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5년 5월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정상회담 전 백악관 앞뜰에서 존슨 미 대통령(오른쪽에서 개줄을 잡고 있는 사람)의 애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 대통령 뒤가 박종규 경호실장. 맨 오른쪽이 동양통신사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필자. |
그 중에서 밀도로 보자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대변인과 문공부 장관을 지낸 9년이 내 인생의 핵심이라고 할 것이다.
서거한 지 26년이 지났지만 박 대통령은 아직도 한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살아있는 역사다.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전개된 현대사 중에서 내가 목격한 것들을 가감없이 회고하려 한다.
그 시대를 기억하는 이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내가 박정희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965년 5월 16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 근교에 있는 랭글리(Langley) 공군기지에서였다.
그는 존슨 미국 대통령의 국빈 초청으로 육영수 여사와 함께 미국땅을 밟았다. 나는 동양통신사의 워싱턴 특파원이었다.
박 대통령이 비행기 트랩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나는 처음에는 딴 사람인 줄 알았다. 늘 끼고 다니던 검은 색 선글라스를 벗어버리고 보통 안경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요즘엔 너나 없이 검은 색 선글라스를 예사로 쓰고 다니지만 5.16 군사쿠데타 당시만 해도 그것은 박정희 장군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런데 그것을 벗어 버렸으니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방미의 핵심은 한국군의 베트남 추가파병 문제였다. 서로 대단한 흥정거리를 안고 있는 회담이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지금까지 써오던 검은 색 안경을 벗어던지고 맨 얼굴로 나타났을까. 자신이 있다는 얘기인가.
미국 정부는 박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우선 미국 대통령의 전용기를 제공했다. 김현철 주미 대사가 그것을 타고 워싱턴에서 서울로 날아가 박 대통령 일행을 모시고 워싱턴으로 왔다. 전용기는 박 대통령의 미국 내 여행 뿐만 아니라 귀국길에도 제공됐다. 아마도 이 같은 예우는 전무후무했을 것이다.
남북전쟁 당시의 옛 도시 윌리엄스버그에서 1박하고 헬리콥터 편으로 백악관 앞뜰에 도착한 박 대통령은 곧바로 백악관으로 들어가지 않고 승용차로 갈아탄 뒤 펜실베이니아가(街)를 한바퀴 돌면서 퍼레이드를 했다. 연도에는 시민들이 모여들었고 재미동포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와 흔들면서 환호를 하니 자연발생적으로 대대적 환영행사가 이루어졌다. 모터 케이드(차량 행렬)는 국빈 숙소인 블레어하우스 앞에서 멈췄고, 박 대통령 일행은 그곳에 여장을 풀었다. 워싱턴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퍼레이드 구간의 거리가 얼마나 되고 그것이 얼마나 미니 퍼레이드인지 금세 이해할 것이다.
백악관에서 벌어진 정상회담 전의 행사가 또한 걸작이었다. 두 대통령의 개인적 친밀감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마련된 쇼였다. 두 사람이 백악관 뜰에서 존슨의 애견 두 마리를 가지고 노는 장면이 연출되었는가 하면 실내에서는 만화가들이 존슨을 희화화한 만화의 원본을 두 사람이 같이 보면서 희희낙락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내외신 기자들은 이것을 취재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다. 나는 박 대통령의 반응을 눈여겨 보았다. 박 대통령은 때로는 당황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색해 하기도 했다. 동양의 '유교 거사'는 서양식 쇼나 연출에 약한 법이다.
박 대통령의 결단으로 양국은 2차 회담에서 합의점을 찾았다. 증파의 결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우리의 60만 병력은 미국식으로 잘 훈련되어 있다. 언제라도 공산주의에 대항해 싸우고 있는 미군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미 우호관계는 역사상 유례 없이 공고히 다져졌고,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이 보장되었다. 현실주의 실리외교의 결과였다.
우리가 이라크에 파병하면서 한.미 우호관계가 얼마나 공고해졌는지 돌이켜 보는 날이 온다면 베트남 파병 때와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의 평가가 궁금해진다.
김성진 전 청와대 대변인·문공부 장관
▶1931년 황해도 해주 출생
▶서울고.고려대(경제학과) 졸업
▶56~70년 한국일보.동양통신 기자
▶70~75년 청와대 공보비서관.대변인
▶75.12~79.12 문화공보부 장관
▶80~83년 연합통신 사장
▶83~91년 한국국제문화협회 회장
▶91년 주 싱가포르 대사
▶95~97년 대우경제연구소 회장
▶(현) 성곡언론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