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파헤친 歷史

퓰리처상 '네이팜 소녀' 찍은 사진기자, 당시 회고

淸山에 2012. 6. 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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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팜탄 소녀 탄생한 지 4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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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은 베트남 전쟁 당시 전 세계인들에게 전쟁의 공포와 참혹함을 각인시킨 '네이팜탄 소녀' 킴 푹(49)의 사진이 탄생한 지 40주년을 맞는 날이다.

 

AP통신 사진기자 닉 우트는 1972년 6월 8일, 베트남 사이공 근교 짱 방 마을에서 네이팜탄 소녀의 주인공인 킴 푹을 촬영했다.

 

 당시 촬영된 사진은 미군의 네이팜탄 폭격으로 벌거벗은 채 불길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이다. 사진은 '전쟁의 공포'라는 제목으로 Life지에 실렸고 닉 우트는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후 전쟁의 공포와 고통을 전한 푹의 사진은 전세계에 반전운동을 확산 시키는 계기가 됐다.

 

올해 49세인 킴 푹은 쿠바에서 만난 베트남 유학생과 결혼해 현재 캐나다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과 같은 행복한 삶을 살기까지 어려운 점도 많았다.

 

그녀는 얼굴과 다리를 제외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다. 반경 30m까지 불바다로 만드는 네이팜탄의 위력은 그녀가 살고 있던 마을을 통째로 삼켰고 많은 희생자를 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푹은 자신을 촬영한 닉 우트의 도움으로 사이공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이후에도 17번의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다.

 

전쟁이 결말없이 끝나자 베트남 정부는 킴 푹의 화상을 미군 폭격에 의한 상처라며 대외 선전에 동원했다. 킴 푹은 미군의 네이팜탄 사용을 비난하는 내외신 언론의 인터뷰 대상으로 이용되는 것에 염증을 느꼈다. 결국 신혼여행 차 들른 캐나다에 망명을 신청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킴 푹은 현재 평화운동을 벌이는 전도사가 됐다. 유엔 친선대사, 아동복지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전 세계를 돌며 화상환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강연을 하고 있다.

 

킴 푹과 닉 우트는 지난 1999년 서울에서 열린 퓰리처상 수상작 사진전를 계기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안지은 리포터 [사진=AP,연합뉴스]

 

 

 

 

 

 

 

 

 

 

 

 

 

 

 

 

 

 

 

 

 

 

 

 

 

 

 

 

 

 

 

 

 

 

  

 

 

퓰리처상 '네이팜 소녀' 찍은 사진기자, 당시 회고

"발가벗고 달리던 9세 소녀 죽었다면 자살했을 것"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1972년 베트남전에서 우트 기자가 촬영한 '네이팜 소녀' 킴 푹(가운데)의 사진. AP=연합뉴스

 

네이팜탄 폭격으로 온 몸에 화상을 입은 소녀가 벌거벗은 채 울부짖으며 거리를 내달린다. 후잉 콩 우트(61) 기자가 1972년 6월 8일 촬영, AP통신을 통해 전세계로 전송한 이 흑백사진은 베트남전의 참상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고발해 반전운동의 상징이 됐다. 사진 탄생 40년을 앞두고 AP통신이 1일 우트 기자와 사진 속 주인공인 '네이팜 소녀' 킴 푹(49)을 재조명했다.

 

당시 스물한 살 청년이었던 우트 기자는 교전이 치열하던 남부 짱방지역의 한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그날 병사들이 현장을 벗어나라고 급하게 외치자마자 마을 사원 주변으로 네이팜탄이 날아들었다. 폭음과 불꽃으로 마을이 아수라장이 된 바로 그 순간 가족과 함께 사원에 숨어있던 아홉 살 소녀가 정신 없이 내달렸다. 불길이 왼쪽 팔에 옮겨 붙자 옷도 벗어 던졌다.

