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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8) “나 朴正熙라고 하오”

淸山에 2011. 3. 12. 11:47
 

 

 
 
“나 朴正熙라고 하오”
 
 
 5·16 군사혁명 50주년 기념 연재(38)/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趙甲濟   

 

 

 
 
 광명인쇄소
 
 5월16일 새벽, 한강에서 총성이 울리자 申應均(신응균) 국방차관보는 단신으로 현장에 나타났다. 그는 김동하 예비역 해병소장을 만나 그의 지프를 타고 박정희가 있는 곳으로 갔다. 박정희가 혁명의 당위성을 설명하자 신응균 예비역 중장은 “혁명은 시기상조지 않소”라고 했다고 한다(<5·16 혁명실기>). 박정희는 쌀쌀하게 그
자리를 떠나면서 동행하는 한웅진 준장에게 “시기상조래. 처치해 버릴까” 하고 농담을 했다.
 
 박정희는 한강 다리를 건너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자 작전계획을 변경했다. 33사단 병력으로 남산의 중앙방송국 건물을 점령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 부대는 정보 누설로 출동이 늦어졌다.
 
 박정희는 공수단으로 하여금 방송국을 점령하도록 시켰다. 해병대와 공수단은 한강 다리를 건너 용산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용산역전에서 해병대 선두부대는 맞은편에서 오는 6군단 포병단 병력과 만났다. 포병들은
육본을 점령한 뒤였다. 박정희 차는 육본으로 가지 않고 바로 남산으로 달렸다.
 
 이날 새벽 중앙방송국(KBS) 숙직실에선 朴鍾世(박종세) 아나운서가 때묻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자고 있었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숙직하던 수위가 오더니 깨웠다.
 
 “아까부터 총소리가 들리는데요.”

 
 

 

 
 

 박종세와 수위가 옷을 갈아입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올라오는 헌병 장교와 맞닥뜨렸다.
육본으로부터 방송국을 경비하라는 명령을 받고 배치된 헌병이었다.
 
 “김포 방면에서 일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빨갱이인 듯합니다. 제1 점령 목표가 방송국이란
정보가 있어서 우리가 지키고 있습니다.”
 
 박종세 아나운서는 그 헌병 장교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다른 부서의 숙직원들이 모여 앉아 불안에 떨고 있었다. 새벽 4시20분쯤, 갑자기 헌병들이 트럭에 올라타더니 사라져버렸다. 조금 있으니 총성이 요란하게 울리고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은 군인들이 현관을 통해서 안으로 몰려들었다. 숙직원들은 이방, 저방의 책상 밑으로 숨어들었다. 박정희 소장이 도착한 것은 이때였다. 한웅진 준장은 현관으로 들어서면서
공수부대원들에게 말했다.
 
 “빨리 아나운서와 직원들을 찾아서 데리고 와!”
 
 한웅진은 박정희를 향해서 “각하, 방송문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종필이가 가지고 오게 되어 있는데….”
 
 박정희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때 이석제 중령 일행이 들어오면서 박정희에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장교들이 박정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윤태일 준장이 손목시계를 보니 오전 5시20분 전이었다. 그는 “이거 안 되겠는데요”라고 했고, 박정희는 “같이 갑시다. 한 장군, 여기 점령하고 있어요”라고 말한 후
지프를 타고 광명인쇄소가 있는 안국동으로 달렸다.
 
 
 

 

 
 

 이날 밤을 김종필은 광명인쇄소에서 피 말리는 초조 속에 보냈다. 밤 12시에 혁명 공약 등 문안을 가지고
이낙선 소령과 함께 인쇄소에 도착하니 李學洙(이학수) 사장과 金龍泰(김용태·공화당 원내총무 역임)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학수는 文選工(문선공)들에게 김종필이 가져온 원고를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놀라지 말고 誤字(오자) 없도록 침착하게 일하게. 저 사람들은 군인인데 무기를 들고 와서 강제로 시키니
 나도 어쩔 수 없어. 부디 다른 생각하지 말고 일 잘하게. 만일의 경우에는 사장이 강제로 시켜서
했다고 하면 괜찮을 거야.”
 
