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음악의 이해

한국 가곡사 E

淸山에 2010. 9. 18. 11:02

 

 

 

 

 

한국 가곡사 28 - 가곡의 새 방향 
 
 
현대적 감각의 작품으로 이전의 스타일과는 다르게 어쩌면 가곡분야 뿐만 아니라 기악곡및 피아노곡도 지금까지의 작풍과는 달랐다. 가곡 "빠알간 석류" "삼미" "부다페스터 소녀의 죽음" "늪" "자장가"(백병동)"빈약한 올페의 회상" 기악곡 "3성에 의한 콘트라 베이스" "첼로 소나타" 등을 드라마 센타에서 발표 되었다.
 
모두 백병동의 작품이다.그리고 11월에는  박재열이 "현악4중주 제2번" "다섯 악기를 위한 디베르티벤도"등
기악 작품을 발표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규모의 칸타타 연주로 김규환의 '나의 조국" 이동욱의 "풍년제"가 서울 합창단에 의해 발표 되었으며,국립 오페라단의 제9회 연주회로 장일남의 "춘향전"이 국립 극장에서 초연 되었으며 독창회로는 테너 옥인걸이 귀국 독창회로 서울 시민회관 에서 김성태의 '산유화" 윤이상의 "고풍의상" 등의 한국 가곡을 불렀으며,바리톤 이병두 소프라노 조태희의 부부
죠인트가 5월에 있었습니다.
 
한편 바리톤 양천종은 독창회에서 김성태의 "꿈낄" "백마강" "자장가"를 불러 한번더 한국 가곡의 발전에 불을 짚혀으며,이경숙 이명숙 자매는 김달성의 "꽃" "후조"등의 우리가곡을 잊지않고 2인음악회의 레퍼토리로 올렸으며,임만섭도 김동진 이흥렬 박찬석의 가곡을 독창회의 곡목으로 넣었습니다.
 
 1967년 나인용 작곡발표회가 국립극장에서 있었는데,가곡 "진달래" "임의 노래"등과 "현악 4중주곡" '바이올린과 소나타를 위한 피아노" "피아노 3중주곡" 드이 발표 되었고,김국진의 작곡 발표회가 있었는데(12월)가곡 "석류" "눈이 내리네" "피리" "해바라기" "아리아' "그 여자는 어떻게 생겼을까?"등 그밖의 곡이 발표 되었습니다.
 
대구 효성여대(지금 효성 카톨릭대)강당에서 하대응의 자곡 발표회가 있었는데 "진달래"외 우리가곡 만으로 채웠으며,역시 정대범도 춘천의 강원 홍보관에서 자곡 발표회를 가졌는데 "한산섬" "설영" "애모" "가는 길" "당신에게" "초혼" "태산이 높다하되" "못잊어"등 우리가곡만 발표 하였습니다.
 
 한편 4월의 임만섭 독창회에서 김동진의 "탄금대" "가고파" 나운영의 "당나귀" 양산도"(민요)드의 가곡을 불렀으며,아쉽게 전승리는 국립극장에서 볼프 라벨 브람스 의 가곡만으로 독창회를 가졌습니다.6월에 김대진은 '겨울 나그네"전곡을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신인철은 9월 국립극장에서 헨델 프랑크의 작품만으로,이병두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가곡만으로,이상춘은 "시인의 사랑"전곡을,이어서 많은 중진들이 독창회를 열었는데 우리가곡들이 빠져서 빛을 잃었습니다.

 
한국 가곡사 29 - 우리 가곡의 새로운 방향
 
우리는 이강산 저하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먹는것 입는것 모두가 이산하의 어디엔가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소리를 어떤 논리도 필요없는 것이다.음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땅의 음악인이여 우리의 가곡을 등한시 하지 말지어다. 이것은 기본이기전에 필수인 것이다.
 
