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나의 이야기

해마다 추석이 다가오면

淸山에 2009. 8. 11. 16:11
 
 

 

 
 
 
 

 

해마다 추석이 다가오면

오곡백과 무르익어 배주릴일 없겠구나
요즘이야 먹거리가 이곳저곳 넘치지만
그어릴땐 쌀밥가득 구경만도 배부르고
추석오면 때때옷에 온세상이 푸르렀네
 
 
명절 전 날이면 아버님 심부름으로 큰집 작은집에 고기 한덩이와 齋受用 술
한병씩 갖다 드리러 대전 변두리 시골 길을 다녀 온다.
 
몇 번 오간 길옆 밭고랑에는 수수 하나 푸윽 고개를 숙이고 알알이 맺힌
곡식이 붉으읍게 햇빛에 비쳐 보여 저것이 내 입맛을 당겼었네.
 
지금이야 이런 것 먹는 사람 보기 힘들었지만 그때만 해도 먹거리라고는
감자.고구마.찐콩.옥수수.수수.밤 등 주로 곡식류가 대부분이라 길거리에
널려 진 것 보면 다들 저 껍질들이었다.
 
 
이중 하나 수수가 어찌나 먹고 싶던지 지나 던 길옆에 푹 고개 숙이고 있
는 것은 나 보기 수줍어 그랳던가?
 
몇 번 지나 가던 길에 저뇬(이렇게 불러 보자)에 눈독을 들인게 몇 날 후
더이상 지났다가는 남이 먼저 가져 갈 것 같아 그날 돌아 오는 시간에
D데이로 누가 않 보는 것 틈타 중간 줄기를 꺾었다.
 
 
쉽사리 꺾이지 않아 한참 잡아 당겨서야 겨우 껶였고 가슴은 쿵당 쿵당
소리가 어찌나 천둥 같던지 숨을 한참 고르고 제빨리 이곳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와서는 나만 아는 한곳에 숨겨 놓았다.
 
추석 전날이었으니 그렇잖아도 먹을게 많아 좀더 지나서 먹어도 되겠고.
명절이 지나 이제 새로운 입맛이 동할 때 이뇬을 솥에 올려
아무도 모르게 푸윽 찌었다.
 
 
뜸이 푸윽 들게 찌고는 꺼내 한 알을 입에 넣고 입으로 오물락조물락 돌리곤
껍질은 벹어 알곡을 뱃속에 넣을 때 그맛 기막히더라.
 
이 수수알은 며칠 지나서 먹어도 맛이 나는 것 아마 아시는 분도 계시리라.
이렇게 하여 한 동안 이뇬 맛에 살맛도 났다.
 
 
그 동네는 우리 집안 집성촌이라 아마도 내 모르는 아저씨뻘이나 조카뻘의
밭이라 그 후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를 지목하고 보지 않을까
걸음을 빨리 했던 일도 있었다.
 
때는 흘러 흘러 사십년이 흘쩍 지난 요즈음 그때 생각을 떠 올려보니
하나만 남긴 것은 씨앗으로 남겼을 것이 내가 꺾은 일로 인하여 다음해
 

씨앗 장만 못한 그 농부 생각에 어찌나 죄송스런 어린 철부지 일이
추석이 다가 올 때 마다 생각이 떠오른다.
 
한알 썩어 죽어서 수천개의 곡식을 키워 준다면 그 당시의 한 수수대에는
몇섬 곡식 맺을 것이며 사십년이 흘쩍 지난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계산에
이글 쓰는 시간 엄청 부끄러움이 달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