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하워(왼쪽)와 그의 아들 존 소령. /바움 제공
그러나 책은 이런 거창한 분석틀보다는 6·25전쟁과 관련된 인물들의 고심과 결단 그리고 오판이 한데 어우러지는 드라마처럼 전개된다. 때로는 반나절 동안 미국과 한국, 북한과 소련·중국의 지도부 깊숙한 곳에서 이루어진 논쟁과 결정이 한 장(章)을 이루기도 하고, 일주일, 열흘, 한 달, 반년이 한 장을 이루기도 하면서 시간 순서에 따라 6·25전쟁 3년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책이 나온 지 이미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1991년 당시 입수 가능했던 중국과 소련의 비밀자료 및 관련인사들의 인터뷰까지 방대하게 자료를 수집해 지금의 시점에서 보아도 크게 낡아 보이지 않는다. 맥아더·트루먼·아이젠하워로 이어지는 미국의 전쟁지도자들에 대해서도 특정 성향은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그들의 전략적 성패를 그려낸다. 그는 워커와 리지웨이 장군의 전속 조종사였던 마이크 린치 장군의 말을 빌려 6·25전쟁에서 미국이 저지른 잘못을 이렇게 요약한다.
맥아더(왼쪽)와 이승만.
"처음에 우리는 적군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우리의 능력을 과대평가했다. 얄궂게도 휴전협상이 시작될 무렵부터 우리는 적군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우리의 능력을 과소평가함으로써 타협이 불필요한 사항들까지도 타협했다."
이런 평가는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그리고 이승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상황의 한복판에서 전략적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다. 이승만에 대해서는 "용감한 애국자이자 비타협적인 반공주의자인 동시에 성마른 독재자"라고 평한다. 김일성에 대해서는 "일부 미국인들이 묘사한 그의 모습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촌뜨기였지만 그는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펑더화이(왼쪽)와 김일성. /플래닛미디어 제공
6·25전쟁에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이 참전해 1950년 11월 25일 평양폭격 때 사망한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졌다. 그러나 책은 전쟁 후반 미국 대통령이 되어 종전 과정을 책임지게 된 아이젠하워의 아들, 워커 장군의 아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의 영웅 패튼장군의 아들도 6·25전쟁에 장교로 참여했던 사실을 전한다.
미국인 입장에서 바라본 6·25전쟁에 대한 균형잡힌 저술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직도 6·25전쟁에 대해서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류의 수정주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학계의 저술능력에 대한 반성이고, 또 하나는 전쟁 기간 동안 한국과 미국, 북한과 중·소(中蘇)가 주고받은 협력과 갈등에 대한 관심이다.
마오쩌둥(왼쪽)과 아들 마오안잉. /바움 제공
6·25전쟁이 관련국들에 남긴 유산에 대한 평가는 특히 눈길을 끈다. 미국의 번영은 앞서 언급했다. 또 다른 큰 수혜자는 소련이었다. "미국과 중국 본토의 화해 가능성이 6·25전쟁으로 사라졌다는 것이 소련이 얻은 가장 큰 성과였다." 전쟁이 끝나자 김일성은 평양에서 대규모 환영대회를 열어 자축했지만, 이승만은 통일된 자유대한의 꿈이 날아가 버린 데 크게 실망했다. 대만의 장제스도 운이 좋았다. 중공의 대만 점령 계획이 6·25 전쟁 참전으로 수포가 됐기 때문이다.
민간군사저술가 남도현씨의 '끝나지 않은 전쟁 6·25'는 6·25전쟁 중에서 주목해야 할 대규모 전투들을 중심으로 6·25전쟁의 단면을 소개한다. 전쟁 초기 거둔 춘천대첩 같은 승전의 역사뿐 아니라 미군의 자만심이 빚어낸 죽미령전투 등 패전의 기억도 파헤친다. 또 북한의 선봉부대 제6사단이나 국군 제1사단처럼 눈부신 전과를 올린 부대 이야기도 흥미롭다. 우리 군의 전사(戰史)를 중심으로 해서 지나치게 군(軍)의 시각이 강조됐고, 전쟁 전반을 살필 수 있는 시야가 부족한 것은 아쉽다. 그러나 딱딱하게 전쟁을 소개하는 책들에 비하면 젊은 세대들의 눈높이에 맞춘 이야기들이라 널리 읽힐 수 있는 강점이 있다.
기억으로서의 6·25전쟁은 점차 끝나가고 있다.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는 올해는 어쩌면 기록으로서 6·25전쟁의 원년(元年)이 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톨랜드가 책을 맺으면서 한 말이다. "전쟁의 역사에 관한 책은 그 어떤 것도 결정판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