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와 정원의 도시 蘇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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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州는
江蘇省<省都:南京> 남동쪽 태호(太湖) 동쪽에 자리한 도시이며,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고,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는
말이 있을 만큼 중국에서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또한 양자강 삼각주 평원 위에 자리잡고 있어 토질이 좋고 자원이 풍부하며,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물의 도시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오(吳)나라의 수도로, 수나라 때에 대운하가 개통된 이후
양쯔강 유역에서 가장 먼저 개발되어
시내 운하망을 중심으로 강남의 무역, 행정의 중심지로 발전해 왔다.
상업도시로 교통이 매우 발달했고, 중국의 4대 부촌에 걸맞게 아름다운 庭園들이 많다.
전체 면적 8488㎢ 중 평원이 4654㎢를 차지해 농업과 공업(실크),
민물 털게(양정호 털게) 양식으로 고수익을 얻고 있다.
하지만 산을 구경하려면 차로 두세 시간을 달려야 겨우 등산을 할 수 있다.
총인구 570여만 명 중 100여만 명이 시내에 거주한다.
2500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역사문화 도시답게
사주지부(絲綢之府, 비단의 도시), 어미지향(魚米之鄕, 바다가 가까워 살기 좋은 곳),
원림지도(園林之都, 정원의 도시) 등으로도 불린다.
관광 명소
◈ 중국 4데 정원중의 하나인 拙政園(졸정원)
'천하의 원림은 강남에 있고, 그중 소주의 정원이 으뜸이다'라는 말과
어울리리는 200여개 정원중 10군데가 복원돼 관광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진대의 詩 한 구절 '졸자지위정(拙者之爲政,어리석은 자가 정치를 한다)'에서 名해진
졸정원은
明나라 암행어사였던 왕헌신이 관직에서 추방되어 고향에 돌아온 후
비단장사를 하여 거금을 벌어들여 38년간 건축(1509년)해 만든 개인정원으로
소주의 유원(留園),
북경의 이화원,
하북 승덕이궁(承德離宮= 淸 건륭제 여름별장인 避暑山庄)함께
중국 4대 정원의 하나에 꼽힐 정도로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이다.
미경으로 인해 홍루몽 대관원(大觀園)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소주 동북쪽에 위치해 있고, 부지의 60% 정도가 연못이며
연못을 중심으로한 작은 정자나 복도,
산을 본떠 돌로 만든 석가산이 만들어져 있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이색적인 건물인 견산루, 파산랑과 경치를 보기위해 지어진 원향당 등이 있으나
일부만 공개되고 있다.
창살 무늬가 모두 다를 정도로 섬세하며,
건물은 용의 형상을 띠게 하여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반영하였다.
누각에서 보면 불빛에 의해 무지개가 뜬 것처럼 보이고,
창문에 테이프를 붙여 밖에 눈이 내리는 것같고,
술 먹은 사람이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정원 다리를 갈지자로 만든 것이 이채롭다.
차로 15분거리에 있는 높은 탑이 정원 연못에 그림자가 비치도록 조성한 것을 보면
건축의 극치라 불릴 만하다.
◈ 소주의 상징인 호구(虎丘 : 후치우)
宋代 시인인 소동파(蘇東坡)가
"到蘇州而不遊虎邱, 乃是憾事" : 소주에 와서 호구를 구경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라는 말을 했을 만큼 경치가 아름답다.
북서쪽으로 5㎞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원래 이름은 해용산(海涌山) 이었다.
춘추시대 오왕인 합려(闔閭)가 이 곳 연못 아래에 묻혀 있다고 전해지는 곳인데
장례를 지낸 3일째 되던 날 백호 한 마리가 나타나 능을 지켰다는 전설에서
지금의 이름이 유래했으나,
호구 전체의 모습이 호랑이의 생김새를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합려의 무덤을 만들 때 관 속에 검 3000개를 함께 묻었다고 한다.
이 검들 중에는 훗날 명검으로 전해지는 검들이 포함되어 있다.
혼란했던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은 이 검들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보는 앞에서 도굴을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뛰쳐나왔고,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도굴은 중단되었다.
지금은 이 곳에 물이 들어차서 연못이 되었고, 사람들은 검지(劍池)라고 부른다.
높이 40m의 언덕인 호구의 정상에는
수나라 때 지어진 현존 중국 최고의 벽돌탑으로 소주의 상징인 일명 호구탑이 있다.
