜은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섰다.

 

프랑수아 미테랑(왼쪽)과 헬무트 콜


 그해 12월 콜은 미테랑과의 회담에서 당근을 내놓았다. 바로 미테랑이 원한 단일 통화 채택이었다. 대신 그는 “프랑스가 통독을 지지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른바 유로 탄생의 빅딜이 이뤄진 것이다. 단일 통화를 한순간에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는 회원국 간 경제력 차이는 당시 두 사람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유로화가 경제 원칙이나 시장 법칙이 아니라 정치적 타협의 피조물이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콜과 미테랑의 빅딜 이후 지지부진하던 유로화 창조 작업은 빠르게 진행됐다. 2년 뒤인 91년 12월 단일 통화를 도입하기 위한 마스터 플랜이 마련되고 협약(마스트리흐트조약)까지 체결됐다. 앞서 경제 전문가가 20년 가까이 수없이 토론하고 실험했음에도 열리지 않던 단일 통화의 물꼬가 콜과 미테랑의 빅딜로 트였다.

 

 너무 빠르게 수문이 개방된 것일까. 바로 이듬해 단일 통화 실험은 위기를 맞는다. 이른바 ‘검은 수요일’(92년 9월 16일)이다. ‘헤지펀드 귀재’인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 등이 파운드화를 투매해 영국을 굴복시킨 사건이다. 영국은 유럽환율메커니즘(ERM)에서 이탈했다.

 

 ERM은 단일 통화로 가는 중간 단계였다. 회원국 간 환율변동을 2.25% 안에서 억제한다는 약속이 핵심이었다. 영국만이 ERM에서 이탈한 게 아니었다. 이탈리아 등이 줄줄이 환율변동 억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경제 논리로 보면 ERM은 부실한 시스템이었다. 회원국 간 실물경제력의 차이 때문에 빚어진 돈 가치 차이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만으로 좁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또 회원국이 환율변동을 약속한 범위 안에서 유지하기 위해 통화가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재정적자를 줄이려 하면 실물경제가 침체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노먼 전 영국 고용부 장관이 “ERM은 사실상 ‘영원한 침체 메커니즘(Eternal Recession Mechanism)’”이라고 조롱할 정도였다.

 

 영국 금융통화 전문가였던 고(故) 글린 데이비스는 『화폐의 역사』에서 “ERM의 약점은 나중에 탄생할 유로화에 고스란히 유전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요즘 유로존 회원국 간 경제력 차이를 단일 통화인 유로화로 덮으려다 결국 벌어진 사달이 바로 재정위기다.

 

 92년 독일 콜 총리와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다시 정치적 타협으로 문제를 돌파했다. 환율 변동폭을 15%로 넓혔다. 그 덕분에 각국은 경제와 금융정책을 좀 더 유연하게 펼칠 수 있었다. 환 투기 세력과의 싸움에서도 여유로워졌다. 하지만 회원국 간 경제력 차이를 좁히려는 통화가치가 크게 벌어져 나중에 유로화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때까지 정치적 타협은 그나마 이해할 만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유로화 지폐와 동전이 유통되기 꼭 한 해 전인 2001년 유럽 정치 지도자는 터무니없는 타협을 했다. 정부 차원의 회계부정이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그리스를 유로존의 12번째 회원국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마스트리흐트조약은 엄격했다.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3%를 넘으면 고강도 재정긴축에 들어가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리스는 유로존에 가입한 2001년, 겉으론 3% 룰을 충족했다. 대규모 군사비를 누락시키거나 국영 병원의 관리를 장부에 올리지 않는 방식이 동원됐다. 회계에 분칠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그나마 순진한 쪽이었다.

 

 로이터통신은 “2001년 그리스가 미국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와 파생상품 계약을 해 재정적자를 체계적으로 은폐하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른바 이종통화스와프(cross-currency swap)라 불리는 계약이었다. 달러화와 유로화 또는 엔화와 유로화 같은 방법으로 서로 다른 통화로 발행된 채권을 맞바꾸는 계약이다. 전문가 사이에선 아주 단순하고 투명한 파생상품 계약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골드먼삭스는 고객인 그리스 정부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이종통화스와프에 첨단 기법을 하나 추가했다. 그리스가 내놓은 달러화나 엔화 표시 채권을 유로화로 값을 매기면서 시장 가격보다 더 높게 쳐줬다. 그리스 정부가 부채 장부엔 빚 10억 유로를 올려놓고 실제론 12억 유로 정도를 빌려다 쓸 수 있는 요술을 골드먼삭스가 부려준 셈이다.

 

 당시 독일과 프랑스, 유럽중앙은행(ECB) 고위 관계자는 그리스 등이 파생상품으로 창조적 숫자놀이(분식회계)를 한 사실을 몰랐을까. 그리스 재정위기가 표면화된 2009년 12월 독일과 프랑스 경제정책 담당자는 “우리가 속았다”고 한탄했다. 하지만 최근 서방 언론 보도를 보면 그들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슈피겔은 유럽연합(EU) 통계당국인 유로스타트 관계자의 말을 빌려 “유로스타트가 그리스의 부채 축소 사실을 독일과 프랑스 정부에 알렸다”고 최근 전했다.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그 불편한 진실에도 콜과 미테랑처럼 타협했다. 그들은 이른바 ‘최적 규모’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는 ‘통화동맹이 성공하기 위해 회원국이 일정 규모 이상이어야 하기 때문에 그리스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받아들이자’는 주장이었다.

 

 꼭꼭 숨겨졌던 그리스의 참모습이 드러났다. 2004년 그리스가 정부 회계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가 재정적자를 3% 안에서 억제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도 유로존에 가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그리스 총리인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는 기자회견에서 “우리 지하경제까지 포함하면 유로존에 남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그때도 그 진실에 눈감았다.

 

 결국 사달이 벌어졌다. 2009년 11월 그리스가 분식회계 사실을 실토했다. 유럽 재정위기가 표면화됐다. 독일 출신으로 ‘양적완화(QE)’를 개발한 리하르트 베르너 영국 사우샘프턴대 교수는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유로존 재정위기는 ERM 시절부터 좁혀지지 않은 채 정치적 타협에 의해 덮여진 회원국 간 경제력 차이가 가장 파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앙겔라 메르켈(58) 독일 총리는 콜·미테랑과 슈뢰더·시라크 등의 전철을 피하려 한다. 단일 통화의 토대인 재정·금융·노동시장을 통합하고 회원국 간 경제력 차이를 줄이는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회원국의 경제주권을 사실상 제거하는 쪽이다.

 정작 그의 새로운 파트너인 프랑수아 올랑드(58)는 메르켈의 처방에 고개를 젓고 있다. 메르켈의 주장이 이론적으로 사뭇 선명해 보이기도 하지만 올랑드 지지 없이는 실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는 콜이 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닥친 미테랑의 반대와 비슷하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최근 본지가 주관한 경제대담에서 “유로의 아버지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라며 “유로존을 현재 모습대로 유지하려면 현실적으로 정치적 타협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양적완화’의 아버지 베르너 교수는 “메르켈이 결코 유로존 해체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수출에 의존하는 독일이 유로화 덕분에 너무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서다. 대신 “메르켈이 그리스 등에 요구한 긴축을 완화해주고 유로화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메르켈이 유로화 가치를 대폭 떨어뜨려 각국의 실제 빚 부담을 줄여주는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베르너 교수의 예측대로라면 또 한 차례 정치적 타협으로 위기가 덮인다. 유로화의 운명 결정권을 미래 사람에게 넘기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