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파헤친 歷史

삼국통일과 남북통일과 新羅정신

淸山에 2012. 5. 21. 06:05

 

 

 

 

 

삼국통일과 남북통일과 新羅정신

趙甲濟

신라통일 부정은 대한민국 부정

 
 
  한국에서 살면서 북한式 역사관으로 무장하여 신라의 三國통일과 대한민국 建國을 매도하는 이들이 많다. 북한정권이 신라의 三國통일을 부정하고, 민족사의 正統을 고구려-발해-북한 중심으로 놓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함이다. 민족사적 정통성의 흐름은 신라의 삼국통일과 대한민국 建國을 두 기준점으로 삼는다. 


  신라통일 부정론자들은, 고구려와 발해를 美化하고 백제를 동정하고 신라를 비방한다. 고구려가 내분으로 망하였고 백제는 부패로 무너졌으며 신라는 내부 단결과 탁월한 국제감각으로 삼국통일을 해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애써 무시한다.


  발해는 민족사의 지류이고 북한은 민족사의 이단이란 사실도 덮는다. 신라가 唐과 동맹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친 사실만 강조하고 그 唐을 한반도에서 추방, 민족통일국가를 수립한 偉業은 과소평가한다.


  신라의 삼국통일에 의하여 비로소 같은 말, 같은 체제, 같은 풍속, 같은 역사관을 가진 韓民族이 만들어졌다. 신라 통일을 부정하는 것은 민족의 탄생을 저주하는 짓이고, 대한민국의 建國을 부정하는 건 국민국가의 탄생을 부정하는 만행이다. 이는 오늘을 사는 한민족의 뿌리를 부정하는 일종의 민족반역 행위이자 國紀문란 행위이다.
 
 
  自主통일 정신의 化身 김유신
 
 
  金富軾은 '三國史記'에서 金庾信을 ‘자주정신의 化身’으로 그렸다. 당시 신라 지도부가, 세계최대강국이던 唐의 힘을 빌어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唐마저 한반도에서 축출하여 민족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김유신은 엄청난 말들을 내뱉는다.
 “대장군이 황산벌의 싸움을 보지 못하고 늦게 왔다고 죄를 주려 하는데 나는 결코 죄 없이 욕을 당할 순 없다. 먼저 唐軍(당군)과 싸워 결판을 낸 다음 백제를 부수겠다.”


  (唐將 蘇定方이 김유신의 副將을 벌 주려 하자 김유신이 반발하면서 한 말)


 “개는 그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였는데 어찌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겠습니까?”(백제 멸망 후 唐將 蘇定方이 신라를 공격하려 하자 태종무열왕에게 對唐결전을 건의하면서 한 말)


  신라공격을 포기한 소정방은 귀국, 唐 고종에게 보고를 하니 고종은 “왜 내친 김에 신라마저 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金富軾은, 이 질문에 소정방이 이렇게 답하였다고 三國史記에 기록하였다.


  “신라는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그 신하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 섬기기를 父兄과 같이 하니 비록 나라는 작지만 함부로 도모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말은 唐의 최고 장수가 신라에게 바친 찬사인 셈이다. 정신력은 물질적 발전과 비례하지 않는다. 임금, 신하, 백성들이 自主의식으로 일치단결한 나라가 신라였고 대통령, 공무원, 국민들이 서로 불신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나는 三國史記를 읽으면서 태종무열왕, 김유신, 문무왕 같은 사람들의 무서운 自主정신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기 668~670년 사이 문무왕과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 지도부가 對唐결전을 선택하지 않고 唐 지배체제 아래서 순응하는 자세를 취하였더라면 韓民族은 존재할 수 없었다. 이 점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삼국사기가 전하는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국인들이, 對中결전을 각오하지 않고는 남북통일을 이룰 수 없고, 평화공존이란 명분하의 分斷고착을 선택하면 자주와 독립을 다 잃을지도 모른다는 경고이다. 
  
 
  新羅와 대한민국의 공통점
 
 
  1. 통일신라는 세계의 一流국가였다. 대한민국은 非서구문명국가로서는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일류국가 클럽으로 진입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2. 신라와 대한민국은 文武를 겸한 尙武국가였다.
  3. 신라와 대한민국은 개방적 해양국가였다.
  4. 통일신라와 대한민국 시대에 한민족의 활동반경이 가장 넓었고 세계사의 主流에 참여했다.
  5. 신라와 대한민국은 동맹국 외교에 성공했다. 신라는 당시의 세계 최강국 唐과 동맹하여 통일에 성공했고 대한민국은 세계 최강선진국 미국과 친구가 되었기 때문에 통일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6. 신라와 대한민국은 애국적 종교와 정치를 결합시켰다. 護國불교와 화랑도의 결합, 反共기독교와 국군 장교단의 협력이 그것이다.
  7. 신라와 대한민국은 강대국과 동맹하면서도 자주정신을 유지했다.
  8. 신라와 대한민국은 유능한 지도자를 만났다. 통일신라는 외교의 金春秋, 군사의 金庾信, 내치의 文武王을 가졌고 대한민국은 외교의 李承晩, 군사의 朴正熙, 경제의 李秉喆을 가졌다.
  9. 신라와 대한민국에선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한국역사상 여왕들이 나온 나라는 신라뿐이고 여성 대통령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나라는 東아시아에선 한국뿐이다.
  10. 대한민국이 신라보다 못한 점은 두 개이다. 첫째는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제(고귀한 자의 의무)이고 또 하나는 국내통합 부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아직도 자유통일과 일류국가 건설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11. 신라통일은 민족을 만들었고 대한민국 건국은 국민국가의 출발이었으며 남북자유통일은 선진 강대국으로 가는 길을 열 것이다. 
 