높이 47.5m의 호구탑은
소주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건축물로 일명 운암사탑이라고 하며
1~6층까지는 북서쪽으로 4도 기울어지고 7층만 반듯해 균형을 잡고 있다.
호구산 입구 오른쪽에 있는 시검석(試劍石)은
오왕 합려가 천하의 명검을 시험해 보기 위해 시험삼아 잘랐다는 전설이 있는 돌로,
실제로 가운데가 돌로 쪼개져 있다.
그곳에서 좀 더 올라가면 넓게 펼쳐진 돌이 있는데,
이곳이 비밀 통로를 만들고 비밀이 지켜지도록 사람들을 칼로 죽여
바위가 피색을 띠고 있다는
혹은1000명이 앉아서 승려의 설법을 들었다고 하는 천인석(千人石)이다.
그 외에도 소동파가 즐겼다는 샘물인 제삼천(第三泉)
던진 돌이 바위 위에 앉으면 아들을 본다는 침석,
서시가 거울로 보았다는 우물 쌍청교,
바보 스님이 판 우물 한인천이 있다.
물이 풍부한 이곳에선 어디를 가든 수로(운하)와
명청 양식인 뾰족한 처마 끝이 날카롭게 하늘로 향한 지붕을 볼 수 있다.
호구탑을 보고 출구 쪽으로 나가면 멋진 수로와 지붕이 기다린다.
◈ 장계(張繼)의 시로 유명한 한산사(寒山寺)
寒山寺(한산사)는 원래 梁나라 天監(천감)연간(502-517)에 창건되었다.
唐나라 貞觀(정관) 연간(672-649)에
奇人(기인) 승려인 寒山(한산)과 그의 동료인 拾得(습득)이 살았다는 데서
원래 이름인 妙利普名塔院(묘리보명탑원)이라는 긴 이름을 버리고
점차 寒山寺(한산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대대로 원수 관계였던 집안의 원한을 풀고 친구로 사이좋게 지냈다는
한산과 습득 스님이 우정을 나눈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매년 12월 31일 일본의 한산사 스님들이 직접 참여해 이루어진다는
108번 타종식으로 더 유명해진 곳이다.
이곳에 살던 승려 寒山(한산)은 시인으로 3백여수의 시를 남긴 사람인데,
그의 친구 拾得(습득)과 함께 화상이 대웅전 안에 남아 있다.
이곳에는 또 이 절을 찾은 유명한 시인들이 남긴 詩
寒山寺三十六首(한산사삼십육수)등이 걸려 있다.
- 詩 한수로 소주 제1시인이 된 唐나라 장계(張繼)의《楓橋夜泊:풍교야박》-
月落烏啼霜滿天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하늘 가득 서리가 내리네
江楓漁火對愁眠 풍교에는 고깃배 등불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자고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 밖 한산사에는
夜半鐘聲到客船 한밤중에 종소리가 객선에 이르네.
한산사의 산문 앞에 걸려 있는 다리는 강촌교(江村橋)이고,
시에 나오는 풍교(楓橋)는 산문(山門) 오른
쪽으로 꺾어 200m 정도 가면 있다.
◈ 유원(留園)
중국 4대 정원의 하나로 1525년에 만들어진 정원이다.
졸정원(拙政園)과 함께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정원이다.
명나라 가정 연간(1522-66)에 서시태가 개인 정원으로 만들었다.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동원(東園)이라고 불리었으나,
몇 번의 개축을 거쳐 청(淸)대에 유원(留園)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4개의 영역이 있어서 각각 다른 취향의 광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녹나무로 만들어진 오봉선관(五峰仙館)이라는 청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있다.
700m 길이의 장랑(長廊)과 장랑의 벽면에 있는 화창(花窓)이 있는데
각각의 모양이 다른 화창을 통해 바라보는 경관은 볼 만하다.
관운봉(冠雲峰)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태호석은
태호석의 왕이라고까지 불리는 명석(名石) 중의 명석이다.
◈ 창랑정(滄浪亭)
소주에는 4대 명원(名園)이 있다.
이 창랑정은 그 4대 명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정원으로 약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다.
면적은 약 1ha로, 규모는 작지만 세련된 배치와 구조에 대나무가 잘 어울린다.
취령롱(翠玲瓏), 화창(花窓), 청향관(淸香館), 명도당(明道堂)이나
500명의 석각이 있는 오백명람사(五百名覽祠) 등이 볼 만하다.
창랑이라는 이름은
굴원(屈原)의 시 어부사(漁父詞)에 나오는 창랑지수(滄浪之水)에서 따온 것.
◆ 사자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