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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냉면 [중앙일보]

淸山에 2009. 8. 16. 12:00

 

 

[분수대] 냉면 [중앙일보]

 

 

지난 한 주간 ‘냉면’이란 노래가 급격한 인기 물살을 탔다. ‘차디차 몸이 떨려/ 질겨도 너무 질겨/ 그래도 널 사랑해’라는 단순한 가사의 쉬운 노래지만 지난 11일 MBC TV ‘무한도전’에서 소개된 뒤 무서운 기세로 각종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장마철의 끈끈한 더위가 노래의 인기에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여름만 오면 유명한 냉면 전문점 앞에 줄을 서는 일이 반복된 것일까. 작가 성석제에 따르면 김유정이나 이효석의 1930년대 저작에도 냉면 식도락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특히 이효석은 1939년 쓴 ‘유경식보’에서 ‘평양냉면은 유명한 것으로 치는 듯하나 서울 냉면보다 희지 못하다’고 쓰고 있다. 김찬별의 ‘한국 음식, 그 맛있는 탄생’에 따르면 여름 냉면집의 단체 식중독 기사가 1929년부터 거의 매년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니 냉면이 외식 산업의 선두 주자로 나선 것도 만만찮게 오래된 일인 듯하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냉면이란 음식이 대체 어쩌다 한국에서 이런 인기를 누리게 됐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더위로 치자면 훨씬 더운 나라 천지고, 국수 사랑으로 따져도 결코 한국에 뒤지지 않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스파게티의 나라 이탈리아에도 식혀 먹는 국수가 있긴 하나 샐러드에 파스타를 얹는 정도다.

이웃 중국과 일본의 대표 음식 중에도 차가운 국수는 쉬 눈에 띄지 않는다. 중국엔 량몐(凉麵)이니 렁반몐(冷拌麵)이니 하는 음식들이 있지만 그냥 초보적인 비빔국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과 옌볜의 영향으로 동북식냉면이니 조선냉면이니 하는 음식들이 침투하고 있다.

일본에도 히야시추카(冷やし中華)라는 차게 식힌 라멘이 있지만 이름만 봐도 자국 음식 대접을 못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냉면만큼 보편화된 품목을 찾자면 장에 찍어 먹는 메밀 소바 정도다. 그러나 이 역시 한국처럼 벌컥벌컥 육수를 들이켜며 더위를 쫓는 음식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평양냉면 매니어들은 여름 아닌 한겨울이 제철임을 지적한다. 싸늘한 동치미 육수를 싹 비운 뒤, 거리로 나가 찬바람을 맞으며 “아, 시원하다(물론 ‘씨원하다’라고 써야 더 느낌이 온다)”고 중얼거리는 바로 그 맛. 대체 한국인들은 어쩌다 이런 별난 습성을 갖게 된 걸까. 한국인의 냉면 유전자가 궁금하다.

 송원섭 JES 콘텐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