 1967년의 음악 활동은 신인 들의 활동이 두더러 진다. 강혜자,김명주가5월 국립극장에서,박유진이 6월 YWCA강당에서,김영희가 6월,조풍상이9월 국립극장에서 이밖의 강미자 정경순 김정진 윤호문 여영옥 이경분 등이 독창회를 열어 활발함을 보였으나 역시 우리가곡은 빠져 습습함을 금 할 수 없다.궁금한 것은 당시의 비평이다.물론 당시의 교과과정에 한국가곡을 넣지 않았다.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며,그것이 보편화 되었음은 애석한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12월 국립극장에서  열린 오현명의 독창회는 우리가곡의 보급에 하나의 지표적 역활을 했으며,시사하는 바가 컷으며 오늘날 까지도 그의 가곡은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있습니다.
 부산에서는 소프라노 박정숙이 "현대 가곡의 밤"이라 이름하여 독창회를 열었는데,김달성의 "낙화" "청산도"
 김순애의 "출정사" '이슬" 정윤주의 "아지랭이" 유신의 "산딸기" 김대현의 "사슴 한마리" "난초" 나운영의 "당나귀" "초혼" 이상근의 "여자" 이흥렬의 "내 마음이 흐르는 강물에" "옥잠화" 김성태의 "나그네" "못잊어" 김동진의 "탄금대" "너는"등 우리가곡만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춘천의 강원도 홍보관에서 유영명이 독창회를 했는데,나운영의 "달밤" 하대응의 "산"등의 우리가곡이 선 보였으며
 1968년9월 국립극장에서 송례경 가곡 작품 발표회가 있었는데,"그얼굴의 인상" '강가" "여인" "설중화송" "바다에서"등의 22곡의 가곡을 발표해 그야말로 새로운 감각의 새로운 방향의 이정표를 마련 했다고  하겠습니다.
 
10월에는 대구에서 김진균이 가곡 발표회를 가져"노래의 날개" "답설부" "자장가" "바다" "금잔디" "밀어"등 23곡의 가곡을 발표,우리의 언어적 감각을 간파한 새로운 느낌괴 미묘한 맛이 어우러지며 음성학적으로도 고려한듯하다.
 
3월에는 김혜경이 국립극장에서 독창회를 가졌는데,특이한곡 김성태의 "한시 4수 에 의한  민요풍 가요"가 선보였으며,4월에는 변성엽이 김동진의 심청전 중의 아리아 "부녀 이별의 노래" 채동선의 "그리워"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등을 불렀습니다.
 
독창회에서 우리 오페라의 아리아가 불리워짐은 우리가곡의 보급과 함게 공감이 가며 뭔가 시사 하는 바 가 있다고 하겠으며 발전과 함게 보편화 되었으면 합니다.
 
  한편, 김금환은 10월에 국립극장에서 하대응의 "산" 김성태의 "산유화' 박태준의 "도래춤" 조두남의 "제비" 나운영의 "내고향"등의 한국가곡을 넣어 독창회를 했으며,임만섭은 윤용하의 "보리밭" "도라지꽃" "고독"등을 섞어 독창회를 가졌습니다.

 
한국 가곡사 30 - 가곡의 새 바램
 
1969년 10월에 이상근은 유치환의 시에의한 "아가" "그리움"등 12곡으로 모아진 연가곡 "아가"를 작곡 출판 하였으며,이어1970년 5월에 김춘수의 시에의한 "길 바닥" "늪" "여자" "소년" "내가 가던 그날응" "가을 저녁의 시"등 6곡을 모은 연가곡 "가을 저녁의 시"를 작곡 출판 하였습니다.
 
이는 대단한 발전의 의미를 부여하는 동기로 한국적인 정서가 담뿍담긴 그런 작품으로 우리가곡의 방향을 정립 해 보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가곡을 제시 하므로 국제적 도약의 계기는 물론 이후의 작곡가 듣에게도 적잖은 발전적 여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김진균은 1970년 5월에 "노래의 날개" "또 한송이의 나의 모란" "산수도" "금잔디" "가는 길"등 33편의 가곡을 모아 "김진균 가곡집"을 작곡 이상사에서 출판 하였다.여기에 수록된 가곡들은 1946년 부터 1969년에 이르는기간에 작곡된 것을
모은 것입니다.
 
