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 배움/자연 & 환경

까막딱따구리의 임무교대

淸山에 2012. 6. 3. 22:12

 

 

 

 

 

[생태줌인]까막딱따구리의 임무교대

 

주간경향 978호

 


우리나라 딱따구리과 중에 천연기념물 제197호 크낙새가 멸종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제는 까막딱따구리가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까막딱따구리는 천연기념물 제242호로 지정된 새로, 일부 중부, 경기 지방과 강원도 지방에서만 몇 개체가 활동하고 남부지방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이처럼 보기 힘든 까막딱따구리 한 쌍이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구운리에서 텃새로 살고 있다. 부리 하나만으로 섬세한 구멍을 잘 파는 까막딱따구리는 힘이 어찌나 좋은지 나무 파는 작업 소리가 마치 절집의 큰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같이 들린다. 까막딱따구리는 나무 속에서 살아가는 애벌레와 유충을 잡아먹거나 곤충을 잡아먹는다. 애벌레를 잡기 위해 나무에 구멍을 내어 찾아들어가거나 나무껍질을 벗겨내기도 한다.
 

 

둥지 안팎에 있는 까막딱따구리 암수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요즘 까막딱따구리들도 다른 새들처럼 탄생의 계절을 맞아 분주해졌다. 봄이 오면 은사시나무 구멍 내부를 확장해 알을 3~4개 낳는다. 수컷과 하루에 4~5차례 교대로 포란(알품기)에 들어간다.
 
포란 교대식은 아주 치밀하다. 숲속을 다니며 충분한 먹이활동을 한 녀석이 둥지 가까이 다가와 소리를 낸다. 둥지에 있던 녀석은 머리를 내밀어 확인을 하고 다시 쏙 들어간다. 이때 밖에서 소리 내던 녀석이 둥지의 나무에 날아 붙고서야 둥지 속 녀석은 얼굴을 내밀어 잠시 마주보고는 밖으로 날아간다.
 

 

까막딱따구리 어미가 둥지 안을 살피고 있다.

 
이처럼 둥지 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원앙과 같은 다른 새들로부터 둥지를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짝짓기를 하기 위해 둥지를 비워야 할 때도 있다.
 
하루의 마지막 교대로 둥지에 들어가는 녀석은 수컷이다. 수컷은 해가 지면 둥지로 들어와 밤새 알을 품으며 보낸다. 암컷은 둥지 주변에 추가로 파놓은 다른 나무구멍에 들어가 수컷의 배려로 편한 잠을 잔다. 이 같은 일상이 한 달 정도 지나면 둥지 속에서 알이 부화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교대로 둥지로 들어가기 위해 둥지 밖의 까막딱따구리가 둥지 안의 새가 나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올해는 1차 번식에 실패했다. 파랑새로부터 습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까막딱따구리보다 늦게 번식하는 파랑새 녀석들이 둥지가 마음에 들었는지 까막딱따구리 어미들이 짝짓기를 하기 위해 잠시 둥지를 비운 사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까막딱따구리 둥지를 습격해 새끼들을 쪼아 죽이고 만 것이다.
 

 

수컷이 둥지에 돌아오자 암컷이 밖으로 날아간다.

 
둥지로 돌아온 까막딱따구리 어미들은 숨진 새끼들 사체를 물고 날아가 어딘가에 버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2차 번식을 하기 위해 둥지를 정리하고 있다. 파랑새도 주변에서 시시탐탐 둥지를 노리지만 까막딱따구리의 분노에 다시는 접근을 못할 것이다.
 
이재흥<생태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