 문안을 읽어본 문선공들은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학수는 “내가 모든 책임을
 질 테니 걱정 말라”고 달랬다. 김종필도 공장장을 불러 타일렀다.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가 감금해 놓고 권총으로 위협하면서 일을 시켰다고 말하시오.
모든 책임은 우리가 지는 거요.”
 
 공장장이 문안을 읽어 보더니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올 것이 왔습니다. 합시다.”
 
 이 말을 들은 김종필은 ‘아, 이 일은 되는 일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김종필 전 총리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층에 올라가서 인쇄공을 감시하면서 한편으로는 바깥을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이날 밤은 무사히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새벽 2시쯤 문제가 생긴 거예요. 내가 내려다보니 순찰하던 경찰관 두 명이 공장 문 앞에 서는 겁니다. 여태껏 야간 인쇄를 안 하다가 덜커덕거리니까 순경들이 이상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집은 밤에 인쇄하지는 않는데’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더니 한 사람이 문에
손을 대는 겁니다. 나는 권총을 빼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속으로 간절히 빌었습니다.
 
 ‘제발 안으로 들어오지 말아라. 들어오면 내가 쏠 수밖에 없다. 제발 들어오지 말아라.’
 
 그 순간 문을 잡았던 순경이 손을 스르르 내리더니 발길을 돌리는 겁니다.
‘잔업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인쇄소에서 김종필은 6관구 사령부와 육본으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아보고 있었다. 박정희를 6관구로 떠나보낼 때 거사 비밀이 탄로난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뒷일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벽 2시까지는 그럭저럭 통화가 되었는데 그 뒤로는 장교들과 영 이어지지 않았다. 신당동 박정희 집으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으니 더욱 불안해졌다. 이학수 사장은 “어떻게 된 일이오” 하면서 같이 걱정을 했다. 김종필은 “안심하고
기다려 봅시다”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3시를 넘어서 통금 중인 거리에서 차 소리가
들려왔다. 한 대가 아니고 여러 대의 차량들이 굴러가는 소리였다. 김종필이 뛰어나갔다.
조금 있다가 뛰어 들어온 김종필은 싱글벙글했다.
 
 “6군단 포병단이 1초도 틀리지 않게 정시에 출동했소. 지금 안국동 로터리를 지나가고 있어.”
 
 새벽 5시 직전,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윤태일 준장과 박순권 중령을 데리고 박정희 소장이 나타났다. 김종필이 2층에서 뛰어 내려갔다. 이낙선은 “각하…”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박정희는 덤덤하게
인쇄된 네댓 장의 혁명 공약문을 받아 훑어보더니 “방송국으로 가자”고 했다.
김종필은 이낙선에게 인쇄 일을 맡기고 처삼촌의 지프에 동승했다.
 
 革命 放送
 
 박정희는 혁명 공약 인쇄물을 들고 남산으로 달리는 차중에서 김종필에게 처음으로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더라고 한다.
 
 “아니, 장 장군이 그럴 수 있어? 나한테 총을 쏘라고 시키다니. 우리가 그동안 알려 줄 것은 다 알려 줬잖아.”
 
 남산 KBS 방송국에 박정희가 도착했을 때 공수부대원들은 아나운서와 방송 기술자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당직 아나운서인 박종세는 1층 보도계실로 피했다가 다시 텔레타이프실로 옮겨 웅크리고 있었다.
 
 연초에 이런 일을 예상하여 방송국 내부를 염탐해 둔 적이 있었던 김종필이 “박 아나운서 있소, 나오시오.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오”라고 외치면서 들어왔다.
 
