園洞에 ‘樂’을 붙여 만든 지명 洞名紀行(4)서울 종로구 樂園洞: 시내 중심지 ‘樂園’이라 불린 탑골공원서 따와.
조선시대 掌樂院에서 유래된 명칭說은 근거 없어. 李知映(조갑제닷컴) 서울 종로구의 樂園洞(낙원동)은 우리 고유의 지명을 日帝(일제)가 자의적으로 고친 이름이다. 본래 塔洞(탑골), 校洞(교동), 園洞(원동) 등의 이름이 있었으나 일제가 이곳에 園洞(원동)이라는 명칭이 있고, 주변에 樂園地라 할 만한 탑골공원이 위치하고 있으므로 ‘樂(즐거울 락)’자를 덧붙여 樂園洞으로 고쳤다.
탑골공원(서울 종로구 종로2가)은 서울 최초의 近隣公園(근린공원)으로 고려시대에는 興福寺(흥복사)가, 조선시대 전기(1464)에는 圓覺寺(원각사)가 그 자리에 있었다. 연산군이 원각사를 廢寺(폐사)하고 중종 때 건물이 모두 철거되면서 빈 터만 남아 있다가, 1897년(광무1) 度支部(탁지부, 지금의 재무부)에 고문으로 와 있던 영국인 J.M.브라운이 설계하여 서구식 공원으로 꾸며졌다. 공원이 된 당초에는 空地(공지)에 간단한 울타리를 두르고 나무도 심고 벤치를 가져다 놓은 정도로 출발했다. 1910년 10월1일부터 공원 관리권이 總督府(총독부)로 넘어가면서 총독부에서 매년 유지비를 투입해 정자와 벤치, 화단, 연못, 전등, 수도, 온실 등의 시설을 하였으며 벚꽃과 상록수를 심어 아름답게 꾸며 시내 중심지의 ‘樂園(낙원)’이라 했다고 한다.
원각사 옛터에 버려진 百色의 石材(석재, 대리석)로 만든 白塔(백탑, 원각사지 10층석탑)이 있는 공원이라는 뜻에서 ‘파고다 공원(Pagoda Park)’라고 부르다 1991년에 공식명칭을 ‘탑골공원’이라 하였다. 원각사지 10층석탑(국보 제2호)의 탑 윗부분 3층은 오랫동안 땅에 널려져 있던 것을 1947년에 복원하였다. 1919년 3·1운동의 發祥地(발상지)로 유서 깊은 곳이다.
조선시대 낙원동에 악보와 악기 등을 관리·감독하던 관청이 있어 ‘樂(풍류 악)’에서 유래된 洞名(동명)이라는 說(설)도 있으나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조선시대 때 음악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인 掌樂院(장악원)은 태조 원년에 설치되어 성종의 명으로 한성부 서부 餘慶坊(여경방)인 오늘날의 서울 중구 태평로에 세워졌다. 壬辰倭亂 때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의 서울 중구 을지로2가 181번지 외환은행 본점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낙원동 241번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洋醫(양의)이며 한성의학회(대한의사회 전신)를 창설한 朴啓陽(박계양)의 계양병원이 있던 곳이다. 계양병원은 홍명희, 정인보, 여운형 등 韓末(한말)-일제하의 젊은 정치·독립 운동가들의 교유장소였기도 하다. 박계양은 이완용이 1909년 이재명에게 피격당하자 ‘나라를 팔고 친일행위를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으나 仁術을 펴야 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치료해 준다’며 부상당한 이완용을 끝까지 진료해 주었다고 한다. 계양병원 자리에는 현재 음식점이 위치해 있다. 낙원동 17번지는 우리나라 최초로 種痘(종두)를 실시해 천연두를 예방한 池錫永(지석영) 선생의 生家(생가)터이다. 낙원동은 서울 北村(북촌)과 가까이 있어 궁궐과도 관련이 깊다. 58번지에는 조선조 숙종 때 禧嬪 張氏(희빈 장씨)의 祠堂(사당)인 大嬪宮(대빈궁)이 있었으나 1908년(순종2)에 廢宮(폐궁)하고 위패는 종로구 궁정동의 毓祥宮(육상궁)으로 옮겼다. 현재 경운동의 교동초등학교 자리에는 인조의 私邸(사저)인 於義宮(어의궁)이 있었다. 仁祖反正(인조반정)으로 왕위에 등극하기 전까지 선조의 손자인 陵陽君(능양군, 훗날 인조)이 살았다.
284번지 도로 위에 건축된 낙원빌딩은 1970년대에 세워진 住商複合(주상복합) 건물로 허리우드 클래식 시네마, 전국 최대 규모의 악기종합 상가인 낙원악기상가, 낙원시장, 낙원 아파트 등이 들어있다. 이 건물 뒤편으로 낙원동의 이름을 전국에 알린 낙원동 떡집들이 늘어서 있다. 조선 초기 한성부 중부 貞善坊(정선방), 慶幸坊(경행방), 寬仁坊(관인방)에 걸쳐 있었다. 1894년(고종31) 갑오개혁 당시 행정구역 개편 때는 洞口(동구), 於義洞(어의동), 漢洞(한동), 園洞(원동), 塔洞(탑동), 紬洞(주동), 校洞(교동) 등이 낙원동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어의동, 한동, 원동, 탑동, 주동, 교동 등의 일부를 통합해 낙원동이 되었으며, 1943년 4월 區制(구제)의 실시로 종로구 樂園町(낙원정)이 되었다. 1946년 일제식 동명의 우리말 변경에 따라 町(정)이 洞(동)으로 바뀔 때 낙원동이 되었다.
북쪽으로는 慶雲洞(경운동), 동쪽으로는 敦義洞(돈의동), 남쪽으로는 鐘路2?街(종로2?가), 서쪽으로는 仁寺洞(인사동)과 접해있다. 법정동인 낙원동은 행정동인 종로1·2·3·4가동의 관할 하에 있다. 29개의 법정동을 관리하는 행정동인 종로1·2·3·4가동의 면적은 2.37㎢, 인구는 6668명이고 그 중 낙원동의 주민은 907명이다. 공공기관으로 종로세무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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