 
  新羅정신이란 무엇인가?
 
 
  未堂 徐廷柱 시인은 6.25 사변 때 하도 참혹한 것을 많이 보고 당한 뒤 자살까지 생각하는 지경에 몰렸다가 신라정신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고 그 뒤 신라정신을 詩作의 한 주제로 삼았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신라정신은 중세 유럽 사람들이 로마정신을 재발견하여 中世의 장벽을 뚫고나가려고 했던 것처럼 한국인들이 큰 난관에 봉착할 때 길어 쓸 수 있는 지혜와 용기와 감흥과 상상력의 깊은 샘물인 것이다. 未堂은 이렇게 말했다(1995년1월호 月刊朝鮮).
 
  "1951년부터 53년까지가 내게 있어 신라정신의 잉태기였지. 6.25 전쟁중 극심한 절망감 속에서 나는 '國難이 닥쳤을 때 우리 옛 어른들 가운데 그래도 제 정신 차려 살던 이들은 난국을 무슨 슬기와 용기와 실천력으로 헤쳐왔던가?'하는 것을 절실히 알아보고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더듬거려 보던 끝에 신라정신과 구체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야."
  未堂이 말하는 신라정신의 요체는 멀리 보고 한정 없이 언제까지나 끝없이 가려는 영원성이다.
  "인생 행로를 제한받고 또 스스로도 제한하며 얼마만큼만 가고말려는 한정된 단거리주의가 아니라 한정없이 언제까지나 끝없이 가고 또 가려는 저 無遠不至주의. 신라인들에게서 우린 그걸 배워야 해. 그러면 불안과 불신과 반감과 충돌 따위를 훨씬 줄일 수 있겠지."
  "신라 鄕歌에는 삶에 대한, 사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자각이 들어 있어 음미할수록 깊은 맛이 나지. 자연과 인생에 대한 소박한 감정부터 깊은 체념과 달관, 그리고 安民理世의 높은 이념까지를 노래한 향가도 그 바탕은 國仙정신이야."
 
 
  이 天地에 대한 주인의식
 
 
  國仙 정신은 무엇인가?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 天地에 대한 주인의식이 신라인들에게 작용해 통일로 이끌어간 거지. 하늘과 땅을 맡아 생활하는 주인으로서의 강한 책임 의식. 이 점이 조선시대 유교가 우리 민족에게 弱者의 팔자와 분수에 다소곳할 걸 가르쳐서 亡國의 길로 유도한 것과 전혀 다른 점이지. 각 개인의 값이나 민족의 가치는 에누리당하자면 한정이 없고, 에누리만 해나가다가는 민족의 장래가 정말 암담할 수밖에 없는 거야. 나와 내 민족의 존엄성은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지. 하늘과 땅과 역사의 주인된 자로서 말이네. 민중을 억압하고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민중에게 아첨하고 추파를 던진대도 곤란해. 진심으로 민중과 일치하고 화합하려는 정신, 그게 중요하지. 신라에는 여러 훌륭한 어른들이 많지만 본받을 만한 인물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로선 金庾信 장군을 들겠어. 金庾信 장군을 배워라! 고난을 앞장서서 짊어진 모습을..."
 
  그의 '金庾信 將軍 1'이란 詩는 이렇다.
 
  <말과 사람이 함께 얼어 쿵쿵 나자빠지는
  혹독한 추위 속의 어느 겨울날
  고구려 평양으로 가는 험한 산길에서
  新羅 최고의 군사령관 金庾信은
  한 사람의 輜重兵(치중병) 步卒이 되어
  맨 앞에서 군량미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팔뚝을 걷어 어깨까지 드러내고
  땀 흘리며 끌고 가고 있었다.
  그래서 팔심이 더 세기로야
  호랑이 꼬리를 잡아 땅에 메쳐서 죽인
  金閼川을 신라 최고로 쳤지만
  그런 김알천의 그런 힘까지도
  金庾信 장군의 힘에다가 비기면
  젖비린내 나는 거라고
  신라 사람들은 간주했었다>
 
  徐廷柱 선생은 신라의 화랑들이 가졌던 未來佛 미륵신앙을 자신의 詩 '신라 사람들의 未來通'에서 이렇게 썼다.
 
  <신라 사람들은 백년이나 천년 만년 억만년 뒤의 미래에 살 것들 중에 그중 좋은 것들을 그 미래에서 앞당겨 끄집어내 가지고 눈앞에 보고 즐기고 지내는 묘한 습관을 가졌었습니다. 미륵불이라면 그건 과거나 현재의 부처님이 아니라, 먼 미래에 나타나기로 예언만 되어 있는 부처님이신건데, 신라 사람들은 이분까지도 그 머나먼 미래에서 앞당겨 끌어내서, 눈앞에 두고 살았습지요>
 
  그는 신라정신을 이렇게 定義했다.
  "그건 다름 아닌 國仙道 정신이지. 이는 風流道, 風月道, 神仙道라고도 하는데 신라의 문장가이며 큰 학자이신 孤雲 崔致遠 선생이 쓴 글에 보면 풍류도 즉 국선도는 불교와 도교와 유교, 이 세 가지 정신을 모두 포함한다고 나와 있어."
  하늘의 뜻에 맞추어 땅을 맡아 책임지고 이익을 얻는 주인의식이 國仙, 풍류 정신이란 것이다. 신라정신을 설명하면 하늘과 밝음이란 단어가 많이 나온다. 그 정신을 담은 것이 靑磁의 깊고 밝은 푸르름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언제나 한정 없이 끝없이 가고 싶은 영원성의 푸른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