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은 초록이다./초록 산, 초록 나무, 초록 바람이다./그 속을 초록 강물이 흐른다./ 정선아리랑의 탯줄 아우라지 가는 길. 기차는 간이역 ‘餘糧(여량)’에 선다. 나를 내려놓은 두 輛(량)짜리 기차는 제법 벌판을 흔들며 떠나가고, 떠나간 자리 따라 풀이 일렁인다. 역 앞 청원식당에서 ‘콧등치기’ 한 그릇으로 늦은 점심을 때운다. 정선은 원래 “신선 사는 깊은 산 속 도원경 같다” 하여 그 옛이름이 桃源(도원)이었다는 곳. 유난히 산 많고 고개 많아 비행기재, 선마령재, 다 넘고 와도 백봉령 아홉 고개에 코가 깨진다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비단 산길 오르내리는 현실의 고개만이 고개는 아닐 터이다. 변변한 땅뙈기 하나 없이 도란도란 세 끼 밥상마저 자유롭지 않은 가난 속에서 삶의 무게 지고 오르내려야 했을 인생의 고갯길인들 오죽 많았을까. 정선아리랑은 그 태반이 여성들의 口傳(구전) 노동요. 1000여 수에 육박한다는 가사들 중에는 독백처럼 자기 심정을 노랫말로 털어놓은 것이 유독 많다. 지금은 九切里(구절리) 깊은 산 속까지 도로가 뚫려 있지만 옛날의 정선은 한번 시집오면 평생 외지로 나가기조차 어려웠던 곳이다. 삶이 너무도 고단하고 힘겨울 때마다 나를 좀 보내 달라고, 아리랑 고개로 넘겨 달라고 노래로나마 애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같은 아리랑이면서도 정선아리랑은 진도아리랑 같은 질펀한 해학이나 가락의 격한 높낮이가 없다. 논보다 밭이, 그것도 비탈밭이 많은 정선에서 힘겹게 일하며 빠르고 현란한 가락은 어려웠을 터이다. 일하다 허리를 펴고 상념에 젖어 걷는 사이에 ‘정선아리랑의 유적지 아우라지’라는 돌비가 나타난다. 논길을 가로질러 강과 만난다. 아우라지란 골지천과 송천이 서로 ‘어우러져’ 강이 되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 두 물이 만나 이루어졌다 해서 ‘두물머리’라는 예쁜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 강에는 정선아리랑에 설움 하나를 더 보태는 사연이 흐른다. 어느 해 혼례식을 앞두고 건너편 마을 사람들이 신부와 함께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오다가 그만 배가 뒤집혀 버린다. 수려한 풍광 속에 엎드려 있는 아픈 삶의 흔적들은 아우라지강 말고도 곳곳에 있었다. 폐광되어 을씨년스럽게 그러고 보면 정선아리랑은 그 가락이 멀리 왕조를 비키어 의로운 사연을 안고 칠현동으로 들어왔던 고려 말 저녁 짓는 연기 오르는 산골 마을을 돌아 숙암천 앞 아라리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밤이 빠른 산골에 성근 별이 떠오른다. 마당의 매캐한 모깃불을 사이에 두고 안주인은 당귀, 천궁, 오미자 같은 약초에 구렁이까지 나온다는 정선장 구경이 볼 만하다고 일러준다. 강 건너 산가에 불빛이 깜박인다. 멍석에 누워 하늘을 본다. 어느새 와르르 쏟아질 듯한 별무리. 한을 노래로 바꾸어 불러온 이름 없는 얼굴들이 별 되어 떠 있다. 서늘한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간다. 정선에 누워 나는 물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된다. 입력날짜 : 2006-04-12 (2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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