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강, 희망의 강] (14)미국3-후버 댐
221m '깜짝 규모' 첫목적은 홍수조절, 완공하니 관광명소
우주에 궁극의 에너지원인 ‘큐브’가 존재했다. 이것을 차지하는 자는 우주의 패권을 가질 수 있다. 인류보다 월등히 뛰어난 지능과 파워를 지닌 외계 생명체 로봇들은 큐브를 놓고 전쟁을 벌여왔다. 그러던 어느 날 큐브와 외계 로봇이 지구에 추락한다. 미국 대통령은 큐브와 외계 로봇을 감추기 위한 특별장소를 짓도록 지시한다. 큐브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는 엄청난 두께의 시멘트 구조물. 그것은 ‘후버 댐’(Hoover Dam)이었다.
◆75층 높이의 후버 댐
2007년 개봉된 블록버스터 미국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후버 댐은 외계 에너지와 외계 생명체를 대중으로부터 꼭꼭 숨겨놓기 위한 비밀 장소로 등장한다. 물론 사실은 아니고 후버 댐의 어마어마한 규모에서 착안한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후버 댐은 인류사에 기록될 만한 토목사업 중 하나로 꼽힌다. 1931년에 착공돼 1936년에 완공된 아치형 콘크리트 중력 댐 후버 댐은 높이 221.28m이고 기저부의 두께가 200m에 이른다. 후버 댐은 한동안 세계 최대의 댐 타이틀을 지켰다. 댐을 짓는 데 660만t의 콘크리트가 쓰였는데 이는 아프리카코끼리 100만 마리의 무게에 해당한다.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두 배 반 높이의 피라미드형 건물을 지을 수 있으며, 사용된 콘크리트는 미국 횡단 고속도로를 놓을 수 있는 분량이다.
후버 댐은 라스베이거스에서 50㎞ 정도 떨어진 블랙 협곡에 우뚝 서 있다. 콜로라도 강 중류, 그랜드 캐니언 하류이며 정확히 네바다 주와 애리조나 주의 경계선상에 걸쳐 있다. 댐의 17개 발전기는 연간 4억㎾의 전기를 생산해 미국 서부 각지에 공급한다. 후버 댐으로 인해 미국 최대의 인공 호수이자 유명 휴양지인 미드 호수(Lake Mead)가 생겨났다. 길이 184㎞, 최대폭 16㎞, 둘레 880㎞, 수심 150m인 미드 호수는 미국 서부의 대표적인 국립 레크리에이션 지역으로 사랑받고 있다.
콜로라도 강은 전력 개발, 관개, 홍수 조절, 레크리에이션, 운항 등 강물의 다목적 사용이라는 개념이 시도된 첫 사례로 꼽힌다. 그 첫 단추는 1922년 끼워졌다. 이 해 콜로라도 강 유역에 포함된 미국 7개 주(애리조나`네바다`캘리포니아`와이오밍`유타`콜로라도`뉴멕시코)가 ‘콜로라도 강 협정’을 맺은 것이다. 콜로라도 강의 체계적인 개발과 관리, 물 사용량 배분 등에 관한 기본 골격은 이때 마련됐다.
후버 댐은 이 협정의 첫 결실이다. 1928년 미국 상`하원 의회가 ‘볼더 협곡 계획법’(Boulder Canyon Project Act)을 통과시켰고 후버 댐에 대한 공사의 밑그림도 이 법에 의해 구체화됐다.
◆대공황과 후버 댐
후버 댐은 이름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었다. 알려진 대로 이 댐의 이름은 미국 대통령 후버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볼더 협곡 계획법을 주도한 이가 당시 미국 상무부 장관이던 허버트 후버였던 것이다. 후버는 1929년 31대 미합중국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댐 건설에 강력한 의욕을 보였다.
드디어 1931년, 오랜 준비 끝에 댐 공사가 시작됐다. 댐의 원래 이름은 볼더 댐(Boulder Dam)이었지만, 대통령 후버는 자신의 업적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댐에 붙였다. 그러나 이 이름은 오래가지 못했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으로 인해 그의 재임 시절 미국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후버는 재선에 실패해 1933년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루스벨트는 전 정권이 망친 경제를 되살리겠다며 뉴딜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통한 토목 건설 사업이 주를 이뤘고, 여기에는 후버 댐 건설도 포함돼 있었다. 엄격히 말하자면 후버 댐 사업은 뉴딜 정책 이전에 치수 및 전력 생산 용도로 이미 시작됐지만, 정치적 목적 때문에 뉴딜 정책의 간판 사업으로 편입된 것이다. 루스벨트는 자신의 치적을 부각시키기 위해 후버 댐의 이름을 볼더 댐으로 바꿨으며 1936년 댐 완공식에도 참가했다.
후버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그는 적어도 볼더 댐만은 자신의 치적임을 알리고 싶어 했다. 그의 호소는 루스벨트 정권이 끝나고서야 받아들여졌다. 루스벨트의 뒤를 이은 트루먼 대통령이 1947년 이 댐의 이름을 다시 후버 댐으로 되돌리는 데 찬성한 것이다.
◆명물 후버 댐
미국에는 많은 댐이 있지만 미국인들에게 후버 댐은 사회간접자본(SOC)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1985년 미국 정부는 후버 댐을 ‘내셔널 히스토릭 랜드마크’로 지정했을 정도다.
후버 댐은 주요시설이 1930년대 디자인 그대로였다. 꼭 필요한 개`보수 외에는 76년 전 지어질 당시 모습 그대로다. 댐 내부 엘리베이터에는 세계에서 가장 육중한 문이 달려 있는데 구리로 도금된 모습이 고색창연했다. 댐 바닥에 건설 당시 인부였던 7형제가 기념으로 박아놓은 7개의 못을 없애지 않고 보존해놓은 모습이 이채로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50여m 아래 댐 내부로 가보니 홍수 조절과 발전을 위한 각종 설비들이 세월의 더께를 이겨내며 잘 작동하고 있었다. 볼트와 너트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만든 지름 9m 강철 송수관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15개 전기회사를 통해 미국 서부 각지로 공급되고 있지만, 뜻밖에도 라스베이거스에 공급되는 비중은 전체 발전량의 2%에 불과했다. 라스베이거스의 경우 네바다 주에 있는 천연가스 발전시설에서 전기를 공급받는다는 것이 이곳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홍수 조절 및 발전이 본래 용도였지만 후버 댐은 연간 8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또한 지금까지 총 300여 편의 영화와 다큐멘터리, TV물의 촬영지로도 등장했다. 후버 댐을 관장하는 ‘로우어 콜로라도 댐 오피스’ 부책임자 로브 스코다스 씨는 “영화 ‘트랜스포머1’은 후버 댐의 외부만 찍었을 뿐 영화에 나오는 내부는 다 컴퓨터 그래픽”이라면서 “‘트랜스포머’ 1`2`3 시리즈 중에선 (후버 댐이 나오는) 1편이 단연 최고”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댐 시설 이곳저곳을 열정적으로 소개하는 그의 몸짓과 표정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후버 댐에서 글`사진 김해용 기자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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