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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문-2[기행문] 畵帖紀行 (金炳宗)

淸山에 2010. 10. 7. 12:39
 
 
 
 

   한국의 명문-2[기행문] 畵帖紀行 (金炳宗)


                    <출처=인터넷 월간조선 2006.4>


 
편집자 注:이 글은 1998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화첩기행’中 ‘아리랑과 정선’편이다. 이 글의 제목은 ‘아우라지 뱃사공아 내 한마저 건너주게’이다. 송병락씨 추천.
 
  金炳宗
  1953~. 교수·화가. 전북 남원 출생. 서울대 미대 졸업. 현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교수.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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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은 초록이다./초록 산, 초록 나무, 초록 바람이다./그 속을 초록 강물이 흐른다./
아픈 사랑과 이별의 전설을 안고./열 겹의 산을 열 가지 색으로 내비친다는 강./
行旅(행려)의 그대여. 그 아우라지강에서는 흐르는 강물에 눈길을 보태지 말라.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라리 가락처럼 멀어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결국엔 저렇게 흘러가는 것이로구나, 애달픈 사랑도 정 깊은 인연도 그리고 우리네 인생마저도.
공연히 서러워지려니….
 
  정선아리랑의 탯줄 아우라지 가는 길. 기차는 간이역 ‘餘糧(여량)’에 선다.
도회지로 가는 딸을 배웅 나온 듯한 어머니가 서 있다. 어여 그만 들어가시라고, 딸은 몇 번씩이나
손짓을 보내건만 어머니는 개찰구에서 움직일 줄 모른다. 그러다가 기어이 옷고름을 눈으로 가져 간다.
甑山(증산)을 떠난 기차가 잠시 머물렀던 또다른 간이역은 그 이름이 別於谷(별어곡).
얼마나 이런 이별이 있어 왔기에 역이름마저 ‘이별의 골짜기’였을까.
 
  나를 내려놓은 두 輛(량)짜리 기차는 제법 벌판을 흔들며 떠나가고, 떠나간 자리 따라 풀이 일렁인다.
포플러 숲 건너편으로 반짝 물길의 한 자락이 보인다.
 
  역 앞 청원식당에서 ‘콧등치기’ 한 그릇으로 늦은 점심을 때운다.
후루룩 먹다 보면 얼기설기 메밀반죽 국수 가닥이 사정없이 콧등을 후려친대서 콧등치기란다.
정선에는 유독 후다닥 해치우는 이런 식의 ‘치기’ 음식이 많다. 강냉이밥인 ‘사절치기’도 옥수수 한 알을
네 개로 만들어 밥을 지었대서 나온 말. 어차피 논농사 짧은 궁벽한 산살림에
걸판진 음식 호사는 어려웠을 터이다. 오죽하면 딸 낳거든 평창에 시집 보내
이팝(쌀밥) 실컷 멕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정선은 원래 “신선 사는 깊은 산 속 도원경 같다” 하여 그 옛이름이 桃源(도원)이었다는 곳. 유난히 산 많고 고개 많아 비행기재, 선마령재, 다 넘고 와도 백봉령 아홉 고개에 코가 깨진다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비단 산길 오르내리는 현실의 고개만이 고개는 아닐 터이다. 변변한 땅뙈기 하나 없이 도란도란 세 끼 밥상마저 자유롭지 않은 가난 속에서 삶의 무게 지고 오르내려야 했을 인생의 고갯길인들 오죽 많았을까.
 
  정선아리랑은 그 태반이 여성들의 口傳(구전) 노동요. 1000여 수에 육박한다는 가사들 중에는 독백처럼 자기 심정을 노랫말로 털어놓은 것이 유독 많다. 지금은 九切里(구절리) 깊은 산 속까지 도로가 뚫려 있지만 옛날의 정선은 한번 시집오면 평생 외지로 나가기조차 어려웠던 곳이다. 삶이 너무도 고단하고 힘겨울 때마다 나를 좀 보내 달라고, 아리랑 고개로 넘겨 달라고 노래로나마 애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같은 아리랑이면서도 정선아리랑은 진도아리랑 같은 질펀한 해학이나 가락의 격한 높낮이가 없다. 논보다 밭이, 그것도 비탈밭이 많은 정선에서 힘겹게 일하며 빠르고 현란한 가락은 어려웠을 터이다. 일하다 허리를 펴고
산 너머 몰려오는 구름을 보며 “눈이 오려나/비가 오려나/억수장마 지려나…”
무심중에 중얼거리다 가락이 되곤 했을 것이다.
 
  상념에 젖어 걷는 사이에 ‘정선아리랑의 유적지 아우라지’라는 돌비가 나타난다. 논길을 가로질러 강과 만난다.
 
  아우라지란 골지천과 송천이 서로 ‘어우러져’ 강이 되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 두 물이 만나 이루어졌다 해서 ‘두물머리’라는 예쁜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 강에는 정선아리랑에 설움 하나를 더 보태는 사연이 흐른다. 어느 해 혼례식을 앞두고 건너편 마을 사람들이 신부와 함께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오다가 그만 배가 뒤집혀 버린다.
가마에 갇혀 나오지 못한 신부는 그예 강 밑으로 가라앉았다가 죽은 목숨으로 떠올랐다.
그 원혼을 달래느라 강 언덕에는 처녀의 동상을 세우기에 이른다.
 
  수려한 풍광 속에 엎드려 있는 아픈 삶의 흔적들은 아우라지강 말고도 곳곳에 있었다. 폐광되어 을씨년스럽게
남은 석탄만이 쌓여 있는 ‘구절리역’ 부근은 오래 된 흑백영화 화면처럼 쓸쓸하기만 했고, 남면 낙동리
居七賢洞(거칠현동)의 ‘七賢碑(칠현비)’는 숨어 살다 죽어간 일곱 선비의 나라 사랑의 외로움과
고달픔이 처절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정선아리랑은 그 가락이 멀리 왕조를 비키어 의로운 사연을 안고 칠현동으로 들어왔던 고려 말
선비들의 義歌(의가)로부터 시작하여 숱한 民草(민초)들의 哀怨聲(애원성)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그 사연의 폭이 넓고 깊다.
 
  저녁 짓는 연기 오르는 산골 마을을 돌아 숙암천 앞 아라리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장마로 하진부쪽 물길을 보태 잔잔하던 숙암천은 揚子江(양쯔강)처럼 도도하게 흘러내린다.
 
  밤이 빠른 산골에 성근 별이 떠오른다. 마당의 매캐한 모깃불을 사이에 두고 안주인은 당귀, 천궁, 오미자 같은 약초에 구렁이까지 나온다는 정선장 구경이 볼 만하다고 일러준다.
저 앞 숙암천에 어항 몇 개만 넣어두면 밤새 메기, 쏘가리, 가물치가 가득 들어온다는 말도.
 
  강 건너 산가에 불빛이 깜박인다.
 
  멍석에 누워 하늘을 본다. 어느새 와르르 쏟아질 듯한 별무리. 한을 노래로 바꾸어 불러온 이름 없는 얼굴들이 별 되어 떠 있다. 서늘한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간다. 정선에 누워 나는 물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된다.
 
 
입력날짜 : 2006-04-12 (2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