그는 서구양식 특히 독일 낭만파 가곡의 양식과 5음계의 동양적 스타일을 가곡의 작곡에 접목 시킨 후기의작품 일부를 발표 하였습니다.그후에도 김진균은1974년 11월 종전의 것과 아직 발표되지 않은 곡들을 골라 32곡의 김진균 가곡선 "초혼"을 세광 출판사에서 출판 하였습니다.그는 평시 늘 한국가곡의 애착과 새로운 감각의 곡을 만들기 노력 하면서 한국가곡의 발전을 위해 무단히 열정을 보였습니다.
 
 또,현재명 박사 기념 사업회에서는 1970년 10월에 그의가곡 24곡 전가곡과 오페라 "춘향전" "왕자호동"등의 아리아 6곡 합창곡  "물방아"등3곡과 모두33곡을 편집 "현재명 작곡집"을 발간 그의 작품을 총정리 하였다.
 
 1971년 10월에는 조념 가곡 발표회를 서울 시민 회관에서 있었습니다.작품으로는 "보리피리" "바다 아기네" "승무" "초혼" "다도해" "춘한" "녹두꽃" "봄"등 16곡 입니다.새로운 시도 보다는 토속적 소재의 어울림과 우리 주변의 일상이 노래로 나타나므로 더욱 친근 하며 소탈한 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발표돤 가곡들을 모아 "황톳길"이란 가곡집을 발간 하였습니다.
 아 그리고 가난과 역경속에서 살다간 윤용하의 작곡집 "보리밭"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7년 만인 1972년 4월에 세광 출판사에서 발간 되었다.이 곡집에는 13곡의 그의 가곡과 "병상의 노래"등 2곡의 아리아와 "민족의 노래"등 9곡의 국민 가요 "나무잎 배"듣 61곡의 동요가 실려 있는데,실로 그의 전 자품을 망라 한 것 입니다.
 
이가곡집의 출판 기념회가 1972년 4월 19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고인의 유족과 동료,그외 음악인이 모여 추모 하는 가운데 거행 되었습니다.초창기의 서구흐름을 애써 우리의 체질로 전환 하려는 노력들이 선명히 보이는 작품들 입니다.
 
 1972년 11월 박찬석이 그의 가곡 "남촌" "훈풍" "완춘"등 16곡을 모아 박찬석 가곡집 "완춘"을 세광 출판사에서 출판 하고 있습니다.지극히 보수적인 경향속에서 한국적인 서정을 담았으며,시사 하는 바 도 크다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가곡이 자리를 잡기 까지 일반인 들에게 널리 불려지고 또 각별한 곡들을 모아 세광 출판사에서 "한국가곡 200곡선"을 들 수 있습니다.1972년 2월 상권 1973년 10월에 하권을 출판 했는데,여기에는 홍난파 현재명 채동선 이흥렬 김세형 김동진 김성태등  54명의 작곡가들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한국 가곡사 31 - 가곡의 새 바램
 
1973년 10월 성낙현은 "자장가" "마을" "나그네"외 10곡의 가곡을 모아 "성낙현 가곡집"을 현대 악보 출판사에서 발간하고,김달성은 조병화의 시에 붙혀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등 12곡의 가곡을 모은 연가곡 "사랑이 가기 전에"와 서정주의 시에붙인 "학" "푸르른 날"등 24곡을 모은 가곡집 "국화 옆에서"를 백영사에서 출판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가기 전에"는 1958년 "국화 옆에서"는 1969년에 작곡된 곡들로 매우 지성적이며 품격 높은 사랑의 표현과 곡은 매우 그것을 잘노래 했다고 할 수 있는 곡 입니다.
 