 

우트 기자는 공포에 질린 소녀를 보며 셔터를 누른 뒤 푹을 차에 태워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우트 기자는 인터뷰에서 "울부짖던 푹을 보니 울음이 나왔다"며 "내가 돕지 않아 푹이 사망했다면 자살을 생각했을 것"이라고 당시의 충격을 전했다.

 

사진은 공개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당시 AP통신은 벌거벗은 사진을 내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트의 상사가 사진의 가치를 직감하고 송고를 강행했다.

 

폭격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던 푹은 현재 두 아들을 두고 있다. 그는 우트 기자가 찍은 사진의 힘을 깨달았다면서 "사진을 위대한 선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戰 상징 사진 40주년… 두 주인공의 소회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네이팜 소녀' 킴 푹(49)의 사진이 오는 8일 탄생 40주년을 맞는다. 아홉 살 소녀가 벌거벗은 채 절규하며 1번 도로를 따라 피신하는 이 흑백 사진은 후잉 콩 우트(당시 21세) AP통신 기자가 1972년 6월 8일 월맹군과 월남군이 접전을 벌이던 남부 짱방지역 카오다이 사원 근처에서 포착한 것이다.

 

AP통신은 강렬한 사진 언어의 두 주인공을 인터뷰한 내용을 둘의 각별한 인연과 함께 1일 보도했다. 킴은 "그때의 기억으로부터 탈출하려 했지만 그 사진은 오래도록 나를 놔두지 않았다"고 했다. 월남군의 네이팜탄 폭격 후유증으로 극심한 두통과 화상에 시달렸지만, 공산 정권은 제대로 치료해 주지 않고 의사가 되려던 꿈을 꺾었으며 자신을 '선전 도구'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후잉 콩 우트 AP통신 기자가 1972년 촬영한 사진. 킴 푹이 벌거벗은 채 네이팜탄 폭격을 피해 달아나는 이 장면은 베트남전의 비극을 알리는 상징이 됐다.

 

오른쪽은 킴 푹이 2010년 강연을 위해 영국을 찾았을 때 모습이다. /AP뉴시스 데일리메일

 

우트 기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킴이 달리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내가 돕지 않아 그녀가 숨졌다면 자살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찰나의 촬영을 마친 뒤 소녀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내달렸고 진료를 거부하는 의사를 설득해 치료를 맡겼다.

 

우트는 사이공(현 호찌민) 사무실로 돌아가 훗날 퓰리처상을 선사한 걸작을 현상했다. 나신 사진을 다루지 않는다는 AP통신 내규에 부딪혀 사장될 뻔했던 이 사진은 '규칙을 어길 만한 가치가 있다'는 현지 사진 에디터의 판단에 따라 빛을 보았다.

 

킴은 쿠바 유학 중이던 1989년 관광객으로 온 베트남 남성과 만나 3년 뒤 결혼했고 현재 캐나다 토론토 근교에서 아들 둘을 두고 그토록 염원했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둘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킴은 우트의 도움으로 1999년 자서전을 내기도 했다. 여전히 AP에서 근무 중인 우트는 "킴을 '내 딸'이라 부른다. 그 사진은 그녀를 구했고 시험에 들게도 했고 마침내 해방시켰다"고 말했다. 킴은 "이젠 그 사진을 위대한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40년 후의 '네이팜의 소녀'와 사진기자
기사등록 일시 [2012-06-03 08:21:30]

【부에나파크(캘리포니아주 =AP/뉴시스】40년전 베트남전쟁의 참혹상을 압축한 '네이팜의 소녀'의 주인공 판 티 킴 푹과 당시의 AP사진기자 닉 우트가 2일 캘리포니아주 부에노공원에서 만나 얼싸안고 있다.



40년 후의 '네이팜 소녀'와 사진기자
기사등록 일시 [2012-06-03 08:13:58]

【부에나파크(캘리포니아) =AP/뉴시스】40년전 베트남 전쟁의 참혹상을 보여준 사진 '네이팜의 소녀'의 주인공 판 티 킴 푹과 당시의 AP사진기자 닉 우트가 2일 캘리포니아주 부에나파크에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