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朴正熙 照明

['朴대통령의 입' 9년] 2. 미국 시찰

淸山에 2009. 8. 16. 10:55
 
 

 

 
 
[중앙일보] 입력 2005.03.14 19:55 / 수정 2005.03.15 09:47
 
 

1965년 5월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뉴욕 시민의 환영을 받으며 뉴욕시청으로 가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이 만족스럽게 끝나자 미국 정부는 박정희 대통령 일행을 미국 내 여기저기로 수학여행(?)을 보냈다. 뉴욕으로 가서 유엔 및 금융계의 거두들을 만나게 했다. 경제 개발에는 자본이 필요한 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박 대통령에게는 아주 유익한 기회였다. 제철공업의 본거지 피츠버그를 비롯해 유도탄 발사기지 등에도 가도록 했다. 박 대통령의 관심 사항을 중심으로 한 시찰 일정이었다.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에 있는 케네디 우주센터에 들렀을 때였다. 마침 그날(1965년 5월 22일) 아틀라스 로켓의 시험발사가 있었다. 박 대통령은 좌석에 앉아 점화 광경을 지켜보았다. 나는 슬그머니 박 대통령에 다가가 서 있었다. 곧 하늘이 무너질 듯한 굉음과 함께 육중한 로켓이 시뻘건 불기둥과 하얀 연기 덩어리를 내뿜으며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 뒤로 기다란 연기 꼬리가 매달렸고, 이 모든 것이 한 덩어리가 되어 총알처럼 창공을 꿰뚫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로켓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하늘에 하얀 색의 가느다란 구름 줄기만 연하게 깔릴 때에야 모두 제 정신이 돌아온 듯 감탄사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만은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창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우리도 언젠가는 저런 것을 가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하는 상념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이윽고 박 대통령도 망원경에서 눈을 뗐다. 나는 그 순간 앞으로 다가가 "소감이 어떻습니까"라는 직업상의 질문을 던졌다. 나의 질문을 받은 박 대통령의 얼굴에는 불쾌하고 짜증스럽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름답고 광대무변한 꿈을 꾸고 있는데 왜 너같은 백면서생이 불쑥 뛰어들어 방해하느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나를 노려보던 박 대통령은 "뭐, 소감이 다 뭐야. 남이 쏘아 올렸는데 소감이 다 뭐야." 이 한마디를 내뱉고는 걸음을 옮겼다. 나는 이때처럼 당황해 본 적이 없다. "대통령이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말할 수 있나. 마음에 없더라도 외교적 언사 한두 마디 할 수도 있는 일을 가지고…." 나는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서운함을 달랬다.

최선의 외교는 '성실(誠實)'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철학적인 말이고, 실제로는 '유머'라고 생각한다. 워싱턴 대사관에 김보성이라는 외신기자 출신 공보관이 있었다. 그의 유머는 천하일품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박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시 한 수행기자가 'Park Here'라는 유료주차 광고를 보고 무슨 뜻인지 몰라 그에게 물었더니 그는 "아, 그 집 주인이 우리 박 대통령이 여기에 와 계시다는 환영의 표시를 내다 붙인 것이지요"라고 답했다. 나는 지금도 '박 대통령이 김보성 공보관 같은 사람을 곁에 두고 있었으면 좋았을텐데'라고 가끔 생각한다.


김성진 전 청와대 대변인·문공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