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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년 홍종철 공보부 장관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초대 경호실장을 거쳐 문공.문교부 장관을 역임한 그는 청와대 사정특보로 있던 74년 한강에서 익사했다. |
1965년 5월 26일 아침, 박정희 대통령 일행은 방미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서울로 떠났고 나는 워싱턴으로 되돌아갔다. 전날 박 대통령은 수행원.공관원 그리고 교포들을 위로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의 숙소에서 리셉션을 베풀었다.
이번 여행에 대한 박 대통령의 만족감이 나타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미국측 인사라야 의전.경호관계 인사 몇명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한국 사람들이었으니 분위기는 초장부터 고조되었다. 모두 악의없는 어린애같은 모습이었다.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불화를 연출했던 홍종철 공보부 장관과 박상길 청와대 대변인도 웃음 속에서 화해했다.
여행 중에는 모두가 긴장하게 되고, 긴장된 상태에서는 사소한 자극도 원자폭탄과 같은 폭발력을 발휘한다. 여기에 위신과 체면이 가세하게 되면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게 된다. 주먹다짐 일보 직전까지 갔었던 홍 장관과 박 대변인의 대결이 바로 그러한 종류의 난센스였다.
발단은 박 대변인이 수행기자 중 친분 있는 몇몇 기자에게 가십성 기삿거리를 제공한 것이었다. 미국 일정 중 대(對)언론 발표 창구는 사실상 공보부 장관이 맡고 있었다. 홍 장관은 자기가 발표하지 않은 내용이 기자들 사이에 떠도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이것이 유엔본부 시찰 도중에 폭발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정부 내의 5.16 주체들이 힘을 쓰고 있을 때라 민간인 출신은 청와대에 있다 하더라도 별 볼 일 없어 보였다. 옷만 민간복으로 바꾸어 입었지 속은 여전히 군인정권인 것이 틀림없었다. 홍 장관은 혁명주체였고 박 대변인은 민간인 출신이었다. 두 사람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업무영역의 조정같은 문제조차 대화로 해결하지 못하는 정권에 대해 우려하는 마음이 들었다. 더군다나 이같은 내부적 이견을 대통령 앞에서는 없는 것처럼 슬쩍 덮어버리는 그들의 행태가 더 위험스럽게 보였다. 언제까지 저렇게 끌고 가려는가.
박 대통령은 리셉션장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수고했다며 인사와 악수를 나눴다. 그러던 중 나를 보더니 가까이 다가와서 "김 부장은 서울에 돌아오지 않소?"라고 물었다. 나는 당시 부장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나에 대한 대접 차원에서 그렇게 불러준 것 같았다.
"아닙니다. 임기가 끝나야 서울로 돌아갑니다"라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당신네들도 임기라는 게 있소?"라고 물었다. 언론계를 완전히 별종들의 세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서울로 오거든 날 찾아오시오."
나는 별다른 생각없이 "네"라고 대답했다. 일국의 대통령이 일개 언론사 특파원에게, 그것도 미국에서 처음 만난 특파원에게 무엇이 대단해서 "꼭 찾아오라"는 식으로 말을 했겠는가 싶어 한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려보내고 말았다. 그러나 얼마 후에 박 대통령이 자신의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음을 확인하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김성진 전 청와대 대변인·문공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