 1974년 2월에는 유신 가곡집 "보리피리"가 월간 음악사에서 출판 하였는데 곡은 "보리피리" "바다"갯벌" "강강술래"외 18곡 입니다. 또한 김세형 가곡집이 세광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는데,이는1936년 "먼길"이 출판된 이후처음으로 "뱃노래" "옥저" "염주" "찢어진 피리"등 14곡과 연가곡 "먼길"을 재록 하고 있습니다.구성이 견고하며 중후한 감각이 느껴지는 작품 들로 우리가곡의 단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출판 기념회의 장소는 서울 신문회관 입니다.
 
 한편 김용호는1974년 11월 1960년이전과 1970년이후에작곡된 가곡중에서 "대숲" "자장가"등 22곡을 골라 "김용호 가곡집"을 출판하고,기념회를 미도파 화랑에서  가졌습니다. 새로운 체질로서 우리의 어법과 음성학적인 면을 신경 쓰면서 한글의 특유성을 살리려 했습니다.
 
 시의 시대적 흐름과 억양을 중시하고 작곡 기법도 현대적 감각의 새련미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백병동을 들 수 있습니다."늪"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빠알간 석류" "자장가"등 1957~1973년까지 작곡된 가곡 12곡을 모아 백병동 가곡집 "화장장에서"를 현대 악보 출판사에서 발간 하였는데,또 한면에서 우리가곡의 새 경향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역시1975년 5월 김형주 가곡집 "추도"가 현대 출판사에서    출판 되었는데,여기에는  "자장가" "첫치마" "임의 노래" "추도" "뱃노래"등 1949~1958년 비교적 초기의 작품들이 수록 되어 있습니다.
 
 많은 가곡집들이 연달아 출판 되었다.자비 출판이란 후진적인 여걱 속에서도 우리의 선배,우리가곡의 선각자들은 서섬없이 주저하지 않았으며 꽤나 사명감이 있었습니다.작품의 보존은 물론이며 보급과 연구자료로서의 학술적가치로서도
중요한 부분인 것 입니다.
 
 한편,1974년 11월  오현명은 "우리 가곡의 밤"이란 제목으로 국립극장에서 독창회를 열어 조두남의 "제비" "길손" "목탁소리" "선구자" 김동진의 "7월의 노래" "한산섬" "샘가에서" "뱃노래" 김연준의 "인생항로" "비둘기" "울분" "청산에 살리라" 윤용하의 "고독" "도라지꽃" "달밤" "보리밭"등16곡을 불러 가곡운동에 계속 공헌을 하고 있으며,1975년 99월 김자경이1959년이래 16년만에 독창회를 가졌는데 금수현의 "그네" 장일남의 "비목" 김형주의 "개나리 꽃" 김순애의 "그대있음에"박태준의 "그이생각" 김연준의 "있지못할 그모습" "안타까움" 조두남의 "산촌" 김세형의 "ㅉㅈ어진 피리" 김성태의 "이별의 노래" "산유화 나운영의 "달밤" 이흫렬의 "자장가" "봄이오면  "김동진의 "가고파" "님의노래" "못잊어"등 우리 가곡을 불러 우리가곡의 보급에 크게 노력 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의가곡은 이처럼 애착심이강하고 정렬과 사명감이 넘치는 선배님들에의해서 작곡되고 또 불리어졌습니다.그전보다는 많은 관심과 국민적 기반이 많이 좋아졌지만 더욱 새롭고 고매한 그리고 예술성 있는 가곡으로 발전을 할려면 애착과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그리고 가곡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끊을 수 없음으로 국민적 대중적 통속적 희망적 이어야한다.이런 면에서 한국가곡은 점차 뿌리를 내릴 것이다.
 
 
퍼옴
 http://blog.naver.com/chang4719/60003015893
차한잔 네이버 블로그에 감사 드립니다 ^*

 
 

'음악 > 음악의 이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악의 기초(악보보기등등).펌  (0) 2010.10.24
이럴 때는 이런 음악을  (0) 2010.09.23
한국 가곡사 D  (0) 2010.09.18
한국 가곡사 C  (0) 2010.09.18
한국 가곡사 B  (0) 2010.09.18