 

 

 
 
  
 박종세가 김종필을 따라 바깥으로 나오니 별을 단 장성들이 여러 명 서 있었다. 키가 작고 바싹 마른 사람이 앞으로 나오더니 “나 박정희라고 하오”라고 하며 손을 내밀었다. 이 바쁜 상황에서도 박정희는 박종세에게
 군사혁명의 필연성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을 한 뒤 혁명공약이 적힌 전단을 건네주었다.
 박정희 일행은 박종세를 앞세워 2층 主방송실로 올라갔다. 박종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저 혼자서는 방송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거짓말 말어. 썩었구나 이놈도. 너 따윈 죽여 버려야 돼.”
 
 한 공수단 장교가 철거덕 권총을 장전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한웅진 준장이 “자넨 참아”라고 말리고는 “지금 다섯 명이나 되는데도 더 있어야 한단 말이오”라고 했다. 방송기계를 다룰 줄 아는 엔지니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공수단원들에게 이끌려 기술직원들이 나타났다. 이윽고 主조정실에 빨간불, 파란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웅진은 “형님, 직접 방송하십시오”라고 권했다. 한웅진은 간밤 차중에서 “방송이라도 하고 죽읍시다”라고 농담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박정희는 예의 그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가만히 있었다.
행진곡이 울리고 박종세가 읽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今朝未明(금조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 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첫째, 反共(반공)을 國是(국시)의 제1義(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할 것입니다. 둘째,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국제 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입니다. 셋째,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舊惡(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 도의와 민족정기를 다시 바로잡기 위하여 淸新(청신)한 기풍을 진작할 것입니다. 넷째,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다섯째, 민족적 숙원인 국토 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의 배양에 전력을 집중할 것입니다. 여섯째,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애국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본 군사혁명위원회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동요 없이 各人(각인)의 직장과 생업을 평상과 다름없이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이 순간부터 우리들의 희망에 의한 새롭고 힘찬 역사가 창조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단결과 인내와 용기와 전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궐기군 만세!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육군 중장 장도영>
 
 
 

 

 
 
 대한민국 성인 남녀들이 달달 외우게 되는 이 혁명 공약은 김종필이 초안을 잡고 박정희가 교열을 본 것이다. 이 문장엔 한 시대의 대명제, 또는 유행어가 될 단어들이 들어 있었다. 舊惡, 기성 정치인, 청신한 기풍, 기아선상, 참신한 등등. 이 혁명 공약문은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관념적인 용어가 적은 대신에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표현들이 많다. 언어가 사상을 표현하고 사상이 시대를 만들어 간다면 이 혁명 공약문은 實事求是(실사구시), 즉 현실과 사실에서 논리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행동윤리로 삼고 있는 새로운 국가 지도층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박종세 아나운서는 이 방송문을 되풀이해서 읽었다. 꼿꼿이 서서 방송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박정희는 부하들이 “각하, 한 번만 꼭 직접 방송을 하십시오”라고 권해도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석제 중령은 혁명 방송이 나간 뒤 안도감과 함께 허탈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 사무실이나 문을 열고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맞은편 여직원에게 “물 한 잔 주시오”라고 했다. 여직원이 끙끙대면서 말했다.
 
 “저… 저… 다리가 움직이질 않아요.”
 
 공포감 때문에 ‘허리가 빠진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盜用(도용)되고 있는 사이 장도영 총장은 비로소 병력 동원 명령을 내린다. 소공동에 있던 서울방첩대 사무실에서 지휘를 하고 있던 그는 해병대와 공수단 병력이 한강 다리를 건너 시내로 진입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자 수색 30사단 李相國(이상국) 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밤의 반란 기도를 제압한 이 준장의 목소리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고 있었다. 장도영은
“지금 어느 정도의 병력을 출동시킬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1개 중대 정도는 되겠습니다.”
 
 장도영은 다른 장교를 시키면 또 반란군으로 돌변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사단장이 직접 지휘하여 서울로 들어와 시청을 경비하라고 지시했다. 全軍(전군)을 통틀어 제2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해서 출동한 병력은 1개
중대가 유일했다. 이 중대도 시청에 도착했을 때는 혁명군에 접수되어 총구를 거꾸로 돌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